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리문답
2017.09.06 08:39

2016년 소요리문답 공부(제18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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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소요리문답 제18문

# 2016년 소요리문답 공부(제18문)

 

문: 사람이 타락한 지위에서 죄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답: 사람이 타락한 지위에서 죄되는 것은 아담의 첫 범죄의 죄책(罪責)과 원시의(原始義)가 없는 것과 온 성품이 부패한 것인데, 이것을 보통 원죄라 하는 것이요, 아울러 이 죄로 말미암아 나오는 모든 자범죄(自犯罪)입니다.

 

제18문에서는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현재 가지고 있는 죄를 묻는 질문입니다.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현재 가지고 있는 죄가 무엇인가 할 때 크게 둘로 나누어서 말했습니다. 그것은 ‘원죄와 자범죄’입니다. 먼저, 원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오늘 제18문에서는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로는, 아담의 첫 범죄의 죄책 즉 모든 사람이 아담의 범죄에 함께 범죄를 해서 유죄하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 아담의 죄책이 있습니다. 둘째로는, 원시의가 없는 것, 곧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에 소유하였던 의, 그 의로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맨 처음에 창조했을 때는 조금도 흠이 없었습니다. 그릇된 것이 없고 아주 바른 성품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범죄한 후에 곧 타락한 후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온 성품이 부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통틀어서 원죄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죄를 원죄와 자범죄 둘로 나누었을 때에 원죄에 이 세 가지를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해서 죄인이 되고 또 전에 의로웠던 것이 이제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창세기 2장까지에서는 아주 의로운 사람으로 씌어 있었는데 3장에 보면, 범죄한 후에는 아담에게서 그 의로움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성품이 부패해져 버렸습니다. 우리가 창세기 3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아담이 정말 부패했구나’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에 보면 자기를 부끄러워하고 하나님 앞에 떳떳이 나오지 못하고 숨었습니다. 그와 같이 세상에 있는 사람마다 다 그런 상태에 떨어졌습니다. 죄인이 됐고, 원시의가 없어졌고, 그리고 성품이 부패하게 됐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원죄’라고 합니다. 로마서 5:2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으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여기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후에 죄를 지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곧 로마서 5:12절에서 말하는 죄는 자범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함께 아담 안에서 아담이 우리 모두를 대표해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가 범죄한 거기에 우리도 함께 범죄를 한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원죄라는 말은 성경에는 없습니다. 신학상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자세히 잘 연구한 결과 사람에게는 원죄가 있다, 자범죄도 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 낸 말입니다.

 

