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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린도후서

# 고린도후서 공부(전체개요)

 

1. 저자 및 수신자

 

본서의 저자는 바울이라는 견해가 정설로 되어 있다. 본 서신이 바울에 의해 기록되었음을 알려주는 내적 증거와 외적 증거를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내적 증거로는 본서의 내용에도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사람이 바울이라고 두번 언급되어 있다(1:1; 10:1) 그리고 외적증거를 든다면, 폴리갑, 이레니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그리고 터툴리안과 같은 초대교회 교부들은 본서를 바울의 서신으로 인용했다. 또한 본 서신은 마르시온의 아포스톨리콘과 무라토리 단편에도 바울의 서신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본서의 수신자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었다(1:1).

 

2. 기록연대 및 장소

   

본 서신의 기록연대는 고린도전서의 기록연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하여 잠정적으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첫째로, 고린도전서는 봄, 아마도 유월전 직전에 씌어져 고린도교회로 보내졌을 것이다(고전 5:7-8, 15:20 참고).

 

둘째로, 고린도후서는 아마 가을에 씌어졌을 것이다(행 20:6, 20:3; 고후12:14, 13:1을 참고하여 보면 암시한다).

 

셋째로, 고린도전서와 후서는 18개월 이상의 시간적인 간격을 사이에 두고 씌어졌을 것이다. 물론 같은 해로 추정할 수 있겠지만 고린도전서 16:6절에 언급되어 있는 겨울이 사도행전 20:3절에 암시되어 있는 겨울로 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바울은 고린도후서 1:15-16절의 기록되어 있는 계획과 사실상 다를바 없는 잠정적인 계획을 말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8:10; 9:2절의 지난해가 6개월의 시간적인 간격을 의미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이상의 것들을 종합하여 보면, 고린도전서는 A.D. 55년 봄에 보내졌을 것이고, 고린도후서는 A.D. 56년 가을에 보내졌을 것이다. 반면에 고린도후서 10-13장이 고린도후서 1-9장보다 더 이후에 씌여졌다고 한다면 이 마지막 네장은 A.D. 56년 가을부터 씌여졌을 것이고, 처음 아홉장은 A.D. 55년 가을과 A.D. 56년 초가을 어간에 보내졌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린도전서와 후서 사이에 발생한 주요 사건들의 잠정적인 연대를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A.D 55년 봄

가슴아픈 방문 A.D 55년 여름 혹은 가을

준엄한 편지 A.D 56년 봄

바울이 에베소를 떠남 A.D 56년 봄

바울이 바게도냐에 도착함 A.D 56년 여름

디도가 마게도냐에 도착함 A.D 56년 여름

고린도후서 A.D 56년 가을

 

그리고 바울이 이 서신을 쓴 장소를 보면 고린도후서 안에 언급되어 있는 몇 귀절들은 바울이 이 서신을 쓸 때 마게도냐 지역에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7:5; 8:1; 9:2-4).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은 고린도후서가 ‘빌립보로부터’ 씌어졌음을 명기해 놓은 이 서신의 필사본들에 의해 확증되고 있다. 또한 고린도후서의 ‘마게도냐’는 빌립보를 의미하고 있다(빌 4:15 참고).

 

 

3. 통일성

 

현대의 일부 학자들은 고린도후서의 통일성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들은 본 서신이 고린도에 보낸 바울의 초기 편지들의 단편을 하나로 묶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그들이 근거로 삼는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고린도후서2:14-7:4절의 말씀이다. 몇몇 학자들은 본 서신의 6:14-7:1절을 제외한 2:14-7:4절 부분을 ‘준엄한 편지’ 이전에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써 보낸 독립된 편지라고 주장한다.

 

둘째는, 고린도후서 6:14-7:1절의 말씀이다. 이들이 문제를 삼는 이유는 이 구절은 독립적인 단위를 형성하고 있으며, 고린도교회의 상황에 대해 어떤 특별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 구절은 6:13절로부터 7:2절에 이르는 사상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이 구절은 자유의 사도인 바울과는 온당치 않게 바리세파 사람들의 배타주의를 밝혀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구절은 쿰란 종파의 신학과 매우 흡사한 점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바울의 사상 전개 방식이 현대와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전혀 문제시 되지 않는다.

