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96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나훔서 1:9-15

2008년 나훔서 공부
                                                        아름다운 소식
말씀:나훔서 1:9-15

 

나훔서는 온통 니느웨의 멸망에 대한 소식으로 가득합니다. 특히 1: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장하고 중다할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게 하였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런 멸망의 소식이 누구에게는 아름다운 소식이 되겠습니까? 앗수르에 의해 침략과 약탈을 당하고 있던 이스라엘에게는 아름답고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훔의 이러한 묵시와는 상관없이 눈에 보이는 현실은 어떠했습니까? 여전히 앗수르는 강한 나라입니다.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12절에서 말하듯이 그들은 ‘강장하고 중다’하였습니다. ‘강장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솰렘’(שׁלם)이라는 말인데 ‘완전하다’, ‘안전하다’, ‘걱정이 없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고, ‘중다하다’는 말은 ‘라바브’(רככ)인데 ‘많다’, ‘증가하다’, ‘커지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처럼 앗수르는 여전히 안전하고 크고 강하였습니다. 여러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강대한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가 무너지고 망한다는 소식을 믿음이 없이는 아름다운 소식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눈에 보이는 이 하늘과 땅이 영원하리라고 보십니까?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믿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고 늘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는 이 땅이 장차 무너질 성이라고 합니다. 불에 타 없어진다고 합니다. 베드로후서 3:7절에 보면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5:1-3절을 보면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 곳곳에서 불심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1:1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있고 또한 살려고 하는 이 세상은 다 눈에 보이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조차 우리 눈에 보이는 대치 물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로마서 8:24-25절을 보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을 이미 구약에서 하박국 선지자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박국 2:4절에 보면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그 시대의 불의한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따져 물었습니다. ‘세상의 강대국들이 큰 소리를 치면서 약한 나라를 괴롭히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는 것입니까? 자기들보다 더 의로운 나라를 치고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는 것입니까? 어떻게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37:1절에 보면 “행악 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투기 하지 말라”고 합니다. 또한 시편 37:2절에서는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37:36-37절에서는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앗수르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소망하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까? 나훔 선지자의 묵시의 말씀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나훔의 묵시가 무엇입니까? “강성하고 중다한 앗수르가 반드시 멸망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앗수르가 도저히 무너지지 아니할 것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믿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앗수르가 망한다는 것이 아름다운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9-10절을 보면 “너희가 여호와를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가시덤불 같이 엉크러졌고 술을 마신 것 같이 취한 그들이 마른 지푸라기 같이 다 탈 것이어늘”이라고 합니다. 세상만을 믿고 바라는 사람들도 자기들이 망할까봐서 조치를 취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조치들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온전히 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른 지푸라기가 타버리듯이 다 태워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말씀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이 망하지 아니하도록 끊임없이 자구책을 강구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노력이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는 근본적으로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영원할 것 같은 이 세상은 장차 있을 하나님의 불심판으로 말미암아 다 타 버릴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이 세상이 망하지 않도록 얼마나 많은 자구책을 구합니까? 우리나라의 예를 들면, 오늘날 인구가 자꾸 줄어드니까 계속하여 출산장려책을 내어 놓고 있습니다. 인구가 작아지면 그만큼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인구가 많아서 문제라고 산아제한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비군 훈련에서도 정관수술을 하면 빼주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결국 세상이란 그 시대마다 자기들이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을 계속하여 강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도 지진으로 인한 해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조기 경보체계를 구축한다고 합니다.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 녹색 성장을 추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구책들이 과연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통할 것 같습니까? 이사야 40:15-17절을 보면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 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의 물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고,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이 여기십니다. 이 하나님 앞에 모든 열방은 아무 것도 아니며, 없는 것 같이 여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기들의 세계를 고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이 되어서 영원하겠노라는 그 죄의 유혹을 이겨낼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력이 이 세상을 사로잡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현실을 영원한 것처럼 여기도록 악을 꾀하는 자가 있는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나와서 사특한 것을 권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특한 것이란 ‘벨리알’을 말합니다. 벨리알은 바울사도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단의 별명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런 벨리알이 본문에서는 앗수르의 왕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앗수르의 왕들 중 성경에 나타난 여러 이름이 있는데 그 중에 산헤립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열왕기하 19:20-22절을 보면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까닭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훼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쳐들어와서는 얼마나 교만한지 자기들이 정복한 나라들의 신들이 그 나라를 구원하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유다를 향하여 항복하라고 합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 대한 대적이요, 교만이었습니다. 열왕기하 19:34-37절에 보면 이들을 하나님께서 물리치시는데 그 이유는 다윗을 위하여 그렇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송장이 되었더라.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하더니. 그 신 니스록의 묘에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례셀이 저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맺으신 언약 때문에 성을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을 보호하기 위해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하루 밤 사이에 앗수르 군대 십팔만 오천 명을 쳐서 죽였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돌아가 그 신 니스록 묘에 경배하다가 신하에 의하여 살해당하게 되었습니다. 

