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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도르트 신조 제4장 12-13항
강설날짜 2018-08-05

2018년 도르트 신조 공부(32)

 

제4장. 도르트 신조의 다섯 번째 교리

- 성도의 견인(7) -

 

제12항. 이 확신은 경건을 위한 격려이다.


하지만 이러한 견인에 대한 확실성은 참된 신자를 교만과 자기만족 가운데 빠지게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겸손, 어린아이와 같은 공경, 참된 경건, 모든 투쟁에서의 인내, 열렬한 기도, 고난과 진리의 고백에서의 정절,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의 변치 않는 기쁨의 진정한 뿌리가 됩니다. 더 나아가 성경의 증거와 성도들의 삶의 실례들에서 분명히 나타나듯이 이 견인의 유익에 대한 묵상은 신자들을 감사와 선행의 진지하고도 지속적인 실행으로 이끄는 격려가 됩니다.

 

해설 :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견인과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교리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거짓된 안정을 불러일으키고, 경건과 선한 양심과 기도 등과 같은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그들은 성도의 견인의 교리가 구원에 대한 헛된 생각을 갖게 하여 경건한 삶을 살지 않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택함 받은 자들이 구원을 받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했으니 마음대로 살거나 또는 경건한 삶을 살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또한 ‘잃어버리지 않는 구원을 받았으니 구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고, 선행과 애씀의 수고도 필요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실제로 교회 역사 속에서 때로는 성도의 견인 교리가 남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존하시니 세상적인 삶을 살고 때로는 죄 가운데 있더라도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는 견인 교리를 오해하고 자신의 육신적인 삶을 위해 견인 교리를 곡해한 것입니다. 하지만 개혁자들은 알미니안주의자들에 동의하지 않으며 오히려 구원으로 인해 더 경건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개혁자들의 바른 구원의 신앙은 결코 “너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받았으니, 성도의 견인 교리로 인하여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으니 마음대로 살아라, 죄를 지어도 괜찮다, 선한 일에 열심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가르칩니다.

 

빌립보서 1:6절을 보면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주권으로 신자를 보존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빌립보서 2:12절을 보면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유다서 1:1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부르심을 입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유다서 1:3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견인 교리가 남용될 때에는 하나님의 주권을 말씀하고 있는 구절만을 취하고, 하나님의 보존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말하는 구절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육신적인 삶을 살면서 자신은 결국 구원 받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견인 교리를 남용하는 자들은 실제로 그들에게 진정한 구원의 은혜가 있는지의 여부를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가 이렇게 육신적인 삶을 살도록 방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빌립보서 말씀이나 유다서 말씀들은 하나님의 보존과 그것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동시에 언급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구절만 취해 인간의 책임을 무시하는 가르침은 곧 하이퍼 칼빈주의적 가르침이 교회 속에서 유행하기도 하며,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구절은 무시하고 인간의 책임만 강조하는 가르침 즉 알미니안주의적 가르침이 유행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르침들은 양극단에 있는 것으로서 성경에서 벗어난 오류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까? 우선 하나님의 주권으로 인해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사람은 죄와 허물로 죽었기에(엡 2:1) 스스로 하나님을 찾거나 구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없이 하나님께서 먼저 영혼을 깨우치고 갱신시키셔야 합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갱신된 영혼은 이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책임을 만나게 됩니다(빌 2:12). 이는 신자가 구원을 완성시킬 수 있기 때문에 주신 명령이 아닙니다. 진정한 구원의 은혜를 입은 신자는 계명을 지키려고 애쓰며, 거룩한 삶을 살려고 애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명령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거룩한 삶을 살려고 애쓰지만 아직도 육신의 연약함 가운데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능력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더욱 그리스도 안에 머물려고 애쓰며 그리스도의 은덕에 의존하게 됩니다. 로마서 7:22-25절을 보면 바울 사도는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했습니다. 바울 처럼 결국 이러한 은혜의 수단 속에서 거룩한 삶을 위해 몸부림 칠 때 주께서 도우셔서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유다서 1:24-25절을 보면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로 하여금 더욱 은혜 중심으로 살고 겸손하게 하기 위해 이렇게 책임을 주신 것입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신자가 견인의 조건을 충족시킴으로써 마지막에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주장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자신의 행위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 앞에 가서도 자신의 행위를 내세워 구원을 주장할 것입니다(참조. 마 7:22-23). 진정한 구원은 자기 확신을 갖게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견인 교리는 사람을 교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육신의 연약함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3:12절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견인 교리는 인간의 책임을 내포하는데, 더욱 겸손히 주의 은혜를 의지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견인 교리는 자기가 구원을 완성시킬 수 없음을 더욱 깨닫게 하기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사모함과 경외심을 갖게 하며, 이 땅에서의 유혹이 많이 있음을 알게 해서 진정한 경건을 추구하게 합니다. 한편 도무지 자신에게 능력이 없음을 알게 하여 열정적인 기도로 은혜를 구하며, 죄성을 억제하는 십자가를 가까이 하게 합니다. 그러면 결국 구원하시는 은혜의 오묘함을 깨달아 더욱 진리를 확신하며, 이를 주저함 없이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연약한 자들을 천성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기뻐하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16:11절에서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노래 했습니다.

