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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행 22:12-21

2016년 가을학기 특강


성신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의 예(2)-사도 바울(II)


말씀:사도행전 22:12-21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성신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에 관한 사도 바울의 예를 살펴봤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바울의 예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난 번에 우리는 사도행전 16장에 있는 곧 사도행전 16:6-15절까지에 있는 말씀을 지난 시간에 읽고 거기에 의하여서 바울 사도가 드로아에서 마게도니아 사람이 나타난 환상을 보고 그의 청하는 말을 듣고 마게도니아로 가고자 힘쓴 것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렇게 힘쓴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리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신줄로 인정한 까닭에 그렇게 했습니다. 환상 자체를 인정하든지 아니면 해석하든지 환상을 본 사람의 일입니다. 그런데 환상을 보았을 때 그것을 무슨 의미로 해석해야 할까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번에 배운 대로 베드로는 네 귀를 맨 보자기가 내려와서 그 안에 여러 짐승이 있는 걸 잡아먹으라는 환상을 보고도 무엇인지를 잘 몰랐고 뜻을 알려고 궁리를 하고 있었지요? 나중에 고넬료의 집에 간 후에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환상을 보았을 때 그 의미가 드로아에서 이러고 주저하고 있을게 아니라 마게도니아 땅으로 향하여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고 하는 것으로 해석한 까닭에 그 일행이 거기서 마게도니아를 향해서 갔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어떤 환상이었든지 어떤 감각을 통해서 우리에게 준 것이든지 뭐 꼭 환상이 아니라도 우리가 어떤 본 것, 들은 것 또 우리 스스로 생각한 것 이런 것들이 성신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서 나가는 사람에게 그 사람에게 자격과 장성의 분량을 따라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고 또 하나는 그러한 독특한 현상에 대해 들은 것이라든지 본 것이라든지 깨달은 것이라든지 생각한 것이든지 심지어 꿈이라도 그런 독특한 현상에 대한 해석과 태도라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결정인데, 신앙이 옅은 사람이 덮어놓고 바울 사도와 같이 믿음이 높고 풍부한 크라이테리아를 가지고 있는 분들의 해석 같은 것을 마치 자기도 할 수 있는 것같이 생각해서 함부로 묵시 하기를 원하고 꿈 보기를 원해서 한다면 오도(誤導, 그릇된 길로 이끔)되기가 대단히 쉬운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계속해서 생각해야 할 문제는 어째서 그는 그 환상을 자기를 마게도니아로 부르는 것이라고 인정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니아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줄로 인정함일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16:10절 말씀인데 환상을 본 다음에 바울은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결론을 내렸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 환상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계속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째서 바울은 이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는 것이라고, 마게도니아 사람들에게 전도하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인정하게 되었을까요? 첫째, 바울이 전도 여행한 생활기록을 보면 바울은 세번 전도 여행을 했습니다. 일차는 바울 사도가 예수님을 믿고 선 이래로 한 15년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런고로 주후 45년부터 48년까지 사이로 보고 있습니다. 제2차는 50년으로부터 53년까지의 사이로 보고, 제3차는 54년으로부터 57년까지로 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58년 정월에 돌아오기 시작해 가지고 4월에는 빌립보까지 육로로 왔습니다. 그래서 무교절 지난 다음에는 빌립보에서 드로아로 와서 거기서 배를 타고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까지 예루살렘에 도착할려고 애를썼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왔다가 붙들린 것이 그 다음에 로마로 가게된 시초입니다. 그래서 61년이나 60년, 그 겨울에 걸쳐서 그는 로마로 항해를 했는데 이와 같이 세번의 전도 여행이든지 로마행이든지 다 바울이 평소부터 간절히 소원하던 바를 이루어 나가는 일입니다. 전도 여행을 할 때도 그는 서쪽을 향해서 자꾸 전진을 했고 로마로 가는 걸 원래부터 마음에 소원을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울 사도는 복음을 가지고 동쪽으로 가지 않고 북쪽으로 가지 않고 혹은 남쪽으로 해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오직 서쪽으로 마게도니아, 헬라로 나아간 다음에 로마를 향해서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도행전 16장에 나타난 마게도니아인의 환상은 바울이 아시아에만 국한되었던 발걸음을, 그러고 아시아 안에서 빙빙 돌려고 하던 것을 성신께서 막으시고 예수님의 신 곧 성신께서 그걸 못하게 하시고 그 대신 마게도니아인의 환상을 보여 주셔서 서진을 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이 환상은 그런고로 그에게 있어서는 그의 전체의 생애와 역사를 놓고 볼 때에 혹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그 후의 발전의 역사를 놓고 볼 때는 지극히 중요한 발걸음, 역사적인 거보를 내디디는 일에 지침이 되었던 것입니다. 환상 자체에 대한 해석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환상이 없었다면 해석이 없었을 터이니까 이 환상이 그에게 이렇게 임하게 하고 그것을 바로 해석해서 그래서 복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아시아 사람들의 세계에서만 왔다 갔다 하던 그가 이제 헬라의 새로운 세계를 향해서 곧 로마제국의 심장부를 향해서 자꾸 전진하게 된 거보를 내디디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를 긋는 큰 걸음을 하는 바울의 자태는 당당한 개선장군과 같이 움직인 것이 아닙니다. 