 

셋째는, 고린도후서 8-9장이다. 어떤 학자들은 9장은 8장의 중복일 뿐만 아니라, 바울이 고린도가 아닌 아가야의 기독교 공동체들에게 보낸 독립적인 서신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증거가 없으며, 그런 선입견을 버리고 8장과 9장을 대한다면, 단순한 반복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는, 고린도후서 10-13장의 말씀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고린도후서 10-13장이 고린도후서 1-9장보다 이전에 씌여졌다는 견해가 있으며, 고린도후서 10-13장이 고린도후서 1-9장보다 이후에 씌여졌다는 견해가 있다. 이들의 주장은 공통적으로 본 서신 10:1절에서 어조가 전환되어 있다고 보고 본 서신이 1-9장과 10-13장의 독립된 부분이 결합된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본서의 전후 문맥과 내용을 볼 때 이러한 견해들에 대한 뚜렸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

 

이상에서 볼 때 일부 학자들의 견해는 본 서신이 단일 편지이기 때문에 어떤 불일치의 흔적이나 변동이 있을 수 없다고 인정한 초대교부들이나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의 전통적 견해와 배치된다. 뿐만 아니라 본 서신의 일부가 고린도교회의 실제 상황과 다르거나 모순이 있다는 그들의 견해는 바울 당시의 고린도교회 상황이나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지극히 단편적이고, 적은 일부분의 자료만을 가지는 여건을 고려할 때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고린도후서가 통일성을 지닌 한편의 서신이라는 견해에 동의한다. 그 논증을 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고린도후서가 원래 두 서신이었다가 한 서신으로 나중에 합본되었다는 가정을 허용할 만한 사본상의 다양한 증거가 없다는 점, 둘째는, 1-9장에 감사에 넘치는 어조가 나오지만 그러나 이 어조만이 이 부분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고(1:23. 참고), 또 10-13장에 과격한 어조가 나오지만 그러나 이 어조만이 이 부분에서 발견되는 것은 아니므로(12:20. 참고) 이 두 부분이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거의 극소화 시킨다는 점. 셋째는, 10-13장이 1-9장보다 연대적으로 빠르다고 하며, 과격한 편지의 일부가 바로 10-13장이라고 보려는 시도는 본 서신의 통일성을 지지해 주는 사본의 증거로 미루어 보아 아직 확실한 견해가 되지 못했다는 점. 마지막으로는 과격한 편지의 일부가 현존한다고 시사하는 주장들의 불확실 등이다.

 

4. 특별한 문제들

 

1) 가슴 아픈(혹은 중간) 방문

 

① 사실성

 

고린도후서의 몇몇 구절들은 바울이 이미 고린도를 두번 방문했으며, 그 두번째 방문이 가슴 아픈 방문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고린도후서 12:14절과 13:1-2절은 이전에 두번 방문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고린도후서 2:1절과 12:21절은 이전에 있었던 두번의 방문 중 한번은 근심스러웠다고 말한다.

 

② 방문시기

가슴 아픈 방문에 관해 고린도전서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으나 고린도후서에서는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은 똑같은 결론, 즉 가슴 아픈 방문이 고린도전서와 후서가 씌여진 어간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바울은 디도로부터 준엄한 편지의 결과를 듣고서 고린도후서를 썼기 때문에 가슴 아픈 방문은 고린도전서를 보낸 후와 준엄한 편지를 보내기 전에 이루어졌다. 즉 바울이 준엄한 편지를 보낸 후에 고린도교회를 방문한 것은 아니다.

 

③ 방문의 동기와 목적 그리고 결과

 

고린도교회가 고린도전서를 받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때에도 교회안의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아마도 바울을 추종하는 자들은 바울의 적대자들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로부터 달갑지 않는 소식을 받고 고린도전서의 효과를 보완하는 편지를 서둘러 보내야 했고, 유대주의적인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에서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더이상 손상시키지 못하도록 막아야 했다.

