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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2018년 자녀 교육 특강(1)

 

하나님의 언약과 자녀 교육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실 때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은 자식을 낳으면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주라고 하신 것은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그 자녀를 포함시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 하나님이 되어 주마’하고 약속하신 것은 아브라함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인데 ‘내가 네 자녀에게도 같은 은혜를 베풀어서 네 자녀의 하나님이 되어 주겠다’고 하시는 것도 큰 은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전파하라는 대사명을 위임하시면서 믿는 자에게 세례를 주도록 하신 것은 큰 은혜입니다. 믿는 자의 자녀에게도 세례를 주도록 하신 것이 또한 큰 은혜입니다. 믿는 자의 자녀에게 세례를 주라고 하신 것은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믿는 자가 세례를 받으면 자기가 이제는 자기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표시하는 것이고, 세례를 받는 자는 그것을 고백합니다. 따라서 자기에게 속한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기르고 가르쳐야 하고 마침내 그가 자라서 자기 말로 신앙을 고백하여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님이신 것을 말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유아세례를 받은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르고 가르쳐서 그 아이가 믿음이 있도록 하고, 나중에 그 아이가 커서는 자기 입으로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도록 교육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그런 은혜를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야 그런 믿음이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은혜의 방도로 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들어간다고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이 세상에 전파되어도 믿는 사람이 있고 안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게 해 주셔야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사람이 어떻게 집어넣어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아주 충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파하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말씀을 사용하여 믿음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부모의 책임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교훈으로 잘 교육시켜야 하고 동시에 기도해야 합니다.

 

믿는 자의 자녀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가정에서 이 큰 은혜에 합당하게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에베소서 6장과 골로새서 3장에서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믿는 가정의 책임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믿음의 가정에서는 어떻게 하고 살아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 에베소서 6:1-4절과 골로새서 3:20-21절에 잘 보여 줍니다. 에베소서 6:1-4절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또 골로새서 3:20-21절을 보면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볼 때 부모 된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고 자녀 된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믿는 가정은 부모나 자녀가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전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자녀에게 신앙을 주셔서 자녀도 부모의 뒤를 이어서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십니다.

 

 

2018년 자녀 교육 특강(2)

 

하나님의 언약과 자녀 교육

 

안식일은 원래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사람을 위하여 만드셨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도록 지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하여 지어졌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지어졌습니다. 피조물인 자신을 위하여 산다면 그 생의 목적이 가치 있는 것이 못되고 허무할 뿐이겠지만, 거룩하시고 영원히 사시는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사는 인생이라면 그의 생은 살 만한 생이요, 영광스러운 삶이 될 것입니다.

 

공의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자기 본분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면, 평생토록 그렇게 하면 그에게 영원한 평안과 안식이 있도록 하셨습니다. 자기 본분을 다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는 고상한 목적을 가지고 일평생 충성스럽게 사는 사람을 잊으시거나 버리시거나 하지 않으시고 영원한 나라에서 안식하며 기쁨을 누리도록 세상을 지으실 때에 그렇게 뜻을 정하시고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도 계획하시고 이 세상이 끝난 뒤에는 장차 영원한 나라를 세워서 거기에 들어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처음 창조하실 때에 세상 끝을 내다보시고 이 세상이 다할 때에 이 세상에서 수고하며 노력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도록 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자기 삶의 뜻과 목적을 찾고 또 영원한 안식도 하나님 안에서 찾도록 하셨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다른 데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쉼 없이 일하며 안식을 찾아서 나가지만 인생의 안식을 다른 아무 데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인생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찾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실 때에 세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눈에 보시는 분으로서 세우신 대원칙인데, 땅 위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생에게 이 세상의 목표와 인생의 목적을 알려 주시고 이 대원칙이 사람의 일상생활에 가까이 있어서 ‘세상이 어디로 가고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땀을 흘리고 힘써 일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면서 살도록 안식일을 만드시고 그날을 복 주어서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엿새 동안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지런히 일하고 이레 되는 날에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그를 영화롭게 하고 경배하고 거기에서 쉼을 얻고 평안을 얻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시작부터 끝까지 다 내다보시고 내세도 다 내다보시고 계시지만, 이 작은 우리야 가르쳐 주신 것을 조금 아는 듯하지만 한눈에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 땅에서 살 때에 이렇게 일주일을 주기(週期)로 엿새 일하고 하루 쉬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안식을 발견하고 살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위하여 안식일을 제정하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셨습니다(막 2:27).

