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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갈 5:16-26
강설날짜 2017-05-28

2017년 봄학기 특강(개혁주의 교회론)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신실하게 받드는 교회(1)

-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를 받는 삶 -

말씀:갈라디아서 5:16-26

 

들어가는 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단순히 구원만 하신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우리의 삶을 보호하시고 돌보십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에게 성경이 주어졌습니다(딤후 3:16-17).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셨고, 또한 ‘무엇을 실천하여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셨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백성이 갖추어야 할 성품의 어떠함과 또한 행동함에 있어서 원리로 삼아야 할 원칙들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도리들을 잘 지키게 될 때에 더욱 하나님의 백성다운 성품을 유지하게 되고, 또한 더욱 하나님의 백성다운 행동들을 구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일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반드시 유지해 나가야 하는 하나님께 대한 도리가 있고, 아울러 다른 사람들과 이루어 나가야 하는 여러 가지 도리들이 있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 한에는 마땅히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서 존재하고 살아나가는 삶의 양상과 그 활동들은 단순히 그냥 지나가는 세월의 흐름에 동승한 것으로서의 의미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이러한 나라다’라고 하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삶을 살게 하시려고 구원을 누리는 큰 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게 되면 그렇게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로서만 만족할 것은 결코 아니고, ‘과연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다웁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문제는 지상에서 우리의 생명이 마쳐질 때까지 항상 뒤따르게 됩니다. 여기에서 소명 내지는 사명의 문제까지 대두되게 되고, 이것을 잘 감당하게 되면 자기에게도 큰 복이 되며, 하나님께도 큰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다웁게 자라나가는 이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되면 그들은 세상 앞에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고 과시하는 결과를 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구원을 받은 성도인 한에는 이후부터는 ‘과연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시고 요구하시는가?’ 하는 등의 문제들을 부지런히 살피고 연구하며 실천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곧 진리 안에서 자라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미천하기 짝이 없는 우리에게 큰 복을 주셔서 앞서 이렇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고, 나아가 남은 생애를 의미 있게 하셔서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과 거룩함을 구현해 내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이루며 살아가는 교회의 모습을 볼 때에 사실상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구원을 받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옛 사람의 성향에 지배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의 상태로부터는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바로 이 연약함 때문에 이따금씩 자의적이며, 타의적으로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해 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에는 아예 흑암의 권세의 종이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고 훼방하는 적극적인 죄에까지 빠져들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러한 연약함을 다 아십니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치시고 명령하심에 있어서 단순히 그렇게 명령하거나 요구하시기만 하시지 않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능히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까지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이 방법이 있는 까닭에 우리가 이것을 잘 적용해 나가기만 하면 우리는 능히 하나님의 요구와 권고들을 받들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를 받는 삶

 

이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성령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능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들어 나갈 수 있도록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여러 가지 요구들을 대면하게 될 때에 반드시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고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수종 드는 자마다 반드시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받들어 나가야 한다고 하는 이 근본적인 사실은 항상 전제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자신이 행하려고 하는 모든 신앙적인 삶의 방식과 양태에 있어서 반드시 이 사실을 전제하고 움직여 나가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하심에서 살아가게 되면 거기에는 항상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어지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라는 것이 ‘나’라고 하는 인격을 통해서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참조. 갈 5:22-23).

 

성도는 성령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들어 가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성도의 인생과 삶의 행진에 역사하셔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철저하게 그분의 인도를 누려야 합니다. 그분이 나를 쓰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려면 다른 무엇에 앞서 먼저 자기라고 하는 것을 철저하게 포기하고 비워야 합니다. 오늘날 성령 하나님께서는 신약 교회를 인도하시기 위하여 교회 안에 내주하셨으며, 그래서 교회로 연합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연합해 계십니다. 지금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기 위하여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다운 성품을 형성케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진리의 길을 걸어가도록 하시려고, 우리 안에서 부단히 역사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새 사람을 입어가도록 인도하시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주십니다. 그야말로 계시를 밝히 깨닫게 하시며, 깨달은 진리를 능히 실천할 수 있을만한 힘까지도 주시는 것입니다.