 

가슴 아픈 방문기간에 일어났던 일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바울은 음란한 죄를 지은 사람들을 꾸짖기는 하였겠지만 징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다시가면 용서치 않으리라”(고후 13:2)고 하는 경고를 보면서 알 수 있다. 그리고 바울은 아마도 외부에서 교회로 들어온 자나, 혹은 고린도출신의 교인들에게서 모욕을 당한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가슴 아픈 방문이라고 말한 것 같다. 아무튼 짧은 방문을 통해서 그는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일로 인하여 금심하였다(고후 2:5-11; 7:12). 그래서 바울은 디도를 상당히 설득한 다음(고후 7:14) 자신의 개인적인 사절로서 준엄한 편지를 전달하고 연보를 모금하도록 고린도교회로 보냈다.

 

2) 준엄한 편지

 

고린도후서 2:4절에 보면 “내가 큰 환란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바울은 준엄한 편지, 근심케 한 편지, 혹은 눈물의 편지로 알려져 왔던 것을 이와같이 묘사했다.

 

① 목적

 

준엄한 편지를 쓴 일반적인 목적은 고린도교회를 깨우쳐 불의를 행한 자를 훈계하게 하려는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고린도후서는 이 편지를 쓰는 4가지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다시 가슴 아픈 방문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1:2-2:4) 둘째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알리기 위해서다. 셋째로, 바울은 그들이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순종하는지 시험하려고 했다. 넷째로, 바울은 영적 아버지인 바울을 위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참된 관심과 사랑이 하나님 앞에서 그들에게 나타나게 하려고 했다.

 

② 결과

 

이 편지의 결과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들의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뉘우치고, 염려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이 다시 오기를 갈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의분케 했던 수치스러운 일을 했던 자들을 처벌하기에 몰두했다. 바울은 불의를 행한 자들을 처벌하는 일을 멈추고 이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스스로의 죄를 뉘우친 불의한 자를 용서해 주기를 원했다(고후 2:6-8).

 

③ 준엄한 편지란 무엇인가?

 

준엄한 편지란 어떤 편지를 두고 하는 말인가에 대한 3가지 견해가 있다. 먼저 고린도전서라는 견해가 있으며, 또하나는 고린도후서 10-13장의 내용을 수록하고 있는 편지라는 견해와 마지막은 분실된 중간편지라는 견해이다. 이상과 같은 3가지의 견해 중에서 3번째 견해가 지배적임을 알 수 있다.

 

3)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연보

 

 

A.D. 52년부터 A.D. 57년까지 예루살렘 성도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자신이 세운 이방교회들에서 연보를 모금하기에 자신의 상당한 시간과 정열을 쏟았다.

 

① 기부자들

 

사도행전 20:4절이 모금한 연보를 전달하기 위해 바울과 함께 마지막 방문지인 예루살렘에 동행했던 자들 즉 몇몇 이방교회가 임명한 대표자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일반적으로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② 수혜자들

 

구제금은 가난한 자들로 지칭해온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었다.

 

③ 바울에게 있어서 연보 모금이 주는 의미

 

이것은 먼저 형제애를 들 수 있겠다. 그리고 연보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효과적으로 나타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이방전도를 미심쩍게 여기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했던 것 같다. 또한 연보를 통해 동지중해 연안에서의 바울의 사역을 절정을 이루게 해주었으며, 바울이 약속했던 것을 이행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

 

④ 연보의 수락

 

바울은 예루살렘 성도들이 구제 연보를 거절하지나 않을까 염려 하였지만 그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예루살렘 성도들은 그 구제 연보를 기쁨으로 받아드렸다.

 

4) 고린도 교회의 바울 적대자들

 

① 적대자들은 누구인가?

 

몇몇 학자들은 고린도후서에 기록되어 있는 바울의 적대자들과 고린도전서에 기록되어 있는 바울의 적대자들이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들은 구별되어야 한다. 바울의 적대자들이 유대인들이었다는 주장은 널리 인정되고 잇다. 그러나 그들이 유대주의자들 이었을까? 하례가 구원의 선행조건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유대주의자라고 정의 한다면 바울 적대자들은 유대주의 자들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고린도후서는 할례에 대한 논쟁을 벌인 어떠한 흔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원이나 그리스도안의 한 형제됨의 기쁨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서 이방인들에게 유대인의 관습을 강요하려는 사람을 유대인이라고 정의 한다면, 유대주의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② 적대자들과 예루살렘과의 관계

 

고린도교회의 바울의 대적 자들과 예루살렘교회, 특히 세 기둥 사도 혹은 열두 사도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 여기에는 세 견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1) 예루살렘에서 공식적으로 파송된 자들, (2) 열두 사도의 인지와 묵인으로 예루살렘을 떠났지만 열두 사도의 뜻을 잘못 전했던 일부 공식적인 임무를 띠고 파송된 자들, (3) 유대주의의 강령을 지키기 위해 유대로 부터 스스로 들어와 열두 사도 특히 베드로의 권위에 호소했던 자들. 학자들은 각각의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세번째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본다.

