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트신조
2018.03.01 09:38

2018년 도르트 신조 공부(제3장 4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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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도르트 신조 제3장 4항
강설날짜 2018-03-04

2018년 도르트 신조 공부(17)

 

제3장. 도르트 신조의 세 번째와 네 번째 교리

사람의 부패와 하나님께로의 회심, 그리고 그것이 일어나는 방식(2)

 

제 4항. 본성의 빛의 불충분성 - “자연의 빛의 무능함”

 

사람이 타락한 후에도 사람에게 본성의 빛이 희미하게 남아 있어서, 하나님에 대해, 자연 만물들에 대해, 그리고 명예로운 것과 수치스러운 것의 차이에 대해 어느 정도의 관념을 갖고 있으며, 덕성과 외적인 질서에 대해 어느 정도의 존중을 나타냅니다(롬 1:19-20; 2:14-15). 하지만 결코, 사람은 이 본성의 빛으로는 자연계의 문제와 사회적 문제에서조차도 바르게 사용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구원 지식과 참된 회심에 도저히 도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 본성의 빛이 무엇이든지 사람은 그 빛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완전히 오염시키고 있으며, 사람의 사악함으로 이 빛을 억제하고 있습니다(롬 1:18, 20). 그렇게 행하므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변명할 수 없게 만듭니다.

 

* 해설: 사람의 전적 타락(도르트신조 세 번째와 네 번째 교리 1-3항)의 교리에 초점을 맞춘 세 조항의 결론은 “성령님의 중생케 하시는 능력의 은혜가 없이는 타락한 사람 스스로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살폈습니다. 즉 타락의 결과로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께 받았던 모든 탁월한 선물들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1항에서 “... 이러한 타락한 은사들을 스스로 상실했고, 그로인해 그의 지성에 있어서 무지, 지독한 어두움, 허탄함, 판단의 완악함을, 그이 의지와 마음에 있어서 사악함, 반역, 완고함을, 그의 감정에 있어서 더러움을 스스로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2항에서 “아담의 모든 후손은 죄를 지니고 태어났다. ...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따라 악한 본성이 유전된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3항에서는 “모든 사람은 죄악 중에서 잉태되어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태어났다. ... 자기를 구원할 어떤 선도 행할 수 없고 악에 기울어지며 죄 가운데 죽어 있는 죄의 노예다. 사람은 중생케 하시는 성령의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께로 돌아오거나 그들의 타락한 본성을 개혁하거나, 스스로 개혁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6항에 보면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옛 경륜(시대)과 새 경륜(시대)에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메시아의 복음, 곧 화목의 사역을 통하여” 이 중생하게 하시는 능력을 행하신다고 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25주일의 고백을 보면 “(문) 이 믿음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답) 성령께로부터 나옵니다. 성령께서는 복음의 설교로 우리 마음에 믿음을 일으키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따라서 성령께서 사람을 중생하도록 역사하실 때 곧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으로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이러한 가르침에서 받는 우리의 적용은 ‘신자가 교회로 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기 위해 예배에 참여하는 중요성이 얼마나 특별하고, 심지어 흥분되고 즐거운 것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교회로 올 때에 능력 있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복음이 선포되고 그 복음을 통하여 성령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는 능력 있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12항에 보면 “성령의 이 중생하게 하시는 능력은 하나님께서 창조에서 행하신 일과 동일한 일과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나사로를 살리셨을 때에 행하신 일과 동일한 중요성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동시에 교회의 참된 복음 설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한 교회의 예배를 통한 복음 설교는 사람들을 중생하게 하고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하는데, 이런 일들은 우리가 성령의 사역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할 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하튼 제4항에서는 감사하게도 사람의 타락 후에도 “사람 안에 본성의 빛이 조금 남아 있고, 그것에 의해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자연 만물에 대해, 명예로운 것과 수치스러운 것 곧 선과 악의 차이점에 대해 약간의 개념을 가지고 있고, 도덕과 외적 질서에 대해 어느 정도나마 존중을 보여준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이러한 관점에서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전적 타락의 교리가 잘못이라고 하여, 사람은 단지 부분적으로 타락했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즉 그들은 전적인 타락을 받아들이지 않기에 ‘사람은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개혁주의 신앙의 입장에서는 이것(4항)을 가리켜서 “일반 은총(혹은 보편적 은혜)”의 측면으로 말합니다. 이 보편적 은혜는 죄인을 구원하는 은혜는 아니지만, 선인이나 악인 모두에게 주시는, 즉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적인 은총입니다. 따라서 일반 은총은 세상의 모든 학문과 예술, 그리고 자연 모든 영역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모든 인류가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각하지 않아야 할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일반 은총이 구원을 주시는 은혜나 방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개혁주의 신앙(교회)에서는 타락한 사람이 희미한 자연의 빛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일반 은총을 통해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단호히 거부합니다. 개혁신학자 코넬리우스 반틸(1895-1987)은 “일반 은총의 본질은 죄의 진행을 억제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일반 은총이 가지는 면 중 하나는 죄를 억제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구원에 이르는 지식을 주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희미한 자연의 빛(흔적)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알 수 있기에, 이러한 것들을 잘 선용하여 얼마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일반 은총 곧 하나님의 형상의 희미한 빛(흔적)을 인간의 자연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와 은혜의 상태로 들어가는 다리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자연적 능력으로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나머지를 행하실 것이다. 따라서 영적 생활의 원천은 사람 안에 있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교회에 가고, 성경을 잃고, 열심히 기도하면 걱정할 것이 별로 없다. 하나님께서는 하고자 하는 그 바람을 받으실 것이다. 그리고 이에 합당한 보상을 하실 것이다’라고 가르칩니다. 참으로 이런 생각은 알미니안주의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칼빈주의자들(개혁신앙) 가운데도 많이 남아 있음이 두려운 사실입니다.

 

도르트 신조 셋째와 넷째 교리 제4항은 “하나님의 형상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을 과대평가하지 말라는 것이요, 하지만 결코, 이 본성의 빛은 사람을 하나님께 대한 구원의 지식과 참된 회심(중생)으로 이끌지 못한다. 심지어 사람은 이 본성의 빛을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일들에조차 바르게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사도행전 28장에 보면 바울은 로마로 향하는 중에 난파를 당한 후에 생존하였고 당시 바울과 함께한 사람들이 멜리데 섬의 원주민들에게 따뜻한 환영을 받습니다. 사도행전 28:2절에 보면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큰 친절(선행)과 진심어린 사랑으로 바울의 일행을 대하였습니다.

 

오늘날 감사하게도 결코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많은 자발적인 선행과 사랑과 친절과 예의 바른 삶의 모습들을 봅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을 볼 때에 전적타락의 교리를 부인하기에 충분한 이유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사랑과 특별한 동정을 보여준 멜리데 섬의 원주민들이 우상숭배에 빠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도르트 신조 세 번째와 네 번째 교리 제4항이 가르치는 바입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예의 바르고 친절하고 선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4항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지식과 참된 회개(회심)에 이를 때에 이런 예의바름과 선한 행동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타락한 사람은 명예로운 것과 수치스러운 것에 관하여, 혹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이 빠져 있는 신에 관한 개념이 어떠하든지 간에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19-23절을 보면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일반 은총으로서는 결코 구원의 지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롬 1: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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