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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7:17-24
성경본문내용 (17)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18)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19)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20)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21)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22)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23)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24)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강설날짜 2013-06-19

2013년 고린도전서 공부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

 

말씀:고린도전서 7:17-24

 

우리는 지난 시간에 고린도전서 7:10-16절 말씀을 통해서 혼인한 자들에게 권면하는 바울 사도의 권면의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한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곧 하나님께는 우리를 화평을 위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이나 아내나 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자는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나 아내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고린도전서 7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은 혼인에 관한 사도 바울의 권면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7:17-24)은 결혼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 관해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결혼을 했던 안 했든,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오직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7-19절을 보면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 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서두에 쓰인 ‘오직’이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는 ei' mhv (에이 메)인데 많은 학자들이 해석상의 문제를 제기 하기도 합니다. 이 말을 ‘없다면’, ‘---을 제외하고’라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바울이 불신자와 결혼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배우자를 주께로 인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사실과 연결시키는 것을 어렵게 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ei' mhv (에이 메)라는 말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하여튼 이것은 바울이 배우자 문제를 제외한 다른 영역에로의 그리스도인의 소명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계속해서 넓히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말을 모든 교회에서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즉 바울은 모든 영역을 초월한 원칙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모든 교회에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라는 말은 주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내리신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셨다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 사명을 나누어 주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믿음과 구원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부르심에는 사명으로 부르심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행하라’라는 말은 ‘삶의 길을 가라’, ‘살아가라’라는 뜻의 유대교식 숙어입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믿음과 구원으로의 부르심은 우리 각자를 저마다의 은사로 갖추게 해서 저마다 다른 처소에서 주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인 각자가 하나님의 소명이 임한 그 처소에서 주께서 주신 은사로 각자의 삶을 살아 가야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교훈을 모든 교회에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원칙을 당시 두 가지 중요한 신분적 대립 관계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적 대립 관계로 유대인과 이방인 곧 할례와 무 할례에 적용하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대립 관계로 자유인과 종의 관계에 적용합니다. 먼저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입니다. 18-19절을 다시 보면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 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할례로 구원 받은 것도 아니고,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은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복음을 듣고서 할례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여긴다고 해서 그 할례의 흔적을 지우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무 할례자로 부름을 받았다면 할례를 받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할례는 분명히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19절 말씀 곧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유대교가 문자적으로 해석한 하나님의 계명과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깨닫게 된 영적인 뜻 곧 그리스도의 법을 구분하기 때문입니다. 할례라는 계명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은 구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충실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 받은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 할례 받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면 될 것이고,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 역시 무 할례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이들에게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대단히 화를 내며 책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11-15절을 보면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 뿐이라.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은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혁명적인 발언입니까?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 말씀이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이 말은 너무나 충격적인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이 그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말이었는지 이로 인해서 그들은 더욱 바울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2:8-15절을 보면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모든 것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17-19절을 다시 보면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 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고 명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에 이와 같이 명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는 자는 무 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는 할례를 받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라고 했습니다. 곧 할례를 행하고 안 행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바울 사도가 말하는 하나님의 계명이 무엇이겠습니까? 다시 율법을 지키라는 이야기 입니까?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할례를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하나님의 계명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9:28-30절을 보면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뿐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라는 진정한 의미인 것입니다.

 

또 하나는 종과 자유자의 문제입니다. 20-24절을 보면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20절 말씀에 보면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 원칙을 당시 사회적 신분의 상황에 적용합니다. 당시 사회에는 종과 자유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으로 있던 자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네가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평생 종으로 그대로 지내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종이란 노예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노예로 평생을 지낸다는 것은 힘들고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노예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종으로 있을 때 부르심을 받은 자는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유 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고 했습니다(21).

 

그런데 이 말씀 곧 ‘자유 할 수 있거든 차라리 시용하라’는 말씀은 상반되는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어도 차라리 현재의 처지를 이용하라’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 기회를 이용하라’입니다. 어느쪽 해석이 맞는지 정확히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하여튼 바울은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자유자로 있을 때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사람의 종이 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가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것입니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그 어떤 환경을 막론하고 주님의 부르심을 막아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주님의 능력은 평생 종으로 살면서도 주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종이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유자라는 것입니다. 그 종의 형적도 잠시 지나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엄청난 자유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세상을 보며 사는 자들인 것입니다. 곧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이 땅에서 자유자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자로 부르심을 입은 자란 종과 얼마나 대비가 됩니까? 그 자유자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자기가 그리스도의 종임을 알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고 자유자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종이라는 것입니다. 종이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유자요, 자유자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할 때에 그리스도의 종이지만 세상에서는 참된 자유자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이목에서 자유 합니다. 사람의 종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 주님과 함께 하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이 주님을 의지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환경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다 쉽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무엇에 대하여는 민감합니까? 가난하냐. 부자냐 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민감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돈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결혼 선호도에서도 무엇이 1위로 나왔는가 하면 경제적인 능력입니다. 나이도 외모도 이혼경력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교회도 무엇을 축복으로 여깁니까?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 좋은 회사에 취업하고, 승진하고,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것’ 이런 것을 축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 안에 있으면서도 어찌하든지 종에서 벗어나 자유자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곧 더 좋은 신분상승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며 부르심을 받은 대로 살기보다 자꾸만 자신의 계획에 따라 환경이나 조건을 개선하고자 합니다. 남과 비교하며 더 좋은 환경, 더 좋은 조건, 더 좋은 모습을 기대하며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고자 애를 씁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부르심을 입은 자는 진정으로 자유한 자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과 형편이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섬기기에 합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면 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주 안에서 참된 자유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감사하며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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