만일 로마의 어떤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가서 어떤 지방을 정복했으면 그 지방의 이름으로 그에게 봉작(封嚼-제후(諸侯)로 봉하고 관직과 작위를 줌)을 하고 그를 로마 시에서 화려하고 찬란하게 큰 개선식을 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때에 연도에 수많은 사람이 환호를 해주고 병거를 몰고서 빛나게 들어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이 역사적인 거보는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렇지마는 바울의 이 위대하고 역사적인 큰 발걸음은 이제 복음이 주로 유대 사람들과 아시아 사람들의 세계에서 그대로 갇혀 있던 데서 일단 터져 나가 에게 해를 넘어서 저쪽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즉 헬라 땅으로 나아가고 다시 아드리안 바다를 너머서 로마로 나가는 최초의 큰 발걸음 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와 같이 두루마리로 된 성경책을 짊어지고 말을 타고 가기도 하고, 걸어 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배를 타고 가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빌립보까지 들어갔을 것입니다. 누가 보든지 이들의 모습은 길가는 나그네들의 모습으로 보였지 이 행보가 전 세계에 군림할 위대한 큰 세력과 능력과 영광의 전진의 자태라고는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사실상 역사로서는 너무나 큰 거보의 자태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 당대의 세계를 시찰 할 때 곧 관찰을 하고 있을 때 어떻게 보았을까요? 우리는 먼저는 바울 사도가 본 세계관이라는 것을 따져 보아야 합니다. 둘째는, 그의 사명이라는 것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항상 중요히 가지고서 자기의 지금 현재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렇게 그 사실을 거기서 정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주께서 지금 자기를 쓰셔서 하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동안 제1차 전도 여행이 있었고, 제2차 전도 여행은 지금 이제 막 시작한 터입니다. 겨우 수리아 안디옥에서 북행했다가 서쪽길로 소아시아로 들어와서 길리기아를 지나서 무시아 앞에서 결국 드로아로 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1차 여행과 금번 2차 여행 가운데서 그는 주님의 뜻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해서 주님은 무엇을 재가(裁可-안건을 결재하여 허가함)하시고 무엇을 재척(除斥-안건을 결재하여 불허함)하셨는가에 대해서 생각할 만한 재료를 놓치지 않고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재가하셨느냐 할 때에 1차 여행에서의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1차 여행은 45년부터 48년까지 사이에 있었는데 주로 소아시아 땅에서 했습니다. 먼저 수리아 안디옥에서 바로 서쪽으로 나와서 항구가 있는 실루기아로 왔습니다.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그냥 바로 건너서 구브로 섬, 살라미로 갔습니다. 구브로 섬의 동쪽에 있는 항구요, 살라미에서부터 섬을 통과해 가지고 섬 서쪽에 있는 섬 수부 바보에 이르렀습니다. 바보에 이르기 까지는 그렇다 할 만한 특이한 것이 없었지마는 일단 이 구브로의 수부인 바보에 이르러서 로마의 원로원이 보낸 총독 써기우스 폴루스(Sergius Paulus) 곧 서기오 바울이라는 사람이 이 구브로 섬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요, 또 진리를 간곡하게 알아 보고자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측근에 엘루마라고 하는 박수가 붙어 있어서 자기가 하는 것이 훌륭하고 자기야 말로 하나님의 사자라고 자기를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바울의 일행이(그때는 바울과 바나바와 마가 요한이 같이 갔는데) 거기에 이르러서 도를 전하니까 그게 무엇인가 하고 서기오 바울 곧 총독이 알아보고자 하는 것을 자꾸 방해하고 모르게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것을 보다 못해서 마침내 그를 붙들어 놓고 엄히 책망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네가 이제 잠깐 해를 보지 못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의 눈이 멀어서 나갈 곳을 찾지 못하여 두루 사람의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총독 서기오 바울이 봤습니다. 바울 사도 자신도 이 사실을 목도하면서 주께서 우리의 전하는 일과 전진해 나가는 일에 권위로 보증하신다는 걸 믿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 사도에게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깊이 주님의 권위로써 자신들의 일을 보증하시고 함께 하신다 하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 전도 여행 코스(course)를 정한 것은 자기네들이였고, 기도하고 맘 가운데 이렇게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도 자기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원래 구브로로 한번 가는 것이 자기에게도 여러 가지로 편리 하겠다고 생각하고 갔겠지마는 그러나 이 방향이라는 것이 하나님 앞에 열납이 되어서 앞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의 발전의 형태를 지리적으로 어디로 취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나가는데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매사가 오다가다 닥치는 데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치밀한 생각 가운데 또 치밀한 관찰 가운데, 또 얻은 바 경험이라는 것을 소중히 여겨서 거기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을까 하고 늘 찾는 것이 신자입니다. 곧 성신의 가르침을 늘 받기를 원하는 사람의 생활 태도인 것입니다.


