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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청교도도서관에서 퍼온글입니다.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 그리고 섭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개혁주의 구원론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 그리고 섭리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 1:11).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원하신 대로, 그 뜻을 작정하신 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모든 일’이란 만사(萬事)와 만물(萬物)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통치하심에 있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작정으로 되지 않는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작정은 영원에서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관계하고 있습니다.

 

1. 작정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행 2:23) 여기서 ‘하나님의 정하신 뜻’은 ‘작정’을 ‘미리 아신대로’ ‘예지’ 또는 ‘예정’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작정’은 만사(萬事)와 만물(萬物)을 총괄하여 적용되는 하나님의 뜻을 의미하고, ‘예정’은 그 포괄적인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서 특히 ‘인간의 구원’에 관계된 하나님의 작정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작정’은 포괄적이고 보편적이지만 ‘예정’은 국부적이고 특수적 입니다. 작정은 사물에 관계하고 예정은 인간에 관계합니다. 작정은 하나님의 선견(先見)과 예지이며, 예정은 선택과 유기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에는 유효적 작정과 허용적 작정이 있습니다. 유효적 작정은 하나님의 작정의 적극적인 면으로 모든 사물의 창조, 보존, 통치 등 섭리의 능동적, 효과적 사역을 의미하고, 허용적 작정은 하나님 작정의 소극적인 면으로 인간의 범죄의 허용, 사탄과 악의 활동의 허용 등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두 방면의 ‘작정’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지전능으로부터 나타나는 완전한 지혜와 완전한 능력에 의한, 완전히 거룩하고 자유로운 하나님 의지의 확고한 내적 계획과 그 외적 실현을 뜻하고 있습니다.
 

1)  작정의 특성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 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엡 3:9). 하나님의 작정은 감취어진 비밀한 경륜이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는 지엽적이고 국부적인 것만 알 뿐, 전반적이고 포괄적인 이해는 다만 특별 계시인 성경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자연과학이 그 일단을 안 것은 물리학적 법칙과 화학적 법칙 등에 불과하고, 철학적인 지식은 많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 사역은 “그 마음의 원대로”(엡 1:11),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행 2:23), “그 기쁘신 뜻”(엡 1:5)을 따라 집행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작정 사역에 있어서 완전한 자유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작정 사역에 있어서 어느 누구나 무엇으로부터도 영향 받지 않으시고 완전히 자유로운 당신의 의지대로 계획하고 집행하십니다.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시 104:24).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는 전지 전능에서 나오며, 그것은 창조와 그 섭리 속에서 신비롭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작정 사역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지혜는 목적한 바는 반드시 이루시는 목적 지향성과 그의 계획이 완전히 성취되는 완전 성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 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7). 하나님의 작정 사역은 시간 안에서 완결되는 일, 즉 창조나 칭의, 양자와 같이 시간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행위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자신이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작정 사역은 만세 전인 영원부터 시작하여 영원에서 완성되는 영원한 신적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변할 수 없는 불변성을 수반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 44:6). 하나님은 절대적인 존재로서 세상의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작정 사역의 절대성은 영원성과 불변성을 수반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홀로 모든 일을 예지하시고 예정하실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무조건(無條件)과 초조건(超條件)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시 139:8). 하나님의 작정 사역의 범위는 하늘과 음부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천상의 영계와 천하의 물질계를 망라해서 하나님은 모든 사물을 섭리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무소부재 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늘의 천사들이나 국가나 민족 같은 집단이나 하나하나의 사물이나 개인적 운명이나 삶의 정황까지도 다 파악하고 계시며, 당신이 창조한 모든 피조 세계 전체를 머리털 하나도 빠짐없이 포괄적으로 섭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 작정의 목적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13). 하나님의 작정 사역의 목적은 피조물의 행복과 성화를 증진시키는 데에 있기도 하나(요 3:5, 딤전 6:17, 벧전 1:2),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의 삶은 이 작정 사역의 목적, 즉 하나님의 영광에 부합되도록 사는 것만이 가장 복된 삶이요, 영광스러운 삶이라고 할 것입니다.

 

2. 예정이란 무엇인가?

