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2014.06.11 11:0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1주(83문,84문) - 천국열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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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83-84문
문답내용 83문 : 천국의 열쇠는 무엇입니까?
답 : 거룩한 복음의 강설과 회개로 이끄는 교회의 권징인데, 이 두 가지를 통하여 믿는 자에게는 천국이 열리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닫힙니다.

84문 : 거룩한 복음의 강설을 통하여 어떻게 천국이 열리고 닫힙니까?
답 :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서 교회가 복음의 약속을 참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당신들의 모든 죄를 참으로 용서하신다”라고 공적으로 선포하고 증거할 때 천국이 그들에게 열립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교회가 모든 불신자들과 위선자들에게 “당신들이 회개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정죄가 당신들에게 머물러 있을 것이다”라고 공적으로 선포하고 증거할 때 천국이 그들에게 닫힙니다. 이러한 복음의 증거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와 장차 올 세상에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강설날짜 2014-05-25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1주(83-84문)


천국열쇠(1)


말씀 : 마 16:18-19


83문 : 천국의 열쇠는 무엇입니까?
답 : 거룩한 복음의 강설과 회개로 이끄는 교회의 권징인데, 이 두 가지를 통하여 믿는 자에게는 천국이 열리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닫힙니다.


84문 : 거룩한 복음의 강설을 통하여 어떻게 천국이 열리고 닫힙니까?
답 :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서 교회가 복음의 약속을 참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당신들의 모든 죄를 참으로 용서하신다”라고 공적으로 선포하고 증거할 때 천국이 그들에게 열립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교회가 모든 불신자들과 위선자들에게 “당신들이 회개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정죄가 당신들에게 머물러 있을 것이다”라고 공적으로 선포하고 증거할 때 천국이 그들에게 닫힙니다. 이러한 복음의 증거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와 장차 올 세상에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오늘은 천국열쇠에 대해서 배워보겠습니다. 사실 요즘에는 교회에서 천국열쇠에 대해서 잘 가르치지도 않고 또 익숙하지도 않기 때문에 누군가가 천국열쇠를 이야기하면 “어? 저 사람 로마가톨릭 아니야?” 이런 느낌이 들 정도로 우리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 ‘천국열쇠’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9)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 16:18-19)


여기서 ‘천국열쇠’라는 말 자체가 의미하는 것은 천국에는 입구가 있고, 그 입구에는 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문이 평소에는 자물쇠로 잠겨 있는데, 천국열쇠로 그 문을 열어야만 사람이 그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쇠란 열기 위해서만 쓰는 것이 아니죠. 잠가서 못 들어가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천국에 못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 자물쇠로 잠그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열쇠입니다.


그런데 이 천국열쇠를 누가 가지고 계십니까? 천국의 왕이신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원하는 자에게는 문을 열어주시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자들은 못 들어오도록 문을 닫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열쇠를 누구한테 주십니까? 베드로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 혼자에게만 주셔서 그로 교회의 교황을 삼으신 것이 아닙니다. 로마가톨릭은 이 구절을 크게 오해했습니다. 베드로는 12사도의 대표로서 그리고 온 교회의 대표로서 받은 것입니다. 즉 이 천국열쇠를 온 교회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매고 푼다는 것은 신발 끈을 매고 푸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자물쇠를 매고 푸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천국 문을 잠그면 아무도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이고, 반대로 교회가 천국열쇠로 자물쇠를 풀면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교회가 그러한 천국의 열쇠를 가졌으니, 교회가 자기 마음대로 천국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제 예수님은 열쇠를 교회에 주고 자기는 열쇠가 없기 때문에 뒷짐 지고 계신다는 말입니까? 그 말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가지고 계신 것인데, 교회가 그의 몸이 되었기 때문에 그분의 모든 권세에 교회가 참여하는 것입니다. 몸은 머리의 통치를 받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자기 마음대로 열고 닫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문을 열기도 하고 문을 닫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사실상 예수님이 천국열쇠를 가지고 열고 닫고 하시는 것이고 교회는 그 일에 도구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가 가진 권세가 엄청납니다. 아무리 작은 개척교회라도 절대로 무시할 수 없습니다. 두 세 명의 교회라도 그 교회는 천국열쇠의 권세를 가진 교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서 천국 문을 닫아버리면 그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자가 없는 것이고, 또 반대로 교회가 문을 열어주어서 들어가기를 허락하는 자는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교회의 허락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면 교회에 주신 이 천국열쇠가 실제로 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실행됩니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이에 대해 두 가지를 말합니다.


