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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레 27:1-34
성경본문내용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2)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3)너의 정한 값은 이십세로 육십세까지는 남자이면 성소의 세겔대로 은 오십 세겔로 하고(4)여자이면 그 값을 삼십 세겔로 하며(5)오세로 이십세까지는 남자이면 그 값을 이십 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십 세겔로 하며(6)일개월로 오세까지는 남자이면 그 값을 은 오 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그 값을 은 삼 세겔로 하며(7)육십세 이상은 남자이면 그 값을 십오 세겔로 하고 여자는 십 세겔로 하라(8)그러나 서원자가 가난하여 너의 정가를 감당치 못하겠으면 그를 제사장의 앞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값을 정하되 그 서원자의 형세대로 값을 정할지니라(9)사람이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생축이면 서원물로 여호와께 드릴 때는 다 거룩하니(10)그것을 변개하여 우열간 바꾸지 못할 것이요 혹 생축으로 생축을 바꾸면 둘 다 거룩할 것이며(11)부정하여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못할 생축이면 그 생축을 제사장 앞으로 끌어 갈 것이요(12)제사장은 그 우열간에 정가할지니 그 값이 제사장의 정한 대로 될 것이며(13)그가 그것을 무르려면 정가에 그 오분 일을 더할지니라(14)사람이 자기 집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면 제사장이 그 우열간에 정가할지니 그 값이 제사장의 정한 대로 될 것이며(15)그 사람이 자기 집을 무르려면 정가한 돈에 그 오분 일을 더할지니 그리하면 자기 소유가 되리라(16)사람이 자기 기업된 밭 얼마를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면 두락수대로 정가하되 보리 한 호멜지기에는 은 오십 세겔로 계산할지며(17)그가 그 밭을 희년부터 구별하여 드렸으면 그 값을 네가 정한 대로 할 것이요(18)그 밭을 희년 후에 구별하여 드렸으면 제사장이 다음 희년까지 남은 연수를 따라 그 값을 계산하고 정가에서 그 값에 상당하게 감할 것이며(19)밭을 구별하여 드린 자가 그것을 무르려면 정가한 돈에 그 오분일을 더할지니 그리하면 그것이 자기 소유가 될 것이요(20)그가 그 밭을 무르지 아니하려거나 타인에게 팔았으면 다시는 무르지 못하고(21)희년이 되어서 그 밭이 돌아오게 될 때에는 여호와께 바친 성물이 되어 영영히 드린 땅과 같이 제사장의 기업이 될 것이며(22)사람에게 샀고 자기 기업이 아닌 밭을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렸으면(23)너는 정가하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희년까지 계산하고 그는 너의 정가한 돈을 그 날에 여호와께 드려 성물을 삼을지며(24)그 밭은 희년에 판 사람 곧 그 기업의 본주에게로 돌아 갈지니라(25)너의 모든 정가를 성소의 세겔대로 하되 이십 게라를 한 세겔로 할지니라(26)오직 생축의 첫새끼는 여호와께 돌릴 첫새끼라 우 양을 물론하고 여호와의 것이니 누구든지 그것으로는 구별하여 드리지 못할 것이며(27)부정한 짐승이면 너의 정가에 그 오분 일을 더하여 속할 것이요 만일 속하지 아니하거든 너의 정가대로 팔지니라(28)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29)아주 바친 그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30)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31)사람이 그 십분 일을 속하려면 그것에 그 오분 일을 더할 것이요(32)소나 양의 십분 일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니(33)그 우열을 교계하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속하지 못하리라(34)이상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이니라
강설날짜 2016-02-17

레위기 32강


서원 예물 무르기 규례


말씀 : 레위기 27장


오늘은 레위기의 마지막 27장을 배워보겠습니다. 이 레위기 27장은 레위기 전체에서 상당히 애매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실 레위기는 26장으로 끝나야 가장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모세가 이 레위기를 다 기록한 이후에 다시금 추가적인 규례를 넣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넣을 수 없어서 제일 뒤에 부록형식으로 첨부한 것이죠.