 

그 근거로서 몇 가지를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이들이 팔레스타인 출신이었다는 것을 추론해 볼 수 있다(고후 11:22과 빌 3:15절을 비교). 둘째는, 아마도 우리는 고린도후서 11:5절과 12:11절의 지극히 큰 사도들과 11:13절의 거짓사도들을 구별할 수 있다. 셋째로, 유대에서 온 어떤 사람들은 열두 사도의 인증없이 열두 사도들의 권위를 빙자하여 행사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특정한 위임장 없이 예루살렘을 떠났던 것이 분명하다. 끝으로 고린도교회의 한 당파는 베드로의 이름을 빌어서 예루살렘에 호소한 선례를 이미 남겨 놓았다.

 

③ 적대자들의 가르침

 

바울 적대자들의 첫째 목적이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서서히 약화시켜 무너뜨리려는 것이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바울의 추방, 적어도 고린도교회 안에서 만은 추방시켜서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진정한 종으로 신임을 얻으려는 의도로 교인들을 가르쳤다.

 

5. 역사적 배경

 

이 부분에 대한 것들의 자세한 내용 즉 고린도시와 교회에 대한 것들은 고린도 전서의 역사적 배경을 참고 하기 바란다.

 

여기에서는 다만 바울의 에베소 전도에 대한 언급을 잠깐 하기로 하겠다. 바울의 전도 여행 중에서 에베소와 그 인근지역에서 보냈던 30개월 내외의 기간만큼 정확히 재구성하기 힘든 기간은 없을 것이다. 이 기간은 소란스러웠던 기간이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많이 가졌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기적을 베풀고, 또한 수많은 사람들을 개종 시켰다. 바울은 복음전도에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에 병행하여 그를 시기하는 적대자들도 많았다. 더메드리오 소동이 실제로 바울로 하여금 에베소를 떠나게 한 원인이 되었든지 그렇지 않았든지 간에 바울은 에베소에서 유대인들의 반대에 직면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데미 신전의 신봉자들의 자신에 대한 적대감이 극도에 달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음에 틀림없다.

 

6. 저술 목적

 

바울이 이 서신을 쓴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첫째로, 바울은 디도에 의해 전달되었고, 보완되었던 자신의 준엄한 편지에 대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자신에게 대단한 위로와 기쁨이 되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둘째는, 자신의 다음 방문 전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그들의 약속된 연보를 완수하도록 권면하고 싶었다. 셋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스스로 반성하고 자신들을 시험해 봄으로서 곧 있을 바울의 방문을 준비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함으로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참사도와 거짓사도들을 구별하는 타당한 기준을 찾을 수 있으며, 바울도 훈련시켜야 할 수고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음과 같은 부수적인 목적들도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아시아에서 당한 심한 환란을 알려서 앞으로의 전도여행을 위해 그들이 기도해 줄 것을 청하고 싶었으며, 바울은 그가 여행계획을 변경한 이유를 말하고 싶었고 잘못을 뉘우치는 불리를 행한 자들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다시 사랑하도록 권면하고 싶었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우상을 섬기는 어떤 자들과도 교제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싶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의 참 본질과 고귀한 소명을 기술하고 싶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사도직의 정당성을 변호하기 위함과 고린도 교인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함에서 본 서신을 쓰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7. 고린도후서의 구조

 

1) 문안 인사 : (1:1-2)

 

2) 본론 : (1:3-13:10)

 

축복과 위로(1:3-7)

바울의 진실성과 사도로서의 권위를 공격함에 대한 변호(1:8-6:13, 7:2-16)

불신자들과의 관계(6:14-7:1)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연보(8-9장)

바울의 사도적 부름의 합법성에 대한 변호(10:1-13:10)

 

3) 마지막 권면과 인사 : (1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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