83문 : 천국의 열쇠는 무엇입니까?
답 : 거룩한 복음의 강설과 회개로 이끄는 교회의 권징인데, 이 두 가지를 통하여 믿는 자에게는 천국이 열리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닫힙니다.


천국열쇠는 두 가지, 곧 거룩한 복음의 강설과 회개로 이끄는 권징입니다. 거룩한 복음의 강설이 어떻게 천국열쇠의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84문이 가르치고 있고, 권징이 어떻게 천국열쇠의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85문이 가르칩니다. 사실 거룩한 복음의 강설과 권징은 두부 자르듯이 잘라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복음의 강설도 권징의 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권징하면 벌주고 수찬정지 시키고 출교시키고 이런 것만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주 좁은 의미의 권징이고, 사실은 엄밀히 의미에서 거룩한 복음의 강설도 권징에 포함되는 것이고, 그 외에도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계하고 책망하는 모든 행위가 다 권징 안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단설교도 일종의 권징이기 때문에 강단설교를 통해서 끊임없이 우리의 부족함과 죄악에 관해서 지적을 받고 고침을 받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목회자가 설교를 할 때 항상 사람들 듣기 좋은 말 한다면 그것은 설교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도외시하는 것입니다. 강단설교에서 “할렐루야! 하나님이 여러분 사랑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축복하여주실 줄 믿습니다. 건강하게 될 줄 믿습니다. 사업 잘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입이 귀에까지 찢어져서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하며 설교를 통해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헛된 위로입니다. 그것은 마치 상처가 점점 썩고 문드러지고 있는데 계속 모르핀 주사만 주어서 고통스럽지 않게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하~! 좋다. 좋다.” 하는데 사실은 전부다 망하는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강단설교에 위로하고 격려하는 요소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위로뿐만 아니라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왜, 어떻게 멀어졌는지를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풀어서 여러분을 책망하고 여러분의 잘못을 지적해서,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가 회복되도록 하는 권징의 요소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의 중요한 부분이 바로 죄에 대한 책망입니다. 그런데 목회자들이 설교할 때마다 느끼는 딜레마가 무엇이냐 하면, 죄를 책망해야 하는데, 그냥 두루뭉술하게 책망하면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다 보면 소위 까는 설교처럼 들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시험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설교할 때 참으로 지혜가 필요합니다. 성령의 지혜를 따라서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도 까는 것 같지 않게 설교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목회자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 편에서 까는 설교처럼 들릴 수가 있는데, 그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느냐 하면... “아... 목사님이 지금 나의 죄를 온 성도 앞에서 까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기분나빠할 것이 아니라, “아... 주님께서 이 설교자를 통해서 나를 지금 권징하시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복음의 강설이 단순히 사람의 교훈의 말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받들어 시행하는 천국열쇠라는 엄중하고 위중한 상황을 잘 인식하면서 주님의 책망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생각해보십시다. 먼저 거룩한 복음의 강설이 어떻게 천국의 열쇠 역할을 합니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4문을 보시면...