그러면 오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서원 무르기 규례”입니다(2,9절). 서원이란 “하나님께 대한 약속 또는 맹세”를 의미합니다. 즉 어떤 긴급한 상황이 있을 때, “이 어려움을 해결해주시면 제가 ~를 드리겠습니다.” 하고 하나님께 약속하는 것이 서원입니다. 아니면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기보다는 단순히 신앙과 헌신의 표현으로 서원할 수도 있습니다(시 132:2-5). 어떤 경우든 서원이라고 하는 것은 자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헌신해 드릴 수 있습니까? 레위기 27장은 그 목록으로 사람, 생축, 집, 땅을 드릴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1. 서원 예물로 사람을 드리는 경우


먼저 사람을 드리는 것과 관련한 규례를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의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2)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


하나님은 누군가가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드릴 수도 있고, 자기 자식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바친다는 말은 몰렉에게 제사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사람을 제물로 드린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사람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은 두 가지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는 한나가 사무엘을 나실인으로 바쳐서 그로 제사장 직무를 행하도록 한 것처럼 하나님께 자신의 노동력을 헌신해 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돈을 드려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무를 드리는 것하고, 나무의 열매를 드리는 것하고 비교할 수가 있습니다.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똑같은 헌신인 것입니다.


돈을 드려 헌신하는 방식이 레위인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에서 잘 나타났습니다. 출애굽할 때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가 구속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와 생축의 첫 새끼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하나님께서 장자들 대신에 레위인들을 받으셔서 레위인들로 하여금 성막과 제사의 일을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레위인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들보다 수가 적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자란 만큼, 한 사람당 오 세겔씩 내도록 하여 헌신하도록 하셨습니다(민 3:44-51). 즉 하나님께서는 돈으로 드리는 것을 레위인으로 대속하여 헌신해드리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수기 말씀을 보면 그 돈을 일컬어서 ‘속전’이라고 표현합니다.


“모세가 레위인으로 대속한 이외의 사람에게서 속전을 받았으니”(민 3:49)


속전이라는 단어는 돈을 주어 그 사람을 노예 됨에서 해방시켜주는 무르기 규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 레위기 본문에서 사람을 바칠 때 돈을 대신하여 드리는 것은 일종의 무르기로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인 것입니다. 곧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후 속전을 지불하여 무름으로써 다시 자기 생업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돈을 속전으로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헌신했다고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물질적인 헌신이 나실인의 경우만큼이나 성소를 섬겨 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소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노동력보다는 사실상 돈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노동력은 이미 헌신된 레위인들로도 거의 충분합니다. 그러나 돈은 늘 부족하죠.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드릴 때 무르는 방식으로 헌신을 하도록 하셔서 돈을 드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레위기 27장 전체가 바로 이러한 무르기를 통한 헌신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서원할 때 제사장이 값을 정하는 것도 다 이 무르기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사람을 드릴 때, 제사장이 어떻게 가격을 정합니까? 사람의 경우는 제사장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정해주셨습니다(레 27:3-7). 본문의 내용을 보면 대체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1.5배 또는 2배 비싸고, 연령대에 따라서는 한창 일할 수 있는 20-60세 연령대가 가장 비싸고, 연소하고나 연로할 경우에는 가격이 낮아집니다. 그래서 20-60세 사이의 남성이 가장 비싸며, 그 값이 무려 50세겔이나 됩니다. 1세겔이 노동자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측되는데, 50세겔이면 오늘날의 1억 정도 됩니다. 일반평민이 1억 정도 벌려면 평생 뼈 빠지게 일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50세겔을 드린다는 것은 사실상 자신의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자가 왜 여자보다 값이 비싼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역할 면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더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동일한 하나님의 형상이지만,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서는 노동력과 군사력을 제공할 수 있는 남자가 훨씬 가치 있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가격은 아마도 그 당시 노예 시세를 반영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8절에 보면 가난한 자들을 위한 예외규정이 주어집니다.


(8)그러나 서원자가 가난하여 너의 정가를 감당치 못하겠으면 그를 제사장의 앞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값을 정하되 그 서원자의 형세대로 값을 정할지니라


다른 서원 예물의 경우는 예외규정이 없는데, 사람을 바칠 때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예외규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서원 예물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그냥 드리면 되는 것이지만, 사람을 드리는 것은 생돈 수 천 만원을 새로 마련해서 드려야 하는 것이므로, 만일 가난할 경우에는 그것을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런 예외규정을 두지 않으셨다면, 가난한 자들은 도무지 자신을 헌신해드리는 서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로우시게도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도 서원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2. 서원 예물로 생축을 드리는 경우


이제 생축을 드리는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9)사람이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생축이면 서원물로 여호와께 드릴 때는 다 거룩하니(10)그것을 변개하여 우열간 바꾸지 못할 것이요 혹 생축으로 생축을 바꾸면 둘 다 거룩할 것이며(11)부정하여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못할 생축이면 그 생축을 제사장 앞으로 끌어 갈 것이요(12)제사장은 그 우열간에 정가할지니 그 값이 제사장의 정한 대로 될 것이며(13)그가 그것을 무르려면 정가에 그 오분 일을 더할지니라


