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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나서 4:1-11

2008년 요나서 공부
                                                          요나의 분노
말씀:요나서 4:1-11

 

요나 선지자가 니느웨 성으로 전도하러 가지 않고 도망간 분명한 이유가 오늘 본문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 백성들이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 것을 보고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1-3절에 보면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고 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을 보면 회개의 기도가 아니라 항의와 데모의 기도인 것입니다. 바로 얼마 전에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감사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지금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하나님께 항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차라리 자신의 생명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났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선지자가 이럴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면 요나 선지자의 분노는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의 적이요, 이방인인 앗수르 백성들이 회개하고 용서받는 것 때문입니다. 요나는 앗수르 백성들이 용서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1:12절에서도 봤습니다만 ‘차라리 나를 바다에 던지라’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싫은 나라가 회개하고 용서를 받는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노는 이스라엘의 근원을 잊어버린 모습입니다. 자신들도 죽어 마땅한 죄인들로서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드러내는 도구로 선택을 받았는데 이방인들과 달리 자기들은 의롭다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율법을 주셨으니 선택을 받지 못하고 율법도 없는 저런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은 못마땅하다는 것입니다. 혹시 이방인이 돌아온다고 하여도 자기들에게 완전히 종이 되어서 살려만 주소서하는 자들이 돌아오면 모르겠는데 니느웨 성읍은 자기 나라를 학대하고 수탈해간 원수의 나라이기에 그 나라가 망해야 하나님의 공의가 있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읍이 회개하면 망하지 아니할 것이고 그러면 다시 자기나라에 해를 끼칠 나라이니 망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땅히 망해야 하는 나라에 전도를 하라는 것은 아직도 회개할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이것이 싫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나 선지자는 회개할 기회마저 주지 않으려고 도망을 간 것입니다.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을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감지하고서 도망을 간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신 분이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시기에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실 것을 잘 알았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았기에 도망을 간 것입니다.

 

4:2절을 다시 보면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요나는 자기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도망간 것입니다. 만약 고국에서 이렇게 분명하게 기도하였다면 도망가지 말고 니느웨로 가게 하셨을 것이니 속으로 그렇게 여기고 도망을 가버린 것입니다. 요나 선지자는 이렇게 될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의 나라 니느웨에 가서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고 전도하면 그들이 회개할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망하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을 가버린 것입니다.

 

출애굽기 34:5-9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실쌔.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리어 경배하며 가로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컨대 주는 우리 중에서 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로 주의 기업을 삼으소서”라고 했습니다. 금송아지 사건으로 첫째 돌 판이 깨어지고 두 번째 돌 판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반포하신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이스라엘의 공통된 신앙고백이 되었고 선지서와 시편에서 자주 확인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특히 선지자라면 아주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요나 선지자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나 선지자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니느웨 성이 회개하면 용서하실 것을 알았기에 도망간 것입니다.

 