84문 : 거룩한 복음의 강설을 통하여 어떻게 천국이 열리고 닫힙니까?
답 :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서 교회가 복음의 약속을 참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당신들의 모든 죄를 참으로 용서하신다”라고 공적으로 선포하고 증거할 때 천국이 그들에게 열립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교회가 모든 불신자들과 위선자들에게 “당신들이 회개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정죄가 당신들에게 머물러 있을 것이다”라고 공적으로 선포하고 증거할 때 천국이 그들에게 닫힙니다. 이러한 복음의 증거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와 장차 올 세상에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질문의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84문은 “천국이 열리고 닫힙니까?”라고 되어 있고, 85문은 “천국이 닫히고 열립니까?”라고 되어 있습니다. 순서가 다르게 되어 있는데, 그냥 아무의미 없이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복음의 강설의 역할과 권징의 역할이 같은 천국열쇠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복음의 강설이 어떻게 천국열쇠 역할을 합니까? 일단 열어놓고 시작하는 것이죠. 교회 문을 활짝 열어놓고 다 초청해서 복음의 약속을 그들에게 선언하고 초청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주셔서 여러분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그 복음의 강설에 대한 반응으로 이제 각자의 운명이 갈립니다. 그 복음의 약속을 참되게 믿고 받아들인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 사람을 받아들이고 천국 문을 닫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사람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영원한 천국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의 문이 열렸을 때 믿음으로 건넜습니다. 건넌 다음에는 하나님이 홍해의 문을 다시 어떻게 하십니까? 닫으셔서 그들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한번 택하심을 받은 자는 절대로 타락할 수가 없습니다. 열어서 천국 안으로 들여보낸 다음에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똑같은 원리가 반대로 안 믿는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먼저 열어놓고 시작하지만, 그 사람이 안 믿으면 그대로 천국 문이 닫히는 것입니다.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이죠. 이렇게 복음의 강설은 열고나서 그 이후에 닫는 것입니다. 그러나 권징은 무엇입니까? 일단 닫아놓고 나중에 여는 것입니다. 수찬정치나 출교는 “당신은 이제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소. 교회 밖으로 나가시오...” 하면서 천국 문을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닫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닫힘을 통해 이 사람이 자기 죄를 깨닫고,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비로소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면 교회는 다시 문을 열어주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죠. 그래서 권징은 닫고 여는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의 차이를 유념해야 합니다. 다시 84문을 보시면...


답 :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서 교회가 복음의 약속을 참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당신들의 모든 죄를 참으로 용서하신다”라고 공적으로 선포하고 증거할 때 천국이 그들에게 열립니다. ...


교회가 복음을 전했을 때, 그 사람이 참된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교회는 그 사람에게 사죄를 선언하고 세례주어서 정회원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정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그 사람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에이... 그것이 그냥 이 교회의 정회원이 된 것이지, 진짜 생명책에 기록되어있는지 어떻게 알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교회를 무시하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가 복음의 강설을 참되게 믿은 사람에 대해서 교회가 사죄 선언하게 될 때, 정말 그 사람에게 천국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23)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 20:23)


교회가 사죄를 선언하면 하늘에서 그 사람의 죄를 사하시는 것이고 교회가 사죄를 선언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죄는 그냥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앞 구절을 보면...


“(22)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 20:22)


그 이유는 교회가 그냥 사사로운 공동체가 아니라 성령 받은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공동체입니다. 성령 받아 성령의 통치를 받는 교회가 주님의 뜻을 따라 사죄를 선언하면, 진짜 용서받는 것입니다. 만일 교회가 그 사람에게 사죄를 선언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복음의 강설을 듣고도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래서 교회가 “저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이다. 정회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천국의 문이 닫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의 천국열쇠는 주일날 예배 설교 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날마다의 복음전도의 현장에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는 것이 천국열쇠를 가지고서 열고 닫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는 것을 하찮게 생각하면 안 되고 우리에게 주신 그 엄중한 권세를 의식하면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의 전도를 거부하고 믿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는 천국 문을 여는 일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닫는 일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전도했는데도 그 사람이 거부할 때는 무조건 그 사람만 탓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정말 상한목자의 심정이 있는지, 주님의 마음으로 바르게 전도했는지, 혹시 기도가 부족하지 않았는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열매가 전혀 없다고 해서 절망하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문을 닫는 일을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잘 수행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논의는 불신자들이 복음의 강설을 듣느냐 안 듣느냐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열쇠는 그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죠.


