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28 15:55

[요엘서 3장] 그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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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엘서 3:18-21

2008년 요엘서 공부
                                                                  그 날에
말씀:요엘서 3:18-21

 
요엘서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요엘서에 무슨 말씀들이 있었는지 기억이 납니까? 이제까지 우리가 공부한 내용을 제목으로만 살펴보면 ‘깨어 울어라’, ‘여호와의 날’, ‘나팔을 불어라’, ‘마음을 찢고’, ‘하나님의 큰일’, ‘말일에’, ‘하나님의 국문’,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성경의 단어 그대로를 제목으로 삼았기에 요엘서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어느 정도 기억이 나실 것입니다. 왜 깨어 울어야 하는 것입니까? 여호와의 날이 임박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는 구원의 날인데 그 날이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되기에 나팔을 불어라는 것입니다. 안일하게 그날을 기다리다가는 구원이 아니라 오히려 심판의 날이 될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옷을 찢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는 것입니다. 누가 마음을 찢을 수가 있습니까? 마음을 찢는 근본적인 회개란 하나님께서 성신을 부어주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큰일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큰일이 말일에 나타났는데 그것이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의 임하심이 그 성취로 나타난 것입니다. 사도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말일의 사건으로 보는 것입니다. 말일이기에 여호와의 심판과 구원이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임을 사도들이 증거 하는 것입니다. 말일에 하나님께서 친히 국문하실 것입니다. 그 국문 앞에서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피난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피난처에 대하여 우리는 지난주에 살펴보았습니다.  

 

 요엘서 3:14-17절을 보면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 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 것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판결골짜기에서 판결하시는 여호와의 날은 해와 달이 캄캄하며 하늘과 땅이 진동되는 무섭고 두려운 날입니다. 이 날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피난처를 찾습니다. 자기 스스로 안전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피난처를 찾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은 안전하다는 착각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이 너희의 지금 상태가 안전한 상태가 아니니 회개하라고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시며 자기 백성의 피난처가 되실 때에 그곳은 거룩한 곳이 되며, 그 곳에는 다시는 이방 사람이 통행하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완전한 분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지금의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피로 값을 주고 사신 주의 백성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피로 사신 백성들과 그렇지 아니하는 자들을 분리시켜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날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엘서 마지막 본문인 오늘 말씀에서 그러한 구분을 그 날에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 그날이란 이미 지금 시작된 날입니다. 지금이 말일이기 때문입니다.

 

요엘서 3:18-21절을 보면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 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날에 모든 것이 회복 되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과, 황무지가 되는 곳으로 구별이 됩니다.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그림언어라고 말합니다. 글로서 묘사하는 것이 한편의 그림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구원의 완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리고,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적절하게 내려야만 과일들이 풍성하여지고 목초지가 풍성하여 짐승들이 풀을 먹고 젖을 많이 생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 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그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을 성경 몇 곳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이사야11:1-9절을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한편의 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와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공의로 심판하시고 나면 그 때에 해함과 상함이 없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이곳에는 물이 바다를 덮은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을 보면 어떻습니까? 점점 더 이사야 말씀처럼 변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점점 더 여호와를 대적하며 악한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현재 이 땅에 해함과 상함이 없는 지상낙원이 되리라는 꿈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서로 사랑하고 전쟁을 하지 않고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여 지면 이사야의 이러한 예언이 문자적으로 이 땅에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서로 속이고 속고 사는 것입니다. 경쟁과 경쟁 속에서 뒤쳐지면 살아남기조차 힘이 드는 세상입니다. 마치 팽이를 돌리다가 가만히 두면 스러지듯이 스스로를 경쟁에 몰아붙이지 아니하면 죽을 것만 같은 세상입니다. 그래서 팽이를 계속 세게 쳐야 잘 돌아가듯이 온 세상이 서로 서로 팽이 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에게도 날마다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을 무엇으로 해함과 상함이 없는 세상을 인간들의 힘으로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까? 오늘날은 힘만 있으면 다 통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유엔조차도 미국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어린 양이 사자와 함께 뛰어 놀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만유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의 이러한 예언들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주님의 나라에서 해함과 상함이 없이 늘 생명으로 충만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5:1-13절을 보면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1절에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포도주와 젖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네 영혼이 살리라고 말씀합니다. 분명하게 영적인 내용을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취역시 인간의 애씀과 노력이 아니라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이때에는 이방에서도 나아올 것인데 결국 여호와를 인하여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헛되이 돌아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마치 비가 내리면 토지가 적셔져서 싹이 나고 열매가 맺듯이 여호와의 말씀의 성취로 인하여 자기 백성들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17절을 보면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이사야에서는 포도주와 젖을 값없이 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포도주와 젖이 아니라 생명수라고 합니다. 에스겔 47:1-12절을 보면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성전에서 물이 스며 나와서 점점 불어나 강물이 되어 흐릅니다. 이 강물이 가는 곳마다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요한계시록 22:1-2절을 보면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생명수가 나오는 곳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생명수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 이사야의 예언이 더욱 구체화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엘서의 그 날에 있을 예언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의 역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엘서 3:18-19절을 다시 보면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리고 작은 산이 젖을 흘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 인하여 황무지가 된 곳에 물이 공급됨으로 모든 초목과 곡식과 과일이 풍성하게 열리는 것을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회복과 구원이 하나님의 말씀 성취 차원에서 주어지기에 받는 자는 값없이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받은 자는 그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심판의 상황은 황무지가 되는 것입니다. 애굽과 에돔처럼 유다의 무죄한 피를 흘린 자들에 대하여는 그 피의 대가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무죄한 자들의 피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35-36절을 보면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자들이 애굽과 에돔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로 그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흘리게 한 것이 예루살렘 한 복판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온 세상에서 복음을 듣고 생명 안으로 들어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주님의 약속이 시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으로 보면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고 미미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단 한 장면으로 압축을 한다면 구원과 심판이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들은 항상 단번에 이러한 날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러한 선지자의 관점에서, 성경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생명의 역사와 심판의 역사가 지금 우리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약속하고 그 약속한바가 실현되고 있는 현실에 눈이 뜨여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계속하여 가짜 현실에 현혹이 될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란 헛된 것을 믿고 살았던 것을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는 생명수의 풍성함이 만물을 새롭게 소생시킵니다. 포도즙과 젖이 흐르듯이 생수의 강이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가치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그 생명수 강가에 살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 모두가 이미 그 날이 시작되었음을 말씀을 통하여 인식하게 하시고 생명 안에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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