엘루마 박수가 갑자기 안보여서 두루 나갈 곳을 찾은 것이 사도행전 13:8-12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바보에서 배를 타고 북행을 해서 소아시아 땅 밤빌리아 버가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바로 북쪽으로 비시디아 부근에 있는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갔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이라지만 비시디아 땅에 있는 건 아닙니다. 그 주변에 있었는데 수리아에 안디옥이 있으니까 비시디아 안디옥이란 말을 붙였습니다. 거기에 가서 두 안식일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첫 안식일에 이야기하니까 다음 안식일에 다시 와서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해서 두 안식일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안식일에 이야기를 할 때 유대인들이 핍박을 하므로 거기를 떠나서 이고니온으로 갔습니다. 이고니온에 이르러서는 오래 유하고 있었다고 14:3절에서 이야기 합니다. 거기서는 기사와 표적을 행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다시 거룩하신 신령한 능력으로 곧 특별한 섭리로 그들과 같이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일행이 기사와 이적을 행함으로 사람들이 양분이 되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좇는 그룹이 있고 그걸 방해하고 있는 유대 사람들을 좇는 그룹이 있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이 화가 나니까 나중에 폭도를 일으켜 돌로 치고자 하였습니다. 두 사도가 그것을 알고 거기서 도망해 나갔습니다. 이고니온에서 어디로 갔느냐 하면 이번에는 루스드라로 내려 왔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차례차례 동남쪽으로 내려오면 루스드라입니다. 이 루스드라로 오니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주목하여 보고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보고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일어나 뛰어 걷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울 일행을 열열히 환영하였습니다. 그들은 신이 사람의 몸을 입고 임했다 해서 바나바는 키도 큼직하고 풍채가 잘 생겼으니까 ‘쓰스’라고 하고, 바울은 말을 잘한다고 해서 ‘허메’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바나바와 바울에게 소와 화관을 가져와서 제사를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두 사람이 옷을 찢고 나가서는 “형제들아, 이런 망령된 일을 하지 말라”고 하며 자신들도 그들과 같은 성정을 가진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아래로 쭉 내려온 유대인들이 바울 일행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하는가 보자 하다가 사람들이 막 환호를 하고 야단을 내고 제사를 드릴려고 하니까 시기도 나고 그대로 두었다가는 자꾸 문제가 커질 것 같다고 생각하고 당을 만들어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돌로 쳤습니다. 바울은 돌에 맞아 거기서 죽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내치고 가버렸습니다. 밤이 되어서 제자들이 죽어있는 바울 곁에 둘러 있으니까 바울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나 다시 성내로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런 후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믿음에 거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리고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가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도를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거기서 배를 타고 안디옥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제1차 여행 때의 기록입니다. 바울 사도로서는 굉장히 큰 경험을 한 시기입니다. 하나님이 그 초자연적인 특별한 섭리 즉 기적이라는 큰 섭리의 보호와 보증을 가지고 그에게 응락 해 주셨다는 경험을 생생하게 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처지에 이르렀을 때도 하나님이 크신 손으로, 곧 기이한 손으로 보호하셔서 그를 살리사 앞으로 두고 쓰실려고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 사도에게 있어서는 제1차 여행을 통해서 사명에 대한 중요한 보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 사명감이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얻기 시작했느냐 하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그 시간부터 새로운 사람이 되면서 그가 다메섹 사람의 손에 이끌려 들어가 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모든 유대사람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고 하는 사람이 와서 그의 눈에 안수를 함으로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서 소경이 되었던 바울이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바울의 개심, 혹은 회개의 기록은 사도행전에 3번 나옵니다. 