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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제20조
문답내용 제 20 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
The Justice and Mercy of God in Christ

우리는 완전히 자비로우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사, 그로 우리의 불순종의 책임을 대신 지게 하시고 죄의 대가로서 받는 가장 쓰라린 고통과 죽음을 맛보도록 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에게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담당케 하심으로써 그의 공의를 나타내셨으며, 죄를 범하여 멸망 받아 마땅한 우리에게는 당신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쏟아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완전한 사랑으로 당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죽도록 내어주셨고, 그를 통하여 우리가 불멸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의롭다 칭해 주시기 위하여 그분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강설날짜 2015-05-10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0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

우리가 지난주까지 배운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면서 죄와 비참함 가운데서 스스로를 파멸로 내던지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친히 찾아오셔서 위로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성자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구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그분이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시면서 한 인격이심을 배웠습니다. 오늘과 다음 주는 그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었는지 배워보겠습니다. 20조 내용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제 20 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
The Justice and Mercy of God in Christ

우리는 완전히 자비로우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사, 그로 우리의 불순종의 책임을 대신 지게 하시고 죄의 대가로서 받는 가장 쓰라린 고통과 죽음을 맛보도록 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에게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담당케 하심으로써 그의 공의를 나타내셨으며, 죄를 범하여 멸망 받아 마땅한 우리에게는 당신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쏟아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완전한 사랑으로 당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죽도록 내어주셨고, 그를 통하여 우리가 불멸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의롭다 칭해 주시기 위하여 그분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자비로우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이 완전히 공의로우시다는 말은 인생들에게 법을 명하시고, 법을 순종하면 상을 주시지만, 법을 어기고 하나님께 반역하면, 그 죄를 간과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법대로 심판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모든 인생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을 반역하였습니다. 따라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그 죄를 간과하시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보응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한 자비로우시기 때문에 그 진노와 형벌을 멸망 받아 마땅한 우리에게 쏟아 부으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아들에게 쏟아 부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택자들에게 값없는 죄사함과 구원, 영생을 허락하여주시는 것입니다. 

“(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26)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5-26)

율법의 저주를 자기 아들에게 쏟아 부으시는 것이 바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율법외의 하나님의 한 의”가 바로 이것입니다. 앞에 21절을 보시면...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롬 3:21)

이 구절의 원어를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이제는 그러나 율법 밖에서(없이)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났다.” 

즉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할 자가 없고 도리어 죄를 깨닫게 할 뿐이기 때문에 율법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율법 밖에서! 율법 없이!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고 또 우리가 의롭게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이 그리스도에게 내려지고,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의로 삼아주셔서, 하나님의 공의도 실현되고, 우리도 의롭게 되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율법 밖에서의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벨기에 신앙고백서 내용을 보시면...

그로 우리의 불순종의 책임을 대신 지게 하시고 죄의 대가로서 받는 가장 쓰라린 고통과 죽음을 맛보도록 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우리의 모든 불순종의 책임을 대신 지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책을 짊어지셨습니다. 여기서 죄가 불순종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죄는 불순종입니다. 죄는 마땅히 하나님의 법에 순종해야 할 인간이 그 법을 어겨서 반역한 것을 의미합니다. 

최근 가짜 백수오 판매 때문에 홈쇼핑몰이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더욱이 가짜 백수오제품에 ‘이엽우피소’라는 식물이 검출되었는데, 이것은 사람 몸에 해로운 나무뿌리로서 식재료 사용이 금지된 작물입니다. 건강해지려고 비싼 돈 주고 건강식품 사먹은 것인데, 도리어 건강을 해치고 만 것입니다. 그것은 고객에게 사기를 쳐서 소비자들의 피 같은 돈을 도둑질한 것이나 다름없고, 더 나아가 소비자의 건강에 해를 끼쳤으니 살인행위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소비자들이 얼마나 분노했겠습니까? 온 나라가 지금 환불과 피해보상 요청으로 시끌벅적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자기 영광을 위해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땅히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의 명령에 순종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께 반역했습니다. 우리의 몸과 영혼이 하나님의 것인데, 그것을 그대로 도둑질해서 자기 것 인양 주인행세하면서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이 도둑질은 앞서 예를 든 돈 몇 푼의 도둑질이 아닙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데, 그런 무한한 가치를 지닌 영혼을 하나님으로부터 도둑질한 것입니다. 그런데 도둑질만 한 것이 아니죠. 그 도둑질한 영혼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으면서 하나님께 피해를 입혀드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들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분노하시고 진노하시는 것입니까? 환불과 피해보상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 액수가 1만달란트입니다. 이 무한한 죄책을 우리는 갚을 수가 없죠. 그러니깐 영원한 지옥에서 형벌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과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정의의 원칙을 반드시 실현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갚을 수 없어서 비참하게 된 우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겨주셔서 값없이 1만달란트를 탕감해주셨습니다. 어떻게 탕감해주셨습니다. 이 무한한 죄책을 자기 아들로 하여금 대신 지불하게 하여서 탕감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단번의 죽음으로 갚으시는데, 그 단번의 죽음으로 모든 인생들의 무한한 지옥형벌을 다 갚아내야 하기 때문에, 벨기에 신앙고백서 표현대로 “죄의 대가로서 받는 가장 쓰라린 고통과 죽음을 맛보신” 것입니다. 그냥 교수형에 처해진 것이 아닙니다. 목을 맨다든지, 목을 자른다든지, 전기에 감전시켜 죽인다든지 하는 것은 다 사형수의 인권을 고려한 처형방법입니다. 짧은 시간동안만 죽음의 고통을 맛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반죽음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이렇게 곱게 죽을 사형수의 인권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없는 가장 잔인한 처형방법입니다. 고문하고, 때리고, 활딱 벗겨서 나무에 매달아 수치를 당하게 하고, 엄청난 고통과 수치 속에서 햇빛과 추위 속에서 서서히 말려 죽도록 하는 것이 십자가 처형입니다. 참으로 인간이 고안해 낸 가장 잔인한 처형방법입니다.

