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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80-82문
문답내용 80문 : 주의 만찬과 로마 교회의 미사는 어떻게 다릅니까?
답 : 주의 만찬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그리스도가 몸소 십자가 위에서 드리신 단 한 번의 제사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는 완전히 용서받았습니다. 또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리스도는 자신의 참된 몸을 지니시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의 경배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미사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만약 미사를 드리는 사제들에 의해 그리스도가 지금도 날마다 산자와 죽은 자를 위해 희생제물로 드려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죄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떡과 포도주의 형체 속에 몸으로 존재하시므로 떡과 포도주 속에서 경배를 받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사는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 번에 드리신 제사와 고난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사는 저주받을 우상숭배입니다.

81문 : 누가 주의 상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답 :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에 대해 슬퍼하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고, 또한 자신에게 남아있는 연약함까지도 다 덮어주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이 더욱 굳세어져서 보다 더 거룩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참여할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자와 외식하는 자들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자기에게 내릴 하나님의 심판을 스스로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82문 : 자신의 고백과 생활에서 믿지 않음과 경건치 않음을 드러내는 자에게도 이 성찬이 허용됩니까?
답 :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언약이 더럽혀져서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회중에게 내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의 교회는 천국의 열쇠를 사용하여 그러한 자들이 생활을 돌이킬 때까지 성찬에서 제외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강설날짜 2014-05-18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0주(80-82문)


성찬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면


요절 : 고전 11:27-34


80문 : 주의 만찬과 로마 교회의 미사는 어떻게 다릅니까?
답 : 주의 만찬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그리스도가 몸소 십자가 위에서 드리신 단 한 번의 제사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는 완전히 용서받았습니다. 또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리스도는 자신의 참된 몸을 지니시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의 경배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미사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만약 미사를 드리는 사제들에 의해 그리스도가 지금도 날마다 산자와 죽은 자를 위해 희생제물로 드려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죄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떡과 포도주의 형체 속에 몸으로 존재하시므로 떡과 포도주 속에서 경배를 받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사는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 번에 드리신 제사와 고난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사는 저주받을 우상숭배입니다.


81문 : 누가 주의 상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답 :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에 대해 슬퍼하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고, 또한 자신에게 남아있는 연약함까지도 다 덮어주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이 더욱 굳세어져서 보다 더 거룩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참여할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자와 외식하는 자들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자기에게 내릴 하나님의 심판을 스스로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82문 : 자신의 고백과 생활에서 믿지 않음과 경건치 않음을 드러내는 자에게도 이 성찬이 허용됩니까?
답 :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언약이 더럽혀져서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회중에게 내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의 교회는 천국의 열쇠를 사용하여 그러한 자들이 생활을 돌이킬 때까지 성찬에서 제외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1. 식사냐 제사냐


80문 : 주의 만찬과 로마 교회의 미사는 어떻게 다릅니까?
답 : 주의 만찬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그리스도가 몸소 십자가 위에서 드리신 단 한 번의 제사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는 완전히 용서받았습니다. 또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리스도는 자신의 참된 몸을 지니시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의 경배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미사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만약 미사를 드리는 사제들에 의해 그리스도가 지금도 날마다 산자와 죽은 자를 위해 희생제물로 드려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죄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떡과 포도주의 형체 속에 몸으로 존재하시므로 떡과 포도주 속에서 경배를 받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사는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 번에 드리신 제사와 고난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사는 저주받을 우상숭배입니다.


80문은 로마가톨릭의 미사를 비판하는 문답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로마가톨릭의 미사는 가공할만한 우상숭배인데, 그것은 두 가지 점에서 심각하게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화체설의 관점에서 성찬식을 행하다 보니깐, 떡 자체를 숭배하고 포도주 자체를 숭배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리스도께서 떡 안에 계신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시며, 하늘에서 우리의 예배와 경배를 받으신다고 가르칩니다.