하나는 누가가 쓴 사도행전 9:1-19절에 있고, 또 하나는 바울 사도가 58년 오순절 때 예루살렘에 왔다가 예루살렘에서 폭도에게 붙들려 시끄러운 일이 일어나니까 천부장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그를 빼가지고 갔다가 영문 안에다 가둔 다음에 그를 나중에 심문을 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자기가 로마 시민인 것을 이야기해서 나중에 가이사랴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때 폭도들이 소란을 하고 하니까 바울은 천부장에게 사람들에게 말을 좀 하게 허락해 달라고 하여 바울이 층계에 서서 자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유대 사람이지 그런 이방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과 길리기아 다소 사람이니까 작은 고을 사람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사도행전 22:1-21절 가운데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폭도들에게 자기의 사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하는 말이 “주께서 나더러 이르시기를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 사람에게로 보내리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멀리 이방 사람에게로 보내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해서 자기 사명의 내용은 이방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여기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기의 회개의 상태를 좀 이야기 한 것이 사도행전 26:9-18절 가운데 있습니다.


어찌됐든지 우리가 이제 바울을 놓고 보면 바울이란 사람은 원래 길리기아 다소 출생입니다. 길리기아 다소는 당시의 로마제국 내에서 헬레니즘 문화와 학문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도시의 하나였습니다. 가장 훌륭한 헬레니즘과 학문의 중심이 어디냐면 애굽의 알렉산드리아고, 또 하나 위대한 철학과 학문의 중심은 저 아가야의 아덴이고, 그리고 또 하나가 길리기아의 다소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로 볼 때면 훌륭한 고등학문, 즉 대학이라는 것이 거기 있어서 잘 나가는 사람들이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도 거기서 공부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고로 바울은 헬라문화와 지식에 능통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대 사람으로 바리새인이요, 바리새인의 아들이라고 하며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심문을 받는다고 했습니다(행 23:6). 그러면서 자기도 바리새인이고 자기 아버지도 바리새인이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나면서 부터 로마시민이었습니다. 그런고로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은 히브리 사람이고, 또 그는 위대한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입니다. 가말리엘이라고 할 것 같으면 당대에 히브리 헤브라이즘의 최대의 선생의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교법사 가말리엘이 공회에 일어나서 말을 할 것 같으면 그 말이 비중이 커서 늘 경청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나 바로 전에 유대 사람들의 사회에 학문으로 가장 위대한 교사가 힐렐(Hillel)이라는 교사가 있었고, 그래서 그를 높이 사모해서 그의 위대성은 모세 이래로 최대의 선생이라고 높일 만큼 위대했던 인물입니다. 그의 교훈이란 항상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것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율법에 엄격한 삼마이(Shammai)라는 선생이 있었습니다. 이 두 학파가 죽 내려오지만 힐렐의 학파가 압도적으로 큰 세력과 영향력을 미쳤는데 이 가말리엘은 힐렐학파의 후계자로 또 일설에 힐렐의 손자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히브리학의 정통을 공부하고 또 히브리적인 정신을 가장 정신적이고 심오한 철학적인 것을 체득하려고 한 사람입니다. 그것이 계율적이고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훨씬 더 큰 사상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힐렐이 가르친 도리 가운데는 누가 가장 부요로운 사람인가? 세상에 부자라 하는 사람이 많지만 누가 가장 부요로운 사람이냐?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가장 부요로운 사람이다. 이렇게 하는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신 교육, 말하자면 실질적이고 심오한 내용을 가진 정신적인 교육을, 헤브라이즘의 진수를 가말리엘에게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고로 바울은 헬라의 세계 헬레니즘의 세계라는 걸 아주 숙지하고 있었고 헤브라이즘이 가지고 있었던 약점과 강점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바울은 ‘나는 베냐민족속이다,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다, 내 열심으로 말한다’고 하며 기독교가 처음에 나올 때는 조상의 유전에 위반 된다고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사람을 잡아다 옥에 가두고 한 사람입니다. 그랬던 그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방에 복음을 전한다는 큰 사명을 느끼면서부터 내가 이방에 복음을 전하려면 이방 어디를 향해야 하겠는가 할 때에 그는 어디를 향했는냐 하면 서쪽을 향했다는 말입니다. 