생축을 드리기로 서원할 때는 그냥 “양 한 마리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지정하여 서원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 달에 태어나는 양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라고 서원하는 것이죠. 그러면 그 약속을 함과 동시에 다음 달에 태어난 양은 이미 하나님의 것으로서 거룩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기한이 되어 서원을 갚을 때 그것을 변개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간사해서 긴급한 상황에서는 아낌없이 드리겠다고 서원하지만, 나중에 실제로 드릴 때는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좀 값이 덜나가는 양으로 바꾸어 드리고 싶은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할 경우 더 손해가 있게끔 하셨습니다. 원래 드려야 할 것과 바꾼 것 두 마리 다 드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약속했으면 꼼수부리거나 잔머리 굴리지 말고 그 약속을 철두철미하게 지켜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정한 짐승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제사장이 값을 정해서 알려줍니다. 그러나 부정한 짐승은 제물로 쓰일 수 없기 때문에 제사장이 그것을 가지고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팔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정한짐승이든 부정한 짐승이든 서원을 무르고 그 생축을 다시 집으로 데려오고자 한다면, 정해진 값의 1/5을 추가하여 드려야 합니다. 1/5은 우리가 속건제 할 때 배웠듯이 배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고, 서원을 했으면 반드시 지켜야 하고, 어기면 그에 대한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서 서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레위기 27장이 서원 무르는 것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무르기를 하라고 요구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을 드리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될 것이고, 특별히 부정한 짐승을 드리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정한 짐승을 드릴 때는 서원자가 정가의 120%를 내고 무르는 것이 더욱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27절 참조). 그래서 성급하게 서원했다가 자신의 욕심 때문에 약속을 취소하는 나쁜 무르기가 있는가 하면, 그 헌물을 성막이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무르기 하여 돈으로 드리는 좋은 무르기가 있는 것입니다. 둘 다 무르는 것이기 때문에 120%를 내야 하지만, 그 동기에 따라서 성격이 많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3. 서원 예물로 부동산을 드릴 경우


이것은 부동산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14)사람이 자기 집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면 제사장이 그 우열간에 정가할지니 그 값이 제사장의 정한 대로 될 것이며(15)그 사람이 자기 집을 무르려면 정가한 돈에 그 오분 일을 더할지니 그리하면 자기 소유가 되리라(16)사람이 자기 기업된 밭 얼마를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면 두락수대로 정가하되 보리 한 호멜지기에는 은 오십 세겔로 계산할지며(17)그가 그 밭을 희년부터 구별하여 드렸으면 그 값을 네가 정한 대로 할 것이요(18)그 밭을 희년 후에 구별하여 드렸으면 제사장이 다음 희년까지 남은 연수를 따라 그 값을 계산하고 정가에서 그 값에 상당하게 감할 것이며(19)밭을 구별하여 드린 자가 그것을 무르려면 정가한 돈에 그 오분일을 더할지니 그리하면 그것이 자기 소유가 될 것이요


집이나 밭을 헌신해드릴 경우도 제사장이 먼저 값을 정해야 합니다. 집은 제사장이 보고 적절한 가격을 매기면 되지만, 땅은 파종하는데 필요한 씨앗의 양으로 그 가격을 정합니다. 보리 한 호멜로 파종할 수 있는 구역의 경우는 희년까지 50세겔로 정해집니다. 희년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면 가격이 많이 싸질 것이고, 희년 다음해에 드렸다면 50세겔 그대로가 될 것입니다. 희년을 기준으로 값을 매기는 이유는 희년까지만 무르기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희년이 되어서도 무르지 않을 경우 그 밭은 영영히 제사장의 기업이 됩니다.


(20)그가 그 밭을 무르지 아니하려거나 타인에게 팔았으면 다시는 무르지 못하고(21)희년이 되어서 그 밭이 돌아오게 될 때에는 여호와께 바친 성물이 되어 영영히 드린 땅과 같이 제사장의 기업이 될 것이며


그래서 이 규례는 서원자로 하여금 희년 전까지 이 밭을 무르도록 강력히 권장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정말 하나님께 자신의 땅을 온전히 헌정해드리기를 원하는 사람은 희년에도 무르지 않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120%의 속전을 지불하여 희년에 무르기 해서 하나님께 헌신해드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헌신해드린 후에 (헌신해드렸더라도 밭의 관리와 경작은 서원자 본인이 해야 합니다.) 잔머리를 굴려서 손해 보지 않겠다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리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주 나쁜 것으로서 무를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자신에게 손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밭을 드리면 어떻습니까? 만일 헌신해드린 밭이 자기 밭이 아닐 경우는 희년이 되면 서원자가 무조건 그 정가를 주고 무르기 해야 하며, 무르기 한 후에 그 밭은 원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22-24절을 보시면...