둘째, 로마가톨릭은 예배를 제사의 방식으로 드리는데, 이것이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제사이기 때문에 예배를 예배라 하지 않고 미사라고 합니다. 원래 이 ‘미사’라는 말은 라틴어로서, “끝났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예배가 끝나고 성찬을 행할 때, 불신자들은 뒤로 가든지 예배당 밖으로 나가든지 하는데, 그때 목사가 하는 말이 “이테 미사 에스트”입니다. 해석하면 “끝났습니다. 돌아가십시오.”라는 뜻입니다. 즉 이제 성찬식을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 미사가 성찬식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성찬식을 희생제사로 행해야 한다고 로마가톨릭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마치 구약의 백성들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그분을 예표하는 동물의 희생제사를 드림으로 예배를 드렸듯이, 이제 신약의 성도들은 2000년 전에 이미 이 땅에 오셔서 영단번이 희생제사를 통해 구속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거꾸로 바라보면서 그 구속의 적용을 위해서 십자가 희생제사를 재현함을 통해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입장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성찬식은 제사가 아니라 식사입니다. 그래서 “주의 만찬”이라고 말합니다. 성찬상은 주님과 교제 나누는 식탁입니다. 그런데 로마가톨릭은 이 성찬상을 식탁이 아닌 제단(번제단)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속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시는 것이고, 신부는 제사장이 되며, 제사장이니깐 거룩한 가운을 걸쳐야 하는 것이고, 제단에서 향을 피우며 하나님께 제사 드림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켜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또 그 희생당하신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제사의식으로서 성찬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제사냐 식사냐 하는 차이는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느냐 하는 것에 대한 차이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암만 우리를 위해 죽어주셨어도 우리에게 그 구속이 적용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공로가 우리 안에 적용되어야만, 우리가 죄사함과 의롭다 함의 은혜와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적용됩니까? 여기에 로마가톨릭과 우리와의 분명한 입장차이가 있는데, 우리 입장은 성령께서 말씀과 기도와 성찬을 수단으로 사용하셔서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키시고, 그 믿음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하신다고 믿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2000년 전의 예수님의 영단번의 십자가 사건에 연합되어서, 그분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고 그분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어서 우리가 그 구속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번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했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이제는 날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채로 살아감으로서 십자가의 은혜를 반복적으로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가톨릭은 그 반대입니다. 우리가 2000년 전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연합하는 것이 아니라,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지금 이 희생제사로 드리는 성찬식에 오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 미사를 드리는 이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시고 하나님께 바쳐지시고 또 거기서 실제로 자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먹여 2000년 전에 이루신 그리스도의 구속을 적용해주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죽으심이 매주 미사를 통해 재현되고 반복되어 그 구속의 은혜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오해하면 안 됩니다. 로마가톨릭도 그리스도께서 단번의 죽으심으로 구원을 완성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미사에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로마가톨릭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의 은혜와 공덕에 어떻게 참여할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하여 바로 성찬식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이 현실화된다고 말할 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 영원히 십자가에 위에서 드리신 희생 제사는 언제나 현재적인 것으로 존속한다.” (가톨릭 교리서 1364항목)


영단번의 죽음을 고백하는데, 그 십자가 희생제사가 우리에게 적용되기 위해 지금 현재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뭐라고 말합니까?


답 : ... 만약 미사를 드리는 사제들에 의해 그리스도가 지금도 날마다 산자와 죽은 자를 위해 희생제물로 드려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죄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정말 이렇게 주장합니까?” 로마가톨릭 신부들한테 물어보면 그들은 이를 극구 부인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 그러면 칼빈이나 종교개혁자들이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로마가톨릭의 교리를 오해한 거네. 이 교리문답은 잘못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들의 말에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 순진한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많은 경우 이렇게 생각해서 이 80문을 삭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는 일부분을 괄호처리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교단에서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각주로 설명을 넣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는 아예 로마가톨릭과 화해하기 위해서 80문을 삭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003년에 미국의 CRC교단은 로마가톨릭과 함께 하기 위해서 신학자들과 3년간 신학회의를 하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0문항을 삭제시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 80문답은 참으로 사연이 많은 문답입니다. 특히 80문의 마지막 문장은 초판에는 없었던 것인데 나중에 추가된 것입니다.


답 : ... 따라서 미사는 저주받을 우상숭배입니다.


