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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11:16-27
강설날짜 2014-10-22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말씀:고린도후서 11:16-27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자신을 대적하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자신이 거짓 선생들보다 뛰어남과 사도로서 겪은 고난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바울 사도 자신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했습니다(1). 바울은 이처럼 자신을 자랑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통해 부득불 자신의 사도됨을 변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자신의 사도됨을 인정하고 자신이 전한 복음을 따라 살기를 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봤습니다만 7-15절 말씀에서 바울은 거짓 선생들과 자신을 비교함으로써 거짓 선생들의 위선을 폭로하고 자신이 진정한 사도임을 변호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살펴볼 16-21절은 앞 단락에서 부득불 자신의 사도됨을 입증하기 위해 자랑을 늘어놓은 어리석은 일에 대한 변명을 하는 삽입 구절입니다. 그리고 22-33절은 세 번째 자신의 사도권의 정통성의 증거로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겪고 극복해 낸 극한수고와 고난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6-18절 말씀을 보면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나로 조금 자랑하게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없이 자랑하노라. 여러 사람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변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자랑거리를 늘어놓는 일이 어리석은 일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신을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렇게 스스로 자기 자랑거리를 늘어놓는 것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어 자랑하고자 함이 아니라 자신의 사도됨을 변호하여 자신이 전한 복음을 수호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떠난 뒤에 예루살렘으로부터 임명장을 가지고 온 거짓 선생들이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자랑하며 바울을 깎아 내렸습니다. 이를 통해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로 하여금 바울의 사도됨을 부정하게 하여 그가 전한 복음을 부인하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런 거짓 선생들의 미혹으로부터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부득불 자신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이같은 자랑이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라 어리석은 자와 같이 자랑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기에 자신도 부득불 자랑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세상의 자랑거리들을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바울의 자랑거리가 무엇이었습니까? 빌립보서 3:4-9절을 보면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아니하는 자랑거리가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습니다.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율법에 대한 열심과 지킴에 있어서는 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이 모든 자랑거리들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왜 그렇게 한 것입니까? 자신의 그 자랑거리들이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한 결과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율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나오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일체의 자랑거리들은 다 배설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어떤 자격이나 조건이나 능력을 가지고 비교하고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입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다시 그런 배설물로 여긴 세상의 자랑거리들을 자랑하는 것입니까? 고린도 교회에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들이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것은 육체를 따라 외모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바울 사도를 향하여서는 육체를 따라 행하고 어리석고 약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자신이 고린도 교회와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증거 할 때에 정말 약한 모습으로 증거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약한 모습으로 증거 하였는가 하면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증거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2:1-5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 사도가 전도해서 열매가 많이 나타나게 되면 사람들이 바울 사도를 주목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목하게 될까봐, 곧 자신의 말과 자신의 지혜로 전도가 되었다고 할까봐 두렵고 떨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바울과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한 일을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으로 두렵고 떨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바울과 같이 예수님이 가려지고 자신이 드러날까 봐서 두렵고 떠는 자가 진짜 주의 종인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거짓 선생들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들은 자기의 육체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곧 자신들의 외모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성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종으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20절을 보면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거짓 선생들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복음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종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섬겼습니다. 그런데도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거짓 선생들의 유혹에 넘어가서 바울의 사도됨을 부정하고 그의 가르침을 배척하였습니다. 거짓 선생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갔습니다.

 

