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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왕하 6:24-33
강설날짜 2017-10-25

2017년 열왕기하 공부

아람의 군대에 에워싸인 사마리아

말씀:열왕기하 6:24-33

 

우리는 지난 시간에 아람과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8-23). 엘리사가 기도하여 아람의 군사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포로로 잡은 그들을 후히 대접한 후 돌려보냈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람 왕 벤하닷이 온 군대를 이끌고 올라와서 사마리아 성을 에워싸는 사건입니다. 그로인해서 사마리아 성 사람들은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고 급기야 자기 자식까지 삶아 먹는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사건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24-25절을 보면 “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고 합니다. 아람의 포로 된 자들을 돌려보낸지 몇 년이 지나 그들이 다시 이스라엘을 쳐들어 온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사로 잡혔던 그 군대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여튼 아람 왕 벤하닷이 온 군대를 이끌로 올라와서 사마리아 성을 에워쌌습니다. 고대의 성읍은 대부분 강이나 절벽을 끼고 축성을 했기 때문에 적들이 쉽게 공격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성을 포위하여 항복하게 하는 작전을 많이 씁니다. 성이 포위가 되면 그 안에 비축된 물자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먹을 것이 없어지고 그로인해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게 됩니다. 아람 왕 벤하닷이 군대를 이끌고 올라와서 사마리아 성을 에워싸니 사마리아 성 주민들이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율법에서 먹을 수 없는 나귀 머리 하나가 은 팔십 세겔이라고 합니다. 이 금액은 노동자의 일 년 품삯에 해당되는 돈입니다. 그리고 합분태 사분 일 갑(0.57L)이 은 다섯 세겔이라(노동자 20일 품삯)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합분태’에 대한 해석이 다양한데 개역성경에서는 비둘기 똥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비둘기 똥은 비료로 쓰이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성이 포위되어 있으니 그 안에서 먹고 살기 위해 농사를 지어야 했습니다. 그로인해 비둘기 똥이 이렇게 비쌌던 것입니다. 또한 이 합분태를 비둘기 똥과 비슷한 식물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 식물은 백합과에 속하는 것으로 다년생 식물이라고 합니다. 식량이 부족해지면 사람들이 이것을 캐어 먹었다고 합니다. 하여튼 이 사실들은 아람 왕 벤하닷이 올라와 사마리아 성을 포위함으로 사마리아 성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렸고 그로 인해서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사가 적들을 물리칠 능력이 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입니까? 물론 엘리사의 개인의 능력이 아닙니다만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잘 보호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왜 이번 일에 있어서는 엘리사가 아무런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지 않고 있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소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들 속마음은 풍요와 다산을 원하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하시기 위하여 적이 쳐들어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그들로 굶주림 가운데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이나 왕이나 간에 이런 일이 닥치니 그들이 얼마나 신앙이 없는지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평소 어려움이 없을 때는 그 사람의 본색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어려움을 당해보면 그 사람의 본색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6-27절을 보면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통과할 때에 한 여인이 외쳐 가로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성이 포위되어 있으니 온 성의 백성들이 굶주립니다. 이때 한 여인이 왕에게 나아와 도와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왕이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않는데 내가 무엇으로 돕겠느냐”고 합니다. “타작마당이나 포도주 틀로 하겠느냐”고 합니다. 타작마당이나 포도주 틀은 다 성 밖에 있는 것들 입니다. 그런데 적들이 포위하고 있으니 어떻게 내가 도와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은 여기서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않으면’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신앙적인 표현 같지만 사실은 불신앙적인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왕은 여인에게 청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28-30절을 보면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저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참으로 여인의 청이 기가 막힙니다. 두 여인이 의논하여 아들들을 삶아먹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한 여인의 아들을 삶아 먹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다른 여인의 아들을 삶아 먹기 위해 아이를 내어 놓으라고 하니 그 아들을 숨겼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문제로 왕에게 재판하여 달라고 합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습니다. 이것은 가장 큰 슬픔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의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습니다. 이것도 회개의 표시입니다. 그런데 이 왕이 여호와의 도우심을 언급하고 굵은 베옷을 입었다고 해서 신앙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의 말씀을 보면 그가 신앙이 없음이 분명해집니다.

 