답 : ... 그러나 그 반대로 교회가 모든 불신자들과 위선자들에게 “당신들이 회개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정죄가 당신들에게 머물러 있을 것이다”라고 공적으로 선포하고 증거할 때 천국이 그들에게 닫힙니다. 이러한 복음의 증거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와 장차 올 세상에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불신자들과 위선자들”은 앞 문답에서 성찬에 참여하지 못할 사람들로 언급된 자들입니다. 그러니깐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자들이죠. 교회의 정회원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거룩한 복음의 강설을 매주 와서 듣는데 그 책망의 말씀, 회개의 말씀들을 듣지 않고 자꾸 튕겨내고 자기 죄를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맨 처음에는 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불신과 외식가운데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회중들이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불신과 외식의 삶이 곪아터져서 말과 행실에서 어떤 드러나는 파괴적인 죄들로 나타날 때 비로소 온 회중이 그들의 심각한 영적상태를 파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회중은 그 드러나는 죄를 보고서 권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실은 여기까지 안 가는 게 제일 좋습니다. 우리가 때때로 불신과 외식의 상태에 떨어지곤 하는데, 제일 좋은 것은 자기 스스로 말씀강설을 듣고 그때그때 회개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권징까지 안 가는 게 가장 좋은 길입니다. 교회에서 권징은 없으면 없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특징은 누가 말 안 해도 자기가 알아서 고치는 것입니다. 새벽마다 와서 울고불고, 통곡하며 기도하고, 자기 힘으로도 안 될 때는 남이 권징하고 벌주기 전에 스스로 권징하고 벌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벌로 밥을 안줘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네가 영의 양식도 안 먹으면서 육의 양식을 먹을 자격이 있냐? 네가 지금 이런 심각한 상황에 밥이 넘어가냐?” 그러면서 밥을 굶겨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금식기도입니다. 또 “네가 지금 이 상황에 잠이 와? 기도해...” 그러면서 잠을 안 재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철야기도, 새벽기도입니다. 그렇게 영적으로 메마르고 곤고할 때, 죄의 권세가 자기를 사로잡는다고 생각할 때, 점점 영적으로 침체되고 있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은혜를 회복하기 위해서, 그리고 말씀과 기도에 착념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금욕을 하는 것은 금욕주의가 아닙니다. 개혁신학하면서 금식이나 철야기도, 새벽기도 이런 거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사실 참된 개혁신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면 금식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에 지금 죄가 왕성해지고 주님의 은혜가 느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울며불며 밤낮으로 기도하고, 또 금식하며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일수록 더욱 교회의 공적인 가르침에 참여하여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회개하고 회복될 수 있는 은혜를 주로 목회자의 설교시간에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남이 권징하기 전에 스스로 권징하고, 책망의 말씀 앞에 서서 자신의 불신과 외식을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가장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항상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고, 또 죄의 상대적인 성격 때문에, 자신이 지금 죄 가운데 있는데도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죄를 범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느냐 하면, 예를 들어 삐쩍 마른 남자가 몸에 짝 달라붙는 쫄티를 입고 다닐 때, 누가 봐도 참으로 흉해 보이는데, 본인은 멋있다고 우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 두 사람, 그리고 보는 사람마다 “보기 흉하다... 제발 다른 옷을 입고 다녀라.” 그렇게 말하게 될 때, 이 사람은 “내가 정말 보기 흉한가보구나...” 생각하면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권징이 하는 일입니다. 성도가 죄 가운데 있는데도 “나는 이게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는 이게 맞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객관성이 결여된 것이죠. 그런데 한 사람이 와서 “아니다”하고, 두 세 사람이 와서 “틀렸다”하고, 여기저기서 “틀렸다” 그러면, 이 사람이 비로소 “아 내가 틀렸구나....” 하면서 자신의 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권징의 목표는 바로 죄의 객관화입니다.


