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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7:8-16
성경본문내용 (8)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9)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 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10)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11)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12)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13)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의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를 인하여 안심함을 얻었음이니라(14)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의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15)저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16)내가 너희를 인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 기뻐하노라
강설날짜 2014-07-02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말씀:고린도후서 7:8-16

 

우리는 지난 시간에 고린도후서 7:2-7절 말씀을 통해서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마음으로 자신들을 영접할 것을 권면하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특히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서 디도가 옴으로 인하여 위로를 받았다고 하는 것을 봤습니다. 6-7절을 보면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고후 7:6-7). 바울 사도는 디도가 옴으로 비천한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위로만이 아니라 고린도교회가 바울을 향하여 사모하고 애통하며 열심이 있는 것을 인하여 또한 기뻐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의 이 말을 통해서 그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게 되었습니다. 곧 무엇이 바울에게 위로가 되고, 무엇이 바울에게 기쁨이 되는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고린도후서 7장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바울 사도의 위로와 기쁨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의 위로와 기쁨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먼저 8절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내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다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고린도교회의 잘못들을 지적하고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편지를 받고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이를 감당 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후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후회란 우리가 무슨 실수나 잘못을 하고서 후회하는 그런 후회가 아닙니다.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상한 목자의 후회인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자신의 진정성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편지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곧 바울 사도의 염려와 달리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바울의 진정성을 알고 그의 권면을 받아 들여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9절 말씀을 보면  바울은 지금 자신이 기뻐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9). 바울 사도는 자신의 편지로 인해서 고린도교회 교인들로 하여금 잠시 근심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 근심으로 인하여 회개함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에 도리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회개란 하나님의 뜻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가르치거나 책망을 해서 고쳐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바울의 책망을 받아들이고 근심하고 회개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디도를 고린도교회로 보내면서 자랑을 한 것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랑한 것이 무엇입니까? 13-16절을 보면 “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의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를 인하여 안심함을 얻었음이니라.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의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저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내가 너희를 인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 기뻐하노라”고 했습니다. 디도가 고린도교회에 가는 것을 심히 어려워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능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권면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고린도교회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의 심부름을 하는 자신을 받아들일까 하는 염려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에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를 자랑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디도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자랑한 것입니다. 이제 그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기쁘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가 디도를 두려워하고 떪으로 영접하여 순종하는 것을 보고서 디도의 심정이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더욱 깊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었던 것입니다. 8-10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근심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날마다 염려하며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까? 아니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근심들입니까? 10절 말씀을 다시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근심은 어떻습니까?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무슨 근심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자신들을 가만히 보면 거의가 다 세상의 근심과 걱정과 염려들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책망을 받으며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이 얼마나 됩니까?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간들은 전부가 다 자신이 신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도 남의 간섭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근심하며 회개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6절 말씀을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는데 우리로 하여금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에 유익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말씀이라도 우리의 본성에 고맙고 감사하고 기쁜 내용이 있습니까? 우리가 다 신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교훈을 받는 것을 얼마나 싫어합니까? 그런데 하물며 책망을 받는 것을 좋아 하겠습니까? 바르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틀렸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런데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또한 의로 교육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불의로 충만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의로 교육하니 이런 성경의 말씀을 달게 받는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가 바울 사도의 책망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바울 사도의 능력이 아닙니다. 고린도교회의 능력도 아닌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고 회개하게 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일어난다면 읽는 자나 전하거나 듣는 자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난 증거입니다.

 

시편 8:2절 말씀에 보면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 합니다.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시편 기자의 노래에 보면 주의 대적을 물리치시는데 어린 아이와 젖먹이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성취를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1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좇으실 때에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분노하면서 예수님께 저 소리를 듣는가 하면서 따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21:16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라고 하셨습니다(마 21:16). 이 말씀은 바로 시편 8:2절을 인용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왜 어린이와 젖먹이의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대적을 물리치시는 것입니까? 그 능력이 사람의 능력에 있지 않음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를 책망할 때도 자신이 높은 사람이라는 위치에서 책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자신이 사도이며, 당연한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고전 9:12, 15).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고전 9:19). 그리고 바울 사도 자신이 직접 간 것도 아니고 젊은 디도를 보냈으니 더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모습으로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디도 두 사람 다 두려움과 후회와 염려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살펴보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를 책망하거나 틀렸다고 말할 때에 어떤 자세와 태도로 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우리 자신들을 보면 누구를 책망하거나 틀렸다고 할 때 늘 자신은 언제나 잘 하는 것을 가지고 남이 못하는 것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집사가 되어가지고 그것도 못하느냐. 목사가 되어가지고 그것도 못하느냐’는 식입니다. 자신은 그 부분에서는 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남의 신앙이나 삶을 이야기 할 때에 언제나 잘하는 자기와 잘 못하는 남과 비교를 하면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았다고 하면서 그것도 못하느냐고 합니다.

 

특히 제 같이 목사들이 교훈하는 모습이 대부분 이런 모습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설교를 지겨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말이 좀 길어지고 교훈조로 흘러가면 무어라고 합니까? ‘또 설교한다.’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저도 설교할 때 내 말을 하지 않고 말씀이 말하는 바를 겸손히 드러내고자 늘 조심합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내 말을 하고, 교훈조로 잔소리 할 때가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남의 책망 듣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누가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그것은 전하는 자의 능력도 듣는 자의 능력도 아닌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인 것입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의 편지를 받고서 그들의 회개가 어느 정도로 일어난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근심이 고린도교회로 하여금 얼마나 간절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변명이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변명이 아니라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돌이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하는 변명인 것입니다. 우리가 전에는 잘 몰랐습니다. 마귀에게 속았습니다. 우리가 어리석었습니다. 이러한 변명을 대충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간절한지를 계속하여 ‘얼마나’라는 부사를 붙이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또한 ‘얼마나 분하게 하며’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회개하지 못한 그들의 모습을 분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없고 세상의 근심을 하고 살았던 것이 분한 것입니다. 자기가 잘난 체 하고 외모를 중시하면서 살았던 것이 분하다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마땅히 나타나야할 모습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분하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죄를 죄로 알지도 못하며 죄를 즐거워하였던 것이 분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얼마나 두렵게 하며’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직접 온 것도 아닙니다. 바울의 심부름꾼인 디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회가 얼마나 두렵게 디도를 맞이하였는지를 보게 됩니다. 15절을 다시 보면 “저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저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디도를 영접하고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과 영접은 바울 사도를 영접한 것이며, 더 나아가 이 두려움과 영접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며 영접한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5:40). 세상의 높은 사람이나 권세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두려워하고 영접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물의 찌끼 같은 대접을 받고 온갖 고난을 다 당하는 바울의 심부름꾼을 두렵고 떨며 영접하고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나타난 것입니다. 11절 말씀을 다시 보면 계속하여 ‘얼마나’가 나옵니다.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에스겔 33:30-33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를 의논하며 각각 그 형제로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그들이 너를 음악을 잘하며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준행치 아니하거니와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 있었던 줄을 알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입술로는 복음이 좋다고 하면서 마음으로는 이욕 곧 자신의 욕심을 좇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모습입니까? 고린도교회 교인들만의 모습입니까?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바로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잠시 잠간입니다. 베드로전서 4:7절을 보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것은 미래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마지막이라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도, 소돔과 고모라 시대도 이미 마지막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로 이미 끝난 세상에서 무슨 근심을 그렇게 하시면서 사십니까? 세상의 근심은 사망에 이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8-10절 말씀을 다시 보며 오늘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8-10).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룹니다. 그러나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세상 근심을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 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사망에 이르지 않게 하시고 구원에 이르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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