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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제16조
문답내용 제 16 조 하나님의 선택
Divine Election

우리는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멸망과 파멸에 이른 모든 인류에게 자신의 본래의 성품, 곧 자신의 자비로우심과 공의로우심을 각각 나타내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자비로우심이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자신의 영원한 불변의 뜻과 선의를 따라 선택하신 자들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멸망으로부터 구출하시고 구원하심에 있습니다. 공의로우심이란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을 그 스스로 빠져든 타락과 멸망에 버려두심에 있습니다.
강설날짜 2015-03-29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16조

하나님의 선택

제 16 조  하나님의 선택
Divine Election

우리는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멸망과 파멸에 이른 모든 인류에게 자신의 본래의 성품, 곧 자신의 자비로우심과 공의로우심을 각각 나타내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자비로우심이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자신의 영원한 불변의 뜻과 선의를 따라 선택하신 자들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멸망으로부터 구출하시고 구원하심에 있습니다. 공의로우심이란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을 그 스스로 빠져든 타락과 멸망에 버려두심에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선택, 또는 예정에 대해서 배워보겠습니다. 예정을 배우기 이전에 가장 중요한 전제는 인간의 전적타락과 원죄입니다. 이것이 인정이 안 되면 예정은 굉장히 불공평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먼저 원죄를 다시 언급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멸망과 파멸에 이른 모든 인류에게 자신의 본래의 성품, 곧 자신의 자비로우심과 공의로우심을 각각 나타내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지난주에 배웠던 것처럼 모든 인류는 아담 안에서 함께 범죄 했기 때문에 멸망과 파멸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심지어 갓난아기조차 부패하고 가증하고 더러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한 사람도 구원해주시지 않으셔도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을 다 심판하지 않으시고 일부를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요 자비입니다. 그러면 선택하시려면 다 선택하시지 왜 일부만 선택하시는가...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심을 통해서 자신의 자비만 드러내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의도 드러내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부는 심판가운데 버려두신 것입니다. 먼저 우리를 구원으로 선택하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자비로우심이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자신의 영원한 불변의 뜻과 선의를 따라 선택하신 자들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멸망으로부터 구출하시고 구원하심에 있습니다.

구원의 선택이 왜 자비입니까? 그것은 앞서 말한 전적타락을 생각할 때 분명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조금이라도 예쁜 부분이 있어서 하나님이 “저 사람은 구원해야 되겠구나”라고 생각하시게끔 만들 어떠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부분이 우리 안에 일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 자신의 긍휼과 자비로운 성품에 의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그리스도의 구속을 또한 예정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신 것입니다.

“(10)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11)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12)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13)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14)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15)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16)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0-16)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여기 나오는 구절에서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으로 선택하실 때 우리의 행위를 조건삼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만일 행위로 조건 삼으셨다면 선택받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 그리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품으로 말미암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입니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셨다는 말은 처음부터 우리의 행함과 상관없이 선택하셨기 때문에 그 선택이 우리의 행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선택은 영원불변하는 선택입니다. 한번 택하셨으면 결코 구원이 취소될 수가 없습니다. 성도의 견인교리가 확실합니다. 

이러한 예정교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세 가지인데, 첫째는 감격과 감사와 찬양입니다. 

“(6)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6)

예정교리를 숨기지 아니하시고 계시하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바로 구원이 전적인 은혜임을 드러내시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에게 어떠한 사랑받을만한 꼬투리가 없는데도 긍휼히 여겨주시고 사랑하시고 위하여 독생자를 주셔서 구원해주신 은혜를 깨달아 알 때 우리는 감격하며 감사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위로와 구원의 확신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붙잡아서 구원받았지만, 그러나 그 믿음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요, 우리가 예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창세전에 선택하셨고 때가되어 불러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나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이 예수님의 선택에 기초해있기 때문에 놀라운 위로와 확신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의미로 사도바울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9)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12)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행위에 달려 있다면, 내가 소위 신앙생활 잘 할 때는 확신이 있겠지만, 잘 못 하면 확신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확신 없이 불안함 속에서 신앙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나 나의 구원이 하나님의 예정에 기초해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세상 끝날까지 안전하게 지켜질 것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예정을 언급하고 다음의 논지를 펼친 것입니다.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아직 영화롭게 되지 않았지만, 영화롭게 될 것이 너무 확실하기 때문에 직설법 과거형으로 이미 된 일처럼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이 예정교리로 말미암아 우리가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있는지 네 가지 논증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느냐고 말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무조건적으로 택하시고,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아니하셨다면 우리에게 무엇을 더 아끼시겠느냐고 말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자를 누가 죄인으로 송사할 수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넷째로 그리스도께서 보좌 우편에 계시는데, 누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를 그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이런 논증들이 다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자비로운 선택에 대한 믿음에서 결론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정교리로 말미암아서 크나큰 위로와 확신 가운데 서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성화의 강력한 동기입니다. 예정교리가 언급되는 구절을 보면 놀랍게도 언제나 성화에 대한 강조점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9-30)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예정교리가 신자의 성화의 동기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셨고 영원불변하기 때문에 막살아도 구원받는데 지장 없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정교리를 그렇게 악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정교리는 불신과 불순종과 죄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구원이 확실하니 안심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죄 가운데 있어도 예정교리를 통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되게 위로를 받으면 마음이 바뀌는 것입니다. 즉 예정교리에 대한 참된 깨달음은 성화의 강력한 동기로 작용합니다. 예정을 그렇게 강력하게 주장했던 사도바울의 삶을 보십시오. 그에게서 어떠한 게으름이나 나태, 방종의 삶을 볼 수 있습니까? 예정론하면 칼빈인데, 칼빈이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얼마나 살인적인 일과를 소화하면서 목회에 힘을 썼는지, 그의 대적자들조차도 그러한 칼빈의 열정적인 헌신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칼빈의 인생모토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주여, 내 심장을 당신께 드리나이다. 즉시 그리고 신실하게!” 예정을 참되게 깨닫고 믿는 사람의 삶이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절대로 나태하거나 안일하게 지낼 수 없습니다. 

