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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골 3:12-17

2008년 골로새서 공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말씀:골로새서 3:12-17

 

우리가 어떤 모임에 가려면 그 모임에 맞는 옷을 입습니다. 학교를 가면 교복을 입고, 운동을 하러 가면 운동복을 입고, 일하러 가면 작업복을 입고, 장례식에 가면 검은 옷을 입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가려면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까? 로마서 13:11-14절을 보면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 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옷을 입으려면 먼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입고 있던 옷을 벗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려면 우리는 먼저 벗어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지난주에 보았는데 다시 한 번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5-9절까지가 벗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벗어버려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입니다. 또한 분과 악의와 훼방과 우리 입의 부끄러움 곧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탐심이 곧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이런 우상숭배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과거 다 이 가운데서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살리심을 받았기에 이런 것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벗어야 할 것들이 우리의 팔다리처럼 우리 몸에 들어붙어 있기에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아울러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새 사람을 입는 것은 주님께서 입혀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10-11절을 보면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 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새 사람이란 이미 입혀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뿐만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그러므로 이런 은혜를 받고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그 어떤 차별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만유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 모든 것이 되는 사람은 세상의 그 어떤 것을 가지고도 분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만 모든 것이 되는 사람은 사람을 세상 조건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나 아직 지상의 교회는 온갖 잡동사니가 함께 모여 있는 것입니다. 양도 있고 염소도 있고 이단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상의 교회가 왜 모든 탐심을 벗어 버려야 합니까? 창조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자라가야 합니까? 성도가 가야할 궁극적인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갈 옷을 입었기에 그 옷의 가치를 날마다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끄집어내어서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놓았기에 이제는 그 아들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큰일 났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좋아하던 세상의 것들이 떨어져 나가고 하늘의 신령한 것으로 채워져야 하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복음이 아니라 고음 곧 고통스러운 소리가 될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새사람을 입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부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먼저 택하심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5:16절을 보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예수님을 선택하여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거룩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거룩함을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구별하여 내시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히브리서 10:10절을 보면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거룩함이란 예수님의 몸을 십자가에 제물로 드리심으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일서 4:10절을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보내어 주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그 정도는 우리도 압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사랑하셨기에 이제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살라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계시겠지만 이것은 또다시 너무 성급한 것입니다. 곧 우리의 힘과 의지로 긍휼과 자비와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과 거룩함과 사랑을 받은 자답게 사는 것이 이미 구약에서 실패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명기 7:6-8절을 보면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이 나옵니다. 여기에는 거룩함도 포함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어린 양의 피로 속량한 것이 거룩한 것입니다.

 

그리고 택함과 사랑과 거룩함을 입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이어서 나오는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신명기 7:9-11절을 보면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그런즉 너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대로 순종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결국 그들은 순종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한 방법으로 신약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너희가 하나님의 택하심과 거룩함과 사랑을 입은 자로서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으라고 한다면 은혜아래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율법아래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12절에 나오는 다섯 가지 목록들 곧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구원이 됨을 신구약 성경이 다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 긍휼과 자비를 나타내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를 지기까지 겸손하셨으며 온유하시고 오래 참으심이 우리의 구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과 신약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주도권의 싸움입니다. 구약에서도 택하심과 거룩함과 사랑을 받은 자들인데 자기들이 말씀대로 살아보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철저하게 실패한 것입니다. 그 실패란 구원하려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인간의 죄가 얼마나 엄청난지 자기 의를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예수님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성도란 내가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을 옷처럼 입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는 주도권이 자기에게 있다면, 신약에서는 그 주도권이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은혜 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곧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음으로 은혜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제 13절을 보겠습니다. 13절을 보면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혐의’라고 되어 있는데 이 말은 ‘불평’이라고 보면 됩니다. 누구에게 불평이 나오면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옥가야 마땅한 죄인이 예수님의 용서를 받고 산다고 말은 하지만 평소에 불평과 원망을 쏟아놓지 않습니까? 전부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를 용서하였다고요? 조금만 자존심 건드리면 안색이 달라지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너는 이제 용서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가 되셔서 이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서 용서가 나오는 경우에는 결단코 자기를 자랑할 수가 없는 용서가 나옵니다. 이상하게 용서가 될 뿐 아니라 나는 더 큰 죄인임을 알게 되고 내가 더 용서받아야 할 자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 예수의 이름과 그 이름을 힘입어 나오는 모습입니다.

 

14절을 보면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사람이 사랑이 없이도 온갖 일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천사의 말을 할 수도 있고, 자기의 전 재산으로 구제도하고, 자기 몸을 불사르게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내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일을 하고서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으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주보에 헌금명단이 빠지기만 해도 당장 항의가 들어온다고 합니다. 우리교회는 헌금 명단도 없으니 그런 항의 자체가 나오지 않지만 그러나 다른 모습으로 얼마든지 변형되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원하는 대로 안 되고, 자기를 대접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불평하고 대적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하며, 이것이 온전하게 매는 띠라고 합니다. 옷을 입고 나서 띠를 띠는 것처럼 사랑이 전체를 아우르는 띠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 띠를 맬 때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띠를 매는 것에 대하여 에베소서 4:1-16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다같이 봉독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합니다. ‘몸과 믿음과 주와 소망과 세례와 하나님도 하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가 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사랑으로 묶여 있다는 것입니다.

 

15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몸의 각 지체끼리는 분란이 없습니다. 손이 눈더러 필요 없다거나 팔이 다리더러 필요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다리가 머리를 보고서 무겁다고 원망하지 않습니다. 팔이 부러지면 깁스해서 목에다 걸고 다닙니다.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평안함만 있으면 모릅니다. 때때로 팔이 부러지듯이 어려움이 닥쳐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입는 것인지 아니면 거저 내 한 몸 편하면 제일이라는 식으로 사는지 확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부르심을 입었다면 짐을 함께 지는 것이 오히려 감사가 될 것입니다. 어떻게 나 같은 죄인이 이런 일에 하나가 되었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은 평강으로 충만케 됩니다.

 

16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게 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풍성하게 되면 그 말씀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풍성하게 거하게 되면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게 됩니다. 일방적인 가르침과 권면이 아니라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 서로 교제하는 것이 다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게 거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기준에 맞추어서 정죄하고 판단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하게 거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게 거하게 되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우리가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이라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합니다. 그냥 예수의 이름이 아니라 범사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가 되셨기에 그 주의 이름의 능력과 힘으로 지금 사도를 통하여 말씀하신 이런 내용들이 일어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곧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옷을 입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자기 부인도 반드시 일어나게 됩니다. 사랑의 띠로 온전케 되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를 주장하게 되고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이것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혹 긍휼이나 자비나 겸손이나 온유나 오래 참음이 나오면 주 예수의 이름과 그 힘의 능력을 덧입은 줄 아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 가운데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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