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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눅 10:25-37
강설날짜 2017-03-05

2017년 봄학기 특강


교회의 품성


말씀:누가복음 10:25-37


우리는 지난 시간에 교회의 속성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교회의 품성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인생의 기본적인 삶의 목표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웨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에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예배 속에는 바로 이러한 모습이 함축적으로 담겨져 있습니다. 교회는 이 예배가 보존되고 계속 진행 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터전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궁극의 목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1. 교회는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내어야 함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에덴동산의 나라를 회복하시고 더 나아가 그보다 훨씬더 영광스럽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시고자 하셨습니다(참조. 계 21:1-7). 이런 면에서 교회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의 유일한 상징이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가 실제적으로 구현되는 곳이며, 창조의 본의를 성취하는 유일한 곳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의 은혜를 보존하고 드러내는 터로서의 교회는 이 땅에 현저하게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참 사랑과 평화가 늘 유지되고 발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참 사랑과 평화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되는 특성이기 때문에 교회는 교회의 본체이신 그리스도의 성품을 충분히 드러내는 곳으로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품성을 닮게 됩니다.


교회는 유기체로서 인격을 가지고 있음


교회란 그 회원된 사람들에 의해 그 성품이 나타나는 유기체입니다. 때문에 그리스도를 닮은 교회가 되려면 그 회원들의 성품이 그리스도적이어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적인 성품을 드러내기 위한 교회가 되려면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사람들이 교회의 구성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효를 입고 신앙함으로써 중생해야 합니다. 중생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결코 그리스도적인 성품을 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중생한 성도들이 교회를 이룰 때에 그 교회는 인간적인 모습에서 떠나 그리스도적인 성품을 드러내는 기관이 됩니다.


그러기 위하여 교회의 성도는 자기의 아상(我相) 곧 자기가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경영하는 자세를 버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자기 삶의 주관자가 되시게 하여야 합니다. 나아가 자신의 모든 이상을 성령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현시적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교회를 더욱 강건하게 건설하기 위해 교회의 시대적 사명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온전히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의존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들이 모아지는 곳이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를 통하여 원래 창조하실 때 바라셨던 영광스러운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실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 교회의 삶을 응축시켜 유형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를 드러내는 행위가 바로 예배입니다. 교회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기본적인 터전이며, 그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최상의 삶이고 최우선의 과제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발로임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데 있어서 근본적으로 필요한 정신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10장에서 사랑의 요소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와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에게 “그러면 율법에서 말하는 대강령, 즉 율법의 기본 정신을 무엇이라고 하느냐?”고 다시 물으셨습니다. 이에 율법사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 되었습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그렇게 행하라. 그렇게 하면 네가 참 생명을 얻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기서 “네 대답이 옳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네가 살리라”고 하신 이 말씀은 우리가 충분히 율법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인정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할뿐만 아니라 그것이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율법이 가르치고 있는 신령한 도리는 사람에게 짐을 지워주기 위함이 아니고, 죄책에 빠져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이런 면에서 율법은 은혜의 방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이야말로 생명의 도리임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네가 율법에서 읽은 대로 한 번 살아 보아라. 네가 참 생명을 얻을 것인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르겠다”라고 하신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아라. 그러면 참 생명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외형적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이고 외형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 말씀 속에 담고 있는 본의를 알아서 말씀의 근본적인 의도를 따라 살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네가 그 말씀의 의도대로 산다면 참으로 네가 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너의 영생을 보장한다”라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사의 ‘영생에 대한 질문’에 예수님께서 율법이 가르친 대로 행할 것이라고 대답하셨다면, 그 답변에 진정한 해결책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설혹 율법사가 예수님이 참 생명의 주인이시고 생명을 주시는 분인지를 몰랐다 해도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진리로서 답변하셨지 대충 대충 답하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율법사가 진심으로 영생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에서 참 생명의 길을 찾기 위하여 그 말씀의 본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자세히 생각했어야 합니다. 자기 안에 영생에 대한 질문이 끊임없이 발생해서 그 해답을 얻고자 예수님께 물었고, 예수님께서 어떤 삶의 원리를 그 해답으로 말씀해 주셨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그 일에 합당한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즉 율법의 대강령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무슨 뜻인가를 알기 위해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영생을 가져다주는 길이라고 예수님께서 선언하셨다면, 그리고 그가 진정으로 예수님께 질문한 것이라면 그 이상의 다른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영생을 얻을 줄 알고 율법사는 그 말의 의도를 자꾸 따져 알아 가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원하심