 

성경은 성도의 견인 교리를 보여주는데, 이는 선행의 동기가 됩니다. 또한 성도의 견인 교리는 신자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경건한 삶을 추구하고 죄를 피하고 유혹을 경계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요한일서 3:2-3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이처럼 개혁신앙은 결코 ‘구원의 확신과 성도의 견인’을 믿으면서, 경건의 삶을 무시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진리 안에서의 거룩한 삶을 결코 외면하거나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더욱더 성경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깊이 묵상함으로서 말씀에 복종하기를 힘쓰며, 그렇게 살지 못함에 대한 애통함과 회개와 믿음의 회복 가운데로 더욱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구원의 신앙을 말하면서도, 세속적이며 인본주의적인 신앙을 따라 살며 죄와 타협하고, 자기를 합리화 하는 신앙의 자리라면 그는 위선적인 신앙을 추구 할 뿐, 진정한 개혁신앙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개혁신앙은 세속적 신앙과 현세적 신앙, 그리고 자기만족을 위한 종교적 경건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기를 두려워하면서도 경외함으로 순종하여 살고자 하는 힘겨운 몸부림과 믿음의 선한 싸움의 투쟁이 있습니다. 개혁신앙은 참된 경건과 거룩한 삶을 추구합니다. 따라서 ‘견인의 교리의 확실성’은 결코 올바른 신자들로 하여금 교만하여 자랑하거나 자족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겸손과 어린아이 같은 공경과 참된 경건과 모든 투쟁 가운데서의 인내와 열렬한 기도와 고난 중에서도 변치 않는 진리를 고백함으로서 모든 선행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랑과 기쁨으로 감사의 삶을 살도록 더 큰 자극을 주는 것입니다.

 

제13항. 이 확신은 무관심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이 새롭게 된 확신은 타락 후에 회복된 사람들 안에 경건에 대한 무관심이나 태만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확신은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법도들을 주의 깊게 준수하도록 그들 안에 더욱더 큰 관심을 일으킵니다. 그들은 이 법도들을 준수하는데, 이는 그 가운데서 행함으로 그들의 견인에 대한 확실성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얼굴이 그분의 아버지 같으신 선하심에 대한 그들의 남용 때문에 다시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외면하셨다면 그들은 심히 큰 영적 고뇌로 떨어졌을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들어 보시는 것은 생명보다 더 달지만, 그분의 얼굴을 감추시는 것은 죽음보다 더 씁니다.

 

해설 : 앞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함 받은 자들을 견인하신다는 사실이 변함없는 진리라는 것과 성도의 견인 교리는 택함 받은 자들로 하여금 더욱 경건하게 만든다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이제 제13항에서는 ‘견인의 은혜를 받으며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들이 죄악에서 구원 받은 후 그들이 바른 길로 행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즉 ‘하나님의 품안으로 되돌아온 사람들의 반응이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백입니다. 도르트 신조는 그들이 구원 받은 후 안일하게 사는 것 곧 자유의 남용과 방종이 아니라, 성경이 가르치는바 구원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의 규범을 따라 진리의 길로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도의 견인 교리를 남용함으로서 이 교리를 가볍게 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죄악에서 돌이켜 나오는 과정에서 하나님 앞에서의 애통함이나 간구함이 없이, 단순히 종교적 신념과 생활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택함 받은 자들이 죄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지 않고 무조건 용서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참으로 견인의 교리에는 먼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슬프게 한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돌이키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은혜와 용서가 있지만, 그러나 죄에 따른 징계를 통해서 영적인 아픔을 느끼는 것이요, 그리하여 자신의 지은 죄에 대한 미움이 생기며, 더 경건의 자리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8장 4절에는 “참 신자일지라도 그들의 구원의 확신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흔들리며, 약해지며, 일시 중단될 수 있는데, 이 같은 일들은 그 확신을 보존하는 것을 게을리 하거나, 양심에 상처를 주고 성령을 근심케 하는 어떤 특별한 죄에 빠지거나, 어떤 갑작스럽거나 강렬한 시험에 의해서, 또는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의 빛을 숨기시어 그를 경외하는 자일지라도 흑암 중에 행하여 전혀 빛이 없게 되게 하심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씨와 믿음의 생활이나 그리스도와 형제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의무에 대한 신실한 마음과 양심이 결코 전적으로 그들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 확신이 적당한 때에 소생하게 되는 것이며, 또한 그간의 심한 절망에서도 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들이 버티어 내는 것이다”고 고백합니다.

 

특히 13항의 마지막에서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들어 보시는 것은 생명보다 더 달지만, 그분의 얼굴을 감추시는 것은 죽음보다 더 씁니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의 기간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온 자들에게 비취신 하나님의 얼굴빛의 복됨과 함께 그 반대로 하나님의 얼굴의 숨기우심이 얼마나 죽음보다 더 비참한 것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이처럼 견인에 대한 확신은 결코 영적인 부주의를 낳지 않습니다. 영적 부주의라는 것은 자신의 구원을 스스로 확신하면서 영적인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부주의 할 때 자신을 쉽게 유혹에 빠뜨리며 결국 죄를 짓게 됩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부주의한 자는 실제로 자신에게 구원의 은혜가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은혜는 경건과 거룩함을 추구하고 죄와 싸우게 하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육신의 연약함으로 죄를 범하고 때로는 세상 유혹으로 인해 심각한 죄에 빠졌을 때 썩지 않는 중생의 씨앗과 성령 하나님으로 인해 회개하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갱신되면 다시금 견인에 대한 확신도 회복됩니다. 갱신은 영적 주의를 기울이게 만듭니다. 이미 회개의 과정 속에서 죄의 끔찍함과 그에 대한 고통을 맛보았기 때문에 같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더욱 경계하고 깨어 있는 것입니다.

 

심각한 죄를 지은 후 회개하고 용서를 확신하기까지 양심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고 자신의 죄가 얼마나 수치스러운 지를 경험합니다(렘 31:19). 이러한 경험을 한 자는 다시는 이 같은 고통에 들어서지 않기 위해 더욱 영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심을 남용하지 않기 위해 영적인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그들에게 주의 은혜를 거두시고, 주의 얼굴을 감추신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더욱 영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길 가운데 있는 것이 얼마나 안전한가를 깨달았기 때문에 결코 그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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