 

이상의 원칙을 염두에 두고, 이 정도쯤에서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범사에 성령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이 사실은 성도에게 절대적인 당위성을 가진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제아무리 선하고 착하며 여러 가지 기독교적인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성령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를 받지 않는 데서 나오는 것일 경우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성령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의 신분으로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자 하는 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절대 주권자가 되시는 까닭이 여기에 근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성령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 하에서 살아가는 삶을 구현하는 일에 최고의 관심을 가져야 하고,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6:13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여기서 ‘인도’(oJdhgevw, 호데게오)라는 단어의 뜻은 ‘가르쳐 지도한다’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5:18절에 보면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고 했는데, 여기서 ‘인도’(a[gw, 아고)는 ‘데리고 끌고 간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쳐 지도(요 16:13)’하시며, ‘데리고 끌고 가시는 것(갈 5:18)’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는 옛 사람의 연약한 특성이 항상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성향을 아시고서는 이러한 방법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육신만의 소욕이 아닌 성령의 소욕도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서 역사하셔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데리고 이끌어 가심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다운 태도를 가진 자로서 존재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성령 하나님의 소욕에 순종하게 되면 하나님의 요구들을 능히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명령하기를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성령 하나님을 힘입어서 살아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7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 속에는 항상 두 개의 소욕이 역사합니다. 이 두 개의 소욕 가운데 하나가 행위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육체의 소욕이요, 다른 하나는 성령의 소욕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여기서 ‘육체의 소욕’이란 것은 우리가 거듭나기 전에 가졌던 본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슨 어둡고 괴악한 죄악들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에 있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슨 적극적이며, 구체적인 범죄 행위 등의 차원에서 육체의 소욕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육체의 소욕이란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여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는 데서 나오는 것인 한에는 모두가 육체의 소욕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때로는 매우 종교적이거나 또는 매우 도덕적인 일까지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기독교적인 일들이 행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성령의 소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 한에는 반드시 그 결과가 하나님의 나라의 속성과 맞지 않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타락하는 것이요, 이는 곧 성도들 개개인이 성령의 소욕과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아담 안에서 전적으로 타락했습니다. 이 타락한 본성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육체의 소욕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육체의 소욕이란 것이 항상 작용을 하고, 이것이 실제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을 주셨고,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서 부단히 역사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소욕에 순종하게끔 하십니다. 따라서 성도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 이 둘 중의 어느 하나에 지배되기 마련이고, 어떤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일부 성도들이 성령의 소욕을 무시하고 반대로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의 소욕을 적극적으로 무시하는 성도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성도들이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것은 고사하고 이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조차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더욱이 이런 성도들에게 육체의 소욕이 성령의 소욕을 빙자하여 나타나기까지 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사단은 항상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나타나는 법입니다(고후 11:14-15).

 

갈라디아 교회를 보면 이 문제의 심각함을 보여주는 좋은 실례가 나타납니다. 당시 갈라디아 교회가 직면해 있었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로는, 오직 복음으로만 받게 되는 구원의 도리를 배척하고 율법의 행위를 의지한 것이었습니다. 둘째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그것을 실천해 나가는 방식을 자신들의 생각과 노력에 의지했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3:3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라고 책망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25절에서는 동일한 맥락에서 그러나 반대의 의미로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범사에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힘입어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 그의 인격은 신령한 사람으로 갖추어져 갑니다. 외모가 신령하다는 것이 아니고, 그 존재 상태가 신령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성령 하나님의 소욕을 좇는 자로서 존재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항상 성령 하나님의 소욕을 좇는 자로서 존재하는 까닭에, 이것이 그의 생명력이기 때문에, 그는 신령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행했느냐?’고 하는데 관심을 갖는 만큼 상대적으로 ‘왜 그것을 하느냐?’, ‘어떻게 그것을 하느냐?’ 하는 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과연 나는 어느 정도의 존재 양태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데 주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내가 어떤 존재냐?’고 하는 사실로부터 ‘내가 왜 그것을 하느냐?’ 혹은 ‘내가 어떻게 그것을 하느냐?’고 하는 문제가 정당해지게 됩니다.

