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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트신조
2017.09.18 06:50

2017년 도르트 신조(제1장 오류 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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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도르트 신조 제1장 오류 논박

2017년 도르트 신조 공부(10)

 

제1장. 도르트 신조의 첫 번째 교리

- 하나님의 선택(選擇)과 유기(遺棄) -

 

* 오류에 대한 논박

 

<이상에서 진술한 선택과 유기에 대한 성경적 신앙고백을 기초로 하여 도르트 총회에서는 다음의 잘못된 주장에 대한 답변과 함께 이러한 주장을 배격하였습니다.>

 

1. 잘못된 주장: 믿기를 원하고 또한 이 믿음 안에서 인내하며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은 전체적이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도록 할 뿐, 그 외의 주장은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답변: 이와 같은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을 명백하게 부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영원 전부터 특정한 수를 택하셔서 때가 이르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얻게 하시고, 또한 믿음에 대한 지속적인 인내를 갖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다음의 말씀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17:6절을 보면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고 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13:48절을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했습니다. 또 에베소서 1:4절을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고 했습니다.

 

# 해설 :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믿음 가운데 견인하는 자와 순종의 믿음을 가진 자를 구원하시는 것은 철저히 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이는 이미 7항과 8항에서 언급한 사항입니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부분만을 말하고 전체를 말하지 않습니다. 즉 그 믿음이 어떻게 해서 발생하였으며, 그 믿음으로 어떻게 견인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알미니안주의자들의 견해는 개혁신학과 완전히 다릅니다. 개혁신학자들은 성경의 유효한 부르심에 의해 믿음이 발생되고, 그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고 설명하지만,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그 믿음이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적인 이성으로 일어나며, 믿음을 의지의 행위로 해석합니다. 또한 개혁신학자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서 그리스도의 은덕에 참여함으로 의롭게 되어 성화가 일어나고 견인이 일어난다고 설명하지만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의지의 행위인 믿음으로 자신을 견인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짧은 문장을 언급하며 자신들의 주장이 성경적이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내용에 대해 보다 자세히 들어가면 성경에서 떠난 가르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선택의 은혜로 성령의 유효한 역사가 일어나고, 그 유효한 역사로 인해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집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해 성도의 견인이 일어납니다. 즉,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견인은 오직 은혜로 주어집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며, 성도의 견인 역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덕에 참여한 결과인 것입니다. 따라서 알미니안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내가 믿는 행위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2. 잘못된 주장: 영생에 이르도록 하는 하나님의 선택에는 두 가지의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적이고 불명확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특별하고 분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은 전자에 의하면 미결정적이고 조건적이며, 또한 후자에 의하면 완전하고 취소될 수 없으며 결정적이고 절대적입니다. 전자는 믿음에 이르는 택함을 말하고 후자는 구원에 이르는 택함을 말하는데, 따라서 구원에 이르는 결정적인 선택이 아니고서도 전자의 믿음에 이르는 택함은 가능하며, 이에 기초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함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답변: 이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무관한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상상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은 선택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시키며 구원의 보배로운 줄을 끊어버리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 합니다. 로마서 8:30절을 보면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 해설 :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선택을 일반 선택과 특별 선택으로 나눕니다. 일반 선택은 불완전하고 취소 될 수 있으며, 미결정적이고 조건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특별 선택은 제한적이며 결정적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일반 선택은 믿을 것을 아시고 예정하셔서 믿게 되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한자들에게 해당됩니다. 그리고 특별 선택은 끝까지 자신을 견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선택을 일반 선택과 특별 선택으로 나누는 이유는 자신의 믿음을 끝까지 견인하는지의 여부를 마지막에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견인하지 못하면 일반 선택, 끝까지 견인하면 특별 선택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반 선택에서는 의롭게 하는 믿음으로의 선택이며, 특별 선택은 구원에 이르는 특별한 선택입니다. 즉 자신을 끝까지 견인하는 자는 특별 선택에 해당되고, 끝까지 견인하지 못하는 자는 일반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이렇게 선택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자신이 견인하는지의 여부를 확인하였습니다. 결국 구원의 최종성을 인간에게 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선택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일반 선택으로 끝나는 자는 중도에 타락하거나 자신을 견인하지 못한 경우인데, 이렇게 일반 선택과 특별 선택으로 나누어서 더욱 인간의 책임에 강조를 둡니다.