이 문장은 아마도 프리드리히 3세가 삽입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은 그 당시 로마가톨릭이 트렌트 종교회의를 통해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말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선언했는데, 그것에 대한 반발로 프리드리히 3세가 “로마가톨릭이야 말로 저주받을 우상숭배집단이다.”하고서 반발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역사적인 상황에 매여서 감정적으로 반응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문구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문구입니다. 로마가톨릭이 점점 힘과 권력을 얻어가던 때에 프리드리히 3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목숨을 내건 대단한 용기입니다. 성경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했기에 이런 대단한 선언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는 미사가 정말 가공할만한 우상숭배임을 절실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절대로 미사에 참석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뜯어 말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로마가톨릭 미사에 참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거룩하고 경건하며 신비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미사는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우상숭배에 불과합니다.


로마가톨릭은 그리스도의 영단번의 희생을 인정하면서 단순히 적용을 위한 십자가 희생제사의 현재화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칼빈이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영단번의 십자가 사건을 부정해버리는 결과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정말 지금 행해지는 미사를 통해 예수님이 지금 희생당하셔서 이 떡이 주님의 희생당한 실제 몸이고 이 잔이 주님의 희생당한 실제 피가 되어서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로 제단에서 하나님께 바쳐지고, 또 그 살과 피를 우리가 실제로 먹어서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는다고 할 때, 그들의 마음속에는 2000년 전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별로 생각나지 않고, 지금 현재 드려지는 이 희생제사가 중요하고, 또 이 희생제사에 드려지는 진짜 주님의 몸과 진짜 주님의 피가 나에게 영생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2000년 전의 십자가 사건이 아닌 지금 드리는 미사에 집착하게 되고, 참 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에게 목을 매는 대신 이 미사를 집례 하는 사제에 목을 매게 됩니다. 그들은 매주 미사를 드리는 것을 통해 그리스도의 희생의 죽음이 생생하게 현재화되기 때문에 더욱 감격적이고 은혜가 클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영단번의 희생제사의 효력을 은연중에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재적으로 반복된다는 말은 효력이 없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1)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2)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3)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4)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 10:1-4)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미사는 그리스도께서 단 한번 참으로 죽으셨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완전하고 충족한 구원을 이룬다는 것을 은연중에 잊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미사는 결국 부활하시어 영광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이 땅에 다시 끌어 내려서 반복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매우 신성모독적인 행사입니다. 십자가 죽음이 지금 현재화되니깐 더 은혜로울 것 같은데 실상은 신성모독적인 저주받을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은혜롭기를 바라다가 망하는 수가 있습니다. 내 생각에 이렇게 하면 더 은혜롭고 더 효과적이고 더 좋을 것 같다고 했다가 망하는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효과를 이야기하기 전에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잘 분별해서 무엇이든지 성경적으로 바르게 가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따라서 바르게 성찬식에 참여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늘에 계시며, 자신의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성찬식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임재 가운데 성찬식을 행함으로 우리가 2000년 전의 영단번의 그 십자가 사건과 연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우리가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임재설의 핵심입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가 성경을 배우고 묵상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예를 들어 여호수아를 읽고 있는데 성령이 역사하시면 여호수아가 전쟁을 하는 것인데, 그 전쟁에서 내가 실제로 싸우고 있는 것처럼 착각할 만큼 성령께서 그것을 현실감 있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읽고 배우면서 가슴이 뜨거워지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하고, 성경의 인물이 죄를 지을 때 마치 그것이 내가 지은 죄처럼 느껴지고, 또 예수님께서 많은 죄인들과 병자들에게 하신 말씀과 사역들이 곧 나에게 하신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성경말씀에 있는 그 사건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내가 연합되어지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임재하시면 성경말씀이 그냥 객관적인 어떤 이야기나 정보가 아니라, 참으로 나에게 일어난 나의 사건이 되는 것이고, 거기서 치료와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죽어있는 문자가 아니라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는 권능의 말씀입니다.