 

거듭 강조하자면 성도는 자신이 무슨 무슨 일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중을 두기에 앞서 나는 지금 영적으로 어떤 수준과 상태로서 존재하고 있느냐 하는 사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아무리 복음의 명분을 가졌다 할지라도 ‘내가 무엇을 해야겠다’고 하고 나서는 이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성령의 소욕 운운하면 안됩니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소원이나 일을 대할 때에 이것을 나의 영적인 수준과 분수에 맞게끔 생각하고 움직이는 일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지금 내가 어떤 자로서 또는 어떠한 상태로서 존재하고 있느냐?’고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인 것입니다. 동시에 바로 이것이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한다’고 하는 말에 성립되어지는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신령한 사람 곧 영적인 사람으로 존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과연 영적인 사람 곧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이는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사람에 반대됩니다. 그러니까 때로는 기독교적인 색채까지도 띄고서 나올 수도 있는 바, 자기의 욕구에 지배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욕구만을 따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의 모습은 의외로 평범합니다. 다만 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와 관련하여 다분히 논리적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사람이란 무슨 비상한 사람인 것도 아니고, 초월적인 계시를 받는 사람도 아니며, 속세를 등지고 앉아서 도를 닦는 사람도 아니고, 아무에게나 손을 얻고 기도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성령의 소욕을 좇는 사람은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가는 사람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 아래서 더욱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사람이 신령한 사람입니다. 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이것을 효과적으로 적용해 나가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란 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처음에 창조함을 받았던 그 상태로 회복시키는 데 있는 것이라고 하는 큰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납득할 수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소욕을 적극적이고 충분하게 좇게 되면 성경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성령이 충만하다는 말의 의미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 사람은 무엇보다도 올바른 분별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의 소욕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진리의 말씀으로서 세상을 분석하고 처방하는 일에 탁월한 두각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즉 이 사람은 신령한 삶의 태도를 가능하게 하는 인식력을 가졌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으며, 그 넓이와 깊이에 있어서도 항상 상승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을 분별하는 첫 번째 요소입니다.

 

성령 충만은 먼저 하나님의 계시를 파악하는 능력과 또한 그 깊이와 연결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매사를 가볍게 보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이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가?’ 하는 측면에서 예의 주시합니다. 물론 바로 이와 같은 주시의 근거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서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사고의 자료가 되고, 또한 자신의 삶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항상 자신의 신령한 삶의 존재 양상을 상승시켜 나가는 일에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데, 따라서 이 사람은 더욱 성령의 소욕을 좇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이렇게 성령의 소욕을 풍성하게 받아나가는 사람의 삶은 더욱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을 자기 안에 이루어 내게 되고, 이것을 통하여 교회 공동체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로서 존재하게 하는 일에 부단히 기여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령한 사람 혹은 성령 충만한 사람 또는 성령의 소욕을 충만하게 좇는 사람의 정체성은 그가 자신의 삶의 성격과 방향을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의 거룩한 발전에 걸맞게끔 맞추어 나가느냐 하는 데서 찾아지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성도들 각인이 분량에 따라 피차간에 차이와 수준이 있게 됩니다. 신령한 사람들 개개인끼리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평소부터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의 계시를 얼마나 잘 받았느냐, 또는 많이 받았느냐, 그리고 여기에 얼마만큼 잘 순종해 나왔느냐 하는 것의 차이에 따라, 혹은 그가 신앙생활을 해나온 년 수에 따라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우리가 첫번째 주제를 잠깐 정리하자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성령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 하심 아래서만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며,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으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현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의 소욕을 좇는다는 것은 먼저 내가 지금 영적인 측면에서 어떤 상태로 존재하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한 영역을 점하고 있는 자인 내가 이 전제 하에서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고, 자신의 인생의 방향과 내용을 살피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범사에 적용됩니다. 지극히 작은 일 하나까지라도 철두철미하게 하나님께서 내신 말씀의 준칙에 따라서 행하려고 하는 태도를 가질 때 비로소 성도는 성령의 소욕을 좇는 자로 발견되어지고, 이것이 성도의 생애 속에서 지배적으로 나타나게 되면, 그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는 범사에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루려고 하는 태도를 한시라도 떠나지 않으려고 하는 일에 깨어 있는 일입니다. 제아무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려고 한다고 하는 목적을 뚜렷하게 가졌다 할지라도 성령의 소욕을 좇는 데서부터 나오는 과정이 뒤따르지 아니하면 그것은 필히 육체의 소욕으로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해나가는 과정, 바로 이 과정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요, 그분의 그 높으신 혜안으로 보실 때에 정당한 것으로 평가되어지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실히 받들어 가는 교회가 되게 하시길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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