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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제18조
문답내용 제 18 조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The Incarnation of the Son of God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하신 그 약속을 성취하기 위하여 당신께서 정하신 때에 당신의 독생하시고 영원하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셨음을 믿습니다. 그 아들은 종의 형체를 취하사 사람과 같은 모양(the likeness of men)으로 태어나셨습니다(빌2:7). 그 분은 진실로 모든 연약함(all its infirmities)을 가진 참된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으되, 죄는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람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복된 동정녀 마리아의 모태에서 잉태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인간의 육신만 취하신 것이 아니라 참 사람이 되기 위하여 참된 인간의 영혼도 취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육신만 범죄하여 타락한 것이 아니라 영혼도 타락하였으므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과 영혼 양쪽을 다 구원하시기 위해서 몸과 영혼의 두 면을 모두 취해야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의 어머니로부터 인간의 육체를 취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재세례파 이단에 반대하여,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녀들의 혈육에 함께 속하셨음을 고백합니다(히2:14).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허리에서 나신 자요(행2:30),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나신 자며(롬1:3), 동정녀 마리아의 태의 열매요(눅1:42), 여인에게서 나셨고(갈4:4), 다윗의 가지시며(렘33:15), 이새의 줄기에서 나신 싹이시요(사11:1), 유다로 좇아 나셨고(히7:14), 육신으로는 유대인의 자손이시며(롬9:5), 성자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과 연관되시므로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면에 있어서 형제들과 같이 되셨으나 죄는 없으십니다(히2:16-17; 4:15).

이와 같이 그분은 진실로 우리의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 되십니다(마1:23).
강설날짜 2015-04-26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18조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제 18 조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The Incarnation of the Son of God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하신 그 약속을 성취하기 위하여 당신께서 정하신 때에 당신의 독생하시고 영원하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셨음을 믿습니다. 그 아들은 종의 형체를 취하사 사람과 같은 모양(the likeness of men)으로 태어나셨습니다(빌2:7). 그 분은 진실로 모든 연약함(all its infirmities)을 가진 참된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으되, 죄는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람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복된 동정녀 마리아의 모태에서 잉태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인간의 육신만 취하신 것이 아니라 참 사람이 되기 위하여 참된 인간의 영혼도 취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육신만 범죄하여 타락한 것이 아니라 영혼도 타락하였으므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과 영혼 양쪽을 다 구원하시기 위해서 몸과 영혼의 두 면을 모두 취해야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의 어머니로부터 인간의 육체를 취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재세례파 이단에 반대하여,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녀들의 혈육에 함께 속하셨음을 고백합니다(히2:14).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허리에서 나신 자요(행2:30),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나신 자며(롬1:3), 동정녀 마리아의 태의 열매요(눅1:42), 여인에게서 나셨고(갈4:4), 다윗의 가지시며(렘33:15), 이새의 줄기에서 나신 싹이시요(사11:1), 유다로 좇아 나셨고(히7:14), 육신으로는 유대인의 자손이시며(롬9:5), 성자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과 연관되시므로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면에 있어서 형제들과 같이 되셨으나 죄는 없으십니다(히2:16-17; 4:15).

이와 같이 그분은 진실로 우리의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 되십니다(마1:23).

하나님께서는 죄와 저주 가운데 비참하게 된 우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가장 놀랄만한 지혜와 선하심으로 자신을 피해 도망가는 우리를 친히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아들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오늘 배우는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18조부터 21조까지는 바로 이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고 우리를 위해 무슨 구속의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18조의 첫 번째 문장을 보시면...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하신 그 약속을 성취하기 위하여 당신께서 정하신 때에 당신의 독생하시고 영원하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셨음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타락하자마자 자기 아들을 보내주시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시고 나서 수천 년 뒤에...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면 그 수천 년 세월동안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아들이 구속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준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시고 율법을 주시고 모형을 주시고, 또 선지자들을 통해서 장차 올 아들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점진적으로 계시하여주셨습니다. 그 계시가 쌓이고 쌓여서 이렇게 두꺼운 구약성경을 이루게 되었는데, 이 구약성경전체가 바로 장차오실 아들에 관한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 주된 메시지가 예수님께서 구약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갈라디아서 3장 16절을 보시면...

“(16)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여기서 언급된 약속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후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서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네 씨로 크게 성하게 하여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할 것이다. 네 씨로 대적의 문을 얻게 할 것이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게 할 것이다.”라는 약속을 말합니다. 여기서 ‘씨’라는 단어와 동사들이 다 단수형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기서 약속된 ‘씨’가 바로 한분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창세기 22장의 문맥 자체는 한 사람을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신 것이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궁극적인 성취는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한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억지가 아니라 이 약속을 받는 아브라함 본인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자신의 독생자를 죽이려고 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주셔서 그로 대속의 희생제물이 되게 하실 것을 아브라함은 깨달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56)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

이렇게 구약의 약속의 형태가 표면적인 의미와 이면적인 의미가 복합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을 때 이런 점을 주의해서 읽어야 합니다. 즉 어떤 성경본문에서는 아들에 대한 약속이 아주 직접적이고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주어지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처럼 복합적으로 주어질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떠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보더라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늘 생각하면서 성경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예를 하나 더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말씀을 보면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 회당에서 다음과 같이 설교했습니다. 