그는 복음의 선전에 가장 중요한 기지로서 또한 복음이 나타내고 있는 바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데 필요한 조건들을 비교적 잘 갖추어 있는 자리로 헬레니즘의 찬란한 문화와 로마의 위대한 정치, 경제, 군대와 법률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어떠한 건강한 사회가 필요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런 건강한 사회에 눈을 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슨 까닭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교회의 복음,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 그것을 바울 사도는 잘 이해를 했고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성격, 또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그 인류에게 관계되어 있는 성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대인속죄로 말미암은 구원과 새로운 생명을 주신다는 이 큰 진리의 사실이 그 속에 들어가서 나타낼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요, 거룩한 보편의 교회를 또한 사람들을 통해서 사람들의 사회적인 결속과 활동을 통해서 나타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는 말입니다. 정신적이고 심오한 진리의 내용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면에서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복음에 있는 그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뭐냐하면 그 첫째의 한 가지는 보편성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이 가지고 있는 유니버셜리즘(universalism)이라는 것입니다. 인종과 국경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방언을 무시하고 문화의 정도를 무시하고 어디까지든지 사람이 사는 곳에는 구원의 복음은 전달되어야 한다는 이 사실입니다. 또 그래서 조성된 거룩한 교회라는 것은 실질상 바울 사도가 쓴 글에 의하면 하늘에 있고 땅에 있어서 이 보편이라는 것은 보통 다만 이 지구상에서 널리 퍼져있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고 땅에 있는 이 교회라는 것은 땅 위에서 인종이라든지, 언어라든지, 문화 형태라든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국가라든지를 넘어서 늘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국경을 넘어가는 복음의 능력이라는 것은 만일 국경을 봉쇄하고 넘어오지 못하게 할 때는 그 봉쇄한 것을 뚫고 넘어갈 수 있는 더 큰 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쇄국했던 나라에 복음이 들어 갈려고 할 때는 쇄국을 부수고 개항시키고 개화시킨 그 국권이 움직일 때 함께 복음이 들어갔던 것을 우리들은 잘 알 것입니다. 이것이 중국에 복음 들어 올 때의 현상이었고, 한국에 복음이 들어 올 때 현상입니다. 한국이 1884년에 엘렌 의사가 와서 복음 전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때가 이조 정부의 말기 때인데 그것을 허락하지 아니 했습니다. 그러니까 광해원을 만들어 놓고 앓는 사람을 낫게 하다가 갑신정변을 당해 민중전이 그 사랑하는 조카 민영익이 칼에 맞아 죽게 되었을 때 다른 것으로 곧 아무리 한의로 해보아도 안되니까 데려다가 수술도 하고 약을 발라서 잘 낫게 해주니까 그것 때문에 왕비가 고맙게 여겨서 상을 내려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다른 상은 필요 없고 내 소원을 들어 주시라고 하여서 서양에서 선교사를 불러 들여와서 전도를 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양 선교사가 들어오는 것을 그 때 용인했다는 그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 이듬해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1885년에 처음에 한국에 들어와서 전도하기 시작하고 이렇게 해서 밀려들어오는 외세라는 것 때문에 개화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일본은 어떠했습니까? 양이(攘夷)를 할 것인가, 오랑케를 쫓아 낼 것인가, 개항을 할 것인가, 페리가 군함을 가지고 우라가에 들어와서 개항을 해라 하고 덕천막부(德川幕俯, Takigawa)때 마지막 장군에게 교섭을 하니까 최후 단안을 내려서 개항을 하고 그러고 들어왔기에 한국보다 빨리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그래서 기독교도 우리보다는 조금이라도 빨리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세계 국경을 넘어 서는 것이 복음이라고 하지만 복음을 든 사람이 국경을 넘으려는 것은 용이한 것이 아닌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국가적인 권위의 배경과 실제 세력이 뒤에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의 영민한 추리력이라든지 상상력으로써 현실 문제라는 것과 복음이 요구하는 이상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을 본 사람입니다. 바울은 그런 위대한 지도자였고,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유니버설리즘(universalism)이라는 것은 땅 위에서라도 거룩한 복음은 널리 퍼져야 하겠고, 퍼지기 위해서는 퍼질 수 있는 중요한 추진력의 본부가 있어야겠다, 곧 중심 세력이 항상 있어야겠다는 걸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그는 그 중심세력이라는 것이 기독교인들 끼리 모여 앉아서 세력을 만들자는 그런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무엇이 복음을 실어서 보낼 수레가 되려는가 보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볼 때 그는 두말할 것 없이 로마제국이라고 하는 거대한 세력을, 거기다 복음만 실어 놓으면 이건 퍼져서 저 북쪽으로 브리테니커와 저쪽 브리톤으로도 나가고 고올(Gaul)로도 나가고 어디로든지 퍼져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보다 더 긴박한 중요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기독교라는 것은 그것 자체가 고도의 문화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바울은 자기 자신이 신학을 엮으면서 말한 것입니다. 