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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후 2:13-15

2010년 데살로니가후서 공부
                                                              감사할 것!
말씀:데살로니가후서 2:13-15

 
오늘 말씀은 바울 사도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들 입니다. 이러한 감사가 바로 앞의 내용과 비교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바로 앞의 내용이란 지난주에 보았듯이 악한자의 임하는 것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의 특징은 보암직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의 감사는 그러한 보암직한 일들이 나타나는 것을 인하여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이 얼마든지 사단의 일들로 위장되어 나타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듯이 오늘도 사단의 일군들이 복음의 일군으로 가장하고 나타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표적과 능력과 거짓 기적을 좇아가는 것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그들 마음에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러한 유혹에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전쟁이 일어나는 가운데서 바울 사도는 무엇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까? 13-14절을 보면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택하심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과 복음으로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과연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내용인가하는 것을 점검하면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란 늘 보암직한 것들이 나타나야 감사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무언가 남들보다 두드러진 업적이 나타나야 감사하고, 남들보다 특별한 능력들이 나타나야 감사하고, 남들보다 뛰어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은 결국은 자화자찬의 자기 의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자기는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을 다하였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렇게 엄청난 일을 이루어 내었는가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가장 큰 적이 세상의 보암직한 것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러한 내용들은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감사를 한다고 하여도 아주 형식적으로 입에 발린 말뿐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감사를 다시 살펴보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엇이 참된 감사인지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13절에 보면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을 보고서 이렇게 된 것은 바울이 전도를 잘해서 된 것이 아니라, 이러한 복음에 대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택하셨기 때문이라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3절에 보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할 때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반응을 보이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누가 얼마나 그 사람에게 잘해 주었는가를 따집니다. 얼마나 정성을 드렸는가? 선물을 했는가? 관심을 가졌는가? 이러한 것으로 전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오산입니다. 그런데도 전도의 방법론에서는 늘 이러한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후서 3:2b절을 보면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고 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나 듣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복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듣고서 ‘그것 참 좋은 소식이네. 나도 믿어야지!’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것이 복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배당 꼭대기마다 십자가는 무엇하려고 걸어 놓았습니까?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모두가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함께 죽은 자들의 모임입니다’고 하는 표시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한번 뜰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참으로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복음을 전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믿는 자가 나온다는 것을 보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창세전에 택하여 놓으신 것이구나 하고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마에 표시가 나는 것도 아닌데, 그러나 알 수 있는 방법은 복음을 전하여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복음을 듣고서 믿음이 나타나는 것을 보니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택하여 놓으셨구나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택이 왜 감사한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기에 우리가 스스로 생명을 선택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여 믿음의 길에 들어선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기독교, 불교, 천주교 이러한 종교들 가운데서 내가 하나를 선택하여 왔다면 그것은 종교적인 것입니다. 아직도 자신이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죄의 권세 아래 있기에 스스로 빠져 나올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외부에서 끄집어내어 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로 진리에 대하여 무지한가 하면 구스인이 그 피부색을 바꾸지 못하고 표범이 그 반점을 바꾸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에 익숙한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갈 수가 없다는 것을 선지자들이 이미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택하심이 아니면 결코 그 어느 누구라도 스스로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누군가의 전도를 받고서 믿음의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주님께서 택하시고, 행하신 일임을 증거하는 현장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도 왕이란 사람이 나올 수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만 명을 전도하였다고 하여도 ‘내가 아니요’가 나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0절에 보면 바울은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했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였던 자신을 사도로 삼아 주신 것이 오직 주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수고하였지만, 누구보다 더 많은 일을 하였지만 그 모든 것이 다 주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택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 한 자의 마땅한 고백인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하신 것을 인하여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택하셨기에 택한 자를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여서 점점더 거룩하여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를 닦아서 점점 거룩하여 지는 그러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영이 임함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을 얻은 것입니다. 또한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곧 거룩함과 구원을 내가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입니다. 얻는다는 것은 나에게서 능력이 없을 때 얻는 것입니다. 내가 능력이 있다면 그냥 얻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얼마나 자신이 무능하였으면 거저 주시는 것을 감사하겠습니까?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는데도 거저 준다면 우리의 자존심이 허락지를 않는 것입니다. 나를 어찌보고 이렇게 대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자신이 무능력한 자임을 인정하는 자라면 그저 주시는 것을 감사할 뿐입니다. 이러한 자가 믿음이 큰 자입니다. 믿음이란 표적과 능력과 기적을 행하는 자가 믿음이 좋은 자가 아닙니다. 표적과 능력을 행하고서도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르노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마 7:21-23). 그러나 참으로 자신은 주님의 은혜를 얻어야만 하는 가난하고 불쌍한 자임을 알고서 얻는 것을 기뻐하는 자가 믿음이 큰 자입니다.

 

마태복음 15:21-28절을 보면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이 여인을 헬라인으로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서 개같이 여김을 받는 자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주인의 상에서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는 말씀에 옳다고 합니다. 자신이 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 여인을 보고서 예수님께서 무어라고 하십니까? 28절에 보면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이 큰 믿음입니까? 능력과 표적과 기적을 행함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믿음이 큰 사람입니다. ‘나는 이 정도이니 구원을 받았겠지! 이만큼 내가 한 일이 있는데 설마 주님께서 날 모르신다고 하시겠는가’이런 생각이 믿음이 없는 생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정말로 얻어 먹어야하는 자입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를 거저 얻어먹을 수밖에 없는 자입니다라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요, 성령으로 거룩함을 얻은 자요,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자인 것입니다.


세째로, 14절에 보면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처음부터 택하시고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을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누구로부터 받은 복음인가를 드러내는 것이지 바울 자신을 자랑하거나 내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주 예수께로부터 받은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얻는 것입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얻고,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는다는 것은 최후의 심판 때에 나타날 영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미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의 영광이 무슨 영광이었습니까? 자신이 드러내시고자 하신 영광이 바로 십자가의 영광이었습니다. 세상이 볼 때는 가장 저주받아 죽는 죽음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고난의 길이 영광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받는 고난이란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자꾸만 세상의 썩어질 영광으로 바꾸려고 합니다만 그러나 베드로전서 4:14절 말씀에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고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영광의 영이 그 위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도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나타날 영광을 미리 당겨서 맛보게 하시는 방법이 무엇이라는 겁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쉬운 길이 아니기에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15절을 보면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사단의 역사를 따라 악한 자가 온갖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이 가득하여도 바울의 말로나 편지로나 가르침을 받은 그 복음을 굳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굳게 할 것은 내가 만들어 낸 그 무엇을 굳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께로부터 주어진 것들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로부터 주어진 것들이 무엇입니까? 처음부터 택하심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제대로 지키는 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날에 그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10-11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무엇을 행하라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부르시고 택하신 것을 굳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행한즉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감을 너희에게 주시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자기의 행위를 붙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것을 붙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행함의 세계란 자신의 행함을 붙들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능력도 행하였다고 하여도 주님께서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고 하시는 것입니다(마 7:21-23).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결국 주님께서 주신 것들을 받아서만 들어가는 것입니다. 받고, 얻고 들어간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불쌍한 자들인가를 알면 알수록 거저 주시는 은혜를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3-14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다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한 이 복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하면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유는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예정하시고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하려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은 6절에 보면 주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감사 제목이 우리의 감사 제목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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