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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도르트 신조 제4장 10-11항
강설날짜 2018-07-22

2018년 도르트 신조 공부(31)

 

제4장. 도르트 신조의 다섯 번째 교리

- 성도의 견인(6) -

 

제10항. 확신의 근거

 

이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 없이, 혹은 말씀 외에 일어난 어떤 특별한 개인적인 계시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의 위로를 위하여 그분의 말씀 안에 가장 풍부하게 계시해 놓으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생겨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상속자인 것을 우리의 영과 함께 증언하시는 성령의 증거에 의해 생겨납니다. 마지막으로 깨끗한 양심과 선행에 대한 진지하고 거룩한 추구에 의해 생겨납니다. 만약 하나님의 택자들이 이 생을 사는 동안에 승리의 획득에 대한 확고한 위로와 영원한 영광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해설 : 제10항에서는 ‘이 확신의 뿌리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백입니다. 성도의 견인에 대한 확신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약속을 믿음으로 나옵니다. 견인에 대한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 없이, 혹은 말씀 외에 일어난 어떤 특별한 개인적인 계시나 체험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의 위로를 위하여 그분의 말씀 안에 가장 풍부하게 계시해 놓으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밖에서 견인의 확신을 얻고자 하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성경에는 성도의 견인에 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빌립보서 1:6절을 보면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도 안에 믿음의 역사를 시작하시고, 그 일을 계속하셔서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그들에게 영적인 열매가 있게 하시며, 결국에는 완전하게 하실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말씀은 분명 성도의 견인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약속을 믿음으로 견인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약속을 믿음으로 확신하는 이유는 그 약속을 믿는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고 하는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28: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고, 베드로전서 2:6절을 보면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둘째, 견인에 대한 확신은 성령의 증거로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상속자인 것을 우리의 영과 함께 증언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증거에 의해 생겨납니다.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을 믿는 믿음 외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구원의 은혜를 입었음을 증거 하는 것은 우리 영으로 더불어 증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증거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죄로 죽은 영혼을 살리셔서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믿음을 일으켜서 그리스도를 붙잡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14-17절을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알게 하시고 확신하게 하십니다. 더욱이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에게 적용하셔서 확신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셋째, 견인에 대한 확신은 깨끗한 양심과 선행에 대한 진지하고 거룩한 추구에 의해 생겨납니다. 청결한 양심은 거룩한 삶을 함축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19절을 보면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청결한 양심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 정직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행전 24:16절을 보면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고 했습니다. 청결한 양심과 선행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신 열매입니다(요 15:1-10). 따라서 우리가 더욱 거룩한 삶을 추구하고 계명을 지킨다면 견인을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견인에 대한 확신은 이렇게 세 가지를 통해 얻을 수 있는데 이는 성도에게 위로를 주고 때로는 환난 가운데 소망을 줍니다. 바울은 로마서 8:35절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바울은 이처럼 어떤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께서 보존하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진정한 성도는 마땅히 이러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제11항. 이 확신이 항상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확신에 대한 의심).

 

성경이 증거 하는 바는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이 생에서 살아갈 때 육신의 여러 가지 의심과 싸워야 한다고 증언하며, 힘겨운 유혹에 처할 때 이 믿음의 충분한 확신과 견인에 대한 확실성을 항상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증언합니다. 그러나 모든 위로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그들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받도록 허락하지 않으시며, 시험과 동시에 또한 피할 길을 주시며, 성령으로 다시 그들 안에 견인에 대한 확실성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해설 :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우리는 앞에서 많은 내용들을 살펴봤습니다. 진정한 성도가 견인에 대해 확신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때때로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견인에 대한 확신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 살고 있을 때 아직도 육신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항상 견인의 은혜를 확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진정한 성도라도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견인에 대해 의심에 빠질 수 있습니다. 육신으로부터 강렬한 욕망이 일어나게 되고 그것에 육혹을 받게 되면 확신이 약해지고 의심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도 사울의 계속되는 공격으로 인해 확신이 약해져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블레셋 사람에게 갔습니다(삼상 27장). 이것은 계속되는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존하신다는 확신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확신을 잃어버리면 의심이 크게 일어나고,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뒤로 물러가게 만듭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육신의 의심과 싸워야 하며, 세상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사단과의 치열한 영적인 전쟁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한 성도라도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유혹을 받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유혹은 육신의 정욕이나 세상 그리고 마귀로부터 옵니다.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사는 성도는 이러한 것들로부터 아직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는 아닙니다. 따라서 늘 유혹에 대해 경계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가 육신을 입고 있는 한에는 늘 유혹에 져서 죄를 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진정한 성도가 이러한 유혹에 완전히 굴복되어 멸망에 이르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절을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당하고 있는 자신의 성도를 도우시고 힘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참조. 마 7:11; 눅 11:13; 고후 1:18; 살전 5:4; 살후 3:3). 더욱이 악한 죄악의 고통이 계속되어 이에 굴복되지 않도록 도우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부터 나와 성도를 견인하십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유혹과 싸우며, 때로는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의심을 갖습니다. 이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로마서 8:16절을 보면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고 했고, 로마서 8:26절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에 불일 듯 하게 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나타내십니다. 이는 성령 하나님께서 직접 보여주시는 것으로 그래서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또한 성령 하나님께서는 의심으로 떨어지려고 할 때에 소생케 하십니다. 그래서 성도를 계속되는 의심 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참으로 성도는 신실하신 주의 말씀의 약속 안에서 위로를 얻어야 합니다. 심지어 때때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강력하게 확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이 위로를 붙잡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42편을 보면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인생들은 변해도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택한 성도들을 어떠한 상황과 고난 속에서도 견인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믿음의 자리가 있으니 어둠의 시간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의지함으로서 소망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소망은 우리의 믿음의 공격을 받을지라도 확실히 남아 있습니다. 여전히 소망하면서 끝까지 우리의 모든 슬픔과 곤고함과 고난의 시련을 누그러뜨려 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택자의 소망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손 안에 우리의 연약함을 맡기고 우리에게 당하는 영적인 투쟁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본향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서 바라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세력도 결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갈라놓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38-39절을 보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견인의 은혜 가운데 굳게 서서 어떤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의 길을 달려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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