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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롬 6:1-23
강설날짜 2017-03-19

2017년 봄학기 특강

교회의 능력

말씀:로마서 6:1-23

 

우리는 지난 시간에 교회의 좌표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세워져 가기 위해서는 교회가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그 주님을 바르게 의지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은 교회의 능력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예배 시간에 성경을 낭독하는 시간이 따로 있었습니다. 설교를 하기 위해서, 또는 설교의 본문을 읽기 위해서 성경을 낭독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한 순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이런 교회의 전통을 따라서 예배 때 신, 구약을 한 장씩 읽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성경을 읽었다고 해서 설교자가 꼭 거기에만 얽매여서 설교하는 것이 아니어서, 설교자는 설교자 나름대로 설교하고, 성경을 읽는 것은 그 나름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순서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가급적이면 예배의 찬송이나 또 성경의 낭독이나 강설이 모두 다 한 주제를 가지고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개혁파 교회가 가급적으로 강설의 내용과 성경 낭독의 내용을 일치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의 낭독은 찬송이나 기도와 마찬가지로 예배에서 꼭 같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한 순서로서 성경을 낭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배 순서에 따라 인도자가 성경을 읽을 때는 그 읽는 말씀에 모든 지체들은 함께 참예 하여야 합니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대표로 기도할 때에는 아무나 기도할 것이 아니라 그 교회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해야 하며, 또 기도를 할 때는 그 한 사람이 기도하지만 우리 모두를 대표하여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예배에 참여하는 모두가 꼭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개혁교회에서는 교회를 대표할 만한 위치에 있고, 무엇보다도 교회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목사나 장로가 교회를 대표하여 목회기도를 해왔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할 때에도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 한다는 태도는 금물이며, 온전히 하나님께 경배하고 찬양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찬송하여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 삶의 전체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지만, 그 중에서 찬송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여러 가지 은혜 중에서 한 주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에는 영광송(榮光頌), 경배송(敬拜頌), 성삼위송(聖三位頌) 그리고 송영(頌榮) 등이 있는데, 그 나름대로 다 주제를 가지고 찬미하기 때문에 찬송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주제를 항상 염두에 두고서 그 가사와 내용까지도 잘 살펴서 찬송해야 합니다.

 

1. 복음은 죄에 대하여 능력을 발휘함

 

로마서 1-4장까지의 내용을 먼저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바울은 복음이 이 땅에 왔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그 복음은 무엇인가?’에서부터 논리를 전개시켜 나갑니다. 그 복음에 대해서 로마서 1:3-4절에서 말하기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그 아들이 곧 복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들에 대해서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합니다.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합니다. 이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효를 우리가 입음으로써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자녀의 위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복음이 그 능력을 발휘하는 자리는 바로 죄가 있는 이 세상입니다. 곧 죄 있는 사람들의 사회와 개인 안에서 이 복음의 능력이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이 세상의 어떤 부조리라든지, 구조악이라든지, 가난함이라든지, 착취라든지 하는 부분 부분의 죄에 대하여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부조리나 구조악 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죄를 해결하고 그 죄를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 역사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사역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어떤 이들이 이야기하듯이 단순히 노동자들의 해방이나 억눌린 자들의 해방을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인간 속에 그리고 사회 안에 근본적으로 숨겨 있는 죄를 해결함으로써 이상의 문제점들을 근원적으로 회복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복음의 능력은 죄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인간의 참 가치를 회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바로 이 주제, 즉 죄 있는 인간과 이 사회에서 복음이 어떠한 모습으로 역사해 가느냐 하는 점을 추론해 나갑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추구할 것은 의로운 삶입니다. 복음은 결국 죄인을 의로운 삶으로 인도하고 그 결과 이 사회의 개조를 가져오게 합니다.

 

죄의 판단 기준은 인간의 양심임

 

그러면 먼저 그 죄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이 죄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만한 기준 혹은 표준(criteria)이 있어야 합니다. 그 표준으로는 먼저 유대인들에게 주신 율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율법에 비추어서 죄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없이는 무엇이 죄인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방인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본성을 가지고 그 죄를 판단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본성을 보통 우리는 양심이라고 합니다. 이 양심이 율법 없는 이방인들에게는 죄에 대한 표준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해서 사람들은 법을 만듭니다.

 

이처럼 이방인들은 율법이나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으로서의 법이 아니라, 사람들의 양심에 따라서 법을 만들었습니다. 율법이 주어진 그때쯤 해서 사람들도 법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우리가 잘 아는 함무라비 법전이 그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본성을 근거로 해서 형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형편에 맞추어 규정을 세워 놓고 그 법에 어긋났을 때 죄라고 판단합니다.

