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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16-19문
문답내용 16문 : 우리의 중보자는 왜 참 사람이며, 또한 완전히 의로운 사람이어야만 합니까?
답 :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는 죄 지은 인간이 죗값을 치르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죄인 자신은 다른 죄인들을 위해 죗값을 치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17문 : 중보자는 왜 동시에 참 하나님이셔야 합니까?
답 : 중보자는 자신의 신성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무거운 짐을 자신의 인성에 짊어지고, 또한 우리를 위해 의와 생명을 얻어 우리에게 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18문 : 그렇다면 참 하나님이시며 또한 죄 없고 참 사람이신 중보자는 누구입니까?
답 :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완전하게 구원하시려고 또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의롭게 만드시려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19문 : 당신은 이 사실은 어디서 압니까?
답 : 거룩한 복음에서 압니다. 하나님은 이 복음을 맨 처음에 낙원에서 계시하셨습니다. 그 다음 거룩한 족장들과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이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또한 율법의 다양한 제사들과 의식들을 통해, 곧 여러 가지 모형들을 통해 하나님은 이 복음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랑하는 외아들을 통해 하나님은 이 복음을 성취하셨습니다.
강설날짜 2013-10-06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6주(16-19문)

 

유일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요절말씀 : 벧전 3:18

 

16문 : 우리의 중보자는 왜 참 사람이며, 또한 완전히 의로운 사람이어야만 합니까?
답 :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는 죄 지은 인간이 죗값을 치르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죄인 자신은 다른 죄인들을 위해 죗값을 치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17문 : 중보자는 왜 동시에 참 하나님이셔야 합니까?
답 : 중보자는 자신의 신성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무거운 짐을 자신의 인성에 짊어지고, 또한 우리를 위해 의와 생명을 얻어 우리에게 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18문 : 그렇다면 참 하나님이시며 또한 죄 없고 참 사람이신 중보자는 누구입니까?
답 :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완전하게 구원하시려고 또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의롭게 만드시려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19문 : 당신은 이 사실은 어디서 압니까?
답 : 거룩한 복음에서 압니다. 하나님은 이 복음을 맨 처음에 낙원에서 계시하셨습니다. 그 다음 거룩한 족장들과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이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또한 율법의 다양한 제사들과 의식들을 통해, 곧 여러 가지 모형들을 통해 하나님은 이 복음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랑하는 외아들을 통해 하나님은 이 복음을 성취하셨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우리의 죗값을 치를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다 영적인 빚을 지고 있는데, 우리 힘으로는 도무지 갚을 길이 없습니다. 다른 어떤 피조물도 대신해서 그 빚을 지불해줄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사람이 죗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고, 다른 어떤 피조물도 이러한 하나님의 무거운 진노의 짐을 우리 대신 짊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중보자가 되어 이 빚을 갚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참 사람이면서 완전히 의로워야 하고, 또한 참 하나님이셔야 한다고 가르쳐줍니다. 오늘은 바로 그 중보자가 왜 참 사람이면서 죄가 없어야 하고, 또 참 하나님이셔야 하는가 그 이유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배우고자 합니다.

 

1. 의로운 참 사람이어야 하는 이유

 

