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방문자 : 
    530
  • 어제방문자 : 
    1,733
  • 전체방문자 : 
    1,503,833
Extra Form
설교자 최상범
88-90문
문답내용 88문 : 사람의 진정한 회개는 무엇입니까?
답 :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89문 : 옛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하나님을 진노케 한 우리의 죄를 마음으로 슬퍼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죄를 더욱더 미워하고 피하는 것입니다.

90문 :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답 :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온 마음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선한 행위를 하면서 사는 것을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강설날짜 2014-06-2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3주Ⅰ(88-90문)

예수님과 함께 죽고 사는 것의 의미

말씀 : 롬 6:1-8:39

88문 : 사람의 진정한 회개는 무엇입니까?
답 :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89문 : 옛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하나님을 진노케 한 우리의 죄를 마음으로 슬퍼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죄를 더욱더 미워하고 피하는 것입니다. 

90문 :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답 :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온 마음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선한 행위를 하면서 사는 것을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화를 이야기하면서 성화의 또 다른 이름인 회개를 언급합니다. 88-90문을 보시면...

88문 : 사람의 진정한 회개는 무엇입니까?
답 :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89문 : 옛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하나님을 진노케 한 우리의 죄를 마음으로 슬퍼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죄를 더욱더 미워하고 피하는 것입니다. 

90문 :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답 :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온 마음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선한 행위를 하면서 사는 것을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회개란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해석이고, 그리고 칼빈의 해석입니다. 회개는 두 부분인데, mortification이라고 하는 ‘죄 죽이기’과 vivification이라고 하는 ‘생명 살리기, 의 살리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부활했다”라고 하는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로마서 6장에 잘 나타나는데, 우리가 로마서 6-8장의 내용을 잘 살펴보게 되면 성화에 대한 정확한 그림, 그리고 회개의 의미에 대한 정확한 그림이 그려질 것입니다. 그러면 로마서 6장을 살펴보기 앞서서 로마서 6장이 어떤 문맥 속에서 주어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서 6장은 아래 구절의 맥락에서 주어집니다.

“(20)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21)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 5:20-21)

여기서의 율법은 시내산 언약을 일차적으로 의미하지만 또한 문맥상 선악과 금령도 포함하는 것 같습니다. 즉 로마서의 논지는 계명이 없으면 죄도 없고, 타락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악과 금령이 없었다면 뱀이 무엇으로 하와를 유혹해서 타락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요? 그러므로 아담에게 주어진 율법, 곧 선악과 금령은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는 기회로 사용되는 것이고, 또 말하자면 이 세상에 범죄를 더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선악과 금령, 그리고 시내산 언약법인 율법은 동일하게 범죄를 생산해내어서 죄를 더하는 역할을 하며, 그리하여 사람을 율법의 정죄와 심판 아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습니다. 그런데 배고픈 자에게 음식이 더 가치 있게 되는 것처럼 죄와 심판 가운데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이 얼마나 은혜로운 영광인지 알게 됩니다.

아담의 범죄로 죄와 사망이 온 세상에 왕 노릇하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영광도 찬란하게 빛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담의 범죄로 이렇게 죄와 율법의 정죄 아래서 너무나 불행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가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한편으로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비참하게 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의 영광도 우리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로 떠나지 않았다면, 늘 마음조리며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사랑, 값없이 용서해주시고 받아주시는 아버지의 사랑도 그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첫째 아들처럼 집에만 있는 아들은 그 사랑을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죄를 더하신 작정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있습니다.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뿐 아니라 이미 믿은 우리 신자에게도 여전히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신자가 죄를 짓게 되었을 때, 그래서 그 죄로 인해서 아파하고 그 죄와 씨름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회개의 과정을 통해서 죄에 빠지고 회개하기 이전보다 더욱 우리는 주님의 한량없는 크신 은혜를 깨닫고 의지하게 됩니다. 죄 가운데 있었던 것이 오히려 역으로 우리 신앙에 큰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 가운데 비참하다고 생각된다면, 낙심하지만 말고, 이 죄된 삶을 더욱 주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드는 생각이 “내가 지금 메마르고 은혜가 없다... 내가 죄를 안 지어서 그렇구나... 탕자처럼 하나님을 떠나서 죄 가운데 방황하다가 다시 주님께로 돌아오면 더 극적으로 은혜를 맛보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6장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2)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롬 6:1-3)

