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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6-8문
문답내용 6문 : 하나님께서 본래 사람을 그와 같이 사악하고 불의하게 창조하셨습니까?
답 :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선하게 그리고 하나님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습니다. 즉 참으로 의롭고 거룩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온 마음으로 사랑하며, 영원한 복락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살고, 그리하여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7문 : 그렇다면 사람의 이 부패한 본성은 어디서 왔습니까?
답 : 우리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타락하고 불순종한 데서 왔습니다. 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본성이 부패되어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8문 : 그렇다면 우리는 너무 부패하여 선이란 전혀 행할 수도 없고 모든 악을 향해 기울 뿐입니까?
답 :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그렇습니다.
강설날짜 2013-09-15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주(6-8문)

사람의 원죄

요절 : 엡 2:1-5

6문 : 하나님께서 본래 사람을 그와 같이 사악하고 불의하게 창조하셨습니까?
답 :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선하게 그리고 하나님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습니다. 즉 참으로 의롭고 거룩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온 마음으로 사랑하며, 영원한 복락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살고, 그리하여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7문 : 그렇다면 사람의 이 부패한 본성은 어디서 왔습니까?
답 : 우리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타락하고 불순종한 데서 왔습니다. 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본성이 부패되어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8문 : 그렇다면 우리는 너무 부패하여 선이란 전혀 행할 수도 없고 모든 악을 향해 기울 뿐입니까?
답 :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그렇습니다.

1. 우리의 예수님 믿기 전인 과거에 대해서 배워야 할 이유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도 인간의 죄와 비참함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이미 죄와 비참함에서 구원받은 우리가 배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오히려 이런 가르침들은 믿지 않는 불신 세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불신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내용을 설명해줘도 모릅니다.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기 때문에 성경구절 인용하면서 설명해봐야 의미 없는 것이죠. 오히려 이런 내용들은 예수 믿게 된 사람,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에게 꼭 필요한 내용입니다. 사도바울도 오늘 본문에서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2)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4)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 2:1-5)

그들은 이미 허물과 죄로 죽었던 상태에서 벗어나 구원받은 자들이지만, 바울은 다시금 그들이 예전에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에 대해서 상기시켜줘야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자 안에 있는 교만, 곧 죄악된 본성이 남아있어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잊어버리고 옛사람의 습성을 따라 살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어떤 자들이었고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를 상기시켜주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지기 전에,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에 우리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예수님 믿기 전에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고, 세상 풍속을 좇으며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비참한 삶을 살다가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우리를 살려주시고 은혜로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은혜를 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 은혜를 잊지 말고, 오직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알고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죄를 버리고, 회개하여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베소서 서신의 목적이고, 또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목적입니다.

2. 사람을 선하게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심

그래서 우리가 설사 이미 죄와 비참함에서 구원받았다 하더라도 예수님 믿기 전에 참으로 자신이 죄와 비참함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을 날마다 더욱 깊이 깨달아 가야 합니다. 지난주가 바로 그런 내용을 가르쳤는데, 잠시 복습을 하면...

3문에서 “당신은 어디로부터 죄와 비참함을 압니까?” 하고 물었습니까? 그 대답이 하나님의 율법으로부터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 율법의 요구는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이러한 계명을 우리가 지킬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그 대답이 “지킬 수 없습니다. 나는 본성적으로 하나님과 나의 이웃들을 미워하는 성향이 있습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곧 사랑하라는 명령 앞에 사랑은 고사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 율법을 지킬 수 없고 하나님과 사람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나”는 예수님 믿고 거듭난 신자로서 현재의 “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믿기 전의 “나”로 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성도들도 이 고백을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에게도 이러한 죄악된 본성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신자처럼 전적으로 그러한 성향으로 기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깐 이 5문은 일차적으로 예수님 믿기 전의 우리의 상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원래 그렇게 악한 존재라는 사실 앞에서 이 세상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어떻게 반응합니까? 그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을 잘못 만든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님을 6문에서 가르칩니다.