16문 : 우리의 중보자는 왜 참 사람이며, 또한 완전히 의로운 사람이어야만 합니까?
답 :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는 죄 지은 인간이 죗값을 치르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죄인 자신은 다른 죄인들을 위해 죗값을 치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답변의 첫 번째 문장을 영어판으로 보면 “The justice of God requires that the same human nature.”입니다. 직역하면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성을 지닌 존재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즉 중보자는 우리와 본성이 똑같은 완전한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중보자가 태어나는데,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해서 진짜 양으로 태어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보자가 천사로 태어나서도 안 됩니다. 천사가 우리보다 더 가치 있고 높으니깐 더 괜찮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천사는 하나님의 형상도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천사들은 구원 얻을 후사들을 섬기라고 보낸 하나님의 종들로서,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빼고 존재의 본질만 놓고 보면 우리보다도 좀 못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천사도 자격미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의 생명을 죗값으로 지불할 것을 요구하는데, 따라서 중보자는 반드시 참된 인간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 중에 중보자가 있을 수 있지 않느냐 할 수 있는데요...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생들은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다른 사람의 죗값을 지불할 자격이 없습니다. 자기 빚도 못 갚는 사람이 남의 빚 갚아주겠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사형수가 다른 동료 사형수를 위해서 내가 대신 죽겠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신용불량자인데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보증서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위에 사람이 그렇게 많아도 다 아담 안에서 부패한 상태로 태어난 자들이기 때문에 내 죗값을 대신 치러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중보자는 아담 안에 속하지 아니한 사람으로, 곧 둘째 아담으로 태어나야 하며 반드시 의로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동정녀 탄생을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분이 장차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고 하셨으니, 다윗의 계보의 한 가정에서 태어나야만 하는 것이고, 반면에 그는 또한 아담의 후손이 아닌 별다른 후손이 되어야 하므로 요셉과 마리아의 정상적인 성관계를 통해서 태어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아담의 원죄에 가담하지 아니한 하나의 새로운 수정란을 창조하셔서 마리아의 자궁에 착상시키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착상된 수정란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신성이 그 인성에 놀랍게 연합되어 있는 그런 존재인 것입니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오늘날에 대리모 출산의 경우처럼 어떤 부부가 임신이 되지 않을 때, 그 부부의 정자와 난자를 채취하여 수정시켜서 그 수정란을 그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하는 방법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가 태어났을 때, 겉으로 보면 이 아이는 대리모가 낳은 아이이지만, 그러나 그 본질은 자기 아이가 아닌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가 낳았으니 요셉과 마리아의 자식이 맞기는 맞는데, 또한 그는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동정녀 탄생을 통해 그는 요셉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다윗의 자손이라 칭함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에, 아담과는 별다른 사람으로서, 곧 둘째 아담으로 온전히 의로운 상태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에 연합된 존재로 태어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이 이 동정녀 탄생의 사실을 신화라고 주장하는데,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이것이 역사적 사실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와 전혀 상관이 없으셨고, 온전히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18)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참람죄를 범했기 때문에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실상은 의로운 자로서 죄인을 대신하는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21)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예수님을 마치 죄 덩어리로 그렇게 취급하신 것은 우리를 의 덩어리로 만드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죄 덩어리인 우리를 의 덩어리로 만들고 의 덩어리인 그분을 죄 덩어리로 만드셨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누가 우리에게 “당신은 의인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우리가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나는 의인이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할 때, 우리 머릿속에는 어제 지었던 죄, 오늘 아침에 지었던 죄가 다 떠올라서 스스로도 뻔뻔한 것 같고 낯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을 보면 우리는 얼굴이 붉힐 수밖에 없고, 당신이 의인이라는 말에 아무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입니까?”라고 물어볼 때 우리는 나를 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아멘”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2. 참 하나님이셔야 하는 이유

 

17문 : 중보자는 왜 동시에 참 하나님이셔야 합니까?
답 : 중보자는 자신의 신성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무거운 짐을 자신의 인성에 짊어지고, 또한 우리를 위해 의와 생명을 얻어 우리에게 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로 중보자는 참 하나님이셔야 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진노의 무거운 짐은 신성의 능력으로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죄 없고 의로운 참 사람이라 하여도 하나님이 아니라면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실 수가 없습니다. 두 가지 이유때문인데, 첫째로 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의 값어치밖에 못합니다. 다른 한 사람만 구원할 수 있을 뿐입니다. 모든 인생들의 죄 짐을 다 짊어지려면 신성의 무한한 능력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둘째로 설사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하여도, 예수님이 사람이기만 한다면,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사망의 형벌을 대신 당해야 하는데, 그 사망의 형벌은 죽임당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영원한 지옥형벌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를 유한한 인간이 한 번에 다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을 무한히 늘려서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신성의 무한한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이시면, 그 무한한 진노의 짐을 단번에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죽임 당하고 나서 또 다시 영원히 지옥형벌 받으실 필요 없이, 한번 죽으심으로 모든 죗값을 다 지불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보자는 참 사람이셔야 할뿐만 아니라 참 하나님이셔야 하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대답이 절묘하면서도 정확합니다. 하나님의 무거운 진노의 짐을 짊어지는 데는 신성의 능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면서도 그런데 그 짐을 신성이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성이 짊어진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잘 이해해야 합니다. 사망이나 고통, 형벌, 고난과 같은 것들은 신성에 내려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고난 받지도 아니하시고 죽으실 수도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성은 고난 받을 수 없습니다. 인성만이 고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인성으로는 모든 인생들의 죗값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직 신성만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신성과 인성이 신비하게 하나로 연합해 있는 한 인격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써 인성은 인성대로 고난을 받으셨을 뿐 아니라 신성은 신성대로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모든 인생들의 죗값을 다 치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죗값을 치르셔서 우리를 어떻게 구속하셨습니까? 예수님 자신이 우리의 죗값을 치르시기 위해 죽으시고 그리고 또한 부활하심으로써 본인이 먼저 의와 생명을 얻으시고, 그 얻으신 것을 자기와 연합한 모든 신자들에게 나눠주심으로써 우리를 구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얻으신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의미하는 바는 그분이 죽은 것이 자기 죄 때문이 아니라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는 대속을 위한 죽음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인증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곧 예수께서 의와 생명을 획득하시는 사건입니다.

