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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나서 3:1-10

2008년 요나서 공부
                                                          요나의 회개
말씀:요나서 3:1-10

 

오늘 말씀은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1-2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요나는 처음에 임한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다가 큰 풍랑을 만나 바다 밑, 물고기 뱃속 곧 스올의 뱃속까지 들어갔다가 회개하고 3일 만에 토하여 내어진 후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명하신 것은 ‘니느웨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 때문에 식언치 아니하시고 그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실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민수기 23:19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요나 선지자가 순종하지 아니하고 도망가더라도 그 말씀은 반드시 성취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풍랑이 일어나게 하시고, 요나가 제비 뽑혀 나오게 하시고, 바다에 던져지고, 큰 물고기가 그를 삼키게 하시고,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삼야 동안 있게 하시며,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선포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4절에 보면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니느웨 성이 40일이 지나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곧 니느웨 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선포하는 요나의 심정이 어떠하였을까요? 전에 한번 불순종하였기에 이제는 단 마음으로 순종하여 전하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지못해 성의 없이 겨우 전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3절을 보면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 길이라”고 했습니다. 니느웨 성은 당시 최고의 강대국 앗수르의 수도로서 그 도시의 규모가 엄청났습니다. 그 성안을 다 전하려면 3일 길은 족히 돌아다니며 선포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4절에 보면 요나는 니느웨에 들어가서 겨우 하루만 선포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지못해 하고 있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선포의 내용도 사십일이 지나면 무너진다는 내용만 전한 것입니다. 물론 다른 내용들도 전하였으리라고 보지만 흔히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내용과는 너무나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할 때에는 왜 그들에게 심판이 임하는지를 알게 하고, 그들이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서도록 외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번 배운 아모스 4:6-12절을 보면, 성읍에 기근을 보내서 먹을 것이 없고 마실 물이 없게 하시는 것은 주께로 돌아오라는 것인데 돌아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온갖 재해와 전염병이 도는 것과 성읍에 불에 타는 것도 주님께로 돌아오라는 메시지인데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그 심판을 선포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오지 아니하였기에 결국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니느웨 성에서 요나가 전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에는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내용이 없습니다. 거저 사십일이 지나면 이 성이 망한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사십일의 기간이 주어진 것은 그들에게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기간이 주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사십일 기간을 구약에서 보면 모세가 처음 시내 산에서 돌 판을 받을 때에는 금송아지 사건으로 깨뜨립니다. 두 번째 돌 판을 받을 때에는 다시 사십 일간을 금식하며 회개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하시겠다고 하시므로 모세가 사십일을 금식하며 그들의 죄악을 사하여 달라고 간구한 기간입니다(신9:18, 25).

 