 

예정은 사람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을 가리킵니다. 예정의 개념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장 3-4절에 다음과 같이 잘 진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에 의하여 그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었고, 다른 이들은 영원한 죽음에 이르도록 미리 정해졌다.” “이렇게 예정된 이들 천사들과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그리고 불변적으로 계획되어진 것이며, 그들의 수는 매우 확실하고 명확해서 더해지거나 감해질 수 없다.” 예정의 주체는 성부 하나님이시며, 예정의 대상은 모든 사람들과 천사들입니다. 특히,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예정은 선택과 유기(버리심)의 두 요소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 선택

 

예정의 첫 번째 요소는 선택인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장 5절은 “인류 중에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된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그의 영원하시며 불변하신 목적과 그의 은밀한 계획과 기쁘신 뜻에 따라 오직 그의 값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고, 신앙이나 선행들이나, 혹은 그것들 중에서 끝까지 견딤이나, 혹은 피조물 안의 다른 어떤 것을 조건들로 혹은 그를 그것으로 이끄는 원인들로 미리 아심이 없이 하셨으며, 모든 것이 그의 영광스러운 은혜의 찬송이 되게 하셨다”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선택에 대한 성경적 증거들은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롬 8:29),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3-5)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선택은 또한 주권적, 무조건적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그것이 사람의 회개나 믿음에 근거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선택한 것이라기보다는 사람이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2) 유기

 

예정의 두 번째 요소는 유기(버리심)인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장 7절에 “인류의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그가 기뻐하시는 대로 긍휼을 베풀기도 하시고 거두기도 하시는 그 자신의 뜻의 측량할 수 없는 계획에 따라, 그의 피조물들 위에 가지는 그의 주권적 능력의 영광을 위하여 지나쳐 버리시고 그들의 죄로 인한 수욕과 진노에 이르도록 작정하셔서 그의 영광스런 공의의 찬송이 되게 하기를 기뻐하셨다”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 교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 루터교회의 다수, 알미니우스주의, 웨슬리안주의 등의 심한 반대를 받아왔으나, 어거스틴, 루터, 칼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돌트 신조 등이 분명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칼빈의 말과 같이 “하나님의 선택 자체는 유기와 대조시키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다.” 선택의 진리는 논리적으로 유기의 진리를 내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을 선택하셨다는 것은 그가 나머지 사람들을 내버려두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유기에 대한 명백한 증거들이 성경에 많이 있습니다.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한즉”(출 4:21),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출 7:3),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출 9:12), “여화와께서 그를 네 손에 붙이시려고 그 성품을 완강케 하셨고 그 마음을 강퍅케 하셨음이라”(신 2:30),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수 11:20),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삼상 2:25),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사 6:9-10).

 

유기에는 두 측면이 있습니다. 즉 간과(看過)와 정죄가 그것입니다. 간과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구원에 들어오도록 선택하지 않으시고 지나쳐 버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이며,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한편, 정죄는 더욱 적극적 행위인데, 간과된 자들은 그들의 죄 가운데 처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공의로 정죄하시고 형벌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 아래 있어야 마땅했으나, 그 중 일부는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구원되고, 나머지는 그들의 죄 가운데 그냥 버려져서 그 죄의 형벌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찬송할 것밖에 없습니다. 유기의 진리는 두려운 사실이지만, 모든 인간이 원죄 아래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유기는 유기된 자에게 결코 불평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예정의 교리는 사람의 구원의 궁극적 원인이 사람 자신에게 있느냐, 아니면 하나님께 있느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관계됩니다. 역사상 이 문제는 어거스틴주의 혹은 칼빈주의 신학 체계와 다른 기타 체계들을 구분하는 주요한 요소가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엽적인 문제이거나 사색적인 문제가 아니고, 근본적인 문제요,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따라서 예정 교리는 바르게 이해될 때 큰 유익을 얻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공의와 영광의 찬송, 참된 겸손, 흔들리지 않는 위로 등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변덕스럽고 변화무쌍한 결심에 근거하지 않고 영원불변의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에 근거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나 우리 편에서 의와 선과 진실을 위해 성실히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의무인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장 8절에 “예정이라는 이 높은 신비의 교리는 그의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주의하며 그것에 복종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효력 있는 부르심의 확실함으로부터 그들의 영원한 선택을 확신하도록 특별히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 그러면 이 교리는 복음을 진심으로 순종하는 모두에게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외하고 사모하게 하며 겸손케 하고 근면케 하고 풍성한 위로를 줄 것이다”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3. 섭리란 무엇인가?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시 103:19). 하나님께서 하늘의 보좌 위에서 절대적인 권세로 만물을 통치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이 만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하나님의 ‘섭리’는 만유에 대한 하나님의 이 계획이 목적하는 바를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활동’, 즉 하나님의 사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인간의 지식은 겨우 일부의 자연 법칙을 이해했을 뿐, 신비로운 하나님의 섭리의 전반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를 원리적 측면에서라도 이해하는 길은 그 계시인 성경을 통해서이며,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이 이해 한다는 것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 사역이 인간의 지식이나 인식 한계를 초월한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섭리를, 그 섭리가 진행된 연후에야 비로소 그 한 부분이나마 파악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을 때에 한해서 입니다.