 

이와 같은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주장은 인간의 이성으로 만들어낸 고안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구원의 원인과 효과에 있어서 효과만을 가지고 그것도 그것을 구원의 선 요구사항으로 여겨 선택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선택하신 자에게 성령의 유효한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며, 그오 인해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서 그 은덕에 참여하게 하심으로 성도의 견인이 일어나게 하시는 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원인이 되어 나타나는 효과를 인간이 충족시켜야 할 구원의 조건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황금사슬이란 구원의 은혜가 중도에 변경되지 아니하며, 구속의 적용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분명하게 전개되어짐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유효한 부르심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은덕에 참여하게 되며, 그 은덕에 참여한 결과 칭의, 양자됨, 성화, 구원의 확신과 성도의 견인이 일어납니다. 따라서 원인과 결과가 서로 사슬이 묶여 있듯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이러한 황금사슬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있습니다.

 

3. 잘못된 주장: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하신 목적과 그 기쁘신 뜻대로 택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을 택하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히려 그들 자신이 가진 모든 가능한 조건들로부터 율법의 행위를 주시거나 또는 모든 사물의 질서로부터 믿음의 행위를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이것은 그들이 행하는 것들이 구원의 조건으로서는 불완전한 순종일 뿐만 아니라 아무런 값어치가 없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사 이러한 불완전하고 값어치 없는 것들을 완전한 순종으로 여겨주셔서 영생을 얻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간주해 주십니다.

 

답변: 이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며,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결국 아무런 조건 없이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무시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공로를 의지하여 구원을 얻게 되는 전적인 은혜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아무런 효력이 없는 무용한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은혜로서 베푸시는 칭의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사도의 다음과 같은 교훈에 비추어 볼 때 명백하게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9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 해설 :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조건적 선택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행위와 율법에 대한 순종을 조건으로 선택하셨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들은 이러한 믿음의 행위와 율법에 대한 순종이 완전한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부족하지만 은혜로 완전한 것으로 간주해서 그것을 조건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인간이 믿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며, 율법을 지키려해야지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오류의 가르침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아무리 거룩해지려고 애쓰고 하나님의 계명에 삶을 일치시키려 해도 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것이 조건이 된다면 인간은 결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자신의 부패와 영적무능력을 철저히 인정하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 마련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의로워질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불의를 가리기 위해 또한 그의 의를 덧입기 위해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는 의롭다 여김을 받을 만한 어떤 행위도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로 인한 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의로운 행위가 더러운 옷과 같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4:6절을 보면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더욱이 율법의 행위로 주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인생이 없습니다. 로마서 3:20절을 보면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더러움과 부족한 행위를 가지고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으며, 그것을 근거로 구원을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우리의 더러움과 불의를 덮을 수 있는 수단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불의를 덮고 우리를 받아주실 수 있는 은혜의 수단을 제공하셨는데, 곧 그리스도 예수십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 앞에서 완전히 순종하심으로 의를 획득하시고, 그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불의와 더러움을 철저히 인정하고 그리스도 안에 죄의 용서와 불의를 가릴 수 있는 의로움이 있음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 은덕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즉, 죄 용서함을 받고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은혜의 방식을 거부합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은덕에 초점을 두지 않고 인간의 행위에 초점을 두어 결국 오류에 빠지고 맙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칭의 교리에서 이탈하고 맙니다. 의를 덧입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로 의로워지려고 하기 때문에 결국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멀어졌습니다.

 

구원은 결코 우리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구원의 은혜를 깨닫는 자는 자신의 어떠한 행위로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함을 깨닫고, 오직 은혜로 하나님께서 받아주시기를 구합니다. 자신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닫고 은혜로 받아달라고 탄원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13절을 보면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때의 영적 상태는 상당히 겸손하며, 오직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은혜가 주어지기를 기다립니다. 이와 반대로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자신의 행위가 부족할지라도 행위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교만한 자를 만듭니다.