 

 

2018년 자녀 교육 특강(3)

 

하나님의 언약과 자녀 교육

 

대제사장의 집 뜰에 베드로 사도가 그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준비를 갖추고 있었더라면, ‘네가 그의 제자가 아니냐?’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에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하고 대답하고, ‘너희라도 저 의인에 대해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말라’ 하고 능히 경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온유와 두려움으로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로 알았더라면 그리스도의 권세와 하나님의 두려우심을 안 이상에는 원수의 진영이라고 하더라도 그 말을 못할 리가 없습니다. 대제사장의 부하들, 칼과 몽치를 든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더 두려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신 분이라는 것을 베드로가 잘 알고 마음의 준비가 되었더라면 ‘네가 그의 제자냐?’ 하고 물을 때에 ‘그렇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데 너희가 왜 해치려고 하느냐? 너희는 조심하라’ 하고 경고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사람의 생각으로는 그런 원수의 소굴에서 그렇게 말하다가는 당장 어떻게 당할 텐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느냐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그런 지혜와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그랬고, 바울 사도가 그랬잖습니까? 그러니까 베드로도 그때 그렇게 못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그리스도께서 왜 잡혀가시는지 생각을 안 해 본 것입니다. 그가 좀 조용히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으면 알 텐데도 그런 준비가 없었습니다. 준비 없이 원수의 진영에 턱 가서 태평하게 앉아 있었으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참으로 영광스러운 증인 노릇을 할 수 있을 뻔했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이 거칠고 사나운 세상에 나가 앉아 있었던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나약한 여종 하나가 와서 ‘당신, 예수의 제자가 아니냐?’ 하고 지적하자 그것 하나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무섭고 사나운 사람이 와서 칼과 몽치를 가지고 이야기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냥 그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소경 되었던 사람을 예수님께서 눈을 뜨게 하신 것도 보았고, 바람과 바다를 말씀으로 잠잠케 하신 것도 이미 다 알고 마음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각오가 있는 사람이 나약한 여자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으니 얼마나 허망하고 분한 일입니까? 무엇이 베드로로 하여금 이렇게 되도록 만들었습니까? 베드로는 하나님을 몰랐던 것이고, 그리스도를 몰랐던 것이고, 자기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로 자기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은 까닭입니다. 또 세상이 그만큼 하나님과 그의 성도들에게 원수가 되고 사납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허둥지둥하다가 닭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시던 그 말씀이 번뜩 떠올라서 그 말씀을 생각하면서 그는 울었습니다.

 

 

2018년 자녀 교육 특강(4)

 