그리고 죄의 상대적인 성격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죄의 심각성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아무리 큰 죄라고 해도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 죄가 창궐하게 되면 사람들이 그 죄를 가볍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 안에서도 살인이 일반화되어버리면 살인이 큰 죄라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바람피우는 것이나, 동성애가 일반화되어지면, 그것이 큰 죄라고 생각을 안 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도덕적 감각이 무뎌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세속화되어서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향해 떠내려가는 일들이 많은 회중들에게 일반화되면 그게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실상은 크게 애통하며 회개해야 할 문제인데, “다들 그렇게 사는데 뭐...” 그러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권징이 필요합니다. 의식이 깨어있고, 성령 충만한 신자가 그것을 분별해서, 그 사람에게 가서 그것이 죄라는 것을 이야기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도 바로 그런 맥락에 있습니다. 깨어있는 목회자가 영적으로 분별하여 회중들의 죄를 책망하는 것이 바로 설교입니다. 그런데 죄가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제일 처음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마음이 강퍅해진다는 것입니다. 도덕적 감각이 무뎌지고 죄를 합리화해서 자신이 지금 매우 심각한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상태로는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이 나를 향한 책망의 음성으로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는 옆에 있는 형제자매가 와서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권면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지적하면 자기는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데, 그 얘기를 듣고서 “아 내가 정말 큰 죄를 저질렀구나...” 깨닫고 얼른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권징의 제일 좋은 예입니다. 다윗과 같은 모습이 신자의 대표적인 모습이죠. 다윗이 아주 악랄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입 싹 닦아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는 것입니다. 죄 지은 사람의 특징이 바로 이렇습니다. 죄책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단이 죄를 지적하니깐 비로소 뭘 깨닫습니까? 자신이 얼마나 죽을죄를 지었는가를 깊이 깨닫고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서로 권면하고 죄를 지적하면서 회개하도록 돕는 것이 교회 공동체가 주는 놀라운 유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권면을 안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먼저는 개인적인 수차례의 권면을 하고, 그것을 듣지 않을 때 두 세 사람을 증참한 권면을 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의 공적인 권면을 합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이제 마지막으로 수찬정지와 출교를 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가 결정할 때, 그 교회의 결정은 단순한 교회의 결정이 아니라, 하늘의 생명책에서 그 사람의 이름이 지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어떻게 합니까? 주님의 뜻을 따라서 권면하고 권징 하는데, “남의 인생에 왜 이렇게 간섭하시오.” 그러면서 기분나빠하고, 더 나아가 “여기만 교회요?” 그러면서 교회가 출교하기도 전에 자기 스스로 다른 교회 가버립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스스로 자기 자신을 출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몸에서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에 가서 신앙생활 암만 잘 해도, 그 사람은 그리스도밖에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회개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기 전까지 그 사람은 교회밖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목회자의 권징을 거부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교회를 옮기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정회원에서 제명되는 것을 그냥 교회의 명단에서 제외된 것일 뿐이지 내 구원과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교회가 그 사람을 정회원에서 제명하여 자물쇠를 잠그면 그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천국 못갑니다. 이 눈에 보이는 교회에 천국열쇠의 권세가 있습니다. 교회의 결정은 곧 주님의 결정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가진 천국열쇠 권세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요즘은 워낙 누군가가 자신에게 간섭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이고, 또 교회가 권징을 하려고 하면 다른 교회로 가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의 결정이나 권징이 우습게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권징을 피해 다른 교회로 갈 때 그 교회가 그 사람을 환영하며 받아준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실 받아주면 안 되거든요. 그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잘못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그 사람이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되는 것이고, 둘째로 교회의 하나 됨을 무너뜨리는 것이며, 셋째로 그 사람을 받아준 교회도 교인 수 한명 늘어서 좋을지는 몰라도 결국 그 사람의 범죄의 영향으로 그 교회도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교회에서도 권징이 성립될 수 없는 환경이 되어버립니다. 왜냐하면 권징하면 또 다른 교회로 가면 되니까요. 그래서 온 교회가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온 교회에 권징이 바르게 회복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부터 권징에 대해서 그리고 교회의 결정에 대해서 두려워하며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 교회의 결정으로 나의 천국과 지옥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고, 두렵고 떨림으로 그 권징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천국열쇠를 교회가 실행할 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뜻을 따라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답 :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서 교회가 복음의 약속을 참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당신들의 모든 죄를 참으로 용서하신다”라고 공적으로 선포하고 증거할 때 천국이 그들에게 열립니다. ...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서”라는 문구가 84문에서도 그리고 85문에서도 나타납니다. 이것은 교회가 때때로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사사로운 감정이나 자신의 이권을 따라서 권징 하는 수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렇게 교회가 권징할 때 그 교회의 결정은 천국열쇠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권징한 교회가 하나님의 권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로마가톨릭이 참 진리를 증거한 종교개혁자들 처형하고 출교시켰습니다. 그것은 다 헛짓입니다. 천국열쇠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가톨릭만 욕할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장로교 분열사는 바로 이러한 천국열쇠의 그릇된 사용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이권 때문에, 감정에 매여서 서로가 서로를 출교시키고 그렇게 교단이 나누어지고 주님의 몸을 찢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주님 앞에서 너무나 부끄럽고 큰 죄이며, 교회가 크게 징계 받아야 할 상황입니다.