 

물론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믿음 다음에 행위가 없는 것을 염려하기 때문인데, 이것 역시 성경에서 말하는 선택 교리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9절은 선택의 실행인 부르심이 거룩한 부르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구원이 일어나게 하는 부르심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 성령은 우리의 영혼을 씻어 거룩하게 하십니다. 따라서 성령의 역사로 구원의 은혜를 찾고 구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령의 역사로 인해 믿음이 발생되고 그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잡게 되며, 성령의 역사로 거룩한 성질과 성향이 심령에 새겨졌기 때문에 마땅히 거룩함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행위 없이 구원받았다고 해서 구원 이후의 행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한 구원이 발생한 다음에는 거룩함을 추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목적은 구원하신 백성의 거룩한 삶입니다.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고백하면서도 죄 가운데 자신을 방치한다면 그에게는 진정한 구원의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6절을 보면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4. 잘못된 주장: 믿음에 이르도록 하는 선택을 받는데 에는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먼저 인간이 영생을 얻기에 합당한 올바른 본성과 또한 경건과 겸손과 온유한 성품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택은 이러한 성품들에 의존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답변: 초대교회 말엽의 이단이었던 펠라기우스의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에베소서 2:3-9절을 보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 해설 :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선택에 앞서서 요구되는 조건을 말합니다. 그중 이성을 포함하는 자연의 빛을 사용하라는 조건도 있습니다. 즉, 자연적인 이성을 가지고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경건해야 하며 겸손하고 온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소가 먼저 있어야 선택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서는 자연적인 성품으로 이러한 덕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덕은 오직 중생해야만 가능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4절을 보면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더욱이 자연적인 이성을 가지고는 그리스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타락 이후에 인간의 이성은 어두어졌으며, 어리석은 것으로 가득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1-23절을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심령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로마서 3:11절을 보면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라고 했습니다. 영적인 것을 이해할 수도 없으며, 그것을 택할 수도 없습니다. 로마서 8:7절을 보면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육신적인 것에 의존해 살아갈 뿐입니다. 또한 인간의 부패한 심령은 경건을 추구할 수도 없고 겸손하지도 않습니다. 에베소서 2:3-9절을 보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우리 인간은 육신의 정욕 가운데 살며,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도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경건의 덕이 선택의 선결조건이라고 주장합니다.

 

결국 그들이 가르치는 교리의 위험성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영혼을 깨우쳐서 영적으로 만드는 성령의 유효한 역사를 부정하는 것에 있습니다. 성령의 유효한 역사는 영적인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찾지도 않는 영혼을 성령께서 깨우쳐서 결국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의 유효한 부르심과 역사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 스스로 영적인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유효한 부르심은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해 적용됩니다. 성령의 유효한 역사는 죄인으로 죄를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알게 해서 결국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합니다. 사도들은 이를 성령의 거룩한 역사라고 말하였습니다. 육신적인 영혼을 영족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입니다. 성령의 유효한 역사가 있어야만 그리스도의 소중성과 필요성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구원은 삼위 하나님의 구속사역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삼위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속하는 놀라운 경륜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주장은 이러한 삼위 하나님의 구속의 사역을 평가 절하는 셈입니다.

 

5. 잘못된 주장: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은 먼저 불완전하고 완전히 결정이 되지 않은 상태로 택함을 받았다가 나중에 그에게서 예지된 믿음과 회심, 그리고 거룩함과 경건함 등이 실제로 생활 가운데 시작되었거나 얼마동안 지속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완전하고 결정적인 선택은 마침내 믿음과 회심, 그리고 거룩함과 경건함에 끝까지 이르도록 하는 그의 인내심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복음적인 가치를 가져다줍니다. 이러한 면에서 택함 받은 자가 택함을 받지 못한 자보다 더 귀중합니다. 왜냐하면 선택은 그 자신의 믿음과 회심, 거룩함과 경건함에 이르게 하는 인내심에 의해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이 믿음을 향한 순종과 또한 거룩함과 경건함, 그리고 성도의 끝없는 인내심은 변하지 않으며 거룩한 영광에 이르게 하는 선택의 열매가 아니라 오히려 선택을 위하여 요구되는 선행 조건입니다. 그런데 이 조건은 완전히 선택될 사람들에게 마땅히 나타나야할 것들인데, 만약 이러한 조건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거룩한 영광에 이르도록 하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선택은 결단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

 

답변: 이러한 주장은 모든 성경의 가르침과 모순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변함없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9:11절을 보면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하사”라고 했고, 사도행전 13:48절을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했으며, 에베소서 1:4절을 보면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5:16절을 보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했고, 로마서 11:6절을 보면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라고 했으며, 요한일서 4:10절을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라고 했습니다.

