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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빌레몬서 1:1-3

2007년 빌레몬서 공부
                                                             은혜와 평강
말씀:빌레몬서 1:1-3

 

빌레몬서는 사도바울이 감옥에 갇혀서 골로새에 살고 있는 빌레몬에게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그래서 빌레몬서를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옥중서신은 사도바울이 감옥에 있으면서 보낸 서신들인데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와 빌레몬서입니다. 빌레몬은 골로새에 살고 있는 부자입니다. 이 사람은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집에는 많은 노예들이 있었고, 그 중에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의 물건을 훔쳐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런 관계 속에서 빌레몬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빌레몬서의 수신자는 빌레몬과 자매 압비아와 아킵보입니다. 이들의 관계는 빌레몬이 집 주인이고, 압비아는 빌레몬의 아내로 보입니다. 그 당시의 집안일과 노예에 대한 관리는 여주인에게 있었다고 합니다. 아킵보는 아들로 보기도 하는데, 골로새서 4:17에보면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킵보에게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지키라’고 하는 것을 보면 복음을 전하는 자로 보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들에 대하여 호칭을 달리 부르고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 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바울은 빌레몬과 압비아는 동역자로 부르고, 아킵보는 함께 군사 된 자라고 합니다. 바울은 바로 이들에게 함께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특히 2절에서 ‘네 집에 있는 교회’라고 합니다. 아마 빌레몬은 자신의 집을 교회의 모임장소로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초대교회는 대부분 개인의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약 200년까지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개인의 가정에서 모였고, 200년이 지나면서 독립된 교회 건물들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얼마든지 이렇게 가정 교회로 모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것과 그 감옥에서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에 은혜와 평강이 있도록 인사하는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을 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비록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고생이 크면 클수록 나중에 성공은 더 크다는 식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간증들과 설교들을 들어보면 거의가 고진감래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괴로움 속에서도 주님을 위하여 참고 견디며 충성을 다하였더니 결국은 이렇게 세상에서 보란 듯이 성공하였다는 이야기들입니다. 남편이 사업에 성공하고, 교회가 부흥이 되고, 집안이 잘되고, 자식들이 원하는 대학에 붙고, 좋은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는 간증들입니다. 그러나 정작 성경에서 주님을 위하여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혹시 하더라도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부자였다고, 그래서 우리도 믿음으로 자기 자식이라도 바치라면 바쳐서 복을 받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아브라함이 무엇을 복으로 받았는지를 관심도 없고, 그저 소 떼 양떼 많아졌다는 것에 관심이 가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에 대하여 증거 하고 있습니다. 이복이 진짜 복입니다. 땅에 있는 흔적들은 잠시 있다가 다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의롭다 함을 받는 복이 참된 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무엇인지는 신약을 가지고 구약을 보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구약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드러나며 하나님의 일하심이 무엇을 위하여 일하시는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인간의 욕망에 의하여 휘둘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바를 친히 이루어 내심을 인간의 반역과 불순종을 함께 드러내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성경을 받아서 그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온 세상을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으로 다스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이 구약에서 문자적으로 나타난 곳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구약을 믿는다는 유대인들이 아직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메시야를 자기들이 죽여 놓고서는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이 오늘 예수님을 믿는 다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이 자기들은 구원을 받았기에 이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영광은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영광이었기에 십자가의 영광을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죽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주변의 환경들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었으니 이제는 내가 최선을 다하여 세상에서 성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또는 예수님을 위하여 이렇게 헌신 충성 봉사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은혜를 주셨다고 간증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어 버리면 이미 복음이 아닙니다. 율법적입니다. 조건을 갖춤으로 받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별 다른 복이나 성공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 정성이 부족한가 보다 더 열심히 하자고 하면서 자기를 또다시 닦달하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말라 끝까지 복 받을 때 까지 성공할 때까지 부흥할 때까지 끈질기게 야곱처럼 매달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보란 듯이 성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크게 돌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주님을 위하여 산 사람들의 결과는 어떤 모습입니까? 핍박과 환난과 순교의 행진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매 맞고 유리하며 다녔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치고 어디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까? 주를 위하여 죽었는데 무엇이 남았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이 남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죄가 무엇이며,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를 남긴 것입니다. 이것이 주를 위하여 산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은 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성경에서 바울만큼 수고하고 애쓴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어떤 사도들보다 더 힘을 다하여 주를 섬긴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감옥에 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만나고 주를 위하여 살면 이런 신세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계속 예수를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수 믿는 다는 것은 우리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좋아하시는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 좋은 것이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죄를 깨닫고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자기 부인의 길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를 부인하고 가지 못하기에 날마다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실패를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무안을 당하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만물의 찌끼 같은 대접을 받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사는데도 그렇게 대접을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지는 신령한 복이 세상의 환난과 핍박과 죽음조차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편지를 쓰면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에베소서에서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시고 때가 되어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하늘의 기업을 받게 하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엄청나고 대단한지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알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 감옥이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1:3-23, 3:14-20절을 보면, 감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빌립보서는 기뻐하고 기뻐하라고 그렇게 자주 말하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기뻐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 감옥에 갇혔으면 억울하게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바울을 감옥에 가두어 두고서 빼내지도 못하는 것입니까? 베드로도 감옥에서 기적으로 나왔고 바울과 실라도 그런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빼 내실 수 있는데도 지금 감옥에 잡혀 있으면서 기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미 하늘의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3:1-4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고 했습니다. 몸은 감옥에 있어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감옥이 의미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각 지역의 교회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어떤 인사를 하고 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찌어다.” 감옥에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 입니까? 자기가 감옥에 있으면서 은혜와 평강을 바란다고 하면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너나 은혜와 평강을 누리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창세기 47장에 보면 야곱이 노년에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먹을 양식이 없어서 내려간 자리에서 바로 왕에게 축복합니다. 기근으로 살기위하여 애굽으로 온 사람이 애굽의 왕에게, 모든 세상의 것들이 가득한 왕에게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바로가 무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나중에 모세가 바로 왕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 백성을 내어 놓으라고 합니다. 그때 바로 왕이 여호와가 누구 간대 그런 말을 하느냐고 합니다. 노예들의 신이라면 그 신도 별 볼일 없는 신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잘 되어야 예수님을 잘 전할 수 있다는 마귀의 속임에 넘어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 말에 집단적으로 속아 넘어간 것이 유대인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면서 참된 하나님을 죽인 것입니다. 오늘 교회라고 모인 자들로 헛된 세상의 영광에 속을 수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영광을 버리고 세상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영광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라면 교회라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바울이 누린 이러한 은혜와 평강을 누리고 있습니까? 감옥은커녕 조금만 덥거나 추워도 불평과 불만이 나오지 않습니까? 아주 사소한 일들로 인하여 분노가 폭발하지 않습니까? 주를 위하기는커녕 거저 내 기분과 내 만족에 미흡하면 모든 것이 싫고 짜증스럽지 않습니까?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가정도 교회도 국가도 하나님조차 나를 위하여 주면 좋지만 나를 조금이라고 불편하게 하면 은혜고 평강이고 다 날아 가버리고 분노만 가득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남의 이야기입니까? 바로 우리의 이야기 아닙니까?

 

사도바울의 인사말 하나를 가지고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서 얼마나 먼지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먼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상관없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단지 은혜와 평강을 누리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바울이 전한 복음, 바울이 믿는 예수님을 우리는 믿지 않고 엉뚱한 복음을 만들어서 믿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를 위하여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우상 예수를 믿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바울이 믿는 예수를 믿으며, 바울에게 주신 은혜와 평강을 우리에게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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