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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강설날짜 2017-12-17

2017년 가을학기 특강

성도의 교제가 무엇인가?

 

사도신경에 보면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사도신경에서 이것을 고백하고 있다는 것은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서로 교통한다’는 것은 라틴어 원문 ‘콤뮤니오렘 상토룸’(communiorem sanctorum)의 의역입니다. 그런데 이 번역은 사실은 오역인 셈입니다. 왜냐하면 이 번역은 ‘성도의 교제’의 한 면인 ‘성도 간의 사귐’만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는 직역이 아닌 의역이 만들어 내는 전형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짧은 몇 개의 명사로 그 의미를 나타내야 하는 경우 의역은 오역을 낳기 쉽습니다. 특히 성경 전체를 짧은 사도신경으로 나타낸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도신경 번역을 보면 이것을 ‘성도의 교제’로 올바르게 번역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성도의 교제’를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도의 교제 혹은 성도의 교통은 서로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구역모임’이나 혹은 ‘학생들의 소그룹’, ‘성경공부 모임’ 등과 같은 것들의 핵심은 사실상 사귐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구역모임도 보면 1부는 요식행위로 그치고 정말 중요한 시간은 2부 곧 소위 교제의 시간입니다.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온갖 관심사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어쩌면 바로 이 사귐이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과 자신을 드러내어 놓고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는 것을 성도의 교제로 이해합니다.

 

한국 사회가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도시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 생활의 외로움을 교회에서 찾을 수 있었던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한 교회는 좋은 교제의 장소였습니다. 학창 시절에 불신부모들은 교회는 ‘연애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딸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싫어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실 오늘날 사람들을 사귀기 위해 특히 이성과의 사귐을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가면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곳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다보니 교회는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교제보다는 수평적 성도들의 교제에 그 우선순위를 빼앗기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목회자나 교회도 외적 성장을 위해 수평적 교제를 강조하고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카페를 만들고 체육관과 같은 시설들을 만들기도 합니다. 또한 여러 가지 동아리 모임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방법이야 말로 사람들을 교회로 이끄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런 성도의 교제를 좋은 전도 방법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많은 인력과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복음의 본질인 하나님의 복음을 노골적으로 제시하는 설교를 하면 미련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목회를 하면 교회가 부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설교도 인간관계를 다루는 주제들이 많아졌습니다. 내적치유, 관계와 사랑의 기술 같은 것들이 설교의 주요 주제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정말 중요한 복음의 본질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십자가 복음만을 전하는 교회는 딱딱하고 메마르고 재미없어 인기가 없습니다. 오늘날 소위 부흥한다는 교회를 보면 성도들의 귀를 기쁘게 하는 사랑의 관계에 대한 설교,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성공의 비결 등 세속적인 설교들이 주를 이룹니다. 그리고 이런 수평적 성도의 교제가 강조되지 않는 교회를 성도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성도의 교제가 부족하다느니, 사랑이 없다느니, 은혜가 없다느니, 갑갑하다느니 하며 떠나갑니다. 그러나 ‘성도의 교제’가 과연 그런 것일까요? 성도의 교제의 본질은 이런 수평적인 교제가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면 성도의 교제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이 시간에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설명하고 있는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성도의 참된 교제가 무엇인지 배우고자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55문을 보면 “문: 성도의 교제를 당신은 어떻게 이해합니까? 답: 첫째, 신자는 모두 또한 각각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주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그의 모든 부요와 은사에 참여합니다. 둘째, 각 신자는 자기의 은사를 다른 지체의 유익과 복을 위하여 기꺼이 그리고 즐거이 사용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도의 교제에 대한 바른 의미에 대해서 분명하게 정리 해 주고 있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일차적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주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모든 부요, 곧 ‘은사’(선물)에 참여하는 것이 성도의 교제입니다. 대표적인 성도의 교제는 성찬입니다.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베풀어 주시는 천국 만찬입니다. 바로 이 성찬에서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교제, 즉 코이노니아(koinonia)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잘 하기 위해서는 성찬을 가능한 자주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성찬을 행하는 숫자보다도 그 성찬의 참된 의미를 알고 바르게 그 성찬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교회가 성찬식을 하긴 하지만 이를 통해서도 우리 성도가 그리스도와의 참된 교제를 이루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깊이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행하는 성찬의 참된 의미를 깊이 배우고 이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 차원의 성도의 교제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성도는 성도 상호간에 교제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수직적인 교제가 있는 성도의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성도간의 수평적인 교제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수평적인 교제가 부족한 경우는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와의 수직적인 교제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수평적인 성도간의 교제는 수직적인 교제가 전제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간의 수평적인 교제가 부족할 때 먼저 수직적인 교제를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직적인 교제의 회복이 없이는 참된 성도간의 수평적인 교제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간의 수평적인 교제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성도의 교제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남이 나를 사랑해 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올바른 성도의 교제는 ‘자기의 은사를 다른 지체의 유익과 복을 위해 기꺼이 그리고 즐거이 사용할 의무’를 행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섬기는 차원의 성도의 교제를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이 교회는 사랑이 없다고 불평하는 차원의 성도의 교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화를 발견하고 그 보물에 참여하는 성도, 곧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잘 하는 성도는 다른 사람을 향한 성도의 교제로 자연스럽게 나아갑니다. 그것은 받으려는 차원의 교제가 아니라, 내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다른 성도를 섬기고 돕는 차원의 교제입니다. 이런 차원의 성도의 교제가 교회에 풍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42-47절을 보면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성도의 교제가 무엇인지를 잘 말씀 해 주고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감림 후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선포하였습니다(행 2:36). 이 설교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 마음에 찔림을 받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묻기를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하였습니다(행 2:37). 이런 그들에게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행 2:38). 그리하여 그날에 삼천 명이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행 2:41). 이런 그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서 복음 안에서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을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고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구원 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4:32-35절에도 보면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도 보면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고 무리가 큰 은혜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 은혜로 인하여 자신의 밭과 집을 팔아 사도들 발 앞에 두매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우리는 성도의 참된 교제가 무엇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55문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먼저 수직적으로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이요, 그 다음에 그 수직적인 은혜에 기초해서 수평적으로 성도들 간에 복음을 인하여 교제하며 주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 성도들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성도의 참된 교제를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은혜의 방도인 말씀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십자가 부활의 복음을 더 깊이 배워나감으로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성도들 간에 복음 안에서 참된 교제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 가운데 이와 같은 성도의 참된 교제가 회복됨으로 참된 부흥이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 부록 : 개혁교회의 성도의 교제 원칙