오늘날도 보면 소위 카리스마를 가진 목사가 큰소리치고 반말을 하고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해서 복 받은 사람 이야기를 하고 목사를 거역하다가 저주 받은 이야기를 하면 그런 사람을 오히려 잘 용납하고 그들의 말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처럼 받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 식으로 자신의 약함이나 자랑하고 연약하고 두렵고 떠는 모습으로 나오면 깔보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연약함으로 증거 하니 능력도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었을 때에 이런 곳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은 힘이 없고 약하면 밟아버립니다. 힘 있는 자에게는 굽실거리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이 강하게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는 어떤 친구가 있는데 좋은 차를 타고 다닙니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좋은 차를 타고 다니지 아니하면 사람들이 깔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을 맡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업상 어쩔 수 없이 좋은 차를 타고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이런 곳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교회는 외모를 보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외모를 봅니다. 목회자가 어느 교단 출신이냐에 따라 대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합동이나 통합과 같이 큰 교단 출신 목사들이 대접을 받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교단에 속했는가가 중요합니다. 또한 대형교회 목사들이 대접을 받습니다. 몇 사람 모이지 않는 개척교회 목사들은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참으로 교회도 세상과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세상과 오늘날의 교회와 반대가 되는 모습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사람처럼 외모를 자랑하는 이유는 외모를 자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바울 사도가 증거 하는 복음조차 틀렸다고 말하기에 자신의 어리석은 자랑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16-17절을 다시 보면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나로 조금 자랑하게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없이 자랑하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만일 어리석다고 하여도 조금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라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없이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여기서 자신이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라고 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이 비록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하여 육체를 자랑하는 자들의 말을 용납하는 어리석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바른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하여 자신이 배설물로 버린 어리석은 자랑을 하기는 하지만 주님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죄가 하나도 없으신 분이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말없이 끌려가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죽기까지 복음을 증거 하였다고 하여도 주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언제 섭섭함을 느낍니까? 여러분이 행한 일을 누가 알아주지 않을 때에 섭섭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행한 의롭다고 여기거나 착하다고 여기는 것은 은근히 알리고 싶은 것입니다. 반면에 실수하고 잘못한 것은 남에게 전가시키거나 감추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우리가 오늘 말씀 앞에서 얼마나 어리석은 자랑을 하고 있는지 다 들통이 나자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육체를 자랑하는 자들에게 바울은 자신이 배설물로 버린 어리석은 것들을 자랑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출신 배경 입니다. 22-23절을 보면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라고 합니다. 히브리인들에게는 자신의 가문이 어디에 기원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베냐민 지파 출신입니다. 솔로몬 사후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뉘어질 때에 유다 지파와 함께한 유일하게 남유다에 남은 지파가 베냐민 지파입니다. 나머지 열 지파들은 다 여로보암을 따라간 것입니다. 히브리인의 정통성은 남유다에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는 말이 이렇게 해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란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자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약속의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런 육적인 조건들을 제시하는 이유는 구원이 유대인으로 나오기에 자신의 출신과 혈통과 가문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누구보다도 더 정통 유대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자신들의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로 하여금 입을 닫게 만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누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수고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23-27절을 보면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일군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정신없는 말을 한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리스도 때문에 당한 많은 고난과 수고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누구보다 많은 고난과 수고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자신의 수고가 어떤 사도들보다 많지만 그러나 그렇게 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10절을 보면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겸손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사실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강권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자신을 이기신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수고를 다 하였어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 무익한 종임을, 아니 죄인 중의 괴수임을 바울은 너무나 잘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자기의 수고를 이렇게 나열하면서까지 자랑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육체의 자랑거리들을 늘어놓는 자들의 입을 막고자 함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0:5절을 보면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일에 도구로 바울 사도가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은 세상의 자랑거리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자랑하는 재미로 사는데 그것을 무너뜨려버리니 갑짜기 무력감이 몰려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길이를 알아가는 새로운 기쁨,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참다운 기쁨을 알아가기보다는 무엇을 해도 죄인데 그냥 대충 살자는 식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전에는 자기를 자랑하는 재미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재미조차 없어진 때에 거짓 선생들이 와서 외모를 자랑하는 재미를 더해 주니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준 바울을 배척하고 그들을 기꺼이 용납하고 따라 간 것입니다.

 

저는 소위 개혁교회에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복음을 듣고서 무력감에 빠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정말 복음을 듣고 기뻐한 사람이라면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주님이 사시기 때문에 더욱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전에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나를 위하여 나의 기쁨과 나의 만족과 나의 자랑을 위하여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왜 무력감에 빠지겠습니까? 우리가 진정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의 기쁨을 소유하였다면 주를 위해 봉사 하는 것이 기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력감에 빠져있든지, 아니면 나는 그래도 무언가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가 다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러면 이제 바울 사도가 어리석은 자랑이라고 하는 그리스도 앞에서 수고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고 오늘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23-27절을 다시 보면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이 많은 수고들은 사도행전에서 보면 사실 절반도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바울의 이 많은 수고 앞에 우리가 무슨 자랑을 하겠습니까? 그저 입을 닫고 회개할 뿐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바울의 자랑을 우리에게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자인지, 얼마나 부끄러운 자인지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 자랑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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