이제 사도바울은 성화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면서 비로소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았다는 표현을 쓰기 시작합니다. 주님과 함께 죽고 사는 것이 바울복음의 핵심인데, 이제까지 아껴두었다가 성화를 이야기하면서 비로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았다는 말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다층적인 의미의 구조가 있습니다(크랜필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체험은 하나의 체험인데,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효과 측면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 중요한 두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① 죄책과 관련한 칭의의 의미 : 첫째로 사도바울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다는 말을 우리는 우선 죄책의 관점에서 이해합니다. 이것은 세례로 말하자면 죄책을 씻어주신 것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즉 사도바울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죄에 대하여 죽었고, 율법에 대하여 죽었고,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 옛사람이 죽었다.”고 말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연합되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벌 받아 죽임당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죗값을 다 치렀기 때문에 더 이상 죄와 율법이 나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법은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합니다. 지금 나는 형벌 받아 죗값을 다 지불하고 죽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살아있는 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로 새롭게 태어난 새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대접 받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3주-이신칭의 참조). 그래서 주님과 함께 부활한 것은 온전히 의롭다 함을 받은 칭의의 은혜를 의미하며, 이것을 로마서 6장에서는 하나님께 대하여 살았다라고 표현합니다.

② 죄의 오염과 관련한 성화의 의미 : 두 번째로 사도바울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다는 말을 우리는 죄의 오염의 측면에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례로 말하자면 죄의 오염을 씻음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즉 죄 용서와 칭의의 은혜 안에서 신자의 마음과 성품이 놀랍게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죄 많은 여인의 이야기에서 잘 나타납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죄 용서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 나아가서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눈물과 머리털로 발을 씻고, 그 발 위에 자신에게 가장 귀한 향유를 부어드렸던 것입니다. 이것은 최고의 사랑과 헌신의 표현입니다. 그러한 행동을 하는 그녀의 마음에 이전처럼 죄 짓고 싶은 마음이 들겠습니까? 전혀 죄 짓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칭의의 은혜를 체험하면 그 은혜 안에서 마음이 변화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놀랍도록 죄가 죽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유혹에 대하여 거의 시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의 유혹에 대해서 우리가 거의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죄를 혐오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로 사도바울은 옛사람이 죽었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특별히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죄의 오염의 측면에서 우리가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새사람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주님을 닮은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죄의 오염측면에서의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산다는 개념이 바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3주의 내용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 점진적으로 계속되어지는 성화이며 회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아래의 그림을 보십시오.

주님과 함께 죽고 사는 것의 의미.jpg

바울이 로마서 6장에서 이러한 여러 가지 의미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모르고 로마서 6장을 읽으면 헷갈립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한 이해가 분명하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이고, 그렇게 왔다 갔다 할 때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는데,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 로마서 6장을 이해하는데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관점에서 한 구절 한 구절 살펴보겠습니다. 

<1-3절 요약 : 성화되는 은혜를 받았는데, 어떻게 다시 죄를 지을 수가 있는가?>

“(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2)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롬 6:1-3)

먼저 2,3절에서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칭의와 성화 중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사실 칭의와 성화의 의미를 다 포함하는데 특별히 성화에 초점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주님과 함께 죽는 체험을 통해 죄의 오염이 씻겨지고 죄에 대해서 거의 시체가 되었는데, 어떻게 다시 죄를 짓겠다는 마음이 생길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

<4절 요약 : 칭의의 목적은 성화다.>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지금 4절에서 주님과 함께 죽어 장사되었다는 말도 칭의와 성화의 개념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초점이 칭의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간에 “이는”이라는 단어가 보여주는 것처럼 앞과 뒤가 목적의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즉 뒷부분이 새생명으로 사는 것, 곧 성화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한데, 그러한 성화를 목적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임 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장사지냈다는 것은 우리가 법정적으로 칭의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칭의의 은혜를 주신 목적은 우리로 성화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