오인용 목사(선민교회)

 

개혁교회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인간의 타락한 모습과 성향이 나타난다. 개혁교회라고 해서 완전한 것도 아니고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니 개혁교회라고 해서 완전, 완벽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물론 유사(가짜)개혁교회같이 신학적인 오류와 문제가 비성경적이고 잘못된 신학을 추종하는 것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그러한 문제는 얼마든지 개혁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혁교회라도 성도의 교제에 있어서 교회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성도의 교제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목회자와 성도의 교제이고, 둘째는, 성도와 성도의 교제다. 참된 목회자와 성도라면 교회가 하나님만 잘 섬기면 되고 그 나머지는 뭐가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개혁교회는 더더욱 거룩한 교회로 주님께 영광을 올리며, 세상에서 진리의 빛을 드러내야 한다.

 

A. 목회자와 성도의 교제

 

1. 목회자와 성도와는 항상 자유로운 교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말뜻은 성도들은 목회자에게 자신의 신앙과 삶에 대해서 목회자에게 주저 없이 상담을 하고 궁금증에 대해서 언제든지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목회자는 성도들의 그러한 부분에 있어서 최대한 목회지도를 하며 영적인 섬김을 나타내야 한다.

 

2. 목회자는 성도들을 비방해서는 안 된다.

