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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특강 : 개혁주의적 설교관(3)

 

설교할 때 피해야 할 성경해석 방법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성경을 어떻게 풀어서 가르쳐야 설교가 은혜의 방도로 사용되는 일에 기여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먼저 설교가 은혜의 방도로 작용하는데 방해하는 것부터 언급하기로 한다. 내용상 이를 반대로 적용하면, 말씀을 제대로 전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제대로 한다고 해도 자연스럽게 은혜의 방도가 된다고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 이는 성령님의 사역과 설교의 관계를 밝히면서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수동적으로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기를 기대하면서 이 거룩한 일에 관여한다. 성령님의 사역과 거리가 먼 일들을 분명히 해 보기로 하자.

 

지나친 알레고리 해석, 피해야

 

첫째, 지나친 알레고리적 해석이다. 성경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면 알레고리에 대한 해설을 따로 해 줘야 한다. 씨 뿌리는 자 비유는 예수님께서 친히 그와 같은 의도로 말씀하셨고, 알레고리 해석을 제공하셨기에 그에 따라야 한다.

 

비유를 주신 주님께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눅 8:11), 가라지 비유에서는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들은 천사들이니”(마 13:37-39) 등으로 설명하셨다. 우리는 마땅히 이를 따라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알레고리적 의도가 없는 것을 알레고리로 해석하면 안 된다. 바른 성경 해석도 아니고, 바른 설교라 할 수도 없다. 교부들이나 과거 건전한 주석가들이 알레고리를 시도했으니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는 것이다.

 

문맥에서 벗어난 읽기가 갖는 함정

 

둘째, 성경 본문의 맥락을 벗어난 읽기와 그에 근거한 설교는 하나님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성령님께서 은혜의 방도로 역사하시는 것과도 관계없다고 해야 한다. 일례로 시편 23편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는 도다”는 말씀을 설명하면서, “원수들이 보는 데서 참 하나님 백성들이 상(償)을 받는다”고 말한다면 문제가 생긴다. 이와 같은 것이 맥락을 벗어난 읽기와 설교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문맥에 유의하지 않아 본문 자체의 독특한 강조점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예도 있다. 이를테면, 신약적 종말 개념을 잘 드러내면서도, 안타깝게 고린도후서 5:15절과 17절의 문맥에 잘 유의하지 않아서 그 본문이 제시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만물의 새로운 피조물 됨’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다. 그들은 일반적인 해석을 따르면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들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논의한다.

 

잘못된 해석은 올바른 해석과 대조해 보는 것이 좋다. 앞선 예의 경우, 고린도후서 5:15절과 17절의 문맥을 잘 드러내면서 구속사적이고 신약의 종말론적인 의미에서, 피조계 전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음을 잘 드러낸 해석들과 대조해 봐야 한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나타나는 ‘새 예루살렘’을 어떻게 이해하고 제시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다른 예들도 있지만, 오늘날 문맥에 유의하는 해석자 대부분은 새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종국에 있게 하실 새 하늘과 새 땅에 거주하게 될 하나님의 백성, 즉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표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한다.

 

특히 요한계시록 21:9절 이하에서 새 예루살렘을 묘사하면서 “어린 양의 신부를 보여 준다”고 표현하는 데서 이것이 아주 잘 드러난다. 어떤 이가 이 본문과 관련해 다른 해석을 제시하는 경우, 적어도 왜 다른 해석을 제시했는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도 새 예루살렘을 새 하늘과 새 땅과 거의 같은 것으로, ‘새로운 에덴’으로까지 표현하는 것은 문맥에 충실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탈문맥적 해석의 전형은 비슷한 단어를 다 연결하면서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신천지의 해석이나 소위 다락방 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해석하는 방식을 잘못됐다고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무리하게 도식을 적용해서도 안 된다

 

셋째, 지나친 도식화도 성경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때로 매우 유명한 학자들도 이런 잘못을 범한다. 성경을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어떤 도식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아니라면 무리하게 도식을 넣어 읽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이런 도식화의 가장 흔한 예로 지나친 모형론을 꼽을 수 있다. 성경 자체가 제시하는 바른 모형론이 있다. 구약의 어떤 제도나 인물을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구약 희생 제사 제도와 그와 관련한 것을 장차 오실 그리스도와 연결하는 것은 성경에 제시된 모형론을 잘 따르는 것이다. 성경에서 이를 분명히 드러내는 경우에 한해서 모형론을 도출해야 한다. 성경이 그렇게 시사하지 않는데, 그런 모형론을 찾으려 하는 것은 언제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여리고성에서 라합이 늘어뜨린 붉은 줄을 그리스도 구속의 피에 대한 모형으로 본다든지, 야곱이 에서에게 제공한 ‘붉은 것’에서 그리스도의 보혈을 생각한다든지, 그런 것이 잘못된 도식화를 시도하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요즘 학자들의 지나친 도식화 시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이 성경에 대한 바른 해석을 방해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성경의 상당히 많은 곳에서 카이즘(샌드위치) 구조를 찾아, 그에 근거하여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는 게 대표적이다.

 

성경 구조상 분명한 카이즘 구조를 찾아 제시할 수 있는 곳이 있고, 그것을 통해 본문의 강조점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자의적으로 이런 구조를 거의 모든 곳에서 찾아내는 것, 이와 비슷하게 인클루지오 구조를 무리하게 찾으려고 하는 것도 바른 성경 해석이라 보기 어렵다.

 

근자에는 성전 모티프에 대한 집착으로 창세기 앞부분에서도 성전 모티프을 찾아 해석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것을 잘못하면 창세기 앞부분 기록 연대에 대한 질문과 과연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그런 의도로 그 부분을 작성하게 하셨는가 하는 질문을 일으키기에 건전한 해석이라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 글에서 논의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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