하나님의 언약과 자녀 교육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했습니다. 죄를 멀리하고 거룩함에 이른다는 것, 거룩함 가운데 산다는 것은 사람에게 지극히 귀중한 일입니다. 의롭다 하심으로 그 죄책에서 벗어나게 됐으면, 이제는 이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의롭다 함을 받았는데도 생활은 도무지 거룩하지 않다는 일이란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사람을 의롭다 하셨으면 반드시 거룩한 은혜도 주시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의롭다 하심을 얻을 뿐만 아니라 계속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제 생(生)의 능력과 자유를 발휘하여 풍성한 생명을 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의롭다 하신 자에게는 생명을 주시는데, 생명을 주신 이유는 그 생의 능력과 자유를 발휘하여 풍성한 생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이전 같으면 살았다고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 살았으므로 살았다고 할 것이 없고 오히려 죽은 자라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이 없으니까 참다운 생의 능력을 발휘하고 자유를 행사할 만한 것이 도무지 없었지만, 이제야말로 풍성한 생을 누리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성신께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 민감하게 하시고, 모든 선한 것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좋아하게 하시고, 우리 자신의 간절한 소원으로 삼고 살아가게 하는 그런 생입니다. 이런 일이란 사람이 스스로 못할 일입니다. 죄를 즐겨서 행하는 사람이나 ‘죄를 반드시 끊어야 하겠다. 개과천선(改過遷善)해서 이제야말로 사람답게 살아야 하겠다’ 하고 결심하는 사람이나 거룩함에 이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거룩함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이신 성신께서 돕지 않으시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죄의 세력은 그렇게 강력한 것입니다. 타락한 사람 가운데 그 세력을 잡고 있는 죄의 세력이라는 것은 사람의 힘보다는 훨씬 강력한 것이어서 사람이 그것을 벗어 버리고 뛰쳐나갈 수 없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부인하지 못합니다. ‘이거 안 되겠다’ 하고 자기를 부인하면 부인하는 그 자기는 여전히 남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래 타락한 자이기 때문에 부인하는 그 자기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거룩하시고, 따라서 타락이란 사실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타락했다는 사실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서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의 사상 가운데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이 있지만, 그런 것이 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는 이론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판단이고,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것이 도저히 논의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죄의 세력을 이기고 그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스스로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구원의 지혜를 받아서, 믿고 의롭다 하심을 받고, 거룩한 생활, 곧 성신을 좇는 생활을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는 마침내 몸의 구속(救贖), 곧 이 죄와 사망의 몸을 벗고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영광스럽게 될 것인데, 이때야말로 사람의 지혜나 어떤 능력이나 돈의 힘이나 가문의 좋음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부활할 것인데, 거기에 세상의 지혜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때에 사람의 힘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때에 재물의 힘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습니까? 신분이 높다는 것이 거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지혜 없고, 힘없고, 문벌이 좋지 못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을 얻는 것입니다.

 

 

2018년 자녀 교육 특강(5)

 

하나님의 언약과 자녀 교육

 

데살로니가전서 1:2-4절을 보면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도 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믿음이 있어서 그 믿음에서 나오는 어떤 행위가 있고, 또 사랑이 있어서 어떤 수고를 무릅쓰고 사랑을 베푸는 일이 있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소망이 있어서 이 세상에서 좀 어려운 일을 당하고 괴로운 일을 당할지라도 믿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인내를 가지고 계속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있을 때 바울 사도는 그들이 과연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인 것을 재확인하고, 또 거기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셨다는 증거를 보고서 안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 그들을 더욱 기억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에게 믿음으로 말미암은 어떤 행위, 곧 사랑으로 수고하고, 수고할지라도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즐겁게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소망이 있어서 세상 형편이 좀 나아지는 듯하다가도 다시금 어둠이 찾아오고, 그래서 소망이 별로 없고 자꾸자꾸 절망으로 빠져 가는 이런 세상에서 오히려 소망을 가지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어려운 현실을 딛고서 인내로써 믿음의 행진을 계속해 나간다는 것, 이런 것들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있어서 ‘과연 이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다. 과연 그리스도와 연합된, 하나님과 연합된 그리스도의 지체다’ 하는 것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입으로 하는 그 고백도 중요하지만, 이런 생활의 증거가 있을 때에는 우리에게 더 확신을 주는 것이고, 감사와 기도를 유발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것들이 증거가 되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땅 위의 현상계에서 일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알 수 없는 저 옛날 태초에 하나님께서 벌써 우리를 아시고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벌써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다.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우리가 사람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이러한 사랑과 믿음과 소망을 가질 수 있느냐? 이것은 사람이 만들 수 없고 세상이 만들 수 없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미리 우리를 선택하시고, 이렇게 역사상에서 때가 되었을 때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이런 것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냐?’ 하고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하나님의 선택까지 우리가 믿게 되는 것이고, 그럴 때에는 우리에게 큰 확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믿고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사람의 힘으로 된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이루셔서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차도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렇게 믿음이 훨씬 든든해지는 것입니다. 내게서 나오는 생활의 열매도 그렇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그 열매를 볼 때에는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있을 때 과연 하나님께서 택하신 증거가 될 것입니다.

