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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전 5:19-22

2009년 데살로니가전서 공부
                                                            하나님의 뜻(2)
말씀:데살로니가전서 5:19-22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부터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하나님의 뜻은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했습니다(4:3). 또한 형제를 사랑하고, 자기 일에 힘씀으로 외인에 대해서도 단정함을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4:9-12). 지난 시간에는 5:16-18절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5:19-22절 말씀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지난 한 주간 하나님의 뜻대로 사셨습니까?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셨습니까? 그렇지 못하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산 것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산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기억조차 하지 않고 거저 내가 주인이 되고 내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서 내 자신이 기분이 좋으면 기뻐하고 내가 손해가 나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에 화가 났던 그런 삶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그 뜻을 헤아려 보기 보다는 거저 내 마음, 내 몸 하나 편한 것이 제일이라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우리는 또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여! 당신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해도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갈만한 자질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들이야 이렇게 기도한다고 해서 이루어 질것이 없습니다.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기도만 하고, 바라기만 하고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란 우리가 아무 것도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말씀뿐 아니라 신약의 모든 말씀도 마찬가지로 이루어 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거듭났다고 하여도 몸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몸이 괴로우면 만사가 괴로운 것입니다. 먹는 것도, 듣는 것도, 보는 것도 몸의 상태가 좋아야지 즐거운 것이지 몸이 아파서 괴로운데 그런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볼 때 범사에 감사할 수 없는 자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배가 고픈데 무슨 금강산인들 아름답겠습니까?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이것은 결국 사람으로서는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들에게 항상 기뻐할 수밖에 없고, 쉬지 않고 기도할 수밖에 없고, 범사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요셉을 예로 들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결국 하나님의 뜻이 요셉에게 이루어지기에 죄 없이 미움을 받고, 유혹을 이겼는데 감옥에 가고, 술 맡은 관원장이 잊어버리는 그러한 일조차 하나님께서는 형통하다고 하시는 것은 이러한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빈틈없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형통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형통이란 내 뜻이 술술 잘 풀리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형통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자기 택한 백성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고난과 시련도 실패도 은혜인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4절을 보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다른 이름이 흩어진 나그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이 닥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험이 닥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반가운 친구가 오는 것처럼 맞이하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시험이 오는 것이 무엇이 좋아서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까? 이것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우연히 시련이 오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시련과 시험들을 통하여 더욱 온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5-7절을 보면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었는데 여러 가지 시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간 근심하게 되지만 그러나 오히려 크게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기업을 받게 하시기 위한 것이랍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시련들을 통하여 썩어질 것들을 구하지 아니하고 썩지 아니할 영원한 영광의 기업을 더욱 소망하기 때문에 믿음의 시련이란 기뻐할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주의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믿음의 시련이 아니라 자기 욕심에 끌려서 당하는 시험이나, 자신이 악을 행함으로 오는 고난들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2-18절을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시험이 오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믿음의 시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유혹에 끌려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으로 인한 것입니다. 이러한 욕심에 이끌린 시험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이란 두 가지입니다. 믿음의 시험과 자기 욕심에 끌려서 시험에 빠지는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심에 끌려서 행하다가 시험에 들어 놓고서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시험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양 좋은 은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빛들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한 선물이 우리를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귀한 은사인 것입니다. 그러니 분별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서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18-24절을 보면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고 했습니다. 고난이 어떠한 고난인지를 구별하여야 합니다. 성도는 악을 행하여 닥치는 고난이 아니라 주님의 고난에 참예하게 됨으로 닥치는 고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시련이나 고난은 기뻐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자취를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4:14절을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말씀합니다.

 

계속하여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9-22절을 보면    “성령을 소멸치 말고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성령을 소멸치 말고,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이 말씀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것입니다. 19절을 보면 “성령을 소멸치 말고”라고 합니다. 이것은 성령의 요구를 거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두 가지 싸움이 있습니다. 육체의 욕구와 성령의 욕구입니다. 이 둘이 서로 다툼이 일어날 때 분별력이 없으면 성령의 요구를 묵살하고 육체의 욕구를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 것이냐? 아니면 나의 욕구냐?’ 이 갈등에서 우리가 늘 옛 습관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주님께 의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늘 깨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은 말씀을 통하여 분별이 되는 것입니다. 이상한 느낌에 끌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와 감동하심은 반드시 말씀을 따라 일어나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는 것이지 말씀이외에 이상한 내용을 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읽고 들을 때, 곧 설교나 성경공부 할 때 하나님의 뜻이 증거 됩니다. 이럴 때, 이것이 주님의 뜻이야라고 생각될 때 그것을 꺼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30절에 보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너희가 그 안에서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하여 계시는데 성령께서 왜 말할 수없는 탄식으로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겠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성령을 근심하게 하고, 성령의 요구를 무시하면 성령께서 근심하고 탄식하면서 아버지께 기도하시겠습니까? 구하라고 하는 것은 구하지 않고 구하지 말라고 한 것은 구하고, 보라고 하는 말씀은 보지 않고 온갖 세상의 쾌락을 가져다주는 것들을 보고 있으니 얼마나 근심하고 계시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근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말씀과 기도로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성령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것입니다. 성령 자체를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요구를 거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0절에 보면 “예언을 멸시치 말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언이란 개인의 장래 인생사를 점치는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시인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멸시치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심판이다’라는 말씀이 예언입니다. ‘예수님께서 장차 심판주로 재림 하십니다’라는 말씀도 예언입니다. 이러한 예언에 대하여 멸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나와서 주의 강림 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며 기롱하는 자들이 나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1-5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말세에는 하나님의 예언을 멸시하고 조롱하고 희롱하는 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기 기준으로 재단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은 취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것입니다. 21-22절에 보면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헤아린다’라는 것은 분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곧 무엇이 좋은 것인지, 무엇이 악인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마치 은행원이 위조화폐를 구별하여 내듯이 분별하는 것입니다. 은행들은 위조화폐를 구별하기 위해 전문가를 동원하여 만져도 보고, 현미경으로 살펴보기도 합니다. 위조화폐를 구별하여 내지 못하면 많은 피해를 입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며, 세밀하게 찾아내는 것입니까? 이처럼 우리 안에 교묘히 숨어들어오는 온갖 악들을 구별하여 내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은 취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에게 좋은 것이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데살로니가서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7:7-8절에 보면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좋은 것을 주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누가복음에서는 성령이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1:13절에 보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늘 말씀과 기도에 깨어 있도록 늘 성령을 구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우리에게만 맡겨 두신 것이 아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24절에 보면 “너희를 부르신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미쁘신 하나님이십니다. 곧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부르신 미쁘신 하나님께서 결국 성도들이 늘 말씀과 기도에 깨어 있도록 성령을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친히 이루어 가심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만 자기 고집과 생각을 버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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