 

“(16)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딤전 3:16)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비로소 의인이 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이 의인이시라는 사실이 부활을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얻은 의와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하나님이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게 하려 함이라” 라고 끝날 수 있는데, 더 나아가 “멸망치 않고 단 하루를 살 수 있게 하셨느니라.” 그렇게 하실 수도 있는데, 멸망치 않을 뿐만 아니라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빚만 잔뜩 졌는데, 탕감만 해준 것이 아니라 엄청난 사업자금을 주시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은혜주신 것입니다. 멸망의 죗값을 없이해 주신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영생을 또한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죽을 자리에서 건져주시는 은혜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면서 영원토록 생명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3. 유일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18문 : 그렇다면 참 하나님이시며 또한 죄 없고 참 사람이신 중보자는 누구입니까?
답 :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완전하게 구원하시려고 또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의롭게 만드시려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18문은 이제까지의 논의를 결론짓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참 중보자는 누구이신가? 하는 것에 대해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고 선언합니다. 우리를 완전히 구원하시고 의롭게 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것이 선물과 같이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다 선물로 주셨고, 우리에게 생명 주셔서 태어나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몸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셨으며, 재능 주시고, 직장도 주시고 자식도 주시고 단란한 가정도 꾸릴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단 하다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많은 선물들 가운데 가장 최고의 선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이 선물은 앞의 모든 것을 다 상쇄시킬만한 엄청난 선물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얻은 자는 비록 가난해도, 건강하지 못해도, 재능이 부족해도, 결혼 못해도 세상에서 가장 비천하고 비참해도 본인 자신은 예수님 때문에 이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복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최고의 선물이십니까? 그것은 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모든 죄를 사함받고 구원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이 선물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이 귀한 선물을 받은 우리의 마땅한 삶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보답이라는 말에 어패가 있지만 (그 은혜는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럴지라도 보잘 것 없지만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여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4. 거룩한 복음에서 이 사실을 깨닫는다.

 

19문 : 당신은 이 사실을 어디서 압니까?
답 : 거룩한 복음에서 압니다. 하나님은 이 복음을 맨 처음에 낙원에서 계시하셨습니다. 그 다음 거룩한 족장들과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이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또한 율법의 다양한 제사들과 의식들을 통해, 곧 여러 가지 모형들을 통해 하나님은 이 복음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랑하는 외아들을 통해 하나님은 이 복음을 성취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신다는 사실이 올레비아누스나 우르시누스와 같은 젊은 뛰어난 신학자들이 연구하고 발견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갖다가 거룩한 복음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의도적인 것입니다. 즉 이 성경전체가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자칫 잘못 생각하면 구약은 율법이요, 신약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구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라는 주제로 통일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나아오도록 신구약성경 전체가 율법을 가르치고 있고, 또한 그 율법은 복음 안에 있는 신자의 감사의 규범도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구약성경 전체가 복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이 범죄함으로 타락하자마자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계시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낙원에서 아담이 범죄하여 타락한 이야기와 하나님이 정죄하고 심판하시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거기보면, 그 일이 있은 후에 아담은 즉시로 여자의 이름을 “하와”라고 지었습니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창 3:20)

 

원래 하와의 이름은 “하와”가 아니라 “여자”였습니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창 2:23)

 

이 사람의 성이 곧 이 사람의 이름이었습니다. 아담이 낙원에 있는 동안 타락하기 전까지 그 여자를 어떻게 불렀겠습니까? “여자야”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아담의 이름도 독특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이라는 단어는 “사람”이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구약성경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 “인자야...”라고 하시는데, 그 인자가 바로 원어로 보면 “벤 아담”입니다. ‘벤’은 아들이고, ‘아담’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인데, 한글성경은 한자로 ‘인자(人子)’로 번역한 것입니다. 아담의 이름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와가 아담을 부를 때, “사람씨!” 그렇게 불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라는 단어를 고유명사로 보기 때문에 발음 나는 대로 아담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어쨌든 첫 사람의 이름이 사람이고, 첫 여자의 이름은 여자였는데, 아담이 범죄하여 타락한 후에 곧바로 이 여자의 이름을 ‘하와’로 바꾸었습니다. 이름을 바꿀 때는 그냥 심심해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어떤 중대한 사건이 있고 난 후에 특별한 의미를 담아서, 또는 자신의 간절한 바람이나 소망을 담아서 이름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담이 여자의 이름을 “하와”로 바꾸었는데, 이 하와라는 이름을 원어로 보면 그 의미가 바로 “생명”입니다. “생명을 주는 자... 모든 생명의 어미...”라는 뜻입니다.