성찬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성찬식 사건은 워낙 2000년 전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행하신 의식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찬식을 행할 때 성령이 임재하시면, 우리가 마치 2000년 전에 12제자들과 함께 그 자리에 같이 있어서 주님으로부터 떡을 받고 잔을 받아먹고 마시는 것처럼... 그렇게 2000년이라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내가 그 사건에 연합되어지는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우리가 2000년 전의 십자가 사건과 연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처럼 주님의 죽으심이 나의 죽음이고 주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라는 이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참된 주님과의 교제, 연합, 회개와 새롭게 됨 등등 모든 영적인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의 임재가 없이 성찬식을 행하면 그 성찬식은 하나의 예식에 불과하게 됩니다. 성찬식뿐만 아니라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임재가 없으면 예배를 드리면서도 차갑고 냉냉합니다. 감격이 없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지식을 쌓고 정보를 축적하는데 그칩니다. 그것이 교회의 타락이고, 교회의 로마가톨릭화입니다. 우리가 예배 가운데, 그리고 성찬식 가운데에서 이 그리스도의 임재를 체험해야 합니다. 이 은혜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2. 성찬에 참여하는 자세


우리가 성찬을 생각하면서 참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것이 주님과 교제 나누는 식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제에 초점이 있지, 떡과 포도주라는 요소에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영적 임재설은 그리스도께서 떡과 포도주에 영적으로 임재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 떡과 포도주를 믿음으로 먹고 마시는 신자의 마음속에 임재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과의 연합, 주님과의 교제에 초점을 둡니다.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식사임을 분명히 생각하며 성찬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런데 김헌수 목사님은 이 성찬식이 지금 주님과 교제 나누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장차 재림하여 오셔서 그분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서 온전한 식사를 할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면서 참여하는 의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도 먹고 마시는 식사가 포인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결혼식하면 1시간 후딱 하고 밥 먹고 끝나지만, 유대인들은 1주일 내내 먹고 마시는 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성찬은 바로 장차 주님의 재림 때에 있을 어린양의 혼인잔치에서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실 날을 기대하며 참석하는 의식입니다. 그래서 성찬은 주의 죽으심을 주님이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죠. 재림에 대한 소망이 성찬식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주님과의 식사, 그리고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기대하는 성찬에는 아무나 참여할 수 없습니다.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는 초청을 받은 사람이 참여하는 것이고,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쫓겨납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주권적으로 택하셔서 강권 하여 데려다놓은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예복을 입은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즉 참 신자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참 신자라고 하더라도 합당한 자세와 믿음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자기 죄를 먹고 마시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합당한 자세와 믿음이 없다면 참된 신자라도 참여하면 안 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찬 앞에서의 합당한 자세와 믿음이 무엇인지 세 가지를 말합니다.


81문 : 누가 주의 상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답 :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에 대해 슬퍼하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고, 또한 자신에게 남아있는 연약함까지도 다 덮어주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이 더욱 굳세어져서 보다 더 거룩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참여할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자와 외식하는 자들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자기에게 내릴 하나님의 심판을 스스로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1)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에 대해 슬퍼하는 자


답 :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에 대해 슬퍼하지만...


성찬예식을 할 때마다 목회자가 “이러이러한 사람은 성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목회자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말하다 보면 “한주동안 불경건하게 살고, 한주동안 하나님 앞에 부끄럽게 산 사람은 성찬식에 참여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성찬예식에 참여해야 할 대상이 한주동안 정말 불경건하게 산 사람이고, 한주동안 정말 부끄럽게 산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로 인해서 슬퍼하는 사람이 성찬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건강한 자에게는 병원이 쓸데없다고 말씀하신 것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신 것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기 잘난 맛에 산 바리새인의 기도는 듣지 않으시고 가슴을 치며 회개한 공인된 죄인 세리의 기도를 들으셨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바로 죄인들을 위한 식사의 자리입니다. 물론 이것이 성찬예식에 참여하기 위해 일부러 불경건하고 부끄럽게 살아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참으로 경건하고 의롭게 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아무리 거룩한 신자라 하더라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늘 회개하며 사는 것이고, 따라서 성찬식도 그러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너무 비참한 죄인이라는 생각이 듭니까? 그럴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이 성찬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반대로 이런 죄의식이 없이 무덤덤한 마음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성찬에서 배제되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것이 바리새인의 마음이고, 외식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끝문장을 보면...