그러면 왜 신학에서 이 죄를 가리켜서 원죄라고 했습니까? 첫째, 인류의 원뿌리에서부터 나온 죄이기 때문에 원죄입니다. 둘째, 사람이 태어난 뒤에 이 세상에 있는 죄악을 보고 배워서 자기도 그것을 흉내내고 자기도 그 짓을 하는 것이 아니고 날 때 타고나니까 그래서 타고난 죄라, 원래부터 속에 있었던 죄라 해서 ‘원죄’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나를 지으실 때 벌써 내가 죄인이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원래 지음을 받을 때는 의롭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 타락 때문에 세상에 나오는 모든 사람은 출생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 이 죄가 자기 스스로 짓는 자범죄라고 하는 그 죄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원죄라고 합니다. 이상의 세 가지 이유로 이것을 원죄라고 부릅니다. 이 원죄를 셋으로 표현했는데 그 내용을 잘 살펴보면 둘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지금 금방 생각한 것 같이 ‘아담의 첫 범죄의 죄책과 원시의가 없는 것, 온 성품이 부패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가리켜서 보통 원죄라고 말했는데, 아담과 함께 유죄한 것(우리가 죄인으로 태어납니다)과 그리고 또 성품이 부패했다 하는 이 둘로 표시할 수 있습니다. 원시의가 없다는 것은 소극적인 표현이고, 성품이 부패했다는 것은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사람의 성품이 원시의가 없고 부패했다’라고 하나로 묶어서 표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죄하며 동시에 성품이 부패했다’라고 둘로 표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죄책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죄히다’라는 말은 영어로 ‘guilt’라고 하는데, 죄책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유죄하다, 죄인이다, 죄책이 있다’ 하는 말을 우리가 뭉뚱그려서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데, 좀더 자세히 그 내용을 살펴볼 때에 둘로 나누어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책치적 죄상’입니다. 좀 어려운 말인데, 책임이라는 그 책(責), 죄책이라 할 때 그 책(責)자, 책치적 죄상이라, 이것을 신학상으로 ‘레아투스 쿨파에(reatus culpae)’라고 합니다. 책치적 죄상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하면 어떤 행동이나 상태를 도덕적으로 평가할 때에 그것이 ‘과오였다, 잘못했다’ 하는 뜻입니다. 잘못했다고 할 만한 것, 잘못에 대한 책임을 느낄만한 것, 죄를 안 지은 사람은 책임을 안 느끼지만 죄를 지은 사람은 ‘아, 이거 잘못했구나!’ 책임을 느낄 만한 것에 대해서 그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책치적 죄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혹은 다른 말로 하면 ‘고유적 가책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유적 가책상’.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것을 마음으로 생각할 때에 가책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죄의 면을 특별히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책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 하는 점에서는 우리는 영원히 죄인인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대신 짊어져서 면죄시킬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한번 역사에 그런 일이 생기면 그것을 어떻게 씻어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런 죄책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도 죄를 지었다고 하는 역사는 그대로 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특별히 ‘책치적 죄상’ 또는 ‘고유적 가책상’이라 하는 말을 붙여서 그 죄책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또한 ‘벌치적 죄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 죄책을 나누어서 ‘벌치적 죄상’이라고 표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레아투스 포에나에(reatus poenae)’라고 라틴어로 말하는데, 이것은 죄를 지었으므로 형벌 받을 만하다 하는 것입니다. 곧 형벌 받을 만한 죄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생각했던 이 ‘고유적 가책상’이라는 것은 형벌이라는 개념을 떠나서 죄우간에 죄를 지었으니까 가책이 가는 그점을 표시한 것이고, 이 ‘벌치적 죄상’이라는 것은 가책을 받을 만한 죄이니까 거기에는 마땅히 하나님의 형벌이 따른다, 그래서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곧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의미가 죄책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둘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형벌을 받았다 하는 것은 이런 의미의 우리 죄책을 짊어지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을 벌을 예수께서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을 벌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는 그 형벌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형벌을 다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중으로 다시 죄의 형벌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죄책을 면해 주셨다고 할 때에는 이런 의미에서 면죄해 주신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한 그 책치적 죄상이라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졌으면 영원히 내가 죄인인 것입니다. 그러나 형벌을 받을 만한 죄를 져서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리스도께서 그 형벌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에 내게서 그 죄의 책임이 면죄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하나님께서 거기에 대해서 진노하시거나 책임을 물어서 형벌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죄의 책임이라고 할 때에는 이러한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두 가지 의미에서 우리는 죄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온 성품이 부패했습니다. 이 ‘부패했다’는 말은 영어로 pollution이라고 하는데, 죄책을 가졌다는 것은 그 사람이 죄인이라는 신분을 말하는 것이고, 이것은 상태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상태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 할 때 풍성이 부패하여 부패한 상태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품성이 부패했다고 하는 것은 첫째로는 전적인 부패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부분만 부패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부패했다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total depravity라고 합니다. 사람의 의지나 지식이나 정서가 다 하나님의 지으신 그 건전한 상태에서 떨어져서 악하게 변질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원래는 훌륭하게 지어졌는데 이면 저면이 변질되어서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상태에 이르지 못했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전하시는 수준에서 뚝 떨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전적인 부패에 대해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잘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이 전적으로 부패했다고 할 때 우리는 한 가지 유의해야할 점이 있습니다. 사람이 전적으로 부패했다는 말은 부패할 대로 다 부패해서 사람의 모습은 전혀 없고, 곧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의 원래의 모습은 전혀 없고 악마같이 되었다 그런 말은 아닙니다. 마귀는 회복 불가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악한 자(ό πονηός)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는 그렇게 된 것을 가리켜서 전적으로 부패했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곧 마귀와 같이 된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전적으로 부패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원래 상태로 있어야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람으로서도 자기 기능을 발휘하고 창조 받은 본래의 뜻을 잘 발휘하고 살텐데 그런 상태에서 떨어져서 도무지 이제는 창조의 뜻을 나타낼 수가 없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전적 부패’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성품이 부패했다’고 할 때는, 둘째로 ‘전적 무기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영어로 total inability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를 능히 행할 능력이 없게 됐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7절은 이것을 잘 가르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또한 할 수도 없음이라.” 사람이 마땅히 창조주 하나님의 법에 잘 굴복하고 순종하고 살아야 할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또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결심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느냐 하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 성품이 부패했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기능 면에서 그럴 기능이 없습니다. 마음과 의지만 없는 것이 아니라 힘이 없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전적 무능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우리가 ‘원죄’라고 할 때는 우리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원래 죄책이 있다, 유죄하다, 그리고 성품이 완전히 부패했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원죄입니다. 이 뿐 아니라 사람에게는 자범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범죄란 세상에 태어난 다음에 또한 자기가 스스로 죄를 범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얼마든지 보는 죄들입니다. 신문과 텔레비전에서도 보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로 당하는 죄들입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죄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9-21절에도 기록해 놓았습니다. 마태복음 15:19절에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런 것들이 자범죄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난 후에 배워서 하는 것들이 자범죄입니다. 또 야고보서 1:14-15절에 보면 이런 자범죄가 어떻게 해서 생기는가 하는 것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사람들이 자범죄에 빠지는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범죄에 대해서는 대개들 인정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환경과 다른 사람을 탓합니다. 그러나 죄에 대한 참된 인식은 하나님 앞에서 가지는 것입니다. 다윗이 회개할 때 어디서 출발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였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죄를 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발견할 때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할 수 있고 회개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요리문답 18문에서는 원죄와 자범죄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여기에서 가르치는 바 이런 내용을 잘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잘 받아들여서 구원을 얻으려면 이 죄에 대한 올바른 지식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죄를 바로 알 때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겸손히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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