지금 3장 전체가 저주와 정죄와 심판과 죽음의 이미지로 가득 차 있는 상황인데,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저 같으면 이제 우리는 죽었다는 의미로 그 여자의 이름을 “모트(죽음)”라고 하거나, 아니면 너 때문에 내가 죄를 범하고 말았다는 의미로 “하타트(죄)”라고 바꾸었을 텐데, 아담은 여자의 이름을 “너는 생명이다. 너는 생명을 주는 자다. 모든 산자의 어미가 될 것이다.”하는 의미로 ‘하와’라고 바꾸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은 “너는 죽을 것이다” 하는데 “아니에요 우리는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에요” 하고 반항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저주와 심판의 선언 속에 은혜와 복음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는데, 그것에 대한 믿음으로 아담은 여자의 이름을 생명으로 바꾼 것입니다.


창 3장 15절은 우리가 잘 아는 구절로서 원복음이라고 일컬어집니다.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여기 보면 뱀을 저주하시고 심판하시는데, 뱀의 후손을 말하시고 여자의 후손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깐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사람을 당장에 죽이시지 아니하시고, 결국 죽기는 하겠으나 자식을 낳고 기를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유예기간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시사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아담과 하와는 자식들을 낳고, 또 그 자식들이 자식들을 낳아서 이 세상에 어떤 역사가 진행될 것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역사는 매우 희망적인 역사입니다. 뱀과 여자가 원수가 되고, 그 후손도 서로 원수가 되어서 치열하게 싸우고 갈등하고 반목하는 사이가 되는데, 이 뱀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을 괴롭히겠으나, 결국에는 뱀의 후손이 박살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뱀의 후손인 적그리스도와의 전투를 예언하는 것이며,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셔서 모든 인생들을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실 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아담은 바로 이 사실을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망 가운데 여자의 이름을 하와로 바꾼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한 참 세월이 흘러야 오실 것을 몰랐기 때문에 900년 동안이나 그는 이 여자의 후손이 오시기만을 기다렸지만, 결국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 그 기다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약속의 말씀은 시대가 가면서 점차로 분명해지고 구체적으로 주어졌습니다. 족장의 때에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보다 분명하게 계시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도 씨는 단수인데,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아브라함을 믿었고, 그 믿음으로 그는 의롭다 함을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 시대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복음이 계시되는데, 모세가 “장차 나와 같은 한 선지자가 오실 것이다...”라고 하는 직접적인 예언의 말씀뿐만 아니라, 모세 율법에서 명하는 모든 계명과 의식, 성막, 제사장, 희생 제사의식들 모두가 바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희생 제사의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죄 지인은 본인이 죽어야 될 텐데 누가 죽습니까? 집에서 고이 기른 짐승이 대신 죽는 것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그렇게 동물 희생 제사를 드리면서 바로 장차 오실 메시아가 나를 위해서 죽으시겠구나 하는 것을 바라보았고, 바로 그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동물의 피가 그들의 죄를 사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다 분명하게 계시하셨고, 선지자들도 바로 이러한 다윗 왕과 같은 메시아가 여호와의 날에 임할 것이라고 줄기차게 예언하였습니다. 성경 어디를 보더라도 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아래와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그렇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속하시고 의와 생명을 허락해주셨다는 그 놀라운 복음의 사실을 우리는 신구약 전체에서 발견합니다. 이 복음의 사실이 우리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 명석한 신학자가 발견한 것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임을 우리는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경을 부지런히 배워서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배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배우는데 힘써서 이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깨달아가고, 그리하여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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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9-10주(26문,27문,28문)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다 file 26-28문 최상범 5032
9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8주(24문,25문) - 삼위일체 하나님 file 24-25문 최상범 5816
8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7주(20문,21문,22문,23문) -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 file 20-23문 최상범 5807
»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제6주(16문,17문,18문,19문) - 유일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file 16-19문 최상범 4968
6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제5주(12문,13문,14문,15문) - 우리의 중보자 file 12-15문 최상범 5506
5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설 제4주(9문,10문,11문) -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file 9-11문 최상범 4949
4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강설 제3주(6문,7문,8문) - 사람의 원죄 file 6-8문 최상범 5077
3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제2주(3문,4문,5문) - 율법 앞에서 죄인된 우리 file 3-5문 최상범 5144
2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제1주(1문,2문) - 생사간의 유일한 위로 file 1~2문 최상범 7588
1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서론 file 서론 최상범 8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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