6문 : 하나님께서 본래 사람을 그와 같이 사악하고 불의하게 창조하셨습니까?
답 :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선하게 그리고 하나님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습니다. 즉 참으로 의롭고 거룩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온 마음으로 사랑하며, 영원한 복락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살고, 그리하여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깐 사람의 현재 모습이, 그리고 이 세상의 현재 모습이 본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세상을 이렇게 만드셨는가? 왜 이렇게 불행하고 비참하게 되었는가?” 그렇게 원망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께서는 잘 만들어놓으셨지만, 우리가 다 망가뜨려놓은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봅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는데, 매일 창조가 마칠 때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표현이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신 후 맨 마지막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이 보실 때 만물도, 사람도 다 선하게 지음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만드실 때는 그냥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이 말씀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해서 이 겉모양이 하나님을 닮았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신이시기 때문에 이런 모양과 이런 형체가 없으십니다. 차라리 사람의 겉모양, 육체는 동물을 닮았습니다. 원숭이와 고릴라를 특히 닮았습니다. 땅에 사는 동물들은 생김새는 조금씩 다 다르지만, 다 입이 하나고, 눈은 두 개이고, 코도 하나이지만 콧구멍이 두 개이고 귀도 두 개입니다. 그리고 신체 내부 장기들의 구조나 모양은 거의 모든 동물들이 비슷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1기압의 지상에서 폐로 숨 쉬면서 살고, 먹으면서 살려면 다 그렇게 생겨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몸의 모든 지체와 오장육보가 지상에 살기에 적합하도록 지어졌기 때문에 그 모양과 형상은 동물과 비슷하게 닮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물속에서 살았다면 우리의 모습은 물고기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물론 사람의 육체도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독특한 측면이 있습니다. 사람의 육체가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월등하게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육체도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찬란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 육체도 하나님의 형상에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독특성과 위대함은 결국 이 육체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서 옵니까? 바로 하나님을 닮은 이 정신과 영적인 특성에서 오는 것입니다.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을 닮은 정신과 영혼을 지니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정의를 가진 인격체로서 하나님과 대화하며 교제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정신과 영혼의 작용 때문에 사람은 동물에게서는 볼 수 없는 탁월한 재능과 능력, 자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독특한 사회 공동체를 형성해가면서 이 세상을 다스려나갈 수 있는 탁월한 존재로 지음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넓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했음에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타락했어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인간이 이러한 고귀한 존재이고 영혼과 육체의 여러 가지 탁월한 재능과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하려고 하는 선한 성품이 없다면, 도리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악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라고 한다면, 그러한 탁월한 재능과 능력과 자질들이 다 쓸모없는 것이 되고, 오히려 탁월한 만큼 더욱 하나님 앞에서 부패하고 악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결국 방향성입니다. 이러한 탁월한 존재와 재능을 어떤 방향으로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처음 지음 받았을 때 이 방향성이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을 향해 있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선한 성품이라고 말하는데, 이게 진정으로 하나님을 닮은 것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우리가 자식을 낳아서 길러보면 겉모양만 닮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성품이나 기질, 성격도 그대로 물려받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에 사람도 그러한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닮아서 선하게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선한 성품에 대해서 창세기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만 말하고, 구체적으로 어떠한 성품인지 설명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신약의 내용으로부터 거꾸로 추정하는 것입니다. 바울서신에서 거듭난 사람, 곧 새사람을 말할 때 어떤 특성을 말하는지 살펴보면 창조 때 아담의 선한 성품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10)

여기서 새사람은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혼이 새롭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영혼이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토대로 첫 사람 아담은 바로 참된 지식을 가진 사람이겠구나 하고 거꾸로 역 추정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자기를 알고 피조세계의 사물을 정확하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그런 지식이 있도록 지음 받은 것입니다. 또 다른 구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

에베소서에서는 새사람에 대해서 세 가지를 말합니다. 의와 진리와 거룩함을 말하는데, 사실은 두 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라는 단어는 “참으로” 라는 형용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사람은 참으로 의롭고 거룩한 존재라는 것이죠.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아 첫 사람 아담이 이렇게 참으로 의롭고 거룩하게 지음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의 좁은 의미, 또는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지식이 있게, 그리고 의롭고 거룩하게 지음 받은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소요리문답과는 다르게 에베소서 말씀을 중심으로 두 가지만 말하지만, 그러나 이 거룩함과 의로움이라는 말 속에는 모든 선한 성품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품이 사람을 진정으로 사람답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성품은 없고 능력과 재능만 하나님을 닮았다면, 그것은 능력 있는 악마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진정한 본질은 바로 의롭고 거룩한 성품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이렇게 처음부터 선하고 의로웠기 때문에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알고 사랑했으며, 또한 그분과 교제 속에서 복락을 누리면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불과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타락하기 전까지 아담과 하와는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니깐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잘못 만든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면 죄와 악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습니까? 바로 사람 자신에게서 온 것입니다.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전 7:29)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7문 : 그렇다면 사람의 이 부패한 본성은 어디서 왔습니까?
답 : 우리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타락하고 불순종한 데서 왔습니다. 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본성이 부패되어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3. 타락