율법의 대강령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식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과 나와는 어떤 관계인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율법의 주된 가르침인 출애굽기 20장에서부터 신명기 6장까지의 내용을 자세히 상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단계로 율법이 주어진 동기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율법이 발생하기까지의 경과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자꾸 따져 보면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이 말씀 하나만을 알기 위해서도 구약 성경 전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모세 오경 전반에 걸쳐서 자세하게 연구하고 나아가서 선지서 뿐만 아니라 역사서까지도 자세하게 살펴보아서 하나님께서는 무슨 목표를 가지고 세상을 창조하셨고, 어떻게 세상을 주관하여 오셨으며, 어떤 능력으로 그 역사를 진행시키시고, 그러한 일을 이루어 가실 때에는 어떤 인물들을 부르셔서, 어떻게 사용하셨는가를 연구해야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대해서 심사숙고하는 태도가 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저 ‘하나님!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고 하는 말을 되뇌인다고 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 말씀도 내 이웃은 누구이며,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진실된 사랑은 무엇인가를 자꾸 따져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깊이 있게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사랑의 대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따라서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것만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해야 할 또 다른 대상들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곧, 하나님 나라의 한 지체로서 또 다른 지체를 사랑해야 할 당위성을 자연스럽게 유추해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의 실제적인 모습을 형제를 사랑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요한일서 4:7-11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하나님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바라보고 그 관계 안에서 진정한 형제를 찾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율법의 가르침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하나님 나라의 지체된 형제와의 관계 안에서 진정한 사랑을 키워 온전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음


이러한 가르침의 정신을 바로 이해한다면, 사랑의 원천이 되시고 또 사랑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의 깊은 관계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동반자로서 하나님 나라의 지체들(함께 형제된 이웃들)과의 관계도 확인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가 확실해질 때 항상 전체 하나님 나라 안에서의 ‘나’의 위치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관계를 무시하고 ‘나는 이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으므로 구원받은 것이 확실하다’고 만족하며 ‘이제부터는 나 하나 잘 살고 구원 받기 위해서 열심히 생활해야겠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정당하게 인식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적어도 그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삶의 증표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을 인식하고 신앙하는 사람들 안에서 만이 비로소 내 위치와 정당한 사랑이 확인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의 동지(同志)들이 내 옆에 있어야 하는 데 바로 그 사람들을 내 이웃(형제, 자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옆집에 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같이 인식하고 신앙하기 때문에 이웃이 됩니다. 그리고 일단 함께 형제된 이웃이라고 확인된 사람과는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에서 맺어진 그 사랑을 서로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랑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되고, 그 사랑이 장성하는 만큼 하나님께 대한 사랑도 커가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함께 나누고 가꿀 수 있는 지체를 우리 주변으로 모아 주십니다. 그리하여 그들 안에서 함께 구원을 이루게 되는 것이며(이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의미중 하나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교회로서의 구원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혼자 성경을 백번 읽어서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보다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하고 신앙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살면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깨우쳐 주며 때로는 질책을 받아가면서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해짐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 것이겠다’고 하는 것을 자꾸 경험해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관계 아래 있을 때 하나님과 사랑이 그 안에서 확인될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거룩한 관계 아래에서 하나님 나라의 도리를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실 때 한 개인을 부르시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너는 나를 신앙하고 잘 섬기다가 죽은 후 천국에 오너라’고 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항상 교회라는 테두리 안으로 그의 백성을 부르셨습니다. 공동체 안으로 이스라엘을 부르시어 ‘너희가 해야 할 일이 이것이다’(참조. 출 19:4-6)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공동으로 한 몸을 이루어 진전시켜야 할 일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를 필요로 하고 사랑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혼자만의 구원의 완성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교회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할 때에만 거기에 구원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의 한 일원으로서 ‘나’를 부르시고 교회 안에서 구원을 이루어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2. 사랑은 교회의 완성된 표현임


율법사가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경영하시는 원칙이 무엇인가를 알고 영생을 소원하고 얻으려 했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가르침의 도리를 자꾸 생각해서 구원의 길에 도달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율법사는 이런 일에 대하여 깊은 사색을 하지 못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의 대답은 율법의 핵심이었습니다. 신명기 6:4-5절의 말씀입니다. 모세가 신명기의 이 말씀을 할 때에 모세는 이 말만 하지 않고 출애굽 사건부터 시작하여 율법의 모든 정신을 자세하게 재차 설명하고 난 뒤에 이 강령을 선포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미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 모든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율법의 핵심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 한 몸을 이루어 ‘진정한 동질의 이웃으로서 서로 사랑하라’는 대원칙을 제시해 준 것입니다. 이 대강령 속에는 이미 깊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과 또 친히 그 백성을 안위하시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우리로 주님의 몸된 교회로서 교회의 품성을 잘 나타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참된 교회로 세워져 가게 하시고,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높이 드러나게 하시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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