거기다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영혼에 우리의 모든 죄를 향한 무한한 진노와 분을 하나도 남김없이 마음껏 쏟아 부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영혼이 그 진노에 완전히 짓이겨짐을 당하셨습니다. 그 영적인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버리는 무한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탄식하셨는데, 예수님은 이 한 마디로 십자가에서 당하는 무한한 지옥의 고통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독생자라도 우리 죄를 뒤집어썼을 때는 무한한 분노로 가장 잔인하게 짓밟아 죽여 버리는 분이 바로 공의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서 얼마나 철두철미하시고 잔인하게 처벌하시는지를 분명하게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죄책감도 없이 수시로 짓는 마음과 말과 행동의 죄 때문에 예수님은 그렇게 가장 쓰라린 고통과 죽음으로 형벌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죄가 얼마나 악한 죄인지 깨닫게 되고, 또한 그 십자가에 나타난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 앞에서 감격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반응합니까? 우리에게 자신의 죄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는 자세... 그리고 이 감격과 감사가 우리 마음에 있습니까? 혹시 십자가를 바라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고 냉냉하지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모르는 것이고,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어떠한지... 다시 말해 하나님이 얼마나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신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을 모르면 사랑의 하나님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의의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암만 교회에서 사랑의 하나님 외치고, 은혜의 십자가 복음을 외쳐도 그 복음이 감사와 감격으로 와 닿지가 않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 십자가 복음을 마음껏 죄 짓는데 악용하는 것입니다. 즉 우상숭배적인 삶을 계속 살면서도 자기는 십자가 복음 때문에 죄사함 받았고 또 구원이 확실하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큰 착각입니다. 우상숭배 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자기가 만들어낸 가짜 하나님이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3)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4)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5)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6)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 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7)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8)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9)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10)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11)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 10:3-11)

사도바울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세례와 성찬 사건을 이야기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불평하고 간음하고 우상숭배 했을 때 수 천 수 만 명이 심판받아 죽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경고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약의 하나님은 죄 지으면 곧바로 심판하시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신약의 하나님은 항상 인자하게 용서하시고 품어주시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으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구약에서 자기 백성이라도 우상숭배하면 진노하여 즉시로 심판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지금 섬기고 있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이스라엘처럼 우상숭배 하여 심판을 자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이야기가 우리가 예수 믿어도 죄 지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심판받는다는 것입니까? 아니죠. 절대로 아닙니다. 바울이 은혜의 복음을 포기하고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자고 말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교회 다녀도 지옥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례 받고 성찬에 참여해도 계속해서 우상숭배적인 삶을 살고 간음을 행하면 그 사람은 사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이고, 때문에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너희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고 너희도 이런 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라는 경고인 것입니다.

참된 성도는 이런 경고의 말씀들 앞에서 무엇을 배우고 깨닫습니까?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가 공의로우신 분이심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아버지의 공의로운 성품 앞에서 율법과 죄에 대해 날카로운 인식을 하게 되고, 따라서 두 가지 효과가 있게 되는데, 첫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말미암아 자신 안에 죄가 억제 되는 효과가 있게 됩니다(6절). 즉 율법을 어기고 죄짓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자는 율법에서 벗어났고 더 이상 형벌이 없으니 죄 짓는 것을 사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오해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율법에서 해방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성품에서 공의가 없어졌습니까? 아니죠. 여전히 우리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 1:17)