“(21)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22)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23)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행 13:21-23)

여기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다윗언약의 성취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언약은 표면적으로는 솔로몬에 대한 약속이지만, 이면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윗에게 하신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성취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약속들이 그리스도를 향해 있고, 그리고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구약성경전체의 약속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벨기에 신앙고백서 그 다음 문장을 보겠습니다.

그 아들은 종의 형체를 취하사 사람과 같은 모양(the likeness of men)으로 태어나셨습니다(빌2:7). 그 분은 진실로 모든 연약함(all its infirmities)을 가진 참된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으되, 죄는 없으십니다. 

독생자, 곧 성자 하나님께서 온전한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죄 빼고 우리와 모든 면에서 동일하게 되셨습니다. 

"(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롬 8:3)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이란 “죄악된 육체의 모양으로”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이 굉장히 어려운데 이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일단 문맥을 잘 봐야 합니다. 우선 8:3 끝에 “정하사”라는 단어는 “정결하게 하다”라는 단어가 아니라 “정죄하다(카타크리노)”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1절에 나오죠.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카타크리마)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죄의 정죄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3절에서 바울은 그러한 죄와 사망에서의 해방이 율법이 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이 악하기 때문에 무능한 것이 아니라 율법은 선하지만 우리의 육신이 죄악되기 때문에 무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육신은 인간의 죄악된 본성과 더불어서 그 죄된 본성에 절어있는 물리적인 몸까지 포함하는 “죄인으로서 인간성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죄악된 인성을 취하신 것이 아니라, 그 인성의 모양만 취하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모양’이 핵심단어입니다. 즉 예수님은 죄 빼고 우리와 똑같이 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대신 육신의 죄를 담당하셔서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성육신에 대해서 빌립보서는 종의 형체를 취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육신에서 핵심은 탄생이 아니라 비하입니다. 영광 가운데 계셨던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셔서 종이 되셨습니다. 계속해서 벨기에 신앙고백서 내용을 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람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복된 동정녀 마리아의 모태에서 잉태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죄 없으심을 언급할 때는 반드시 동정녀 마리아 탄생과 성령의 역사를 함께 언급해야 합니다. 둘 중에 하나만 말하면 예수님의 성육신은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먼저 동정녀 탄생이 아니라 요셉과 마리아가 성관계를 맺어서 자연적으로 아이가 생긴 것이라면 그것은 그저 요셉의 아들이지 하나님의 아들이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아들이면 원죄가 있는 것입니다. 소요리문답 16문에 보면 “아담으로부터 보통 생육법으로 출생하는 사람은 모두 그 안에서 범죄하였으며 그의 첫 범죄 안에서 그와 함께 타락하였습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보통생육법으로 출생하시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원죄에 참여하지 않은 둘째 아담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이기 때문에 아담의 후손으로 오시면 안 되고,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즉 남자 없이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셔야만 합니다. 

물론 마리아도 따지고 보면 아담의 후손이고 원죄가 있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자체만으로 예수님의 죄 없음을 증명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처녀 마리아 출생은 예수님이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임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지 그 이상의 의미를 말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죄 없이 태어나신 것은 결국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사역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몸에서 수태되실 때, 성령님이 역사하셔여 어떠한 죄의 오염도 없이 잉태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마리아에게서 인성을 취하셨으나 죄는 하나도 없으신 것입니다. 계속해서 벨기에 신앙고백서 내용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인간의 육신만 취하신 것이 아니라 참 사람이 되기 위하여 참된 인간의 영혼도 취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육신만 범죄하여 타락한 것이 아니라 영혼도 타락하였으므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과 영혼 양쪽을 다 구원하시기 위해서 몸과 영혼의 두 면을 모두 취해야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몸과 영혼을 모두 취하셨습니다. 어떤 이단처럼 로고스이신 영이 사람의 몸만을 취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취하지 않은 것은 구속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몸과 영혼이 다 죄 아래 있고 사망아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 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성전체를 다 취하신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그 다음 문장을 보시면...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의 어머니로부터 인간의 육체를 취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재세례파 이단에 반대하여,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녀들의 혈육에 함께 속하셨음을 고백합니다(히2:14).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허리에서 나신 자요(행2:30),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나신 자며(롬1:3), 동정녀 마리아의 태의 열매요(눅1:42), 여인에게서 나셨고(갈4:4), 다윗의 가지시며(렘33:15), 이새의 줄기에서 나신 싹이시요(사11:1), 유다로 좇아 나셨고(히7:14), 육신으로는 유대인의 자손이시며(롬9:5), 성자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과 연관되시므로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면에 있어서 형제들과 같이 되셨으나 죄는 없으십니다(히2:16-17; 4:15).