넷째로 예정교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권자로서 자신의 뜻대로 섭리하시는 분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21)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22)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23)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롬 9:21-22)

“(48)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누군가가 복음을 듣고 믿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예정대로 된 것임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4가지의 반응이 바로 예정교리에 대한 성경적인 적용점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따라 예정을 믿고 적용할 때, 이 4가지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서 전도할 때 이 교리를 곧바로 적용해버리면 곤란합니다. 전도하기 전에 하나님이 택하신 자는 다 구원 받을 테니 내가 전도 안 해도 된다는 논리로 가면 곤란합니다. 교회가 나가서 전도하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게 모든 족속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모든 족속 가운데 자기 백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정을 믿는 자는 더욱 확신 가운데 모든 족속에게로 가서 열심히 전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전도할 때도 “하나님은 창세전에 이미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를 정해놓으셨습니다. 당신이 택함 받은 자인지 아닌지 나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만일 당신이 택한 자면 믿을 것이고, 택한 자가 아니면 믿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전도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전도입니다. 전도는 복음을 이야기하면서 “당신이 믿으면 구원받고, 믿지 않으면 지옥 갈 것이요.” 라고 말함으로써 믿음을 우리의 책임으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지 않고 죄 가운데서 죽은 사람을 두고서 하나님이 저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지옥 갔다고 할 것이 아니라, 복음이 저 사람에게 선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이 그 복음에 믿음으로 화합지 아니했기 때문에 지옥에 가게 되었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인간의 책임을 말살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서 결과적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예정이었음을 또한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정을 생각할 때 참으로 어려운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나님 안에서는 놀랍게 조화되어 있지만, 우리의 이성에서는 충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정교리가 하나님께 속한 신비임을 인정하고 오직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데로만 이 예정교리를 믿고 적용해야 합니다. 즉 우리의 확신과 하나님께 대한 송영적 찬송의 용도로만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이 예정을 가지고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충돌시켜서 논리적으로 이해해보겠다고 덤벼드는 것은 이단이 되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알미니안과 하이퍼 칼빈주의가 바로 그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알미니안도 예정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성적으로 예정과 인간의 자유와 책임이라는 주제를 조화시키고자 했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보다 더 강조하고자 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우리가 말하는 무조건적 예정을 부정하는 데로 가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예지예정을 주장합니다. 누가 믿고 안 믿을지를 미리 아시고 창세전에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단입니다.

반대로 하이퍼 칼빈주의는 예정을 신학의 모든 전제로 삼고 여기서부터 모든 신학을 전개합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말살하는 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든지 영원전 언약이나 영원전 작정에서부터 신학을 전개해 갈 수 있는데, 그렇게 할 때는 하이퍼 칼빈주의의 해석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위험 때문인지 몰라도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예정을 맨 처음에 다루지 않고, 제3권에 가서야 다루었습니다. 사실 칼빈은 처음 기독교 강요 초판에서는 이 예정교리를 1권 섭리부분에 배치하였습니다. 그러나 최종판에서는 이 예정교리를 일부러 구원론 끝부분에 배치했습니다. 그리하여 구원이 전적인 은혜임을 드러냄과 동시에 우리의 구원의 확신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께 송영적 찬양을 드리고자 하는 목적으로 그렇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어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선택에 대해서 배워보겠습니다.

공의로우심이란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을 그 스스로 빠져든 타락과 멸망에 버려두심에 있습니다.  

왜 다 선택하시지 일부만 선택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지난번에 배웠듯이 여러 가지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춘향전에 보면 변 사또가 춘향이를 괴롭히고 핍박하고 심지어는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하지만, 춘향이는 죽음까지 불사하며 정절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극적으로 이몽룡이 암행어사로 등장해서 춘향이를 구원해줍니다. 그리고 나쁜 변사또를 처형시켜서 춘향이의 원수를 갚아주고 춘향이와의 극적이고 감동적인 상봉을 하며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타내고자 하시는 공의입니다. 

“(4)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5)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6)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7)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8)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9)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10)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살후 1:4-10)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러한 공의를 나타내시기 위해서는 다 선택하시면 안 되고 변 사또 같은 악한 무리들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코 악한 무리들이 착하게 살고 싶고 구원받고 싶은데도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버림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기를 원하는 그들의 악한 마음대로 살아가도록 그들을 내버려두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지옥 가는 것에 있어서 하나님께는 책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그런 무리들이 있음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나타내고자 하시는 공의가 찬란하게 드러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10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오셔서 악한 무리들을 심판하시고 성도들을 구원하심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리하여 모든 성도들에게 찬사와 경탄의 대상이 되실 것입니다. 여기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의 자비와 묘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공의가 엄격히 서야만 자비가 더 찬란하게 빛나게 됩니다. 지옥에 떨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서 성도들은 자신들이 어디서 구원받았는지 깨닫게 되어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중예정을 통해서 자신의 자비로움과 공의로움을 동시에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럴 권한이 있으시고 또 그렇게 하셔도 공의로우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영원전 선택에 대해서 확실히 믿고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이 예정교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원망과 불평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우리 교회에게는 말할 수 없는 위로와 확신을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예정교리의 은혜 위에 굳게 서서 늘 이 거저주시는 은혜의 영광을 감사 찬양하며 더욱 주를 위해 헌신하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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