참된 신앙의 정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입니다. 우리가 죄 짓는다고 해서 형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말해서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재판장으로서 분노하시고 진노하시지는 않지만, 그러나 아버지로서 분노하시고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불의에 대해서 진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갖고서 자신의 행동거지를 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런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과 율법을 통해서 신자는 자신이 얼마나 악한 죄인이며, 그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탄식하며 애통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찾고 부르짖게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곧 하나님의 공의인데, 이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맨 처음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를 느끼며 탄식하지만,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써 이제는 그 동일한 하나님의 공의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안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바로 나의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예수님께 쏟아졌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깨닫습니까? 주님의 한없는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하고 멸망 받아야 하는데, 벌레 같은 날 위해 대신 못 박히신 예수님의 그 희생의 사랑과 섬김의 사랑, 용서의 사랑이 십자가를 통해서 내 마음에 물밀듯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 사랑 앞에서 마음이 녹아내리면서, 주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오는 말할 수 없는 위로와 은혜와 행복을 느끼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와 더불어서 죄 없으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자신의 지난날의 죄악된 삶에 대한 한없는 후회와 뉘우침... 그러면서 죄에 대한 한없는 미움과 혐오감이 있게 되어지고, 이제는 주님 위해 살리라는 새로운 다짐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과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회심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날마다 있어져야 하는 회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근본 죄악 되어서 수시로 자기 의를 붙잡으면서 십자가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것처럼 교만하게 행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계속해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율법의 가르침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서 날마다 선명하고 날카로운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비참한 죄인임을 깨닫고 무엇보다도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준엄한 공의를 깨닫고 또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사랑을 깊이 깨달아서 (회심해서) 단 하루라도 십자가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알고 십자가만 붙들고 십자가만 자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짓는 수많은 죄들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가장 쓰라린 고통과 죽음을 맛보셨음을 기억하고, 죄 짓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며 죄와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참으로 십자가에 나타난 공의와 사랑을 깨닫는 것만이 복음을 제대로 깨달은 것이고, 그렇게 복음을 진정으로 깨달을 때만 우리의 예배가 바뀌고, 우리의 마음이 바뀌고, 우리의 삶이 바뀝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늘 기억해서 날마다 십자가만을 깊이 묵상하고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 모든 한결지체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계속해서 그 다음 문장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에게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담당케 하심으로써 그의 공의를 나타내셨으며, 죄를 범하여 멸망 받아 마땅한 우리에게는 당신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쏟아 부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은혜이며 사랑입니다.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진노와 형벌을 쏟아 부으시고, 범죄하여 멸망 받아 마땅한 우리에게는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쏟아 부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루터가 말하는 거룩한 교환입니다. 죄는 예수에게로, 의는 우리에게로... 그래서 형벌은 그리스도에게 쏟아 부으시고 모든 축복과 은혜는 우리에게 쏟아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적당히 맛만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막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459장에 보면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님의 은혜가 느껴지십니까? 사실 잘 못 느끼고 살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신자라면 누구나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근본 십자가를 싫어하는 죄악된 본성이 있기 때문이고, 또 사단마귀가 계속해서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도 그의 일기를 보면 자주 실의와 낙담과 영적인 방황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신자는 계속 실의와 낙담에 빠져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어 성령의 부어주시는 은혜를 또한 자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의와 낙담에 빠졌다가 다시 회복되어 충만한 은혜가운데 거하다가...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참된 성도라면 다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너무 오랫동안 영적 어두움에 거하고, 은혜의 쏟아 부어짐은 거의 희박하게 경험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악하고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의 쏟아 부어짐을 말씀과 기도라는 채널을 통해서 주시기로 약속하셨는데, 우리가 경건의 의무를 게을리 함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누리며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복음에 대한 무지 때문에 사단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사단 마귀가 우리를 어떻게 공격합니까? 우리가 이미 죄를 너무 많이 지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참으시는데 한계가 왔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면서 사단 마귀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여주되, 정의로 무장하고 우리를 억압하는 가장 엄한 재판관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망이 없으니 자포자기하여 하나님을 모독하고 더 많이 죄를 짓도록 만들어 버는 것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이러한 거짓된 유혹에 속아 넘어가서 사탄에게 손발이 결박당하여 양심의 가책 속에서 감히 그리스도께 나아가지도 못하고 질식 상태에 놓여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가장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신 분이시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온통 긍휼과 사랑과 인자와 자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재판장으로서 하나님의 진노와 분은 하나도 남김없이 예수님께 다 푸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의 진노와 분은 하나님의 마음 안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가 죄를 많이 지었다고 우리를 내치시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회개하고 돌이키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송사와 공격 앞에서 우리는 십자가를 제시하면서 (지금 내가 아무리 죄로 비참하다고 해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에게 반드시 상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하나님 만나기를 간절히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완전한 사랑으로 당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죽도록 내어주셨고, 그를 통하여 우리가 불멸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의롭다 칭해 주시기 위하여 그분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형제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지옥에 내던지셨습니다. 참으로 완전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십자가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랑으로 예수를 삼일 만에 다시 살리셨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로마서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죠.

“(25)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부활이 왜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인지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참으로 알고 깨달아서 우리 안에 십자가의 감격이 다시금 회복되는 은혜가 있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늘 감사하면서 찬양하면서,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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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12조 강설 - 하늘과 땅의 창조 file 제12조 최상범 740
67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신앙고백서) 제9조,제10조,제11조 강설 - 삼위일체(2) file 제9-11조 최상범 1571
66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직 신앙고백서) 강설 제8조- 삼위일체 file 제8조 최상범 753
65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강설 제6조, 제7조 - 성경의 충족성 file 제6,7조 최상범 851
64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3조, 제4조 강설 - 정경 file 제4,5조 최상범 785
63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2조, 제3조 강설 - 특별계시와 성경 file 제2조 최상범 983
62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1조 강설 - 하나님의 속성 file 제1조 최상범 2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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