 

또한 이런 것이 있을 때 ‘저 사람이 나와 같은 지체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고 그를 위해 기도할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것이 없으면 있을 때까지 두고 보아서 그제야 형제로 인정해야 하겠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할 때 그 고백으로써 ‘그는 우리와 한 지체다’ 하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렇게 영접하는 것입니다. 또 이런 것이 있을 때 더욱 ‘과연 주를 믿는 자구나! 지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고, 더 가까워지고, 영접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2018년 자녀 교육 특강(6)

 

하나님의 언약과 자녀 교육

 

하나님께서 인생으로 더불어 언약을 하신다는 것은 심히 기이한 일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른 아무 이유를 댈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인생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언약을 하시는 것입니다. 창조주시고 천지의 대주재가 되시므로 큰 권세를 가지고 무슨 일이나 하시면 하시는 것입니다. 천지간에 아무도 이의(異議)를 베풀 자가 없습니다. 물론 그 대능(大能)을 가지고 불의를 행하신다거나 무슨 악을 행하시는 일이 없습니다. 하시는 일이 다 공의롭고 선하고 은혜로우므로 무엇이든지 하시는 대로 피조물이 볼 때에는 감사하고 찬송할 뿐입니다. 이렇게 대주권을 가지시고 무슨 일이든지 하시는 이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언약을 하셔서 스스로 그 언약에 매이실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일단 언약을 하시면 그다음부터는 그 언약을 지켜야 할 의무가 따르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왜 인생에게 약속을 하시고 자신이 그것을 지켜야만 할 그 의무를 지시게 됩니까?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 부득이하거나 하나님의 어떤 필요에 의해 언약을 하실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일단 약속을 하시면 그것을 이행할 의무를 짊어지시는 것인데, 더구나 죄인에게 그런 언약을 하실 아무 의무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언약을 하셨고, 이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모든 능력을 다 발휘하시는 것입니다. 언약을 이루시는 이 전능하신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천지의 대주재가 되시므로 자연계나 인간계나 거기에 있는 모든 것과 모든 능력을 다 동원하여 쓰셔서 자기 백성을 위해 이 일을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뿐 아니라 아들 이삭도 아브라함에게 주신 계시에 의해 하나님을 알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살았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룰 야곱을 멀리 밧단아람으로 떠나보낼 때 그 역사를 보면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탁했습니다. 늘 데리고 살던 야곱을 멀리 북쪽으로 보낼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돌봐 주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이 아이에게 이루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아 살았던 그 이삭의 슬하에서 자라난 야곱은 그 성장 과정에서 하나님께로 점차 가까워지다가 마침내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그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다시 상기시키고 복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직접 계시를 받은 야곱은 후에 믿음의 장부가 되어서 큰 환난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갔습니다.

 

이 야곱의 생애를 때때로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큰 유익을 줍니다. 처음에는 미미한 신앙으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사람의 꾀로 살아가려고 하는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려고 하는지 잘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반 세상 사람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머물지 않고 자꾸자꾸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물론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배운 바가 있어서 그렇게 나아간 것입니다. 때로는 꿈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나 뵙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도 하시고, 이렇게 하나님을 자기가 면대하여 뵙고 계시를 받고 해서 자라 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참으로 두려워할 만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흔들리지 않고 아들들에게 어떻게 할 것을 지시하고 그들에게 복을 빌었습니다. 그렇게 야곱은 그 인생길을 걸어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야곱의 열두 아들에게서 퍼져 나간 이스라엘 백성의 그 후 역사는 다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그 언약을 이루어 나가시는 이야기입니다. 창세기에도 기록되었고,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 그 후에 계속하여 기록된 책들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라는 것은 다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그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이야기입니다.