 

혹 교회 안에 문제 있는 교인이라고 해도 그를 이런 저런 비난이나 험담을 해서는 안 된다. 외부에 가서도 역시 자신들의 교회 교인들에 대해서 흉을 보거나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다. 무엇보다 목회자가 교인들을 강압적으로 몰아붙치거나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니 절대 금해야 한다. 목회자가 교회에서 어떤 특정한 교인에게 문제점이나 어떤 부분에 대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그 교인과 맞대어 진실하게 대화를 나누어서 혹 교인들의 잘못된 신앙이나 불평불만에 대해서 정당하게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교인들에 대해서 못마땅한 마음으로 목회하는 것은 목회의 열매가 맺히지 못 한다. 그러니 목회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들의 올바른 말에 귀를 귀울이고 들어라. 목회자라고 해서 가르치는 것만 해서는 안 된다.

 

3. 성도들은 목회자에게 어떤 불만이나 의문점이 있다면 혼자 끙끙하다 교회 안에서 이 교인 저 교인에게 불만과 불평을 늘어놓지 말고 목회자에 직접 상담을 하고 얘기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목회자가 없는 자리에서 목회자의 험담과 비판, 비난을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의 불만과 의문점이 정당하다면 왜 목회자에게 말하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분란과 분쟁을 일으키는 불씨를 퍼트리는가? 그런 모습은 목회자를 무시하는 것이고 깔보는 대단히 나쁜 모습이다.

 

4. 가장 나쁜 교인의 모습은 교회와 목회자에게 대해서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혼자 추측하고 상상하고 공상하고 혼자 다 판단하고 결국 혼자 결론을 내리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교인이다. 이런 교인들은 교회와 목회자와 다른 교인들에게 예의가 없고 무례한 사람이다. 이런 교인들은 애초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교회에 대한 존중심도 없는 사람들이다. 저들은 교회를 자신의 신앙과 자신의 감정으로 판단하지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랜 동안 교회를 위해 봉사나 수고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를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다.

 

B. 교인과 교인과의 관계

 

무엇보다 교인과 교인의 관계다. 이 관계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그 이유는 동등한 교인들과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 안에는 다양한 연령층과 남성, 여성들이 모이는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전제가 있다.

 

1. 즉 거룩하고 경건한 교우관계와 교제관계를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하던 교제의 방식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도록 철저하게 주의해야 한다. 거룩과 경건에 위배되는 성도의 교제는 마귀의 시험이다.

 

2. 그러니 교회 안에서 성도들과의 대화에 있어서 늘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무례하거나, 독단적으로 상대방을 조정하려고 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

 

3. 성도들은 언제나 주님이 그 교제의 자리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특히 남여 교우들의 교제는 더더욱 조심하고 거룩한 교제를 하도록 가장 계명에 주의해야 한다. 특히 개혁교회 청년들은 거룩한 빛의 자녀들이다. 사탄의 저주받은 자녀들같이 처신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라. 교회 안에서 남여간의 잘못된 교제로 인하여 주님의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고 수치스럽게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가장 사악한 죄악이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성도간에 특히 남여간의 성도의 교제는 언제나 거룩, 경건, 조심스럽게 하도록 단단히 명심하라.

 

4. 오늘날 은사주의, 복음주의권의 교회 안에 음란하고 타락한 교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는가? 개혁교회에서는 절대 그러한 더러운 음행과 타락한 죄악들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개혁교회는 성도간의 교제가 주님과 교제하는 것같이 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서 성도의 교제를 존귀하게 지켜나가는 것이다.

 

5. 개혁교회는 주님의 영광과 임재가 머무는 것이다. 그러니 교인들 간에 험담이나 왜곡된 비방은 죄악이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형제나 자매를 일절 거룩함으로 대하지 않는 것은 주의 몸된 교회에 똥칠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매사에 거룩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라.

 

6. 개혁교회 교인들은 자신들의 거룩한 신앙의 명예심과 존귀함을 최고의 가치와 보물로 여긴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성도의 무리는 영광스런 무리들이다. 그러한 영광을 훼손하거나 더럽히는 모든 사악한 짓을 단호하게 끊고 버리도록 힘써야 한다.

 

7. 교회를 세상같이 취급하는 그러한 자들은 교회에서 쫓아내어 교회의 거룩함이 불경건한 자들에 의해서 더럽혀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개혁교회는 다른 은사주의와 복음주의 교회, 유사(가짜)개혁교회 같은 허접한 교회 같지 않은 가짜교회들과는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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