<5절 요약 : 칭의와 성화의 불가분성 -> 칭의의 은혜를 받은 자는 성화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5)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 6:5)

5절에는 ‘왜냐하면’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5절은 4절을 지지하고 보충하는 구절입니다. 즉 성화를 위해 칭의의 은혜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칭의된 자는 성화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죽음과 연합했으면 부활과도 연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은 칭의의 은혜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은 성화의 은혜와 연결시키고 있음을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

<6절 요약 : 4절과 동일. 칭의의 은혜를 주신 목적은 성화이다. 그리고 칭의의 은혜 안에서 성화의 은혜가 주어진다.>

“(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6절은 4절의 반복입니다.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법정적으로 죽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다.”는 것은 성화를 의미합니다. 죄의 몸은 신자 안에 남아있는 옛사람의 잔재, 죄악된 본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소멸시킬 목적으로 칭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또한 바로 그 칭의 은혜 속에서 죄의 몸이 멸한다는 죄 죽임의 원리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용서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즉 성화의 원동력은 칭의의 은혜입니다.

------------------------------------------------------------------

<7절 요약 : 성화의 원인과 근거는 칭의에 있다.>

“(7)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 6:7)

“이는”의 표현이 보여주는 것처럼 7절은 그렇게 죄의 몸을 멸하는 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근거와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칭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7절부터 11절까지는 이 칭의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칭의의 은혜위에 굳게 서야 성화의 삶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사실은 로마서 7장에서 보다 잘 나타납니다.

“(1)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2)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롬 7:1-2)

죄의 형벌로 사형당해서 무덤에 묻힌 사형수에 대해서 더 이상 법은 왈가불가 하지 않습니다. 죽은 자는 이미 죗값을 다 치렀고, 그리고 율법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게 은혜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죄와 율법에서 해방되어 의롭다 함을 얻은 것입니다. 

------------------------------------------------------------------

<8-11절 요약 : 칭의의 은혜위에 굳게 서야 한다.>

이 은혜의 사실을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확신해야 합니다. 얼마만큼 확신해야 합니까? 이 점에 대해서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께 대하여 영원히 사시는 것처럼, 다시 그리스도가 죽으신다든지 하실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자신의 칭의를 확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8-11절의 내용입니다.

“(8)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9)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10)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11)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롬 6:8-10)

예수님이 죽으신 죽음이 완전히 결정적이고 반복할 수 없는 사건으로 모든 사람을 위해 단번에 죄에 대해서 죽은 죽음이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책을 남김없이 완전히 끝장내셨기 때문에, 다시 사망의 권세가 그를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어서 죄와 율법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음을 확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죄책이 없음을 확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불완전해서 그렇게 다시 사셨는데 또 얼마안가 죽고 하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그분의 부활이 영원히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계시는 부활 인 것처럼 우리의 칭의도 영원히 취소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기라”는 말은 믿음으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것인데,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실제상황은 그렇지 않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 안에 여전히 죄가 남아있고 그 죄로 인해서 죄책감을 느낍니다. 7장 후반부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죄책감과 사망의 권세를 인식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믿음은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데 바로 우리로 주님의 칭의의 은혜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서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죄뿐만 아니라, 현재 내안에 남아 있어서 일평생 싸워가야 할 죄악된 본성까지도 주님께서 다 용서해주셨음을 믿고 더 이상 정죄함이 없다고 믿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12-13절 요약 : 칭의의 은혜를 받은 자는 이제 마땅함으로 성화로 나아가야 한다.>

“(12)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13)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2-13)

여기서 ‘그러므로’는 사도바울의 용례를 잘 보여줍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모든 서신에서 항상 구원의 은혜를 먼저 이야기한 후에 그러므로 그 구원의 은혜를 근거로 해서 성화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즉 칭의의 은혜를 받은 자는 마땅함으로 성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죄에 종노릇하지 말라. 몸의 사욕을 순종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몸의 사욕이 우리 안에 있어서 자꾸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을 좇아 살도록 잡아 이끈다는 것입니다. 거기 순종하면 죄가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되지 않도록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14절부터는 이러한 칭의와 성화의 매커니즘에서 야기될 수 있는 두 가지 오류에 대해서 다룹니다.