고도의 문화성! 진리는 깊고 오묘해서 간단한 A, B, C로 모두 알아듣는 것이 아니고, 쉬운 말 몇 마디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심오한 연구를 요하는 것이다는 것입니다. 야만의 사회에서는 찬란한 꽃을 피기는 어려운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기독교가 야만의 사회에 들어가면 그 암흑의 대륙 아프리카로 들어갔을 때 그 사람들을 점점 개화는 했을지언정 그 사람들의 그 상태, 문화의 옅은 비천한 정도 그것 그대로해서 꽃을 피우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비천한 사회는 비천한 종교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미신에 젖었고 그리고 잡된 사신 우상을 섬기는 사람에게는 사신 우상이 와서 난무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고도의 문화성이란 것은 그 자체가 문화적인 사회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문화적인 사회로 들어 갈수록 기독교는 곧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자태는 찬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진리의 깊은 것을 더 흡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야 하겠고, 또 거기에 의해서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를 심오하게 파고 이야기하고 가르쳐 줄 수 있는 그런 사회 현상을 가진 데라야 하겠고, 인생의 가능성 뭐든지 잘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과 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집성해 있는 곳, 이런 것은 고도의 문화 사회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대도시를 보세요. 뉴욕과 런던을 보십시요. 거기에 사람이 할 수 있는 과학적인 모든 것이 거기에 모여 있고 동시에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인간 악의 극치라는 것은 저런 것이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들이 다 모여 있는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 복음의 대답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제출되는 문제 앞에 대답이라는 것도 나오는 것입니다. 저런 현상에 대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는 무엇으로써 대답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 문제 하나를 어떻게 해결하는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는 그런 현실 앞에 서서 어떻게 서 가는 것인가를 실증해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이렇게 고도의 문화성을 가진 기독교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깊고 높은 진리와 높은 문화를 소유한 세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복음인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첫째, 그 우주관에 있어서는 절대 주권자의 주권 행사 아래 만물이 일사불란하게 질서를 유지하고 그걸 질서 안에서 우주의 만상은 운행되고 있는 것이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역사성을 볼 때에는 높고 높은 법칙 하에서 역사라고 하는 것은 늘 창조되고 진행되게 되는 것이며, 또 그것은 아무 목적 없이 곧 맹목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빛나고 높은 목적을 향하여 만유를 통치하고 사역해 나가시는 것이고, 거기에 있는 높은 도덕성은 순결하고 고상해서 그 높은 사상, 높은 예술성 그런 것들 모두다 기독교 자체가 나타나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 안에서 비로소 우리는 가장 고귀한 예술이라는 것을 볼 수 있고, 고귀한 도덕의 표준들을 찾을 수 있고, 인류에게 있어 위대한 목적이 무엇이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을 보았고, 그 역사는 어떤 고귀한 법칙 하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깨닫고 우주라는 것은 일사불란히 최고의 권위자 아래서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배운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고도의 문화성을 가진 사상의 내용입니까? 이것이 야만의 사회에서 그 정화를 나타낼 것이 못되고 가장 높은 문화와 교양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에서 비로소 금과 같이 빛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 까닭에 기독교의 하나님 나라의 그 거룩한 내용이라는 것이 찬연히 빛 날려면 사람들이 무지한 가운데 그냥 주저 앉아서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훨씬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고도한 위치로 자꾸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교회가 되려고 할 때도 그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개인 개인이 고상한 인격자들로 구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게 핵심 멤버가 되어가지고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비천한 도덕 문제 가지고 이러고 저러고 논하고만 있어서는 고도의 교회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도의 문화성을 볼 때에 복음의 참된 빛은 세계의 인종들 가운데 문화가 고도로 발달한 데에서 비로소 그 바른 자세를 나타내게 될 것이 자명한 이치입니다.


