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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빌레몬서 1:11-18

2007년 빌레몬서 공부
                                                          종에서 형제로
말씀:빌레몬서 1:11-18

 

어제까지 종으로 부리던 사람을 오늘 형제로 맞이할 수가 있겠습니까? 고대로 갈수록 종이나 노예란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말하는 짐승정도로 취급을 당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반상제도가 얼마나 엄격하였습니까? 조선시대에 보면 반상의 엄격함이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요즈음은 신분상의 반상제도가 없어졌지만 그러나 아직도 족보를 따지면서 양반입네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노예와 주인의 신분이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는 약 2천년 전의 상황에서, 어제까지의 종을 오늘 사랑하는 형제로 맞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를 형제로 맞이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신분의 차별을 없애자고 수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피를 흘리는 난을 일으키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습니다. 신분의 차별만 없애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차별도 없애자는 노력도 많이 해 왔습니다. 특히 공산주의 사상은 빈익빈 부익부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사유재산제도를 없애고 재산을 공동의 소유로 하자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이론입니까? 그러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하고 종주국이라는 소련이 붕괴하였습니다. 공산주의는 유물론자이기에 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출발점이 인간의 가능성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의 탐심을 간과한 것입니다. 이것이 공산주의 실패의 최대 원인이었습니다.

 

공산주의의 붕괴에 우리나라 불교계가 기뻐하니까 [장군죽비]라는 책을 쓴 휴암 스님이 한마디 하였습니다. 공산주의가 실패하였다는 것은 불교도가 기뻐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철저한 인간중심의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하다고 실패한 것이라는 겁니다. 불교도 신에게 비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 중심의 구원관인데 공산주의가 실패하였다는 것은 불교도 심각하게 자기 성찰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기독교는 인간이 도저히 스스로의 능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가 없기에 신의 자비와 은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말도 하였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신분제도를 고치고 경제의 평등을 이루기 위하여 무시무시한 살육을 감행하면서까지 혁명을 이루어 내었지만 그러나 또 다른 탐욕의 지배계급이 나오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도 결국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인간의 모든 제도와 사상들이 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힘을 다하여도 인간은 인간일 뿐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도대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어떠한 사회변혁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좋은 세상으로 만들자는 제도를 말씀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세상을 변화시켜서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구원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도 세상의 제도개혁이나 경제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도시문제나 실업문제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기존의 제도를 바꾸어야한다고 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바울은 종으로 있어도 예수님 안에서 자유자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빌레몬에게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형제로 받으라는 내용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제도개혁이나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됨을 인하여 간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10-12절에 보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저를 돌려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고 합니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의 뜻은 ‘유익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기전에는 이름만 유익한 자였지 빌레몬에게 무익한 자였습니다. 무익한 정도가 아니라 해를 끼친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빌레몬에게나 바울에게 유익한 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에게 어느 정도로 유익한 자가 되었는가 하면 자신의 심복이라고 합니다.

 

13-14절에 보면 오네시모가 바울에게 심복이기에 빌레몬을 대신하여 갇힌 바울을 섬기게 할 수 있으나 돌려보낸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얼마든지 부탁할 수 있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이기에 그 정도는 얼마든지 부탁할 수 있지만 빌레몬의 승낙 없이는 아무 것도 하기를 원치 아니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빌레몬의 선할 일이 억지가 아니라 자의로 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일이란 철저하게 자원함으로 하게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마음이 없는데 억지로나 체면 때문에 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오네시모가 잠시 떠난 것은 영원히 두게 함이라고 합니다. 비록 주인의 물건을 훔쳐 도망을 갔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악도 변하여 선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을 만난 자리에서 말한 고백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45장에 보면 형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네시모를 하나님의 섭리가운데서 본다면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도 자기를 저주하는 자를 그대로 두라고 하였습니다(삼하 16장). 이러한 고백들은 결국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는 자세입니다.

 

16-18절에 보면 오네시모가 종이 아니라 종에서 뛰어나 바울의 사랑받는 형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빌레몬에게도 사랑받는 형제로 맞이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사랑받는 형제이기에 바울의 형제로 여기는 빌레몬에게도 형제로 맞이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레몬에게는 오네시모가 종입니다. 종이라고 하여도 전에는 무익하나 이제는 유익한 자가 되었으니 바울을 동무로 여긴다면 오네시모도 형제로 받아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빚이 있다면 자신에게로 회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노예를, 그것도 물건을 훔쳐 도망간 노예를 한 형제로 맞이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법이나 제도로 될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으로 되는 것입니까?

 

이사야 11:1-9절을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와서 다스리게 될 때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거하며, 어린 아이가 독사 굴에 장난하여도 해 됨이나 상함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짐승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힘 있다고 약한 자를 억압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예나 주인의 관계가 아닙니다. 착취와 억압이 없는 세상입니다. 이것이 메시야가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이 말씀의 성취가 오네시모와 빌레몬에게서 일어난 것입니다. 사자와 어린양이, 주인과 노예가 서로 해함과 상함이 없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근원적인 뿌리는 하나님의 원수 되어 마귀의 노예로 있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하여 용납되었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15:15절에 보면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은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전부다 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가지가 나무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가지를 지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불러서 종이라고 하지 않고 친구라고 대접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부름을 받은 자라면 지위와 신분과 상관없이 모두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종에서 형제로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형제 안에서 높낮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누가 서로 높으냐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이것은 부르심을 모르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지로서 영양분을 공급받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로마서 11:17-24절에 보면 “또 한 가지 얼마가 꺾여 졌는데 돌 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 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스스로 자긍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믿지 아니함으로 꺾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접붙임을 받았다는 이방인들도 자긍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스스로 자긍하게 되고 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주님의 긍휼로 붙어 있는 자들이기에 종이나 자유자나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죄의 종에서 주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은 자들이 서로 높고 낮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로 노예와 주인이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동무가 되고, 유식한 자나 무식한 자나 형제로 교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게서 모든 것을 공급받아 살아가는 동등한 가지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종에서 형제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로 된 것이기에 나의 잘남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은혜로 된 것임을 아는 믿음의 사람만이 외모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형제로 맞이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 진정한 형제의 교제가 있습니까? 복음 안에서 진정한 형제의 사귐이 있습니까? 여전히 자기 육체의 소욕과 취향을 따라 이합집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여 지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욱 알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한 몸이 되어 있다는 것이 확인되어지는 모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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