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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전 5:1-11

2009년 데살로니가전서 공부
                                                                때와 시기
말씀:데살로니가전서 5:1-11

 
우리는 4장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사는 것과 형제에 대해서 서로 사랑하며, 자기 일에 힘써서 외인에게도 단정히 행하며, 주님의 재림과 부활을 소망하며,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는 삶임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4장에 계속되는 말씀으로 특히 주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 곧 주의 날에 대한 때와 시기에 대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세차한 다음날 비가 와서 안타까워했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 다음날 비가 온다는 소식을 알았다면 세차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우리가 그 시기와 때에 대하여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반드시 임합니다. 마치 비가 오는 것을 몰랐다고 해서 비가 안 오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에 대하여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재림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도 전에 먼저 죽어 버린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의심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의심으로 까지 연결이 되자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예수님 강림하실 때 지금 살아 있는 자들보다 먼저 일어남을 증거했습니다. 그런 후에 성도들에게 이제 더욱 주님의 재림을 기억하며 깨어 근신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재림의 때와 시기는 이미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알고 있다고 합니다. 1-2절에 보면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더 이상 쓸 것이 없을 만큼 이미 주님의 재림의 때와 시기를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재림의 날을 주의 날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주의 날은 밤에 도적같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주의 날에 대하여 먼저 살펴보고, 도적같이 임한다는 말씀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의 날에 대하여서는 구약에서 많이 언급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날을 유대인들은 사모하고 기다려 왔습니다. 그날이 오면 사방의 대적들을 주께서 다 몰아내시고 오직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주실 것이라고 기대하고 기다린 것입니다. 곧 그들은 이방인들을 심판하는 날로서 주의 날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러나 아모스서에서 본 것처럼 이날이 이방인에만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에게 임할 심판의 날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모스 5:18-20절을 보면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 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날이 빛나고 영광스러운 날로서 기다렸는데 오히려 심판의 날로 임하여 버린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오면 이방인들이 심판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유대인들이 오히려 그날이 자기들의 심판의 날이 되리라고 상상이나 하였겠습니까?

 

오늘날도 자신은 천국에 일등으로 간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다른 사람들도 저 사람이라면 천국에 일등으로 들어갈 사람이라고 보았는데 그날에 주님께서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고 하신다면 그 주의 날이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때 그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좇아내고, 이런 저런 능력 있는 일들을 하였다고 할지라도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르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21-2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 말씀이 남의 일입니까? 바로 오늘날 우리 자신의 일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날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사람이었는데 그날이 오히려 심판의 날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에 대하여 알지 못하여도 그날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주의 날이 무엇입니까? 구약에서는 심판의 날로 임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신약에서도 주의 날이란 심판의 날이 됩니다. 그러나 주를 믿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의 특징은 민족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온 인류가 심판대 앞에 서게 되지만 그러나 각자가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4:12절에 보면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날이 임하는 그 때와 시기에 대하여서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이미 듣고 알고 있어서 더 이상 쓸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미 알고 있는 그 때와 시기에 대해 어떻게 말합니까? 2절에 보면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1절에서 말하고 있는 ‘때와 시기’라는 말은 헬라어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는 시간의 흐름을 말하고 있고, ‘카이로스’는 사건적인 의미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재림의 때와 재림의 사건에 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지난 일 년 간 일어난 일들을 돌아보면 일 년이라는 때가 있고, 그 때 안에서 특별한 사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 년 간의 기간을 ‘크로노스’로, 특별한 사건을 ‘카이로스’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임하실 그 때와 시기에 대하여 밤에 도적같이 온다고 하시는 말씀은 그 날 자를 알아맞힐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곧 그 날 자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그 날과 때를 안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주로 인용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아모스서입니다. 아모스 3:7절에 보면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런 말씀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선지자들을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이상하게 꿈에서 보았다, 환상을 보았다고 하는 자들을 주의 종에 대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성경에 주님의 날에 대하여 충분히 예언되어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날 자를 언급할 필요가 전혀 없을 만큼 완전하게 예언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날자나 시기를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태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의 저주에 대하여서는 요한계시록에서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18-19절에 보면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때와 시기를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2절에 보면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고 했습니다. 도적이 몰래 오는 것처럼, 신랑이 밤중에 갑자기 오는 것처럼, 주인이 불시에 오는 것처럼, 알지 못하는 때에 갑자기 임하는 것입니다. 도적이 언제 온다고 말하고 오지 않는 것입니다. 졸며 잘 때에 신랑이 오는 것입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살림을 맡겨 두었는데 갑자기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오실 때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한 여인이 해산의 고통이 임하듯이 멸망이 홀연히 임하게 되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해산의 날 자를 초음파를 통하여 보면 거의 일주일 내외로 예측을 합니다. 즉 때는 예측을 하지만 해산의 고통이 언제 임할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홀연히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한 날 자를 예측하여 대비할 수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갑자기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여기게 됩니까? 두 가지로 봅니다. 하나는 세상이 주는 행복에 빠져서 먹고 마시며 즐기자 할 그러한 안전의 때입니다. 마치 어리석은 부자가 많은 재물을 쌓아두고서 이제 내 영혼아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기자 할 그러한 안전과 평안의 때에 갑자기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 모두가 추구하는 안전과 평안이란 결국 어리석은 부자가 추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경제와 정치가 안정적인 것을 안정과 평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그러한 때에 갑자기 멸망의 날이 임하는 것입니다. 마치 노아 홍수 때처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때처럼 임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29-51절을 보면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 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는 거짓 선지자들에 의하여 평안이 없는데 평안이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6:14절에 보면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또 예레미야 8:11절을 보면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평안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마치 긴급하게 수술을 하여야 하는데 반창고 붙여주고 빨간 약 발라주고서 다 나았다고 하는 돌팔이 의사와 같은 것입니다. 에스겔 13:8-16절을 보면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또 말하노라. 너희가 허탄한 것을 말하며 거짓된 것을 보았은즉 내가 너희를 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쳤으니 내 손이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도 기록되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혹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을 하는도다. 그러므로 너는 회칠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그것이 무너지리라 폭우가 내리며 큰 우박덩이가 떨어지며 폭풍이 열파하리니. 그 담이 무너진즉 혹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것에 칠한 회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분노하여 폭풍으로 열파하고 내가 진노하여 폭우를 내리고 분노하여 큰 우박덩이로 훼멸하리라. 회칠한 담을 내가 이렇게 훼파하여 땅에 넘어뜨리고 그 기초를 드러낼 것이라 담이 무너진즉 너희가 그 가운데서 망하리니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이와 같이 내가 내 노를 담과 회칠한 자에게 다 이루고 또 너희에게 말하기를 담도 없어지고 칠한 자들도 없어졌다 하리니. 이들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의 묵시를 본다 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5-6절에 보면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고 했습니다. 평소에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두움에 속하지 않는 자들에게라야 가능한 것입니다. 어두움에 속한 자들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있을 때에라도 빛에 속한 자들은 그 때와 그 시를 알지 못하여도 언제나 깨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과 거짓된 안전에 우리의 생명을 맡기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에 의하여 제시되는 여러 가지의 일들을 행하는 것에도 우리의 안전을 삼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오직 주의 말씀에 주의하면서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8-11절을 보면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낮에 속한자라면,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은 우리로 하여금 살든지 죽든지 주와 함께 하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것이 예수님의 재림의 날을 기다리는 자세입니다. 이렇게 되도록 서로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도적같이 홀연히 임하실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성도들 간에 서로 권면하며, 위로하며, 덕을 세워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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