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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15:1-27
강설날짜 2017-04-09

2017년 봄학기 특강

교회의 정체

말씀:요한복음 15:1-27

 

그 동안 우리는 교회가 지상에 존재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즉 교회란 각 성도의 정당한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현현을 이루며, 하나님께서 경영하시고 계획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충일한 영광을 이 땅 위에 드러내기 위한 삶의 유일한 터전으로서 이 지상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각 성도가 정당한 삶을 발휘한다는 것은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그의 삶을 성령 하나님께서 주장하실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현현과 하나님께서 경영하시고 계획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충일한 영광을 이 땅에 드러내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고 구원의 완성인데, 이러한 삶이 유형적으로 나타난 최고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 각인이 자기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로우심을 이 땅에 드러내기 위한 유일한 삶의 터전으로서 교회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그 동안 우리가 공부해 온 요지입니다.

 

1. 교회는 구원의 보증 기관임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항시 하나님의 나라를 최우선적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삶의 보증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유형교회의 한 회원으로서 교회 중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고 있다면 이에 대한 하나님의 확고한 보증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보증이란 어디까지나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반면에 어느 한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현하여 살아가는 것은 무형교회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러한 보증이(개인적으로 존재하는 모습을 통해서는) 외형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성도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고 할 때에 그에게 임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들이 알아 볼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개인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유형의 형태로 드러난 상태 곧 교회로서의 삶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교회로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든지, 기도나 헌상이나 찬송하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나 찬양, 헌상, 그리고 예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응답이 있어야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고 있다는 보증이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응답이 실제적으로 교회 안에서 확인이 되어야만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구체적인 모습으로 구현되는 것이며, 그 교회의 삶 속에서 성도 각인이 하나님의 보증을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예배는 하나님의 구원의 증표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응답이 추상적이지는 않습니다. 막연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셨다’든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상징적인 개념으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항상 가시적인 통치권의 행사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할 때 그 예배의 효과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서 나타나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은 그의 백성들을 친히 통치하시는 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예배를 받으시어 친히 그의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장성케 하시며, 거룩한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다스리시는 모습 속에서 그 예배의 효과를 찬연하게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배를 드릴 때 그 예배의 장엄함이라든지, 웅장함에 압도되어 사람들의 마음이 신비스러운 감흥을 느끼는 것을 가리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다고 한다면 그것은 망상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데에 관심이 많아서 상당한 시설을 하고 장치를 하여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압도하게 함으로써 종교적인 만족감을 얻으려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처럼 심리적인 자극을 통해서 사람들을 만족케 하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교회가 정당한 절차를 밟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 예배를 즐겨하시고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행사하시어 각 사람들의 생활 감정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고, 하나님을 통하여 위로를 얻으며,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기 위한 모든 여건을 친히 조성하여 주십니다. 그리하여 각 성도들이 자신의 모든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자신의 가치를 온전하게 발현하도록 이끄시며, 바로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이 정상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설교자를 통해 친히 말씀으로 감화하시며, 각 성도들의 생활 감정을 순화하시고 인도하심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진전과 건설을 위해 전폭적으로 헌신할 수 있도록 그들을 이끄시는 것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행사되며,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통치하시는 유효한 은혜의 수단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 시간에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 교회가 전진하는 능력을 얻으며, 하나님의 통치가 행사되는 능력이 체험되고, 그 가운데서 각 성도들이 살아가기 위한 양식이 공급됨으로써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장성해 나가는 모습이 항시 교회 안에서 발견되어야 합니다.

 

그 결과 세상의 악과 부패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며, 사탄의 세력을 타파하여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창달하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모습이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의 삶을 보증해 주시는 증표가 됩니다. 이러한 상태를 가리켜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어 응답하셨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객관적인 증거를 가짐

 

이처럼 하나님의 응답이나 영광은 가시적이며 객관적입니다. 누구나 체득할 수 있고 심지어 믿지 않는 사람이나 사회까지도 인정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며 응답입니다. 따라서 한 시대에 명백하게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세우시고 다스리신다는 객관적인 증표가 세상 위에 드러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교회의 문화입니다. 그 교회만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인도와 보호하심 가운데 세상과 역사에 대하여 찬연한 문화의 빛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문화는 그 시대를 특징지으며, 앞선 시대의 결실로서 긴밀한 연결이 되고 나아가 후세대의 길을 인도하는 역사적인 이정표가 됩니다. 이러한 문화의 연결이 하나님 나라를 구체적으로 이 세상에 현시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구원의 메시지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현존에 대하여 인식하게 되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전도와 선교의 의미이고, 사회 구원을 위한 메시지이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교회가 이 시대에 서 있다면 그 교회는 역사적으로 개혁교회가 창달해 온 문화를 잘 전수받아 발전시킴으로써 이 시대에 찬연히 빛나는 빛으로 존재하여 어두운 세상을 향하여 밝은 빛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 교회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을 알고 두려워 떨며 공의로운 심판 앞에 굴복하게 됩니다. 사회복음주의자들처럼 ‘공의는 물같이 정의는 하수같이’라는 구호를 외침으로 세상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떠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체적인 간섭과 통치의 결과를 교회가 세상에 증거함으로써 진정한 정의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능력이며, 하나님 나라의 권능이기도 합니다.