 

 

2018년 자녀 교육 특강(7)

 

하나님의 언약과 자녀 교육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모든 믿는 사람의 조상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브라함에게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 18:19)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세워서 큰 계획을 이루려고 하시는데 그것은 온 세상에 미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 관해 말한 일이란 곧 그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으리라는 내용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세계가 다 저주를 받고 캄캄한 세상이 되어서 소망이 없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으로 말미암아 온 땅이 복을 받도록 큰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새로운 나라, 평안하고 복된 나라를 세우려고 하신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는 것으로부터 구원하여 평안하고 복된 나라를 세우려고 하시기 때문에 그 나라는 반드시 의롭고 복되고 평안한 나라입니다. 죄가 있어서 사람이 다 죽어 가는데 다행히 그런 죽음에서 구하시고 생명이 충만한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목적하고서 아브라함에게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자신뿐 아니라 자기 가족, 자기 슬하에 있는 자녀들도 하나님의 교훈으로 잘 양육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한 가지 큰 방법입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 곧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사람들의 조상인데, 먼저는 혈육으로 이스라엘의 조상이고 또한 신령한 이스라엘의 조상, 곧 이방인들 가운데서 믿는 사람들의 조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에게 그가 돌보고 다스리는 영역 안에 있는 자기 집안의 모든 사람을 가르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믿는 모든 가정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과연 출애굽기 12:26-27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이 말씀은 유월절을 제정하셔서 지키도록 명령하시면서 하신 말씀인데, 이스라엘의 모든 아버지들은 자녀들이 물을 때 이렇게 대답을 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신명기 4:9에도 보면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두렵건대 네가 그 목도한 것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네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속에서 떠날까 하노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본 그 놀라운 구원과 이적들, 곧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서 그들을 구원하신 사실을 잊지 않고 잘 기억하여 자녀들에게 알려 주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부모에게는 낳아서 먹이고 입히고 키우는 것뿐 아니라 이런 하나님의 구원의 사실들을 기억하여 가르쳐 줄 책임도 있었습니다.

 

신명기 6:4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記號)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4-9절) 하였습니다. 수시로 자녀들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도록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부모의 책임이 이렇습니다. 조상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부모는 이와 같이 행했던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통해 세상에 태어나서 기저귀를 찰 때부터 부모의 교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배우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2018년 자녀 교육 특강(8)

 

하나님의 언약과 자녀 교육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는 그 들은 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자기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먼저 마음에 간직함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친 바가 자기 생각과 사상을 형성하여 줌으로써 그것을 마음에 꼭 간직하는 것이 좋습니다. 때로는 어떤 성구로 그 생각과 사상을 대표하여 그 성구를 마음에 간직하는 것도 매우 좋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번에 배운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 하는 이 말씀은 사람이 무엇을 원하지도 말고 달음박질하려는 노력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가 결정적이라는 교훈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믿는 자가 주의 은혜 안에서 선한 소원을 가질 수 있는 것이고 선을 위하여 애쓰고 노력하며 걷다가 달리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구원이나 선행이 거기에 달렸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해요 큰 착각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간다면 구원의 기초도 모르는 행위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하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데에 우리의 구원이 달렸습니다.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활에서 실천한다는 것은 또 한번 어려운 고비입니다. 현실 사회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에 적합하고 편리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것을 터무니없이 악하다고 비방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가는 길에 장애를 놓기도 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니까 들은 말씀을 마음에 간직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때마다 일마다 배운 하나님의 말씀이 지혜가 되고 힘이 되어서 내 길을 인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을 포기하기 십상인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꼭 간직하고 있어야 방해받고 비방받더라도 그런 것에 상관없이 계속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없고 희미하면 그대로 믿고 간다는 것이 세상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니까, 믿는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워서 그냥 세상 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도무지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에 실천할 힘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명확하고 강성하게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는 것과 하나님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셨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교훈이 나에게 생생하게 있을 때에는 세상이 별말을 해도 나는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간직한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이 말씀이 힘이 되고 지혜가 되어서 이 세상에서도 이 말씀을 실천하고 사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어떻게 오래 참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습니까? 엘리야가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도록 기도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그로 인하여 많이 고생했는데 엘리야도 고생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이 자기를 잡으러 다니므로 숨어서 다녔기 때문에 오랫동안 더 큰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참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것입니다. 다윗이 이 산 저 산으로 사울을 피하여 다니면서 오래 참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인도하여 쓰시는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우리에게 거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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