재세례파는 예수님께서 마리아로부터 인성을 취하셨다는 것을 부정합니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예수님께서 영원 전부터 인성을 스스로 취하셨고, 그의 육체를 하늘로부터 가져와서 물이 수로를 지나가듯이 단지 마리아를 통로로 삼아 지나갔을 뿐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마리아로부터 인성을 취하셨다고 말하면 예수님이 죄인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육체는 죄 있는 우리의 육체와는 다른 육체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생각입니다. 예수님을 자꾸 뭔가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우리 안에 있는데 그렇게 되면 될수록 우리는 중보자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 빼고 우리와 전적으로 동일하신 사람으로서 참된 중보자이십니다. 

“(14)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 (17)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18)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4,17-18)
“(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여기 보면 예수님은 우리와 한 혈육이 되셨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무슨 속임수나 마술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뼛속까지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실 수 있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임을 분명히 가르쳐줍니다. 즉 예수님도 사람으로서 가지는 자연스러운 욕구, 곧 식욕, 수면욕, 성욕 등을 우리와 동일하게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도 뼛속까지 사람이시기 때문에 40일 굶주리시면 뭐라도 주어먹고 싶은 강력한 식욕을 느끼시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사단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이 되어 떡이 되게 하라”라고 시험했을 때, 그 시험은 예수님에게 매우 강력한 시험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 욕구에 휘둘리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욕구를 하나님의 법과 질서 아래 완전히 복종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죄가 없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 강력한 시험을 경험해보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고 위로하실 때 우리가 진정으로 큰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큰 사람이 고아원에 가서 암만 진심을 담아 천사의 말로 위로해도 고아들은 위로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고아로 큰 사람이 “나도 여러분과 같은 고아였습니다.” 한 마디만 해도 고아들은 그 말에 큰 위로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신 그분이 우리와 똑같은 처지에 계셔보았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를 위로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동정하실 때, 우리는 그분 앞에 큰 위로를 받고, 그분께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혈육에 함께 속하셔서 죄 빼고 우리와 전적으로 동일하게 되신 것은 우리를 위한 자비롭고 충성스러운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자비와 긍휼의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사단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릇된 인상을 갖도록 애를 씁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와 뭔가 다른 분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죄 짓는 우리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정의로 무장하고 우리를 억압하는 가장 엄한 재판관의 모습으로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우리 양심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그리스도께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미 죄가 너무 많다는 두려움을 품게 하여, 하나님을 모독하고 더 많은 죄를 짓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탄에게 손발이 결박당한 것처럼 되어 감히 그리스도께 나아가지도 못하고 질식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확실히 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기만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릇된 그리스도 관을 다 버리고, 성경의 증거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분은 냉정하고 엄중한 재판관이 아니라 (그분의 공생애에서 보는 것처럼) 자비와 긍휼의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향한 자비와 긍휼과 인자로 가득 찬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남편이시고 목자이시고 머리이십니다. 날마다 눈물로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참된 남편은 아내가 많은 연약함과 죄와 비참한 처지에 빠져 있을 때, 이해할 수 없다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불쌍히 여기기 마련입니다. 머리는 자신의 육체의 일부가 병에 걸렸을 때, 함께 아파하며 그 병을 고치기 위해 모든 보살핌과 배려와 치료를 강구하게 됩니다. 목자는 양 한 마리를 잃어버렸을 때, 99마리는 들에 두고 그 한 마리를 찾으려고 온 사방을 헤매고 다닙니다. 이것이 참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향한 이런 긍휼의 마음 때문에, 잃어버린 우리를 찾으시기 위해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동일한 처지에서 시험과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의 긍휼과 사랑을 의심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긍휼과 사랑 앞에 우리의 마음이 녹아내림을 받아 회개하며 기꺼이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이러한 성육신의 은혜를 임마누엘의 은혜라고 표현하면서 마무리 합니다.

이와 같이 그분은 진실로 우리의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 되십니다(마1:23).

사실 온전히 순결하시고 의인이신 예수님이 더러운 죄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 거하신다는 것 자체가 예수님께는 엄청난 고통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을 피해 산이나 사막으로 가셔서 홀로 거하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죄인들이 있는 곳으로 스스로 나아가셔서 세리와 창기들을 찾으시고 만나주시고 그들을 구원해주시고 그들과 함께 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형벌 받으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런 임마누엘의 은혜를 우리가 성탄절에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날마다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우리를 찾으시기 위해 참 사람이 되신... 그래서 자비롭고 충성스러운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깊이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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