그러면 니느웨 성이 사십일이 지나면 망하리라는 선지자의 선포를 듣고서 어떤 반응이 일어났습니까? 5절을 보면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고 했습니다. 요나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소식을 들은 니느웨 성 백성들은 먼저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옷을 입은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철저히 회개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6-8절에 보면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나가 전한 심판의 소식이 왕에게까지 전하여졌습니다. 왕이 요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해 듣고 왕이 조서를 내려서 사람이나 짐승까지 무론하고 금식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물도 마시지 못하게 하고 짐승까지 굵은 베를 입힌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죄악을 인정하고 철저히 회개하는 모습입니다. 뿐만 아니라 왕은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모든 강포에서 떠나라고 합니다. 그러자 온 성읍이 회개하고 용서를 받게 됩니다. 이것은 요나가 기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나가 기대하는 것은 그들이 회개하지 말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의 기대와는 달리 그들이 철저히 회개하고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요나는 이렇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곧 그들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인자가 한이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용서하실 것을 알았기에 그것이 싫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도망을 간 것입니다. 요나는 원수의 나라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의 기대와는 달리 우려했던 대로 그들은 다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고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니느웨 성이 회개하고 용서 받은 것은 그들의 회개한 행위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비록 철저하게 회개하지만 회개하였기에 당연히 용서 하여 주셔야 된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회개는 마땅히 할 뿐이고 용서는 하지 않으셔도 지극히 마땅하십니다하는 태도가 회개의 자세입니다. 나 회개 하였는데 왜 용서하지 않으시는지를 따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나서 3:9절을 보면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고 했습니다. 이 모습이 진정으로 회개한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주셔서 멸망치 않게 해주시는 줄을 누가 알겠느냐고 한 것입니다. 회개 하였으나 반드시, 당연히 구원하셔야 된다는 것이 없습니다. 혹시 뜻을 돌이키사 진노를 그치시고 멸망치 않게 하실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죽어야 마땅한 자임을 아는 자의 진정한 회개의 모습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한 자는 오직 주님의 긍휼을 구할 뿐인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도 이런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요엘서 2:12-14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고 했습니다. 마음을 찢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기 때문에 마땅히 용서해 주셔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켜 복을 주시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회개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용서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회개한 자는 자기 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니느웨 성과 이스라엘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니느웨 성의 사람들은 선지자 한 사람이 가서 “이 성읍이 사십일 만에 망하리라”는 그 한마디를 듣고서 임금으로부터 온 백성과 짐승에 이르기까지 금식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서 회개합니다. 물론 그 회개가 그들이 용서 받는 근거는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자비와 긍휼로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회개를 받으시고 긍휼히 여기사 마침내 뜻을 돌이키시고 그들을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돌이키지 아니합니다. 예레미야 25:3-4절을 보면 “유다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의 십 삼년부터 오늘까지 이십 삼년 동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되 부지런히 일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 하였으며, 여호와께서 그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시되 부지런히 보내셨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아니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를 부지런히 보내셔서 돌아오라고 하셔도 돌아오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니느웨 성 사람들의 회개를 통하여 목이 곧고 회개하지 아니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37-39절을 보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내셨으나 그들이 회개하지 아니하였다는 책망의 말씀입니다. 바로 앞 단락의 말씀 곧 마태복음 23:13-31절에 보면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이 지금 이렇게 고생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지키지 못하여 이렇게 되었다고 보고 다시 율법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를 목숨처럼 지키는 자들입니다. 온갖 율법을 지킬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금식을 두 번이나 하는 자들입니다. 요엘서에서처럼 금식하며 애통하며 주께로 돌아왔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자들입니다. 요엘서 2:12-14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께 왜 책망을 받고 저주를 받는 것입니까? 그들이 마음을 찢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옷은 찢을 수가 있고, 애통도, 금식도 할 수 있지만 마음을 찢는 일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마음을 찢는 회개란 주의 성령이 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 회개란 자기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자기들처럼 열심히 율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들만이 메시아가 오시면 받아 줄자라고 스스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긍휼이 아니라 자신들이 스스로 주께로 돌이켰다는 자기들의 의요, 자기들의 정당성이었습니다. 모든 자를 불순종 아래 가두어 두시고 오직 주의 긍휼로만 구원하셔서 주의 이름이 홀로 찬송을 받으시는 구원에 대하여서는 생각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성의 회개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회개치 아니하는 죄악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살펴보면 우리의 모습도 역시 함께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들은 이미 여호와께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바리새인들처럼, 율법도 지키고, 혹 어길지라도 성전도 있고, 제사도 있으니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가짜 평안을 남발하고 있기에 그들도 속은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자기들이 비록 부족하다고 하지만 그러나 이방인들보다는 낫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 의 입니다. 자기들이 아무리 잘못해도 어떻게 이방인 보다야 못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항의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 받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그러한 고민으로 하나님께 항의성 기도를 한 것입니다. 하박국 1:13-14절을 보면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 하시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으로 바다의 어족 같게 하시며, 주권자 없는 곤충 같게 하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문제는 여전히 계속될 수 있습니다. 자기는 하나님께로 돌아와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잘 다니고 있고, 십일조도 잘 드리고 있고, 봉사도 잘하고 있으니 스스로 주께로 돌아와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소리로 들리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대표적인 모습이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자기를 정당화하는 모습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완벽하게 의롭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만큼 하는 사람도 없는데 왜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하는 항의입니다. 그런 불만은 주변에 대한 원망과 불평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하나님께 대하여서도 항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진정으로 회개치 아니한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직 전도를 받지 못한 모습입니다. 요나 선지자가 선포한 내용, 즉 전도한 내용은 이 성이 망할 것이라는 소식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전도도 역시 같은 선포여야 합니다. 니느웨 성이 망한다는 소식처럼 이 세상이 망한다는 소식이 복음의 전제입니다. 이 세상에 희망과 기대를 주는 선포가 아닙니다. 망한다는 소식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7절에 보면 분명히 말합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라.” 그렇습니다. 노아 시대 물심판으로 세상을 심판하신 것처럼 마지막에는 불심판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우리에게 분명히 주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 요한계시록 15장에서는 불이 섞인 유리바다 같은 마지막 재앙이 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후서에서는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불심판을 위하여 하늘과 땅을 보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망한다는 소식이 들려지고 있는 한 아직은 기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망해야 마땅한 이유가 자기에게 있음을 아는 자가 진정으로 회개합니다. 마음을 찢고 주께로 돌이키는 회개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노라고 하던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이 주님 앞에 자신은 죽어 마땅한 자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인중의 괴수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능력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임하여 마음을 찢고 주께로 돌이킨 자의 모습입니다.

 

누가복음 11:3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들었습니까? 하나님의 마지막에 있을 불심판에 대해서도 얼마나 들었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삶이 어떠합니까? 단 한번 듣고서 회개한 니느웨 성 사람들이 심판 때에 우리를 정죄하지 않겠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니느웨 성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심판 소식 앞에 단번에 순종하여 회개하는 자들이 되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불로 심판받아 멸망 받을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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