 

# 해설 :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미결정적인 선택은 하나님께서 칭의의 믿음이 있을 것을 미리 보시고 선택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칭의의 믿음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믿음이 이제 막 시작되었거나 혹은 어느 정도 지속하다가 중단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즉 믿음이 있을 것을 미리 아시고 선택하셨는데, 끝까지 견인하지 못하고 중단되는 경우를 칭의의 믿음까지의 선택이라고 하며, 이것이 불안전하고 미결정적인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한편 구원의 믿음으로의 선택을 결정적인 선택이라고 부릅니다. 결정적인 선택은 끝까지 믿음으로 자신을 견인함으로써 구원에 이르는 선택을 의미합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이렇게 견인의 유무를 가지고 미결정적인 선택과 결정적인 선택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미결정적인 결정적인 선택 모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과 견인을 근거로 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경건과 거룩함이 선택의 열매와 효과가 아니라 조건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선택 이전에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이전에 인간이 이러한 경건과 덕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선택이 인간의 행위나 덕에 있지 않으며, 선택의 목적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택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는 역사로 실행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는 역사 혹은 성령의 유효한 역사로 인해 그 심령이 갱신되며, 갱신된 심령은 비로써 경건을 추구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의 갱신하는 역사 없이 인간이 자연적 상태에서 경건과 거룩함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오직 거듭나야만 경건과 거룩함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거듭남을 배제하고 인간 스스로 이룬 경건을 조건으로 선택된다는 것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6. 잘못된 주장: 택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른다는 것은 불변하는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이러한 작정하심에도 불구하고 택함을 받은 사람들 중의 얼마는 여전히 멸망 받을 수 있으며 또한 실제로 그러합니다.

 

답변: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을 변덕스러운 분으로 만들며, 또한 은혜로 택정함을 받은 성도를 향한 위로를 송두리째 빼앗는 불경건한 주장입니다. 또한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성경의 가르침과 모순됩니다. 마태복음 24:24절을 보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했고, 요한복음 6:39절을 보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라고 했으며, 로마서 8:30절을 보면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 해설 :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선택이 변경될 수 있으며, 선택된 자들 가운데 얼마는 멸망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구원의 최종성이 인간에게 있는데, 결국 인간은 변할 수 있기에 이러한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앞에서 본 것처럼 선택을 미결정적인 선택과 결정적인 선택으로 나누었던 것입니다. 신앙고백을 한 자들이 중도에 믿음을 포기하는 현상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오류는 그 신앙고백이 진정한 것인지 혹은 거짓인지를 분별하지 않고, 일단 신앙고백만 하면 그것을 진정한 것으로 여기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고백에서 떠나는 자들을, 선택이 변경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이러한 오류는 믿음의 정의에서부터 옵니다. 인간이 자연의 빛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된다고 하는 것을 믿음으로 보기 때문에, 이 믿음이 진정한 믿음인지 혹은 거짓 믿음이거나 일시적인 믿음인지에 대한 분별을 스스로 포기하였습니다. 사실 거짓된 위선자의 믿음을 가지고 있던 자가 신앙고백에서 떠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실제로 일어납니다. 이를 가지고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선택이 불변이 아니며, 하나님의 작정에도 불구하고 멸망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선택의 실행으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고 그리스도의 인도함을 계속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었으므로 계속 그의 은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선택의 실행인 유효한 부르심은 강력합니다. 그리고 부르심을 입은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그분의 다스림과 보호와 인도를 받습니다. 이를 앞부분에서 황금사슬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계속해서 은혜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의 효과가 연속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됩니다. 이 확신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행하신 은혜의 강력함으로부터 나옵니다. 따라서 진정한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자는 하나님의 선택의 능력을 찬양하는 한편, 선택이 변하지 않음을 확신합니다.

 

7. 잘못된 주장: 이 세상의 삶 가운데 성도에게는 스스로 확신할 만한 어떠한 열매나 자각도 있을 수 없습니다. 단지 위에서 말한 조건만 있을 뿐인데, 이 조건은 변할 수 있고 또한 불명확한 성격을 가집니다.

