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트신조
2018.06.30 11:20

2018년 도르트 신조 공부(제4장 8-9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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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도르트 신조 제4장 8-9항
강설날짜 2018-07-01

2018년 도르트 신조 공부(30)

 

제4장. 도르트 신조의 다섯 번째 교리

- 성도의 견인(5) -

 

제8항.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는 보존된다.

 

택자들이 믿음과 은혜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도 않고, 타락에 머물러 마침내 멸망되지도 않는 것은 그들 자신의 공로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총으로 말미암습니다. 인간 편에서 본다면, 믿음과 은혜로부터 떠나거나 타락하거나 멸망되는 일은 쉽게 일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틀림없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이 일은 도저히 발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경륜은 변할 수 없고, 그분의 약속은 실패할 수 없으며, 그분의 작정에 따른 부르심은 철회될 수 없고,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기도와 보존하심은 폐기될 수 없으며, 성령의 인치심은 결코 없어지거나 떨어져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해설 : 참된 성도라면 성도의 견인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과 은혜에서 떨어져 죄를 범함에도 불구하고 멸망당하지 않고 구원 된 것은 자신의 공로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저주시는 은총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택함 받은 주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변치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의 근거 또한 우리에게 있지 않고 삼위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진정한 신자의 견인은 선택의 열매가 아니라 사람이 언약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 도르트 신조는 견인의 은혜가 오직 하나님의 거저주시는 은총에 의한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성도의 견인은 중생한 자로 하여금 완전히 은혜와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며, 은혜에서 떨어진 상태가 지속적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수단이었던 말씀을 다시 살려서 갱신케 하시기 때문에 결코 은혜에서 떨어진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측면에서는 은혜의 상태에 있다가 타락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진정으로 중생한 자가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 은혜 혹은 성령의 일반 은혜에 있다가 타락하는 경우입니다. 거짓 은혜의 경우는 그 은혜가 부족하고 온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착각하고 있다가 결국 타락함으로 진정한 은혜가 아니었음이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열 처녀 비유에서 어리석은 다섯 처녀에게 해당됩니다(마 25:1-13). 그들은 외적으로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들의 차이는 오직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의 차이였습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고 있었고,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은혜로 외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은혜의 부족함이 드러나 위선자로 나타난 것입니다(참조. 마 7:21-23).

 

또한 성령의 일반 은혜인 은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구원의 은혜 없이 있다가 타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6:4-6절을 보면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 경우는 원래 구원의 은혜가 없었던 상태에서 결국 타락한 것입니다. 따라서 은혜의 모습을 하고 있다가 타락한 것은 원래 구원의 은혜가 없는 상태에서 위선자로 있다가 타락으로 그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측면에서 볼 때 구원의 은혜가 있었다가 타락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도의 견인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이 취소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편 33:11절을 보면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변경될 수 없습니다. 이사야 54:10절을 보면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결코 취소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이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이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로마서 8:29-30절을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선택의 유효한 실행으로 중생한 자는 믿음을 끝까지 가집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중보하시며 그를 보존하시기 때문입니다(요 17:9, 24; 롬 8:34; 히 7:25; 요일 2:1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신의 양 무리 가운데 두시고 지키십니다(요 10:28-29, 17:11-12). 물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보존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으로 달려가거나 죄 가운데 있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의 은혜를 힘써 지켜야 합니다(유 1:1, 3).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빌 2:12).

 

성령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날을 위해 우리를 인치셨습니다. 에베소서 1:13-14절을 보면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소유임을 보여 줍니다. 성령 하나님의 인침으로 인해 하늘의 유업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더욱이 성령 하나님께서 그의 은사와 은혜로써 신자 안에 내주하셔서 하늘 유업에 대한 확신을 주십니다. 이러한 성령 하나님의 역사는 신자들로 하여금 하늘 유업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 하나님의 인침은 취소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도의 견인은 그리스도의 보존과 성령 하나님의 인침으로 인해 더욱 분명해집니다.