------------------------------------------------------------------

<14절 요약 : 첫 번째 오류인 행위구원론에 대하여 - 성화에 적용되는 조건성이 구원의 불확실성을 말하지 않는다.>

“(14)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4)

방금 전에 신자가 죄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러면 “신자가 죄와 율법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러면 신자가 잘못하면 다시 죄의 지배를 받고 다시 율법 아래 놓여서 형벌을 받는 것 아니냐?” 하는 의문이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참된 신자는 죄의 지배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앞에서는 신자가 죄를 지으면 죄의 지배를 받는다고 해 놓고서는 여기서는 또 그럴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역시 죄책과 오염의 구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즉 죄의 지배 역시 두 가지로 나뉩니다. 죄는 먼저 죄책으로 우리를 지배합니다. 죄책을 통한 죄의 지배의 결과는 우리를 사망의 형벌 아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는 죄의 오염으로 우리를 지배합니다. 우리가 죄짓는 것이 곧 죄의 오염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2-13절에서 말하는 죄의 지배는 죄의 오염의 지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 안에는 더 이상 죄책은 없지만 죄의 오염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그렇게 죄의 오염의 잔재가 우리 안에 남아있어서 죄가 그 죄의 오염가지고 깔짝깔짝 대며 우리를 지배하려고 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예전에 예수님 믿기 전처럼 죄책과 죄의 오염을 가지고서 총체적으로 우리를 지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죄책이 완전히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에 종노릇 할 것이냐 의에 종노릇 할 것이냐 하는 성화의 조건성에 대해서 무겁게 생각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것으로 칭의의 은혜를 무너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화의 조건성은 칭의의 주권적인 은혜에 아름답게 복속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근본 은혜 아래 있는 자입니다.

------------------------------------------------------------------

<15-16절 요약 : 두 번째 오류인 도덕률폐기론에 대하여 - 은혜의 복음이 도덕률폐기론으로 갈 수 없다.>

“(15)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16)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5-16)

이제 참된 신자에게는 영원히 죄책이나 형벌이 없다고 말하면 사람의 죄악된 본성은 의례히 “그러면 맘껏 죄 짓고 살아도 상관없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1절에서 은혜를 더 하기 위해 죄를 짓자고 하는 오류와 비슷하지만 뉘앙스가 조금 다릅니다. 이것은 은혜의 복음을 도덕률폐기론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도덕률폐기론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는데, 죄의 종으로 계속해서 살아가면, 그래서 죄를 끝까지 고집하면 결국 영적 사망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비슷한 표현이 로마서 8장 12-13절에서도 나타납니다.

“(1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2-13)

사도바울은 우리가 빚진 자로서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성화의 삶을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것만 가지고는 성도들이 성화의 삶을 잘 안 살아가니깐 통렬하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신자 안에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같이 있는데, 우리가 성령을 소멸하면서 육체의 소욕을 따라 계속적으로 살아가게 될 때에 결국에는 육체로부터 사망을 거두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

<17-23절 요약 : 성화의 조건성에서 사망에 이르는 조건은 참된 신자에게 해당될 수 없다.>

“(17)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18)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18)

사도바울은 앞에서 그렇게 경고했지만, 그러나 로마교회 성도들의 성화와 구원의 완성에 대해서 확신합니다. 이것은 앞에서의 경고의 의도가 그들로 회개하고 성화의 길을 정진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지 행위구원론을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항상 경고 뒤에는 성도들로 하여금 낙심치 않도록 하기 위해 위로와 확신의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7)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8)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9)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히 6:7-9)