창세기에 잘 나와 있는 내용이죠.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창조세계에서 마치 면류관처럼 하나님의 대리자처럼 사람을 세우셨는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있는 인생임을 기억하도록 하는 한 나무를 동산중앙에 두셨습니다.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그 나무를 볼 때마다 아담은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가운데 있고 하나님의 명령가운데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먹지 말라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것을 먹었습니다. 아담이 먹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먼저 먹고, 여자가 남자에게 주어서 남자가 먹었습니다. 이렇게 사단이 우리를 시험하고 유혹할 때에는 처음부터 강한 자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를 먼저 공격한 후에 그 약한 자를 통해서 강한 자를 흔들어버립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한테 대놓고 덤비면 이길 수 없으니깐 그의 사랑을 받는 들릴라를 이용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담도 사탄에게는 삼손과 같은 난공불락의 존재였습니다. 도저히 아담을 정면으로 상대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의 사랑을 받는 아내인 하와를 공격대상으로 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 뱀을 이용해서 접근하고 유혹하였습니다. 뱀은 그 비늘이 보석처럼 찬란한 화려한 동물이었고, 또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와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는 애완동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뱀이 와서는 유혹하기를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하나님처럼 될까봐 못 먹게 한 것이다”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위력이 있는지 그 말을 듣고 나니깐 하와의 마음속에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고, 원망과 불평하는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났던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줄려면 다주시지, 아주 중요한 것만 빼돌리고 우리한테는 이렇게 하셨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하나님을 불신하고 불평하는 악한 마음을 품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사람이 참으로 선하게 지음 받았지만, 완전한 상태는 아니었다는 것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옆에서 유혹하면 얼마든지 넘어가서 자신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죄를 범해서 타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그런 상태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원래 아담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는 아담처럼 온전히 선할 뿐만 아니라, 타락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완전한 상태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런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온전히 선하게 지음 받았지만, 얼마든지 자기 꾀를 내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그런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악한 마음을 품고서 열매를 보니깐, 보면 볼수록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웠던 것이죠. 그래서 결국 따먹고 그것을 가져다가 아담에게 먹으라고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결국 먹었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왜 먹지 말라고 한 그 실과를 먹었냐면서 아주 나무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넘어갑니다. 하와가 어떻게 아담을 구워삶았을까요? 물론 처음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입니다. 뱀의 말도 인용하고, 자기가 한입 베어 먹은 열매를 보여주면서 “봐라 내가 먹었는데도 안 죽었지 않느냐...” 그러면서 설득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설득이 안 되면, 여자에게는 최후의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다. “당신 정말 날 사랑해?” 이 한 마디 하면서 눈물 한 방울 흘리면 남자는 거기서 끝입니다. 들릴라가 삼손에게 썼던 방법 아닙니까? 여기에 넘어가지 않을 남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실 아담이 이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처신을 잘했어야 했습니다. “물론 당신을 사랑하지만 이것은 아니잖아...” 그러면서 그것을 들고 하나님 앞에 가서 용서를 빌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물론 하와가 따먹기는 했지만, 책임은 저입니다. 저를 죽여주십시오.” 그렇게 처신했다면 아마도 역사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사랑 타령하는 하와에게 사랑한다고 하면서 같이 먹었던 것입니다.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열매 하나를 따먹는 작은 동작이었지만, 그것의 파급효과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오고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고 말았던 것이죠.