 

2. 은혜의 왕국으로서의 교회

 

이와 같이 하나님의 통치권이 행사되는 유형의 교회를 가리켜 우리는 ‘은혜의 왕국’(regnum gratia)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유형의 교회는 하나의 국가 조직체로서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독특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 유형의 교회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가시적인 통치권이 행사됩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의 왕국 안에 속해 있어야만 하나님의 통치가 정당하게 행사되고, 하나님의 통치권이 확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반면에 은혜의 왕국을 유지하기 위해 존속되는 세상의 나라 역시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통치되어 진행되는데 이것을 우리는 ‘권능의 왕국’(regnum potentia)이라고 합니다. 이 권능의 왕국은 세상 모든 나라를 포함합니다. 따라서 은혜의 왕국은 권능의 왕국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왕국과 권능의 왕국은 엄연히 경계가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역사는 은혜의 왕국에 의해 유지되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권능의 왕국이 은혜의 왕국을 보호하고 진행시키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감

 

이러한 교회의 성격을 알고 있어야 비로소 교회의 능력이 무엇이며,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의 능력은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그 양식으로 삼고, 마침내 세상을 이기는 것에서 그 능력이 발휘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교회의 원동력과 양식이 되고 생명력을 공급하며 활력으로서 구원의 보증이 됩니다. 이것이 교회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통치이며,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르게 운영이 됩니다. 세상은 돈이나 명예나 권세가 있어야 살아가는 곳입니다. 힘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그러면서도 힘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곳입니다. 아무리 지혜가 있어도 그 지혜 때문에 망할 수 있는 곳이 세상입니다. 아무리 큰 권력을 쥐고 있다 하여도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힘을 가지고서도 무너지고 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현상을 보고서는 세상은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알아가기 보다는 더 큰 힘을 가지면 평화와 행복을 성취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자꾸 더 큰 힘을 추앙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세상은 힘을 신앙하는 종교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힘으로 지배되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물리력이나 권력으로 유지되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 원동력이 되어서 교회가 유지되고 발전하며 세상을 이겨 나갑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신앙함으로써 능력을 발휘함

 

요한일서 5:4절을 보면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과 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오직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이 교회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능력은 에베소서 3:16-19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첫째는, 성령 하나님께서 속사람을 강건케 하시는 일, 곧 어떤 사람을 새롭게 중생케 하시고 그 사람이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서 살아 갈 수 있도록 강건케 하시는 것에서부터 교회의 능력이 발현됩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의 믿음이 날마다 진보하고 장성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능력입니다. 셋째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지혜가 각 성도에게도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일에서 교회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교회가 능력을 갖고 있고 그 능력을 발휘하는 교회인가?’라고 할 때에는 이처럼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각 사람의 강건해짐이 눈에 보이는 교회가 참으로 권능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한 교회라면 당연히 구원의 복음에 대한 진보가 확연하게 나타나며, 그 결과 하나님의 충만하신 지혜가 모든 사람들에게 있게 되어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인격이 발견되어 집니다. 따라서 각 개인의 인격이 고양되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격’이라고 할 때에는 거기에 독특성 즉 그 인격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이 있습니다. 요컨대 각 개개인이 가지는 특성은 결국 하나의 교회라는 형태로 응축이 되어 나타나지는 바로 그것이 그 교회만이 가지는 문화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 능력을 정상적으로 발휘한다면 제일 먼저 시대적 사명에 대한 각성이 있어서 그 시대의 독특한 문화를 세상에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예배는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함

 

앞에서 여러 번 말했듯이 기독교의 문화를 유형적으로 건설해 나가는 데 있어서 완벽한 형태가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야말로 기독교만이 가지는 고유한 문화의 형태입니다. 물론 여타의 다른 종교들도 예배의 형식을 나름대로 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 의식에 따라 나름대로 문화를 형성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부분 의식을 행사하는 차원에서 종교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예배는 그 자체가 문화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점이 있습니다. 즉 문화라고 할 때는 그 자체가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이 특성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교회가 무엇인지 바르게 알게 하여 주시고, 우리 교회 가운데 예배를 통해서 교회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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