바울 사도에게는 그런 사회는 어디냐 할 때에 로마의 세계로 봤다는 말입니다. 헬레니즘이 가지고 있는 고도의 문화성을 봤습니다. 깊은 철학을 봤습니다. 로마가 가지고 있는 잘 통제되어 있는 질서를 보았고, 그리고 건설할 수 있는 박력을 보았다는 말입니다. 로마는 세계를 재패한 나라요, 패권을 가지고 있는 나라였습니다. 거기다가 복음을 실어 놔야겠다는 생각이 났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계의 신약의 복음이라는 것은 최초의 선포지인 예루살렘에서 마치 못자리에서 모를 옮겨다가 심듯이 합리적으로 옮겨 심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그러느냐면 예루살렘은 어느덧 바울 사도가 활동하던 그 시기에 문제가 있는 도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라는 것은 유대주의의 철벽으로 둘러쌓는 도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 없이 이방 사람에게 자유롭게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위대한 구상과 진리의 내용을 구애 없이 퍼저 나갈 도시를 향해서 그런 세계를 향해서 가야겠다고 바울 사도는 생각한 것입니다. 이 복음의 모라는 것이 이식될 곳은 지금 강렬한 팽창력과 발전력을 가지고 있는 헬레니즘의 세계요. 로마의 세계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복음이라는 모가 로마로 간 것입니다. 복음은 서진하여서 서쪽으로 전진해서 헬라와 로마의 세계에서 활짝 피어나야 할 것을 그 비전(vision) 속에서 그는 보고 있었고, 그러한 바울은 그러기 위해서 전도자로 뽑힌 자기가 당연히 복음을 들고 교회를 세우면서 서쪽으로 로마와 헬라의 세계를 향해서, 그 심장부를 향해서 전진해야 할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복음의 고도의 문화성에 대한 그의 정당한 이해와 복음이 가진 높고 큰 세계를 이 세계로 택하신 백성들을 듣게 하여 거기서 인류 사상이 찬연히 빛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출현케 할려고 하는 바울 사도의 이 정당한 세계관, 사관은 그의 사명의 수행지로서 헬라 로마의 세계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이런 지식과 통찰력과 열정이 자기에게서 홀로 나온 것이 아니라 성신께서 그에게 그걸 열어서 깨닫고 그 사상이 점점 성숙해서 확고하게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성신의 가르치시는 큰 은혜 속에서 그의 고도의 사상과 관찰들이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실로 성신님이 가르치신다는 일은 그 누구에게 있어서든지 얼마간의 도움이 되는 몇 가지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생명의 양식으로 그 말씀을 먹으면서 자라나는 사람들은 그 동안에 벌써 성신님께서 당신이 그릇으로 쓰시기 위하여 적절하게 그들을 가르쳐서 함축 있는 사상의 터 위에 확립하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신의 가르치심은 가르침이라는 것이 단편적이고 얼마간의 도움이 되는 문제고, 잠시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일생을 통해서 길게 그를 양육하고 교육하고 그에게 거룩한 사상으로서 점점 축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러한 거룩한 정신 하에서 서쪽으로 갈려고 했고 그 일을 위해서 로마로 가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을 향해서 제3차 여행을 끝내고 올 때 배를 타고 마지막에 이 팔레스틴으로 와서 두로에 내렸을 때 두로에 있는 제자들이 나와서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큰 환란이 거기서 기다린다고 말을 했지만 바울 사도는 그런 것을 개의치 아니하고 예루살렘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가이사랴에 왔을 때는 일곱 집사의 하나인 빌립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아가보라고 하는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와가지고 바울 사도의 띠를 가지고 자기 손은 묶고 장차 이 띠의 임자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띠 임자를 이렇게 묶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일행이 다같이 거기 있는 사람들 앞에서 예루살렘으로 부디 올라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때 바울 사도는 너희가 왜 울어서 내 마음을 상하는가? 내가 거기 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거기 간다하고 예루살렘으로 간 것입니다.