4. 대표의 원리

소위 말하는 “원죄”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곧 아담은 인류의 대표로 범죄한 것이고, 이를테면 우리는 그때 아담의 허리에서 그 범죄에 함께 동참한 셈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표의 원리는 마치 국가대표팀 간의 축구경기와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이 붙어서 일본이 이겼을 때, 한국 사람들이 이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또 다른 대표 팀을 조직해서 일본대표팀과 붙겠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표 팀끼리 붙어서 일본이 이겼으면, 일본전체가 이긴 것이고 한국전체가 진 것입니다. 한국에 모든 지역의 축구팀을 다 이겨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대표 팀 간의 경기로 승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대표의 원리로 아담은 인류의 대표로서 범죄 했으며, 따라서 이제 모든 인류가 그와 함께 범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 5:18)

이것을 우리가 불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권자이시니 하나님 마음대로 룰을 정하실 권리가 있으십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은혜인데 왜냐하면 이 똑같은 대표의 원리로 우리가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고, 또 할 수도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데, 예수님이 우리의 대표가 되셔서 순종하시고 의인이 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순종하시면 우리가 순종한 것이고, 예수님이 의인이면 우리가 의인인 것입니다. 

5. 원죄

어쨌든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가 그와 함께 타락했습니다. 본래 그 거룩한 지위에서 떨어져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태어나는 모든 인류는 바로 그러한 타락한 상태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원죄라고 하는데, 이 원죄는 죄책과 부패로 나누어집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에 대한 책임, 곧 형벌을 태어날 때부터 안고 태어납니다. 그 죄의 책임이 무엇입니까? 사망입니다. 삼중적인 사망입니다. 첫째는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영혼의 죽음, 그리고 둘째로 그 영혼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얼마안가 결국 이 세상에서의 육신의 생명이 끝이 나는 몸의 죽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원한 지옥형벌에 떨어지는 영원한 죽음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죄의 책임인 사망의 형벌을 태어날 때부터 안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원죄는 이 죄책만 물려주는 게 아니라, 부패도 물려주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 성품이 완전히 부패한 상태로 태어납니다. 마음 안에 선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온통 구부러지고 왜곡되고 불의하고 사악하고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들이 마음 안에 가득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욥 14:4)
“(18)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19)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20)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 15:18-20)

이렇게 되니깐 이제 풀이 죽어서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범죄하고 타락한 이 형편에서 도무지 선행을 행할 수 없단 말입니까?” 그것이 8문의 질문인데, 여기서 대답이 둘로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망가지긴 망가졌지만, 완전히 망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도 희망이 있고, 수리해서 쓰면 쓸만하다고 생각하는 견해입니다. 성경 읽고 이렇게 깨달은 사람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펠라기우스나 알미니우스가 있습니다. 결국은 부분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에 내가 잘 협력해서 애쓰고 노력하면 얻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게 됩니다. 곧 자신이 수행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달은 성경진리는 무엇입니까? 사람이 너무 망가졌기 때문에 도무지 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다만 그 옛사람은 폐기처분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곧 우리는 완전히(total) 타락했다는 것이죠. 

8문 : 그렇다면 우리는 너무 부패하여 선이란 전혀 행할 수도 없고 모든 악을 향해 기울 뿐입니까?
답 :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그렇습니다.

6. 유일한 소망

그래서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엄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육신은 그대로 있고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든 인류는 태어날 때부터 영혼이 죽은 채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죽었다는 것은 영혼의 활동이 멈추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여전히 정신과 영혼이 활동하고 또 여러 가지 과학문명을 발달시키고, 종교성과 도덕성을 가지고 있어서 선을 추구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활동하기는 하는데, 온통 죄로 오염되어 있고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죽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죄와 허물로 인해서 우리 모두는 바로 이러한 영적사망상태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긍휼과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성령으로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시는데, 구체적으로 죽었던 우리를 어떻게 살리십니까?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 2:5)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여 우리의 옛사람을 폐기처분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시키셔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이요, 중생입니다. 이러한 거듭남의 은혜가 있기 전까지는 우리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종교 활동 열심히 해도, 자신의 이력서의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적어도, 교회 열심히 나와도 소용없습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우리는 그저 싸늘한 시체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거듭남이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이 육신도 태어나고 싶다고 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보니 태어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도 바로 성령의 주권적인 은혜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의 택하심의 은혜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고 이렇게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신자는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우리가 거듭났는데도 우리는 어떠한 선도 행할 수 없고 오직 악으로만 기울 수밖에 없다고 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이것을 우리가 잘 파악해야 하는데, 차후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이 점에 대해서 다룰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 믿기 전 우리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그러한 죄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배웠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과거를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쩍 시절 잊어버리듯이,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과거를 잊어버린다면 우리에게는 미래도 없습니다. 전적부패와 타락, 그리고 지옥심판에서 구원해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면서 감사 찬양 드리는 삶을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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