교회가 잘못 결정할 때는 그 결정을 한 교회와 당사자들이 권징 받습니다. 주님이 참으로 권징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항상 성령충만 말씀충만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서 두렵고 떨림으로 권징하는 것이고, 그렇게 교회가 어떤 결정을 할 때, 그 결정은 그저 한 교회의 결정이 아니라 주님의 결정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천국이 열리고 닫히는 천국열쇠의 실행의 첫 시작이 바로 거룩한 복음의 강설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의 거룩한 복음의 강설을 그냥 단순한 설교로 듣지 말고, 천국열쇠를 들고서 엄중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이 말씀을 통해서 내가 은혜 받지 못할 때는 두려워하십시오. 왜냐하면 천국 문이 닫히는 그 과정의 첫발을 내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암만 은사가 많고, 교회도 잘 나오고, 봉사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할지라도, 예배시간에 앉았다 하면 졸거나, 말씀을 도무지 듣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지금 지옥을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서 멀어지면 천국도 멀어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계속적으로 강조되는 것처럼 들을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 하신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들을 귀가 닫힌 사람은 결국 천국 문도 닫히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귀가 닫힌 채로 말씀을 들을 때가 많습니까?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는 생명의 말씀,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권능의 말씀으로 들려야 하는데, 단순히 지식과 정보의 차원에서 말씀을 들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렇게 말씀이 막힌 채로 10년 20년 살지 않았습니까? “정말 말씀 앞에서 은혜 받았던 적이 언제였지?” 하며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말씀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책망의 음성을 무시하고 거부하면서 불신앙과 외식을 좇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으로 천국에서 쫓겨나도 할 말이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로우셔서 우리를 당장에 쫓아내지 않으십니다.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당장에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끊임없이 선지자를 보내셔서 책망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과 형제자매들의 권면을 통해 책망하시고 회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물론 끝까지 회개치 않는 자들은 쫓아내시지만... 그러나 참으로 택하신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그들을 징계하셔서 말씀 앞으로 나아오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반드시 삶을 만지셔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통해서 그의 마음을 가난하게 하여 말씀을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생하면 사람이 철이 듭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으면 영혼이 철이 들어서 말씀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마음이 가난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반대로 마음이 부유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은 두려워하십시오. 하나님께 기도의 담을 쌓고 살아도 별 걱정이 안 되는 사람은 참으로 두려워하십시오. 주님의 참된 자녀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므로 강단에서 설교자가 적어도 이단 같은 설교 안하고, 바른 설교를 한다고 했을 때, 강단설교가 희미하든 선명하든, 그 설교의 주체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하고, 목회자의 손에 지금 천국열쇠가 쥐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목사가 설교를 죽 써도 여러분은 그 말씀으로 은혜 받아야 합니다. 설교자는 설교를 죽 쓰면 너무 죄송스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럴지라도 여러분은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복 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설교를 들으면서 천국이 열려야 합니다. 이 예배가 그냥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면 천국을 맛보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한 번의 예배로도 여러분의 인생이 바뀔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그 말씀 한 마디로 내 인생이 통째로 바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야무지게 한 번 기도하십시오. 오늘 한번 예배 제대로 드리고, 오늘 강단의 설교가 손재호 목사의 말이 아니라, 최상범 목사의 말이 아니라, 주님의 음성으로 들려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설교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청종하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를 회개케 하고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쏟아 부어지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가운데 충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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