사도행전 23:11절에 보면 바울이 예루살렘 공회에서 이야기 하고 돌아오는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이름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주후 58년 6월의 일인데 로마로 가기 전 한 2년 전의 일입니다. 주께서는 그렇게 바울 사도가 로마로 갈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때 이래로 바울은 항상 마음이 로마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로 가야겠다, 끝까지 로마로 가서 일을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나면서부터 헬라어를 배웠습니다. 또 그는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공부를 많이 했으니까 히브리어에도 능통했습니다. 자기와 같이 가던 실라라는 사람도 헬라어를 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가는 원래 헬라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아버지가 헬라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 일행은 다 헬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곧 언어 문제가 준비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드로아에서부터 마게도니아 땅에 가서 전도를 시작하는데 어학에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마게도니아 사람이 오라고 하는데 그것은 덮어 놓고 아니다 하고 그래야 할 것인가? 조금씩 뒤로 물러서서 방황할 것인가? 지금까지 여기도 못 가게 하고 저기도 못 가게 하셨는데 이제 우리가 나가서 해야 할 곳은 어딘가? 결국 이 아시아(도)가 아니고 이 아시아 이외의 다른 어디로 가야 할 것이 아니냐? 그들의 결론은 결국 마게도니아로 가자였습니다. 환상 가운데 마게도니아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했는데 그게 하나의 자극이 되어서 우리가 마게도니아에 가서 주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이것이 바울 사도가 생각했던 것입니다.


마게도니아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고 생각한 것은 다른 외증은 없었습니다. 그런 문제는 다른 외증이 있는 것이 아니고 대체로 성신께서 나를 지금 이렇게 가라고 하시는가를 확정 할려면 반드시 그 사람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신 확신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바울 일행은 마게도니아 환상을 보고 그 의미를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확신 가운데 나아갔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그때 나이가 50이 넘은 나이였습니다. 이제는 적극적이고 가장 중요한 일을 해야 할 터인데 복음을 그쪽으로 이식하겠다는 큰 일을 이제 언제까지든지 유예하고 있을 것인가? 이제는 밀고 나가자. 아마 그러한 마음의 확신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이 부른 것은 하나의 자극이 되지만 요컨대 하나님께서 그리로 가도록 정신을 한번 쇄신케 하시고 깨우치시고 또 생각하게 하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현실에만 몰두해 있었다. 이 아시아에서 뱅뱅 도는 것으로 몰두해 있었고 항상 거기만 할려고 했는데 그것이 아니오. 일단 대륙을 바꾸자. 이제는 유럽 대륙으로 들어가자’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유럽대륙으로 들어 갈려고 새로운 생각을 한 것입니다. 바울은 생각과 시야를 돌려 넓은 세계로, 헬레니즘의 세계로 돌렸던 것입니다.


마게도니아의 환상은 적어도 바울에게 생각을 돌려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의 전진이 어떻게 되어야 하겠는가? 너는 평소에 어떻게 생각해 왔던가? 그런데 지금 너는 하고 있는 것은 뭐냐 하고 그것을 힐난(트집을 잡아 지나치게 많이 따지고 듦) 하듯이 물었을 것입니다. 사실상 바울 사도로서 가지고 있던 사상으로 봐서, 서진의 사상으로 봐서 서진을 했어야 했습니다. 진작 서진을 했었더라도 상관이 없었을 일이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자꾸 뱅뱅 돌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서진이라는 사실은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때때로 주님의 뜻을 행한다 하면서 항상 너무 자기 현실이라든지 당면한 일이 자기를 압축해서 좀 더 중요하고 좀 더 크고 아니 그 보다 본질적인 일, 근본적인 일, 제일 강령이 되는 일은 뭐냐 하는 것을 잃어버리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런데 너는 왜 그것이 가장 네 생애에 가장 강령되는 일이라고 하면서 네 자신의 일은 열심으로 하기는 한다마는 네 전체의 주장이나 신념에 비출 때 모순되는 일을 하느냐? 주저 하고 저회(머리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 이리저리 왔다 갔다함)되는 일은 하느냐 묻는 것입니다. 마게도니아의 환상은 적어도 그가 지금까지의 주의해서 생각지 아니했던 큰 문제, 하나님의 나라의 거룩한 역사적인 발전의 큰 단계에 대해서 다시 정신을 들여서 생각하고 생각한 결과 ‘가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서쪽으로 보내셨다’하고 떠났던 것입니다.


이것이 성신의 인도하실 때의 양상인 것입니다. 이런 것은 대체로 하나의 퍠턴입니다. 우리들도 만일 성신의 인도함을 받아서 자기 생애의 길을 갈려고 할 때에는 그런 문제, 곧 어떤 중요한 문제 앞에 이를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자기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 문제와 자기가 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서로 맞지 아니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때 기도하고 당연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로 전진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우리 생애 가운데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항상 성신의 인도는 먼저 할 것은 먼저 시킬려고 그리고 중요한 것을 먼저 생각하게 하시고 아주 큰 문제를 지역 말단의 문제보다도 먼저 앞세우고 생각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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