답 :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자와 외식하는 자들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자기에게 내릴 하나님의 심판을 스스로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외식을 행하는 자는 성찬에 참여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외식은 예수님이 가장 혐오했던 단어로서 원래 뜻은 ‘연극하다’입니다. 속은 썩었으면서 겉은 그럴싸하게 꾸미는 것입니다. 여기에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말 자기가 심각한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자각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고, 또는 자기가 더러운 죄인인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명예가 깎기는 것이 싫어서 안 그런 척 하면서 사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외식이란 자신의 죄와 비참함에 대해서 애통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성찬에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이런 마음으로 성찬식에 참여합니까? 그것은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이고, 자기 죄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찬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표현에 주의해야 합니다. 자기 죄에 대해서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죄를 인해서 자기 자신을 슬퍼하는 것입니다. 몇 가지 범한 죄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즉 죄의 이파리를 보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죄를 지은 자신의 죄의 뿌리를 보고 자기 자신을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저히 자기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형편없는 존재인가 하는 것을 자각하면서 그리스도의 은혜와 긍휼을 바라면서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는 자세


답 : ...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고, 또한 자신에게 남아있는 연약함까지도 다 덮어주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자신의 무능함에 대해서 철저히 자각하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신뢰하는 믿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단지 자기 죄를 인해 슬퍼해서 결국 좌절하기만 하고 절망하고 있다면 그것은 합당한 마음이 아닙니다. 무조건 절망만 하고 있는 것은 교만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믿지 않는 교만입니다. 십자가의 공로가 능히 자신의 모든 죄를 다 커버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남아있는 연약함까지도 다 덮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슬퍼하되 절망만 하지 말고 고개를 들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에 보여주신 긍휼과 자비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수많은 죄인들과 병자들을 어떻게 영접해주시고 용서해주시고 섬겨주셨습니까? 그리고 어떠한 죽음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해주셨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주님의 사랑과 긍휼에 대해서 의심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나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심으로 모든 죄를 사해주셨다는 것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자신이 지금 죄로 비참하더라도 긍휼을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면 그분이 변함없는 사랑으로 나를 받아주시고 나를 용서해주시며 다시금 고쳐주실 것임을 믿음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3) 회개하고자 하는 자


답 : ... 그리고 자신의 믿음이 더욱 굳세어져서 보다 더 거룩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참여할 것입니다. ...


세 번째로 회개의 마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회개한 자만 참여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회개하고 싶은데 회개가 안 되어서, 그것을 애통해 하면서, 그 문제를 주님께 들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은혜를 구하면서 성찬에 참여하면 주님이 은혜를 쏟아 부어 주십니다. 그래서 회개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키셔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새 힘을 주십니다. 바로 이것을 기대하며 성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대나 마음 없이 계속 죄를 사랑하고 고집하겠다는 마음이 딱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은 성찬에 참여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답 : ...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자와 외식하는 자들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자기에게 내릴 하나님의 심판을 스스로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즉 회개할 마음이 없는 자, 그 죄에서 돌이킬 마음 없고 강퍅해진 사람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 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저 사람이 너무 미워. 그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 버릴 수 없어. 언젠가는 복수할거야.”라는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을 회개할 생각이 없는 사람은 성찬에 참여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3.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면


그러면 만일 그런 사람들, 곧 회개하지 않는 자와 외식하는 자들이 성찬에 참여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82문을 보십시오.