 

인간의 양심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임

 

사람의 본성은 원래 하나님의 인격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을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기 때문에,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인격이 발휘되는 고상한 인격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 인격이 어그러져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인격체인 사람들은 죄 때문에 손상된 본성이나마 남아 있어서 그 나름대로 도덕적인 표준을 만들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이라든지, 아니면 대한민국의 헌법 등을 만든 것은 모두 일종의 최하의 도덕적인 표준을 기준으로 하여서 만든 것입니다. 이처럼 외적 형식으로 규정한 것을 법이라고 하고, 반면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담겨 있는 인격적인 표준을 도덕 또는 윤리라고 합니다. 이러한 법이나 윤리의 근거는 앞에서도 이야기 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성품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들이 윤리를 세우고 법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근본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이 그것들의 입법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양심을 기준으로 법을 만듦

 

그러므로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법은 모두 하나님의 일반계시 범위 안에서 형성됩니다. 때문에 세상의 법이 한결같이 악법은 아닙니다. 인간들이 어떤 개인적인 사리를 채우기 위해서 악법을 만드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일반 보편적인 법의 내용을 볼 것 같으면 그 나름대로 하나님의 품성을 따라서 제정된 것이기 때문에 법은 정의의 상징이 됩니다. 우리가 ‘法’이라는 낱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서도 그러한 성질을 알 수 있습니다. ‘法’이라는 단어가 ‘물수’(水) 변에 갈 ‘거’(去) 자를 쓰는데, 그 의미란 ‘물이 흘러가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점에서 법이란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된 인간의 도리를 규정하였다고 해서 인륜(人倫)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누구나 보편적이고 정당하게 그 앞에서 행사하고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판단의 표준이 됩니다.

 

일반적인 법칙 아래 만들어진 세상의 법이라 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에 따라야 하는데, 그 이유는, 법이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주신 보편적인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로 세속 국가의 법도 하나님께서 입법하신 것입니다. 그 나라의 수준에 알맞게, 민도에 따라 법을 제정하십니다. 사람들이 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세우고 그 법에 따라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국가들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권능의 왕국(regnum potentia)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개인과 나라를 세우기도 하시고 패망하게도 하심으로써 우주적인 권능의 왕국을 다스려 나가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본성을 통하여 법을 세우시고 나라를 세워서 운영하는 구체적인 방편을 통해 세상의 역사를 경영해 나가십니다. 공산주의는 공산주의대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대로, 또는 제3세계는 제3세계대로 법이 있어서 그 법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이 세상을 통치해 나가십니다. 그러므로 이 권능의 왕국이란 하나님의 통치권 안에 있는 것이지 무조건 사람들의 마음대로 경영되는 것이 아닙니다.

 

법을 바탕으로 하나님께서 인류를 통치하심

 

어떤 나라는 좀더 우월한 법이 있고 어떤 나라는 열등한 법이 있기 마련인데, 그건 그 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 수준의 정도 차이 때문입니다. 본성에 대한 인식, 곧 양심에 대한 인식이라든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높을수록 그 나라의 법이 월등하기 마련입니다. 반면에 그 인식이 저급할수록 그 나라의 법은 열등합니다. 결국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갖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나라의 법이 월등하고, 그만큼 그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하여 더 민감하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하여 거부하고 불순한 요소가 더 많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결국 그러한 모습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처럼 법이 열등하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나라는 그 나라의 조악한 법 때문에 백성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고충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 결과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 나라 백성들이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각성도 없고 양심에 대해 무딘 대가로 그러한 악법이 만들어짐으로써 그 조악한 법에 따라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방법입니다.

 

교회는 양심의 입법 기관임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창조주에 대한 각성도 빈약하고, 양심에 대한 최소한도의 양식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들은 좋은 법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조잡한 법에 의해 고통을 당함으로써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나라 사람들이 양심이 바르고 양식이 있어서 좀더 우등한 법을 만들었다면, 오늘날과 같이 악법 때문에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 보안법이라든지, 여러 가지 악법이 생겨서 선량한 사람을 잡아 고문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입법자들이 악했거나 법 자체가 악법이어서라기 보다는, 대한민국 전체 사람들의 수준과 양식(良識)이 그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 올바른 교회와 성도들이 많이 있다면 모두 이 나라 백성들의 양심의 기관이 되어서 그런 악법을 벌써 무너뜨려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것은 교회가 그만큼 능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악법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런 일로 남을 원망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교회가 교회로서의 자태를 분명히 하고 있어서 그 사회의 양심이 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2. 교회의 법은 하나님께서 세우심

 

이처럼 하나님의 권능의 왕국이라는 것은 미국 사람들이나 한국 사람들이나 아프리카의 미개인이거나 간에 보편적으로 그들에게 적합하고 그 시대의 백성들의 수준에 알맞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질수록 일반적으로 그 사람들은 그 수준의 법의 도움과 보호를 받게 됩니다. 이런 현상이 모두 권능의 왕국 안에 소속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통치의 구현으로 나타나는 법을 통해서 죄가 무엇이고, 그 형벌이 어떤 것인가를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교회의 능력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로써 교회다움을 잘 나타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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