 

제9항. 이러한 보존하심에 대한 확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끝까지 보호하신다는 것과 참된 신자는 믿음을 끝까지 붙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진정 믿음의 정도에 따라 확신할 수 있는데, 그 확신으로 그들은 교회의 참되고 살아있는 지체가 되고, 항상 지체로 남을 것이며, 죄 용서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게 됩니다.

 

해설 : 성도의 구원에 대한 확신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불안과 염려 속에서 힘겹게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르트 신조 다섯 번째 교리 성도의 견인 제9항에서는 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요소로서 ‘하나님의 택하심과 보존하심’을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에게 구원이 일어나게 하시고 보존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은덕을 공급하심으로 끝까지 그들의 믿음을 견인하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도의 견인에 대해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질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알미니안주의자들은 특별한 계시 없이는 이 세상에서 미래의 견인을 확신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확신에 대한 논쟁은 종교개혁 시대에도 논쟁의 주제였습니다. 로마교회는 구원의 확신이 불가능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즉 소수의 성인이나 순교자들을 제외한 신자들 대부분은 확신 없이 살다 죽는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로마교회는 신자가 자신이 천국에 갈지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에 신자는 먼저 낙관적이기 전에 선행을 많이 해야 하고, 교회에 충성해야 하며, 사제가 하는 말을 신뢰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연옥에 가서 불로 정결하게 될 때까지 한동안 지내야 하며, 그 후에야 성인의 공덕으로 천국에 가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 로마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이에 반해 종교개혁자들은 그들의 이러한 가르침에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성경에서 믿음의 확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재발견함으로서 제9항에서 고백하듯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끝까지 보호하신다는 것과 참된 신자는 믿음을 끝까지 붙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31-39절을 보면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도르트 신조를 고백하였던 믿음의 선조들은 이 확신을 보존과 견인의 측면에서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마음에 구원 사역을 시작하시며, 그들에게 믿음과 회개의 은사를 주시며, 그 열매로 택함 받은 자들은 믿음 안에서 견인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을 걷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보존하심이 없이는 어떤 성도도 견인하지 못하는 것인데, 참된 신자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확신은 사람의 체험에 근거를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합니다. 로마서 8:38-39절을 다시 보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고, 요한일서 3:24절을 보면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러한 확신을 얻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견인에 대한 확신은 모든 신자가 똑같지는 않습니다. 곧 믿음의 분량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믿음의 정도를 말하고 있는데 적은 믿음과 큰 믿음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어린 아이, 청년, 아비의 단계로 말합니다. 요한일서 2:14절을 보면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믿음의 정도와 단계는 수량의 의미가 아니라 강도의 의미입니다. 믿음이 강할수록 구원의 소망과 믿음의 확신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7주일에 보면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묻고 그 대답을 이렇게 합니다. “참된 믿음은 내가 확실한 지식으로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동시에 참된 믿음은 다른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죄의 용서와 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 순전히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주신다는 확고한 확신인데, 이 믿음은 성령께서 복음으로써 내 마음 속에서 일으키시는 굳은 신뢰입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참된 믿음은 ‘지식과 신뢰’에 있는데, 이 두 측면은 나란히 함께 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확신은 내가 느끼고 체험하는 것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계시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 견인에 대한 확신은 오늘 제9항의 고백에 보면 “그들은 교회의 참되고 살아 있는 지체가 되고, 항상 지체로 남을 것이며, 죄 용서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게 됩니다”고 고백합니다. 참으로 우리가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로 있다는 사실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전하게 본향으로 인도하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견인에 대한 확신은 결국 견인에 대한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과 자신의 죄가 용서 받았으며 영생을 가진 것을 확신합니다. 자신이 교회의 살아 있는 회원임을 확신하는 것이 견인의 확신을 주는 이유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로 인해 보존되어지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은덕을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교회 속에서 죄 용서함과 영생을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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