 

답변: 불확실한 확실성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그 말 자체에 이미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신앙적인 체험과도 위배되는데 성도는 구원받은 사실에 대한 확신과 이에 대한 분명한 의식으로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참조. 엡 1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누가복음 10:20절에서 제자들에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도 사탄의 사악한 권세에 대항하여 싸우는 성도들을 향하여 로마서 8:33절에서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확신 가운데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로마서 8:38-39절을 보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 해설 :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불변의 선택이 가져다주는 열매는 없다고 확언합니다. 그리고 선택의 주관적인 확신도 없다고 말합니다. 다만 확신은 변할 수 있는 불확실한 조건에 달려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에 의하면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선택과 구원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믿음, 경건, 성결을 은혜의 효과가 아니라 조건으로 말하는데 이러한 조건을 끝까지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더욱이 그들은 믿음의 선택과 견인의 선택으로 나누는데, 믿음의 선택인 경우 전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가 비결정적인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선택에 대한 확신은 이미 12항에서 다루었습니다. 즉, 선택의 열매로부터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택의 열매는 진정한 믿음과 어린 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죄에 대해서 슬퍼하고 싸우는 것이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것입니다. 선택이 실행되면 이러한 것은 당연한 효과로 나타나며 또한 인식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은혜의 정도에 따라 효과의 정도 또한 다르겠지만 선택의 효과는 분명합니다. 이러한 열매를 인식함으로써 불변의 선택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열매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열매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충성함과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셨기 때문에, 진정으로 선택이 실행되었다면 열매는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선택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마귀가 참소하여도 선택에 근거해 마귀의 고소를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8. 잘못된 주장: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 분의 의로우신 뜻을 행하심으로, 아담 안에서의 타락 때문에 어떤 사람을 죄와 저주의 보편적인 상태에 내버려 두시겠다고 결정하지 않으셨고, 또한 믿음과 회심을 위해 필수적인 은혜를 주심에 있어서 어떤 사람을 간과하시겠다고 결정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답변: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로마서 9:1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마태복음 13:11절을 보면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마태복음 11:25-26절을 보면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고 했습니다.

 

# 해설 :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유기 교리를 반대하였는데 이는 이미 15항에서 다루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담의 타락과 죄의 상태에 있도록 정하지 않으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부여하셔서 믿음과 회심할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유기의 결정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과 결정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끝까지 견인하지 않았다든가 끝까지 불신앙으로 일관해 왔다면 그는 구원받지 못하는 자인데, 그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내버려두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결국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가능성만을 제공하고 그 결정은 인간에게 두는 것으로 인간에게 구원의 최종성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무너뜨리는 주장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불충분함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선택과 유기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베푸실 자에게는 그들이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베푸십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나타냅니다. 반대로 은혜를 베푸시기를 허락하지 않은 자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알 수 없도록 하시며, 결국 그들은 자신의 죄악 가운데 멸망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유기를 통해 공의를 나타내고자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 자신이 기뻐하시는 뜻으로 실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내세워서 반대하거나 항의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높으신 지혜 속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선택과 유기에 대해 왈가불가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선택의 은혜가 부여된 자는 자신의 무가치함과 자격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택하신 그 은혜에 대해 감사해야 하며, 선택의 목적인 거룩함에 힘써야 합니다.

 

9. 잘못된 주장: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에게는 복음을 보내 주시지 않으시고, 어느 한 민족에게만 복음을 보내주신 것은 단지 그 분의 뜻의 선하신 기쁨 때문이 아니라 그 민족이 복음이 설교되지 않은 다른 민족보다 더 선하고 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답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 이런 오류를 부인합니다. 신명기 10:14-15절을 보면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1절을 보면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고 했습니다.

 

# 해설 :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복음적 가치가 있는 자와 있지 않는 자로 구별합니다. 그들은 자연의 빛을 사용하여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미리보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보내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복음을 보내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들의 주장 속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인간의 결정이 중요할 뿐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이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시기 위해서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이 그들이 다른 나라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향한 도구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보다 악한 지역인 벳새다와 두로와 시돈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벳새다가 더욱 악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기적으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복음전도는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에서 나옵니다. 세계 선교는 철저히 하나님의 구속사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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