 

12-1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장하고 중다할 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게 하였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너의 결박을 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짐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을 징계하기 위하여 앗수르를 몽둥이로 사용하셨으나 이제 그 몽둥이를 부수어 버리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을 통하여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알게 하셔서 하나님만을 의뢰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앗수르에 대하여 명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예비하리니 이는 네가 비루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아니할 것이며, 그 신들과 우상들이 다 멸절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처럼 앗수르는 역사 속에서 완전히 멸망당하여 사라졌습니다. 어느 정도로 사라졌느냐 하면 니느웨 성이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발견되기 전까지는 성경에 나타난 앗수르의 내용이 꾸며진 이야기가 아닌가 할 정도였습니다.

 

15절을 보면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보하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의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고 합니다. 앗수르가 망한다는 소식이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무너지지 아니할 것 같은 강대국이 무너진다는 것이 아름다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그 절기를 지키고 서원을 갚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다시는 이스라엘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앗수르와 바벨론이 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전하게 절기를 지키거나 서원을 갚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계속하여 아름다운 소식은 미루어졌습니다. 부분적으로 회복되기는 하였지만 아름다운 소식은 또다시 미래로 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52:7절을 보면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라고 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소식은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다는 소식입니다. 그 구원의 소식은 이사야 52장과 53장에 나타나는 고난 받는 여호와의 종이 성취할 것입니다. 이사야 53:4-6절에 보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길 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그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로마서 10장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이 아름다운 소식을 복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0:11-17절에 보면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을 듣고서 기뻐하기 보다는 안색이 변하고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복음은 이 세상이 심판을 받아 망한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앗수르만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기쁘고 아름다운 소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만이 아름다운 소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엡 1:3-6).

 

우리는 복음을 듣고 이 세상의 무너질 것들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시고 경영하실 그 나라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습니까? 요한계시록 18장에 보면 바벨론이 무너지는 내용입니다. 요한계시록 18:1-10절을 보면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큰 성 바벨론은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이 다 집중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 곳이 무너질 때에 그 바벨론을 의지하고 있던 자들이 함께 통곡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의 나라가 임하기를 사모한 자들은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됩니다. 그런 자들이 모여서 주의 날이 임하기를 서로 격려하는 것이 복음안의 교제이며, 예배인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오늘날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큰 기쁨이요, 아름다운 소식으로 들려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490 [학개서 2장] 오늘부터 복을 주리라 file 학개서 2:10-19 손재호 1830
489 [학개서 2장] 나중 영광 file 학개서 2:1-9 손재호 1720
488 [학개서 1장] 자기의 소위를 살펴보라 file 학개서 1:7-15 손재호 1438
487 [학개서 1장] 성전이란 무엇인가 file 학개서 1:1-6 손재호 1771
486 [나훔서 3장] 니느웨의 멸망 file 나훔서 3:1-19 손재호 1428
485 [나훔서 2장] 야곱의 영광 file 나훔서 2:1-13 손재호 1123
» [나훔서 1장] 아름다운 소식 file 나훔서 1:9-15 손재호 962
483 [나훔서 1장] 나훔의 묵시 file 나훔서 1:1-8 손재호 1509
482 [요나서 4장] 요나의 분노 file 요나서 4:1-11 손재호 2281
481 [요나서 3장] 요나의 회개 file 요나서 3:1-10 손재호 1761
480 [요나서 2장] 물고기 뱃속에서 file 요나서 2:1-10 손재호 1907
479 [요나서 1장] 나를 바다에 던지라 file 요나서 1:11-17 손재호 1315
478 [요나서 1장]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file 요나서 1:1-10 손재호 1894
477 [오바댜 1장] 오바댜에게 임한 묵시(피할 자) file 오바댜 1:15-21 손재호 1443
476 [오바댜 1장] 오바댜에게 임한 묵시(에돔의 멸망) file 오바댜 1:1-14 손재호 1620
475 [사무엘상 19장]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다 file 사무엘상 19장 손재호 2015-05-20 2399
474 [사무엘상 18장]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file 사무엘상 18장 손재호 2015-05-13 2365
473 [사무엘상 17장]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file 사무엘상 17장 손재호 2015-05-06 2719
472 [사무엘상 16장]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다 file 사무엘상 16장 손재호 2015-04-29 2379
471 [사무엘상 15장]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file 사무엘상 15장 손재호 2015-04-22 349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34 Next
/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