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7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왕하 13:14-25
강설날짜 2018-02-07

2018년 열왕기하 공부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

말씀:열왕기하 13:14-25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와 요아스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오늘 말씀은 엘리사가 병들어 죽게 되는 사건입니다. 엘리사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가서 눈물을 흘리며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합니다. 이에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활과 화살을 취하게 한 후 쏘며 땅을 치게 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4-17절을 보면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활과 살들을 취하소서 활과 살들을 취하매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곧 손으로 잡으매 엘리사가 자기 손으로 왕의 손을 안찰하고 가로되 동편 창을 여소서 곧 열매 엘리사가 가로되 쏘소서 곧 쏘매 엘리사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구원의 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진멸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었습니다. 이에 요아스가 죽을 병이 든 엘리사에게 내려가서 눈물을 흘리며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합니다. 열왕기하 2:12절에도 보면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한 말은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한 말이기도 합니다. 요아스는 자신이 왕이고 군대가 있는데도 엘리사 선지자를 보고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은 눈에 보이는 병거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선지자를 향하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16년 동안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믿었습니다. 그러면 왜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으로 믿었겠습니까? 그 이유를 열왕기하 13:7절에 보면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진멸하여 타작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고 마병 오십과 병거 십승과 보병 일만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두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아람왕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와서 그 백성을 진멸하고 여호아하스에게 마병 오십과 병거 십승과 보병 일만만 남겨 두었습니다. 한 나라의 군대가 이정도로 줄었다면 정말 힘이 없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런 상황에서 요아스가 엘리사가 병들어 죽게 되자 그에게 와서 눈물을 흘리며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요아스가 병거와 말이 솔로몬 시대만큼 많았다면 엘리사를 찾아 왔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었을까요?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약해지는 것이 요아스에게 복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약함으로 인하여 엘리사를 찾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7:16-20절을 보면 “왕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의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의 왕은 말과 병거와 아내와 은금을 많이 두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은 그러한 세상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곧 율법을 평생에 자기 곁에 두고 읽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왕의 역할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일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은 성도들이 이 길로 가야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그나마 이 길로 가려고 한 왕이 누구입니까? 다윗입니다. 다윗은 적으로부터 노획한 말의 힘줄을 잘라버렸습니다. 사무엘하 8:3-4절을 보면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저를 쳐서 그 마병 일천칠백과 보병 이만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소바 왕 하닷에셀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마병 일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때 다윗은 병거 일백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의 발 힘줄을 다 끊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병거를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다윗과 정 반대로 갑니다. 그 결과 나라가 나누어집니다. 열왕기상 4:26절을 보면 “솔로몬의 병거의 말의 외양간이 사만이요, 마병이 일만 이천이며”라고 합니다. 마병이 만 이천 명이면 병거가 6천대가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솔로몬의 왕국은 바로 아들 대에 나라가 남북으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말을 구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율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과 병거를 수입하여 팔기도 하며 자신의 부국강병책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말과 병거는 이러한 말이라는 육체의 힘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로 나라를 지키고자하기에 이스라엘은 늘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20:1절을 보면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 11:1-6절을 보면 “하솔 왕 야빈이 이 소식을 듣고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및 북방 산지와 긴네롯 남편 아라바와 평지와 서방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동서편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산지의 여부스 사람과 미스바 땅 헤르몬산 아래 히위 사람들에게 사람을 보내매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민중이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이 왕들이 모여 나아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가에 함께 진 쳤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붙여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사르라”고 했습니다. 시편 20:7절을 보면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을 보면 이스라엘의 병거와 말이 무엇인지 분명해 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의지하는 병거와 말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끊임없이 병거와 말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런 것들이 힘이 되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세상에서 택함을 입은 자들에게 그 힘을 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붙들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자기 언약에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 14-17절을 보면 요아스가 죽을 병이 들어 죽어가는 엘리사에게 눈물을 흘리며 호소합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합니다. 이에 엘리사가 요아스 왕에게 말하기를 활과 화살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활과 화살을 잡으라고 하고서는 엘리사가 그 손 위에 얹습니다. 곧 안수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동쪽 창을 열고 쏘라고 합니다. 그렇게 화살을 쏘자 엘리사가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칠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18-19절을 보면 “또 가로되 살들을 취하소서 곧 취하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이에 세번 치고 그친지라.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가로되 왕이 오륙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번만 치리이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엘리사가 요아스 왕에게 화살들을 잡고 땅을 치라고 합니다. 그러자 왕이 세 번을 치고 그쳤습니다. 이에 엘리사가 노하여 왕이 대 여섯 번을 쳤다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을 것이지만 이제 세 번만 칠 것이라고 합니다. 17절에 보면 엘리사가 말할 때에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구원을 의지하는 행위가 화살로 땅을 치라는 말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세 번만 친 것입니다. 요아스가 왜 세 번만쳤을까요? 이게 무슨 짓이냐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이라고 하였지만 대단한 약속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겨우 세 번만 친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말을 여호와의 구원으로 받았다면 수도 없이 내려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적들을 치는 것이 절박할수록 멈추라고 할 때 까지 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겨우 세 번 친 것은 요아스의 신앙도 주께서 나라를 약하게 하심으로 겨우 나오는 신뢰의 모습입니다.