82문 : 자신의 고백과 생활에서 믿지 않음과 경건치 않음을 드러내는 자에게도 이 성찬이 허용됩니까?
답 :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언약이 더럽혀져서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회중에게 내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의 교회는 천국의 열쇠를 사용하여 그러한 자들이 생활을 돌이킬 때까지 성찬에서 제외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82문의 질문에서 믿지 않는 자와 경건치 않음을 드러내는 자는 믿음이 연약한 자, 불경건한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회개하지 않는 자와 외식하는 자를 말하는 것으로서 죄를 고집하면서 회개할 마음이 없는 자를 말합니다. 이렇게 회개하지 않고 불신과 불경건을 고집하고 지속하게 될 때에, 그 사람은 마음으로 또는 은밀하게 죄를 짓는 수준에서 벗어나 말과 행위에서 파괴적으로 죄를 짓게 되는 데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형제들이 그것을 보고 그 사람이 회개할 때까지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권징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만일 그런 사람들이 성찬에 참여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온 회중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점령했을 때, 아간 한 사람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전리품의 일부를 챙겼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의 범죄에 대해 아간만 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하셔서 그들로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교회를 하나로 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이 그렇지 않습니까? 손이 도둑질을 하면, 손에게 벌주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이 벌을 받습니다. 엉덩이가 매를 맞고, 머리에 꿀밤을 맞으며, 뺨을 맞기도 합니다. 비싼 것을 훔쳤을 때는, 감옥에 가서 온 몸이 고생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를 하나로 보시기 때문에 온 교회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징계하십니까?


“(27)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28)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29)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고전 11:27-30)


몇몇 사람을 병들게 하시고, 또 죽게 하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분쟁하면서 그리고 빈부차별하면서 성찬식을 행했을 때 하나님이 그렇게 무섭게 징계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은혜인 것은 그것이 심판이 아니라 징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뒤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교회에 그렇게 무섭게 징계하신 것은 교회로 하여금 회개케 하기 위하여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이 은혜인데 중요한 것은 애초에 온 성도들이 성찬에 합당하게 참여하도록 하여서 이런 징계를 안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일로 쓸데없이 하나님의 매를 벌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어떤 처방을 내립니까?


“(33)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34)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고전 11:33-34)


이 말씀에 기초해서 우리는 온 교회가 합당치 않게 성찬에 참여하는 일이 없도록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성찬식에서의 문제는 분쟁과 빈부차별이었습니다. 옛날에는 성찬과 애찬이 함께 이루어졌는데, 먼저 온 부자들이 성찬을 다 갖다 먹어버리고 늦게 온 가난한 노예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었던 것입니다. 거룩한 성찬식을 그냥 식사정도로 생각하고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때문에 사도바울은 이런 일들이 애초에 생기지 않도록 미리 식사하고 성찬식하든지, 아니면 성찬식하고 식사를 하든지 조치를 취하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은 사도바울의 지시가 아니라 주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즉 사도바울이 주님으로부터 직통계시를 받아 성찬과 애찬을 분리하도록 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기초해서 성찬과 애찬이 서서히 분리되기 시작했을 것이고, 또 분리하면서 합당치 않는 자들은 성찬에서 배제하는 권징을 행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은 분별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합당치 않게 먹을 위험이 높으므로 성인이 되어서 자의식을 가지고서 스스로 주의 몸을 분변할 수 있을 때까지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정했습니다. 그리고 목회자의 지도가 없는 곳에서는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실 위험이 높기 때문에 목회자가 없는 곳에서는 성찬식을 행하지 못하도록 정하였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성찬식을 무겁게 생각하고 합당하게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방안들과 규칙들을 하나하나 정하여 놓았는데, 우리가 이것을 무조건 무시할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잘 생각해서 교회의 전통을 잘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회개치 아니하는 자와 외식하는 자에 대해서는 교회가 그들에게 수찬정지의 권징을 행함으로 온 교회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성찬에 참여하게 하고 또 배제하게 할 수 있는 권세를 교회에게 주셨는데, 그것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천국열쇠’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것은 교회에 주신 권징의 권세를 말하는 것인데, 다음 주에 자세하게 배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수찬정지 시키는 목적이 그 사람을 잘라내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으로 회개케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회개하면 즉각 받아들여 성찬에 참여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성찬의 의미를 잘 생각하면서 성찬에 두렵고 떨림을 참여해야 합니다. 그냥 마음의 준비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참석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성찬식 하기 전에 하루 금식하는 것이 필요하고, 심방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자기를 잘 살피고 또 온 교회를 잘 살펴서 온 교회가 합당하게 성찬에 참여하여 놀라운 은혜를 받아 누리는 우리 한결교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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