그러면 로마서 6:17-18절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지, 어떻게 연약한 신자가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는지 그 원리에 대해서 로마서 8장 후반부에서 다룹니다. 그것이 결국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신자 안에 계시기 때문에 신자는 죄에서 해방되어 의에게 이미 종이 되었고 또 앞으로도 의의 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6.25전쟁 때 북한이 치고 내려와서 대구 부산 앞마당까지 다 북한에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다시 수복하고 적의 전선을 차단하여 승기를 잡고 결국에는 승리하여 대한민국 영토를 다 회복했습니다. 그런데 지리산에 여전히 패잔병들이 아직 잔존해 있는 것입니다. 그 지역은 마치 아직 북한군의 지배하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러나 이미 승기는 넘어갔고 결국 토벌되고 말 것이라는 운명이 정해져있는 것입니다. 신자가 성령을 받은 것이 바로 그것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은 신자에게 참으로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22-23절에서 보다 구체화되어 나타납니다.

“(22)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23)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2-23)

“너희 스스로가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만들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이미 얻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성화가 성령님에 의해 은혜로 주어지는 역사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사도바울이 성화를 이야기할 때 항상 하는 말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말하는 회개, 곧 성화는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사는 것인데, 그것은 결국 칭의의 은혜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칭의는 성화의 원동력이고 근거이며 원인이며 토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이 은혜의 복음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은혜위에 굳게 서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혹시 바울이 경계한 도덕률폐기론이나 행위구원론에 서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 안에 있는 이런 오류들을 물리치고 은혜의 복음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께 대한 감사와 사랑으로 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값없는 칭의의 은혜를 주신 것은 바로 성화의 삶을 살도록 하는데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칭의의 은혜를 원동력으로 삼아 날마다 죄와 싸우며 죄의 몸을 멸하여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도록 하는데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는 성화의 열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우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 나아가는데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나아감에 있어서 때때로 나태와 게으름과 교만의 마음이 생길 때에는 자신이 잘못하면 망할 수 있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깨어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성령으로 말미암아 확실히 성화에 이를 수밖에 없는 성도의 운명을 믿음으로 바라봄으로써 우리 안에 기쁨과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기쁨과 확신으로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른 성화론을 정립하여 믿음으로 이 세상에서의 순례의 길을 완주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설교자 조회 수
41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4주(91문,92문,93문,94문,95문) - 율법과 제1계명 file 91-95문 최상범 3510
40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3주Ⅱ(88문,89문,90문,91문) - 그리스도인의 회개의 삶 file 88-91문 최상범 2568
»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3주Ⅰ(88문,89문,90문) - 예수님과 함께 죽고 사는 것의 의미 file 88-90문 최상범 2799
38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2주Ⅱ(87문) - 구원과 성화(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면) file 87문 최상범 2989
37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2주(86문) - 신자가 선행을 행하는 이유 file 86문 최상범 2797
36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1주Ⅱ(85문) - 천국열쇠(2) file 85문 최상범 2503
35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1주(83문,84문) - 천국열쇠(1) file 83-84문 최상범 2829
34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0주(80문,81문,82문) - 성찬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면 file 80-82문 최상범 2717
33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9주(78문,79문) - 성찬론에 대하여(화체설,공재설,기념설,영적임재설) file 78-79문 최상범 2908
32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8주Ⅱ(76문) - 성찬의 의미(Ⅱ) file 76문 최상범 2096
31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8주(75문,76문,77문) - 성찬의 의미 file 75-77문 최상범 3043
30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7주(72문,73문,74문) 세례의 의미와 유아세례 file 72-74문 최상범 3375
29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6주(69문,70문,71문) - 세례와 성화론 file 69-71문 최상범 5463
28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5주(65문,66문,67문,68문) - 말씀과 성례 file 65-68문 최상범 2699
27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4주Ⅱ(64문) - 성화는 칭의의 열매 file 64문 최상범 2623
26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4주Ⅰ(62문,63문) - 성경적인 성화론 file 62-63문 최상범 3051
25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3주(59문,60문61문) - 이신칭의 file 59-61문 최상범 3037
24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2주(57문,58문) - 부활과 영생 file 57-58문 최상범 3125
23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1주Ⅱ(56문) - 죄 사함 file 56문 최상범 3296
22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1주Ⅰ(54문,55문) - 거룩한 공회와 성도의 교통 file 54-55문 최상범 362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Next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