31-33절을 보면 “왕이 가로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날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그 때에 엘리사가 그 집에 앉았고 장로들이 저와 함께 앉았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내었더니 그 사자가 이르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자식이 내 머리를 취하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안에 들이지 말라. 그 주인의 발소리가 그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하고 무리와 말씀할 때에 그 사자가 이르니라. 왕이 가로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라고 했습니다. 왕의 신앙 없음이 어떻게 드러납니까?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라고 합니다. 이것은 자기 저주의 맹세입니다. 이보다 더한 맹세가 없습니다. 그러면 여호람 왕이 왜 이런 맹세를 하면서 엘리사를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까? 전에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안에 엘리사의 손에 끌려왔을 때에 왕이 그들을 죽이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들을 죽이기는커녕 물과 떡을 먹여서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다시 그 군대가 쳐들어 온 것입니다. 그로인해서 엘리사를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번 아람 왕이 쳐들어 왔을 때는 엘리사가 기도하여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그들을 사로잡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엘리사가 아무른 도움도 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오늘 본문과 같은 사건을 일으키시는 것입니까? 이 사건을 통해서 계시하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면 어떻게 저주가 임하는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여호람 왕은 자신이 여호와의 언약을 배반하고 사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볼 때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달고 삽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도 드립니다. 그런데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그들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단과 벧엘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왕이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돕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입니다. 왕이 자신과 백성들이 어떻게 여호와의 언약을 배반하였는지를 돌아보고 회개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엘리사를 죽이려고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은 엘리사를 죽이려고 군인들을 보내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그 군인들이 오는 것을 알고서 문을 닫으라고 합니다. 살인자의 아들이 내 머리를 베려고 온다고 합니다. 몇몇 백성의 지도자들이 엘리사와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왕이 보낸 사자가 엘리사에게 말하기를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떻게 여호와를 기다리겠느냐고 합니다. 이 사자는 왕이 엘리사의 목을 베어 오라고 하였다는 왕의 말을 전합니다. 여기서 ‘어떻게 여호와를 기다리겠느냐’는 말은 철저한 불신앙적인 말입니다. 물론 평소에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도 엘리사가 도와주어서 적을 물리치고 할 때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적이 쳐들어와서 성을 포위하고 성이 다 굶어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른 도움도, 아무른 기적도 주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기다리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여호와의 선지자라는 엘리사의 목을 베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여호와를 베어버리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는 말입니다. 나를 도와주지 않는 하나님, 우리나라를 도와주지 않는 하나님은 죽여 버리겠다는 말입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증거 되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참조. 요 18:36-37). 그리고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이런 메시아는 필요 없다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이 여호람 왕의 모습이며, 북 이스라엘의 사람들의 모습이었으며, 남 유다의 사람들의 모습이었고,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바로 이런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왕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레위기 26:27-29절을 보면 “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치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 죄를 인하여 칠 배나 더 징책하리니 너희가 아들의 고기를 먹을 것이요, 딸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26:1-13절을 보면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지 말고 잘 지키면 지켜주시고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레위기 26:14-26절에 보면 언약을 어긴다면 염병을 보내고 대적의 손에 붙이고 양식이 끊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벌 중의 하나가 바로 자기 아들의 살과 자기 딸의 살을 먹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그대로 지금 이스라엘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이 포위된 것도 그들의 죄로 인한 것임을 안다면 회개하여야 할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어떻게 여호와를 기다리겠느냐며 엘리사의 목을 베려고 합니다.

 

신명기 28:1-14절을 보면 하나님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면 복을 받지만 계속해서 15-68절에 보면 하나님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주의 양이 복의 양보다 몇 배나 더 많습니다. 그 저주 중의 하나인 53-57절을 보면 “네가 대적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함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남자라도 그 형제와 그 품의 아내와 그 남은 자녀를 질시하여 자기의 먹는 그 자녀의 고기를 그 중 누구에게든지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맹렬히 너를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 것도 그에게 남음이 없는 연고일 것이며 또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부녀 곧 유순하고 연약하여 그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 보지도 아니하던 자라도 그 품의 남편과 그 자녀를 질시하여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 것도 얻지 못함이리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언약의 저주가 바로 이스라엘 가운데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 하고 주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은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겠느냐고 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불신앙입니다. 이러므로 결국 이런 나라는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 유다는 다릅니까? 아닙니다. 예레미야 19:7-9절을 보면 “내가 이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계를 무효케 하여 그들로 그 대적 앞과 생명을 찾는 자의 손의 칼에 엎드러지게 하고 그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되게 하며 이 성으로 놀람과 모욕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모든 재앙을 인하여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모욕할 것이며 그들이 그 대적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핍을 당할 때에 내가 그들로 그 아들의 고기, 딸의 고기를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고기를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남 유다 예루살렘도 바벨론에 포위가 되고 결국 그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예레미야 애가 4:9-13절을 보면 “칼에 죽은 자가 주려 죽은 자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이들이 찔림 같이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처녀 내 백성의 멸망할 때에 자비한 부녀가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식물을 삼았도다. 여호와께서 분을 발하시며 맹렬한 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피우사 그 지대를 사르셨도다.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 열왕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그 선지자들의 죄와 제사장들의 죄악을 인함이니 저희가 성읍 중에서 의인의 피를 흘렸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남 유다도 북 이스라엘과 마찬가지의 일을 당합니다. 그 이유는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입니다. 이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이미 멸망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은 교회라면 이런 말씀들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어떠한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어떤 하나님을 믿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여호람 왕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굵은 베옷도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 중심에는 여호와의 언약에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을 섬겨 자신과 자기 백성의 안녕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환난을 통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기는 커녕 도리어 선지자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여호와 하나님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합니까? 아니면 이제 그런 주님을 어찌 더 기다리겠느냐며 돌아서시겠습니까? 이 세상이 망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의인의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아벨의 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복음 증거 한 자들이 피를 흘린 땅이 이 땅입니다. 그 피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피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 땅은 영원한 심판을 받을 땅입니다. 이 땅에서 온갖 요란한 일들이 다 일어납니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그치지 않습니다. 처처에 기근이 일어납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굶어죽어 가고 있는 어린이들이 일 년에 천오백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전 세계 군비의 수천분의 일만 해도 이들이 건강하게 먹고 살기에 충분합니다. 인간의 탐욕이 사마리아 성의 굶주림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런 세상을 보면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 땅의 부귀와 영화를 누리려고 하나님을 부른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람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들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교회가 무엇을 증거 해야 합니까? 교회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에 우리가 무엇을 증거 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북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남 유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삶아서 먹고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도록 아이들을 교육시키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우상의 제단에 아이들을 불로 살라 바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오늘 본문의 아이를 잡아먹는 모습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날 우리의 모습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예수님의 살과 피만이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라고 믿고 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자녀에게 그렇게 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말씀 앞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불신앙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여호와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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