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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전 4:9-12

2009년 데살로니가전서 공부
                                                                성도의 삶
말씀:데살로니가전서 4:9-12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전서를 마감하면서 성적인 거룩에 대하여 권면하는 말씀을 지난주에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성적인 것만이 아니라 세속에 물들지 아니함이란 것도 함께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주님께서 재림 하실 때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나타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주님의 보혈의 능력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거룩한 신부복을 입고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기다리는 신부의 모습이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하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부지런히 형제를 사랑하고, 각자가 자신의 할 일을 힘쓸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이 두 가지의 문제를 살펴봄으로 성도로서의 우리의 삶의 자세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형제 사랑에 관한 문제입니다. 9-10절에 보면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 많이 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형제 사랑을 잘 행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형제 사랑에 대하여 더욱 많이 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러한 형제 사랑의 구체적인 예들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어려운 형제들을 물질로 돕는 것입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온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에게도 이러한 사랑이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마게도냐 지역에 빌립보와 베뢰아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들에게까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형제 사랑이 알려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사랑의 수고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사랑의 수고를 칭찬하면서 더욱 이러한 형제 사랑을 더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제 사랑에 대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보고자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그런데 말로서는 하는데 행동으로 나타나지는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곧 사랑의 수고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가 배가 고프면 밥사 먹어라고 말만하지 말고 밥 사먹을 돈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추운데 옷을 사 입어라고 말만하는 것이 아니라 옷을 하나 사다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사랑의 수고입니다. 곧 말로서만이 아니라 실제 수고가 따르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형제를 사랑한다고, 수고를 한다고 하지만 자기가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랑은 세리들도 다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인도한 형제라고 사랑하고, 자기에게 잘해 주는 형제라고 사랑하고, 같은 동문이라고 사랑하고, 같은 친구라고 사랑하고, 취미가 같다고 사랑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관심과 배려를 한다는 것은 결국 사랑이 아니라 새로운 이기심의 모습입니다. 마태복음 5:45절에 보면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이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는 우리의 형제 사랑을 돌아봐야 합니다. 형제 사랑이란 나와 성격이나 취미나 스타일이나 어떠한 인간적이고 조건적이 아니라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형제, 자매가 되었다면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의 정도는 어디까지 입니까? 요한일서 4:7-21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진바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 사랑이 어떠한지를 알고 받았기에 함께 그 사랑을 받은 자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 안에 있어야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함은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사랑에 의하여서 입니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언제라도 깨어질 수 있는 하나의 친목단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낚시나, 볼링이나, 탁구나, 등산이나 간에 어떤 취미와 기호를 따라 모인 하나의 계모임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 내용이 종교적으로 덧칠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말씀을 통하여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형제를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도 점검해 봐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받은 사랑이 있는가를 먼저 점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받은 사랑이 있다면 자연히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받은 사랑이 없다면 인위적인 사랑의 모양을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주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이 있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의 기도에서 그 사랑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랑이 없는데도 서로 사랑한다고 교제하고 함께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미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안에 사랑 없음을 두 가지로 점검을 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이 있는가?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가?

 

데살로니가전서 4:9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형제 사랑에 대하여 더 할 말이 없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증거한 복음인데도 그러나 그 사랑의 근원을 어디에 두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이 사랑이 아니고서는 그저 인간적인 사교단체일 뿐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이 무엇입니까? 조금 전에 본 요한일서의 말씀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5: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고치고 개선하여 나아진 상태가 되면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허물과 죄로 죽어있을 때에 사랑을 입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입었기에 우리 안에 있는 약한 형제들을 있는 그대로 용납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말씀을 통하여 또다시 우리의 사랑 없음을 지적받고 주님의 긍휼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받은 주님의 사랑을 바로 알게 하옵소서. 그 엄청난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알게 하옵소서.’ 요한계시록에 보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주님은 특히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무엇 때문에 처음 사랑을 잊어버렸는지, 어디서 떨어진 것인지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촛대를 옮겨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에 대한 처음 사랑을 잊어버리면 그것은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없으면 애초부터 교회가 아니지만 그러나 받았는데도 잊어버림으로 자기의 의와 자기의 행위만 나오게 된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 교회에서 형제에 대한 사랑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경제적인 독립을 말하고 있습니다. 11-12절을 보면 “또 너희에게 명한것 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이렇게 함을 통하여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바울의 이와 같은 권면을 통해 데살로니가 교회에 종말의 문제를 잘못 이해하여 일할 필요도 없다고 하는 자들이 있었다고 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2절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휴거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모든 일을 그만두고 기다리는 그러한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을 잘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말이 왔다고 ‘일하면 무엇하나’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싫어서 하지 않고 있는 자들에 대하여서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11절을 다시 보면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헬라시대에 손으로 일하는 것을 천하게 여긴 것입니다. 자유인이라고 불리운 자들은 자기들의 종들이 천한 일들을 하고 자기들은 철학이나 논하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양반이라는 자들은 풍류니 무어니 하면서 놀면서 손으로 일하는 것을 천대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는 것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대부분이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이 중심이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서도 “너희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서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자기 손으로 힘써 일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10-12절을 보면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일은 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고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손으로 일하지 아니하고 입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일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젊은이들이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저 편해 보이고 깨끗해 보이는 일들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이 먼저 들어간 나라들에서는 직업에 귀천을 그렇게 따지지 않습니다. 독일 같은 경우는 칼갈이가 대학교수와 같은 대접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독일의 면도기나 주방기기들의 제품들이 세계적인 제품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행하여야 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일하면 분명히 인정도 받게 됩니다. 그래야 외인에게 대하여 단정히 행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직분 자를 세울 때도 사회에서 직장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눈치나 보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살려면 한국적 상황에서 참으로 순교의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만 그러나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의 마땅한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 결국은 형제 사랑으로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의 것들이 모두 사라질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일도 하지 않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에녹처럼 하나님과 300년을 동행하면서도 아이도 낳고 농사도 짓고 가정생활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이 땅에서 거룩한 나그네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자기의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교회의 일을 감당하겠습니까? 그러니 무조건 교회에 관련된 일만이 주의 일이라고 하는 생각들을 버려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모든 일이 주님의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님 앞에서 감당해야 합니다. 공부도, 직장생활도, 가정생활도 곧 이 땅의 모든 일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문화명령을 잘 수행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형제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렇게 살기 위하여 우리는 늘 우리가 받은 그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로부터 받은 그 크신 사랑으로 늘 기억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그 사랑을 힘입어 형제에 대한 사랑을 잘 나타내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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