(22)사람에게 샀고 자기 기업이 아닌 밭을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렸으면(23)너는 정가하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희년까지 계산하고 그는 너의 정가한 돈을 그 날에 여호와께 드려 성물을 삼을지며(24)그 밭은 희년에 판 사람 곧 그 기업의 본주에게로 돌아 갈지니라


결국 핵심은 헌신해드리기로 서원했으면, 정말 서원대로 드리든, 정해진 가격의 120%를 지불하여 무르든,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 서원을 갚아야만 하고, 또 갚을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이 규정하신 것입니다. 서원하면 헌신하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손해를 덜 보겠다고 꼼수를 부릴수록 더 많은 손해를 봐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이 억지로라도 헌신을 받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는 신앙의 표이기 때문에, 그러한 경외함을 배우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렇게라도 헌신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 대한 신의를 지켜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벌금이 무서워서 헌신할 것이 아니라, 환난 날에 응답하신 그 은혜를 깊이 깨닫고 기억하면서 감사와 자원함으로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4. 서원 예물이 될 수 없는 목록 - 생축의 첫 새끼, 십일조


26절부터는 서원 예물로 드릴 수 없는 목록을 언급합니다.


(26)오직 생축의 첫새끼는 여호와께 돌릴 첫새끼라 우 양을 물론하고 여호와의 것이니 누구든지 그것으로는 구별하여 드리지 못할 것이며(27)부정한 짐승이면 너의 정가에 그 오분 일을 더하여 속할 것이요 만일 속하지 아니하거든 너의 정가대로 팔지니라 ... (30)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31)사람이 그 십분 일을 속하려면 그것에 그 오분 일을 더할 것이요(32)소나 양의 십분 일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니(33)그 우열을 교계하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속하지 못하리라


26절부터 언급되는 생축의 첫 새끼나 십일조 같은 것들은 워낙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서원 예물로 드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의무적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원해서 서원하여 드렸든, 십일조와 같이 의무적으로 드려야 하는 것이든 상관없이 그 헌물이 하나님께 바쳐졌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으로서 거룩한 것입니다. 그리고 서원 예물과 동일하게 생축의 첫 새끼와 십일조의 경우도 그 정가의 120%를 드려서 다시 무를 수가 있습니다(본문의 ‘속하다’는 단어가 ‘무르다[가알]’라는 단어임). 특히 부정한 생축의 첫 새끼는 서원예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무를 것을 권장합니다. 그러나 서원자가 무르기를 원치 않으면, 제사장이 자신이 정한 가격으로 다른 사람에게 팔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특별히 십일조를 드릴 때, 서원 예물 드릴 때와 마찬가지로 잔머리를 굴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소나 양의 십일조를 드릴 때 보다 값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리고 싶은 것이 인간의 죄악된 본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예 소나 양의 십일조 드리는 방법을 정해주셨습니다. 소나 양을 랜덤하게 일렬로 줄을 세워놓고 지나가게 하면서 열 번째로 지나가는 것을 (그것이 열등한 것이든 우등한 것이든 상관없이) 십일조로 드려야 합니다. 만일 우등한 것이 걸렸는데, 그것을 열등한 것으로 바꾸면 둘 다 바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요약하면 서원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어기거나 잔머리를 굴리면 더 큰 손해를 보게 되며, 헌신해 드릴 때는 성소의 필요에 따라서 서원한 그대로 드릴 수도 있고, 또는 속전을 지불하여 무름으로써 헌신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5. 아주 바쳐진 것은 무를 수 없음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전체문맥의 흐름을 떠나서 전혀 다른 의미의 헌신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사실상 매우 놀라운 것이고, 또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28)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29)아주 바친 그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28-29절은 아주 바쳐진 헌물을 이야기합니다. 원어로 ‘헤렘’이라는 단어인데 이미 21절에서 한번 사용되었습니다. 즉 밭을 헌신해드렸는데, 희년이 되어서도 무르지 않으면 영영히(헤렘) 바쳐진 땅이 되어 무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헌신해드리는 것이 다 똑같이 헌신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등급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헌신해드릴 때 그냥 드릴 수도 있고, 아주! 드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아주 드리는 경우에는 다시 무를 수가 없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서 제사장의 소유가 되거나, 또는 성막에서 거룩한 용도로만 사용되어야 합니다. 만일 그것이 세속적인 용도로 사용될 때에는 반드시 폐기처분하든지 죽이든지 해야 합니다. 또는 본질적으로 거룩하게 될 수 없는 사물이나 생명체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는 그 즉시로 죽여야 합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께 부정한 인간을 아주 바친다는 것은 곧 그 인간의 소멸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불 가까이에 나무를 가져다놓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이 ‘헤렘’이라는 단어가 잘 보여줍니다. ‘헤렘’은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봉헌’이라는 뜻도 있지만, ‘완전히 멸망시키다, 진멸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 두 의미가 연결되어 있는데, 이 사실이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잘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수 6:17)


