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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골 1:18-20

2008년 골로새서 공부
                                                       교회의 머리 예수님!
말씀:골로새서 1:18-20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모든 피조물이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지난주에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 세상의 신이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도록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세상의 중심이 자기인줄 알고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 속에서 모든 창조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누가 알게 되었습니까? 교회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3:8-11절을 보면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신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잘 알듯이 예수님을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바울에게 은혜가 주어진 것은 측량할 수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기 위함이요,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함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란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곧 교회로 말미암아 영원 전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비밀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9-12절을 보면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 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선지자들이 부지런히 살핀 것이며,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믿게 된 무리가 교회인데, 하늘과 땅의 비밀을 아는 곳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만이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또한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결코 이 사실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또한 그를 워하여 창조 되었는데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 되십니까? 골로새서 1:18절을 보면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몸인 교회의 머리라고 합니다.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건물이 아닙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만들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교회는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야만 아는 것입니다. 곧 교회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모든 지혜를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이 근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무라면 뿌리가 있고, 샘이라면 근원이 있듯이 교회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교회가 존재할 수도 없고, 유지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여기서 예수님을 근원이라고 하는 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 부활의 주님께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성령이 임한 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을 믿게 되고 증거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출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 지상에 등장하였다는 것은 이미 종말을 의미합니다. 종말론적인 현상이 교회의 등장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그렇게 예언하고 증거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16-21절을 보면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말세에 성령이 부어짐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나왔습니다. 이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출현이 바로 종말의 현상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요, 근원이 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요, 근원이 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9절에 보면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요, 근원이 되시는 것은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입니다. 만물의 으뜸이 예수 그리스도 이심을 교회를 통하여 알리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삽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만물의 으뜸이 자기자신인줄 알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의 으뜸 곧 만물의 으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으뜸이 자기인줄 알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는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기의 으뜸 됨을 도와주는 분 정도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세상에서 승리하고 복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승리하게 해 주시도록, 복을 주시도록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라고 이름을 갖고 있지만 실상은 교회가 아니라 사단의 회가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우리는 그 의미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말로만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요, 근원이며, 만물의 으뜸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는지 자기 자신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예수님을 만물의 으뜸으로 곧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 되심을 인정하고, 왕 되심을 인정하고, 그 분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 가운데서 주님이 주되심과 왕 되심을 잘 나타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있습니까? 날마다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를 받고 살고 있습니까? 그 분의 통치를 받고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자기의 행위를 믿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것이 무슨 말장난 같지만 잘 들어보아야 합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믿고 있는 증거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자신이 교회에 다닌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하고 헌금을 한다고 합니다. 공예배에 빠지지 않고 수요기도회에도 열심히 나가고 여러 가지로 봉사 한다고 합니다. 그런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 못하면 이것이 하나의 종교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실제 삶 속에서 주님의 통치를 받지 않는다면 이런 모든 행위는 하나의 종교 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종교 행위와 주님의 통치를 받는 것을 어떻게 구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골로새서 2:16-19절을 보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고 했습니다. 골로새 교회에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복음을 받았는데 다른 거짓 선생들이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일부러 겸손한 자들도 있고, 천사숭배 자들도 있었습니다. 자의적인 숭배를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자의적이라고 하는 것은 머리의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이렇게 하는 것이 신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금욕을 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대단한 열심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육체를 금하는데 조금도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것이 자기 의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골로새 교회에는 신비체험주의자도 있었습니다. 무언가 본 것을 의지하여 과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다 머리로부터 곧 예수님으로부터 공급받지 않고도 나오는 모습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교회됨이란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를 받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곧 머리 되신 예수님의 통치를 받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지시를 받고 그 분의 통치를 받고 있다면 우리의 삶속에서 교회됨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수천 명이 모이고, 수만 명이 모인다 할지라도 주님의 지시를 받지 않고, 주님의 통치를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사람이 몇 명이 안 된다 할지라도 주님의 지시를 받고 주님의 통치를 받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가 주님의 지시를 잘 받고, 주님의 통치를 온전히 받아 가고 있는지를 잘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지시를 늘 받지만 그 지시조차 영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늘 씩씩 대면서 예수님은 왜 나만 미워해! 왜 나의 기도는 안 들어 주시지!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씩씩거리는 것조차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 앞에서는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충만’이라는 태풍이 불어오는데 우리의 콧김이 당하기나 하겠습니까? 19절을 보면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가 됩니까? 한글이 이럴 때 참 어렵게 느껴집니다. 공동번역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라고 했습니다. 이 번역도 어렵습니다. 새 번역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충만함을 머물게 하시기를 기뻐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곧 하나님의 충만함을 예수님 안에 두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저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충만함이며, 또한 예수님이 만물의 충만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는 하나님은 인간들의 상상의 하나님이며, 예수님 없는 만물은 공허한 것입니다.

 

인간들은 자기들이 빈껍데기인줄 모르고 빈껍데기에 자꾸만 무엇을 채워 넣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생명의 본질에서 단절되었기에 근원적인 결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핍이 무엇인지를 모르기에 계속하여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감각이 죽어있는 상태입니다. 영적인 감각이 죽어 있는 인간은 몸으로 느끼는 오감의 만족을 위하여 달려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채워도 만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1:8절에서 이렇게 증거 합니다.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인생이 이렇게 된 것은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생명나무로 나아갈 길이 막혀졌기 때문입니다. 뿌리 뽑힌 나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말라죽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것을 가지고 이것이 새롭다거나 충만하다거나 할 것이 없는 세상입니다. 날마다 허상을 따라 허겁지겁 달려가고 있으니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 충만을 말합니다. 충만 이란 완성이며, 더 이상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모두가 원하지만 아무도 이르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 충만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충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충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던 인간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고 나니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오늘 우리가 보는 골로새서를 쓰는 이 바울사도가 경험한 충만함입니다. 그는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하늘나라를 보고 온 사람입니다. 바울은 셋째 하늘 곧 낙원에 이끌려 갔다고 합니다. 그 충만한 은혜를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서 가히 사람의 말로는 다 이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얼마나 좋았는지 온갖 어려움과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하늘을 소망할 수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빌립보서 1장에 보면 하루라도 빨리 죽는 것이 낫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충만의 세계를 맛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한 사람의 충만한 사람은 스데반 집사입니다. 그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초대교회 일곱 집사로 뽑혔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할 뿐 아니라 권능도 충만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이 스데반 집사에게서 무엇이 나왔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였습니다. 그래서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돌을 던지는 그들을 향하여 저들을 사하여 달라고 저들이 알지 못하고 저런다고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모습이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59-60절을 보면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 앞에 다 기가 죽습니다. 우리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이나 스데반도 그들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능력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말입니까? 골로새서 1:20절을 보면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만물 곧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 화해가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21절에 보면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자들이 다 이랬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의 충만 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신 분이 자기 피로 값을 주고 사신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힘으로 화평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 때 서로 화합하자고 한문으로 화자를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수많은 소수 민족을 힘으로 누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값을 주고 우리를 구속하여 내셨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지체를 끝까지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라면 반드시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돌보심이 있을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범사에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고 사는 성도가 되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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