따라서 요나 선지자의 분노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 대한 분노인 것입니다. 왜 악인이 형벌을 받지 아니하고 다시 용서를 받는가에 대한 항의요, 분노인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이스라엘 자신들이 이미 목이 곧은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여 주시지 않으시면 진멸 받아 마땅한 자들임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의 회개와 그를 용서하시는 긍휼과 자비가 충만하신 하나님을 통해 자신들의 모습이 하나님께 용서 받지 못할 자들임을 봤어야 했습니다. 조금 전에 출애굽기 34장에서 살펴본 대로 두 번째 돌 판이 주어지는 것이 이미 그들은 진멸 받아 마땅한 자임이 전제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이방인이 회개하고 용서받는 것을 보면서, 요나 자신과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로 살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하는데도 자신이 받은 은혜와 용서는 아랑곳없이 자신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나라는 망해야 하나님의 공의가 선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요나 선지자를 통해 얼마나 인간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요나의 이러한 분노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배척하는 결과가 됩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은혜가 베풀어지는 것에 대한 분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천국을 포도원의 품꾼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아홉 시간 일한 사람, 여섯 시간 일한 사람, 한 시간 일한 사람에게 품삯을 주는데 제일 나중에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자 제일 먼저 온 사람은 자기는 더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역시 한 데나리온만 주니까 원망을 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루 종일 수고한 사람과 한 시간 일한 사람과 똑 같이 주느냐고 항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주인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0:13-16절을 보면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게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에서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유대인들 중에서도 율법을 잘 지켰다고 자부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나중에 온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시각에서 볼 때 결격사유가 너무나 많은 세리와 창기 그리고 이방인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단지 용서만 받는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들보다 먼저 천국에 간다고 하니 분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악함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죄악이요, 우리의 죄악 된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라면 이렇게 대하는 주인이 있을 때에 원망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천국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말씀을 자꾸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듭니까? 그러면 열심히 하나 안하나 똑 같을 바에야 나는 열심히 하지 않겠다고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고방식이 요나의 사고방식이며, 이스라엘의 사고방식이며, 우리의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도 자기가 어떤 죄인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방금 바다 속에서, 물고기 뱃속에서, 음부에서 용서받아 살아나온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유산을 다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둘째 아들을 아버지가 영접하고 그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어 주었을 때 누가 원망합니까? 열심히 집에서 일하고 있었던 큰 아들이 분노하는 것입니다. 큰 아들이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산을 다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을 용서하시는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곧 죄인들이 용서받는 것에 대한 분노인 것입니다. 이것이 요나의 분노요, 이스라엘의 분노요, 바리새인들의 분노입니다.

 

4:3-5절을 보면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하시니라. 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앉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하니라”고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긍휼 베푸심을 인하여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죽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요나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니느웨 성을 나가서 그 동편에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앉아서 성이 무너지는지, 안 무너지는지를 보고자 한 것입니다.

 

이런 요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4:6-11절을 보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하며 그 괴로움을 면케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을 인하여 심히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정당치 못함을 끝까지 들추어내시기 위하여 일하셨습니다. 그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초막위로 박 넝쿨을 준비하셔서 그늘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요나의 머리위에 그늘이 져서 괴로움을 면하게 하시자 요나가 심히 기뻐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벌레를 명하셔서 그 박 넝쿨을 씹어버리게 합니다. 곧 시들어버리는 순간에 또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십니다. 그러자 해가 그 머리위에 비취니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간구합니다.

 

요나가 죽고자 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요나는 바다에서 던지라고 하는 것에서부터 니느웨 성이 회개하고 망하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죽는 것이 낫다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박 넝쿨 하나가 말라버리자 또 죽는 것이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9절에 보면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요나는 죽기 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다고 합니다. 요나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요나만이 아니라 인간의 원망과 분노가 어떤 것인지를 보게 됩니다. 죽으면 죽었지 자기의 정당성을 포기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이스라엘 선지자의 모습입니다. 이 요나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요나의 원망과 분노는 이스라엘 전체의 원망과 분노로 나타납니다. 그 결과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는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들이 의롭다고 하는 자들에 의하여 배척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은 결국 인간들의 자기 정당성의 주장입니다. 거저 주시는 은혜를 버린 것입니다. 이런 죄의 결과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할지라고 자신들이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라도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것이 옳다고 고함을 지르는 자들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이렇지 않습니까? 너무나 사소한 일로 인하여 죽기까지 분노하지 않습니까? 큰 다툼과 원망과 죽기까지 좋다고 악을 쓰는 그 정당성의 주장에는 무엇이 들어있는 것입니까? 세상이 나를 위하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나를 위하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원망과 불평과 분노의 표출인 것입니다. 4:10-11절을 보면 죽기까지 정당하다는 요나에게 하나님께서는 “네가 수고도 아니 하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 하나를 아꼈는데 이 니느웨에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은데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대하여 요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것으로 요나서 말씀이 끝이 납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요나처럼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모습이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세상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바로 죄 된 모습입니다. 좌우도 분변치 못하는 자, 어린 아이 같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죄인들을 오직 주의 자비와 긍휼만으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죄와 그 용서를 알 때 그 입을 막을 뿐입니다.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요나와 같은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깨닫게 하시고 회개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죄인들을 오직 자비와 긍휼로 구원하시는 우리 주님의 사랑을 감사하며, 이 사랑을 힘써 전파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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