원어에 보면 ‘물건’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냥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바치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물건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 생축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기생 라합만 살리는 표현을 보십시오). 그런데 이 구절에서 ‘바치다’라는 단어가 원어로 보면 ‘헤렘’이라는 단어입니다. 표준새번역이 이것을 잘 번역했습니다.


“이 성과 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전멸시켜서, 그것을 주께 제물로 바쳐라. 그러나 창녀 라합과 그 여인의 집에 있는 사람은 모두 살려 주어라. 그 여인은 우리가 보낸 정탐꾼들을 숨겨 주었다.”(수 6:17,표준새번역)


여리고 성의 모든 사람들과 생축, 모든 사물들을 하나님께 아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생축을 어떻게 하나님께 드립니까? 그들의 목을 따서 제물로 하나님께 바쳐드립니다. 한편 생명체가 아닌 보물들과 물건들은 여호와의 곳간에 구별하여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여리고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여호와께 아주 바쳐진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고 절대로 무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열하게도 아간이 간사하게 그것을 숨겨서 탈취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임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앞에 서원 예물의 경우는 꼼수를 부리거나 속여서 취하거나 하면 벌금을 무는 것으로 끝이지만, 아주 바쳐진 것을 건드릴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진노하셔서 엄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사람을 하나님께 아주 바친다”는 것은 하나님의 원수의 목을 따서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얼마나 큰 죄들을 지었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진멸하여 나에게 바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족속만 원수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다 죄인이므로 다 하나님의 원수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하나님께 아주 드린다는 것은 그 자체로는 좋은 의미인데, 문제는 우리가 다 죄인이기 때문에 그것이 곧 우리에게는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떠나 계시고, 이스라엘 성막 가운데 임재하셨어도 겹겹으로 싸서 텐트로 가려서 보지 못하도록 하신 이유가 우리로 죽임당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29)아주 바친 그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래서 이 말씀은 정말 자기 자신이나 자식을 죽여서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이 아니라, “정말 나에게 온전히 헌신하고 싶냐? 그러나 너희는 죄인이기 때문에 지극히 거룩한 나 하나님의 소유가 될 수가 없다. 안 그러면 너희가 죽어야 된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로운 것은 더러운 죄인이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론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진 것에서 잘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적타락하고 부정한 인간에 불과한 아론이 어떻게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져서 지극히 거룩한 대제사장이 되었습니까? 아론이 하나님께 아주 바쳐지게 되면 그냥 거기서 죽어버려야 정상인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아론 대신에 수송아지를 대신 죽이심으로 아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의에 대하여는 산자로 여겨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은 모형과 예표이기 때문에 사실은 아론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진짜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지는 일은 구약의 모든 모형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참으로 신약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아주 드려진 자들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졌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 대신 하나님께 아주 드려지셔서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처형당해 죽으셨습니다. 자신의 목을 따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림으로써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분을 모두 삭히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셔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우리를 이 2000년 전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속에 집어넣으셔서 우리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게 하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게 하셔서 우리로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의에 대하여는 하나님께 대하여 산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 말씀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계 5:9)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피 값으로 아주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이기 때문에, 신약의 성도들은 서원할 레야 서원할 수가 없습니다. 죽을병에 걸려서, “하나님 살려주시면 제 인생을 하나님께 바쳐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과 흥정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럴 때는 서원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하나님의 것인데 배은망덕하게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졌습니다. 그리고 한번 드려졌기 때문에 절대로 무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 속한 자는 영영히 하나님의 것이 되었고 그의 손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어떻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아간이 했던 짓을 우리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는 심각하게 우리 자신에게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적당히 신앙 생활하는 것, 잔머리 굴리면서 꼼수를 부리면서 적당히 헌신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심각한 죄인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정신 나가면 “예수 믿기 전이 좋았지... 차라리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 마음까지도 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를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38)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39)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8-39)


우리 신앙의 자동차에는 후진기어가 없습니다. 오직 전진만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가 어떤 은혜인지,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이고 축복인가 하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 나누는 삶의 행복과 기쁨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바울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정말 우리가 성령충만함을 받아 심령이 변화되어 새롭게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해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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