 

1) 섭리는 하나님의 통치 활동을 가리킵니다.

 

‘섭리’란 말은 성경에 직접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이를 뜻하는 히브리어 ‘리아’는 준비(창 22:8) 또는 ‘예선’(삼상 16:1)으로 표현되었고, 헬라어 ‘프로블레포’는 ‘예비’(히 11:40)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 용어들이 사용된 배경을 살펴보면 모두 다 하나님의 ‘섭리’를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용어들이 의미하는 바를 섭리를 배경으로 생각할 때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그 창조하신 계획과 목적대로 이루시기 위하여 준비하시고 예비하시며 보전하시고 관리하시며 조정하시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통치 활동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 통치 활동의 범위는 가시적, 불가시적 세계 전반에 있으나 주도면밀 하게 관여하시고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이를 집행하고 계십니다.

 

2) 우주 만물에 대하여 섭리하십니다.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의 땅 위에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다 주께 경배하나이다”(느 9:6).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우주 만물을 다 지으셨으며 그것을 보존 운행하고 계십니다. 우주 만물의 존재와 운행이 자연법칙을 따라 질서 정연하게 운동하고 생성과 소멸을 거듭 하고 있습니다(시 147:16-18; 욥 9:5-10, 38:12). 이것은 물질적 원리와 화학적 원리로 이루어진 자연법칙으로서 이는 우주와 물질계를 통치하심에 있어서 표현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마 6:26).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식물과 동물의 생장과 소멸을 주관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아버지이시므로 그 만드신 생명들의 운명 전반에 관하여 섭리하십니다. 들꽃 하나도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섭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마 6:26-30).

 

3) 역사에 대하여 섭리하십니다.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이심이로다”(시 22:28).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를 섭리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소유물로서 이를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나라를 부강하게도 하시고 쇠퇴하게도 하시며 멸망하게도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욥 12:23). 세상의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것이며 이 사건들의 역사가 곧 세계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사는 곧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엡 3:9). 세계사를 하나님이 섭리하시되 세계사 자체가 곧 구속사는 아닙니다. 구속사가 세계사 속에서 일어나되 구속사는 언제나 감취어져 있는 하나님의 비밀한 경륜이며, 이 구속사의 중심과 정점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고전 26:8; 엡 3:9-11). 세계사의 내적 의미와 목적은 구속사의 실현에 있고, 그러므로 구속사는 세계사의 중심이요, 열쇠이지만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는 감취어져 있는 역사입니다. 종말론적으로 세계사는 구속사와 일치함으로써 역사로서의 임무를 끝내고 하나님의 섭리를 완성합니다.

 

4) 인간사에 대하여 섭리하십니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 139:16). 하나님은 개인의 실체 그리고 그 운명을 만세 전부터 계획하고 계시며 그의 직업과 사명, 그 생애 전반을 섭리하십니다(렘 1:5; 마 10:30). 개개인의 행복과 불행도 섭리하시고(눅 1:52), 성공과 실패도 주관하십니다(시 75:67).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치하시고(삼상 24:18; 잠 21:1; 렘 10:23), 악인의 행동까지도 섭리하십니다(삼하 16:10).

 

5) 믿는 자들의 대하여 섭리하십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시 4:8). 하나님은 그가 구원하신 성도들에 대하여 특별한 배려를 하고 계십니다. 성도들을 보호하시며 인도하시고(시 23:2), 그들의 기도를 응답하시며(마 7:7-8; 눅 18:7-8; 요 15:7,16, 16:23-24),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빌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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