 

20-21절을 보면 “엘리사가 죽으매 장사하였더니 해가 바뀌매 모압 적당이 지경을 범한지라.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적당을 보고 그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 섰더라”고 했습니다. 엘리사가 죽고 일 년이 지났습니다. 모압 도적 때들이 이스라엘 땅에 왔습니다. 그때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져 넣습니다. 이스라엘은 땅에 매장하는 것이 아니라 굴과 같은 곳에 시신을 놓아두기에 장사를 지내다가 적이 오자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지고 도망가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던져진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엘리사는 죽을 병이 걸려서 죽어 시체가 섞었습니다. 그런데 그 뼈에 닿은 시체가 살아남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까? 선지자는 죽어도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 영원한 언약 안에서 선지자가 죽어 시체가 되도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변형되셨을 때 누가 나타났습니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모세는 죽어서 장사 지낸바 된 자입니다. 엘리야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살아있는 채로 승천을 했지만 그 몸 그대로 승천을 했을까요? 홀연히 변화된 것입니다. 이 역사 속에서 보면 모세는 예수님보다 약 1천 5백 년 전 사람이고, 엘리야는 약 8백 년 전의 사람입니다.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이 두 사람은 지상에서 사라진지 오래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르시면 그들이 영광 중에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부활이며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마르다와 마리아는 마지막 날의 부활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려내십니다. 죽어서 4일이 되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나오라고 부르시니 그가 무덤에서 살아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나사로나 엘리사의 뼈에 닿아서 살아난 사람이나 다시 죽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들을 다시 살려내신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함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병들어 죽어도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에 말이 없고 병거가 없어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사로를 통하여서도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이며 생명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약하여지고 병이 들고 죽어가는 것이 결코 서글픈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과 생명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죽을 몸, 이 썩을 몸이 죽지 않음을 입게 될 날이 올 것이기에 늙음과 병듦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니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활과 생명이 없어도 늙음과 병듦은 자연의 현상이기에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부활과 생명이 있기에 죽기를 사모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25절을 보면 “여호아하스 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인하여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어 긍휼히 여기시며 권고하사 멸하기를 즐겨 아니하시고 이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 아람 왕 하사엘이 죽고 그 아들 벤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매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두어 성읍을 회복하였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번 쳐서 파하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아하스와 요아스가 이미 죽었음을 먼저 말해놓고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엘리사와의 관계성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언약관계가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아하스 왕 때에 아람 왕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습니다. 왜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한 것입니까? 여호아하스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상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들을 성실히 괴롭히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항상 죄에서 떠나지 못하는 그들을 진멸하셔야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 멸하기를 즐겨하지 않으신 이유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셨기 때문에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그 성읍들을 회복시킨 것은 엘리사의 말을 듣고 화살을 세 번 쳤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엘리사는 죽어서 뼈가 다 드러난 시체가 되었지만 그 말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만사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것도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신실하게 이루어졌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 약속의 완성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이 약속 안에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말과 병거를 의지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 되어주시겠다는 것은 언약입니다. 그런데 이 언약을 버리고 세상의 힘이 되는 병거와 마병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요아스는 죽을 병이 든 엘리사에게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할 정도로 나라의 힘은 약하여지고 그의 마음도 낮추어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51-54절을 보면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이루어지게 되는 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길입니다. 요아스가 죽을 병이 든 엘리사에게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말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우리의 전부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있게 되려면 얼마나 우리의 힘이 빠져나가야 되겠습니까? 얼마나 우리의 의로움 들이 무너져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힘과 의가 완전히 무너져야 합니다. 그럴 때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언약의 백성들에게 주의 영이 임하여야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 바라보게 됩니다(히 12:2). 이런 자들은 예수님이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된다고 고백하게 됩니다(고전 1:30).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 가운데 이런 은혜의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 새 언약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652 [열왕기하 21장]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아몬 file 왕하 21:19-26 손재호 2018-06-20 155
651 [열왕기하 21장]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므낫세 file 왕하 21:1-18 손재호 2018-06-13 191
650 [열왕기하 20장]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리라 file 왕하 20:12-21 손재호 2018-06-06 202
649 [열왕기하 20장] 히스기야 왕의 발병과 회복 file 왕하 20:1-11 손재호 2018-05-30 270
648 [열왕기하 19장]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리라 file 왕하 19:1-37 손재호 2018-05-23 300
647 [열왕기하 18장] 무엇을 의뢰하느냐? file 왕하 18:17-37 손재호 2018-05-16 255
646 [열왕기하 18장] 유다 왕 히스기야의 개혁 file 왕하 18:1-16 손재호 2018-05-09 300
645 [열왕기하 17장] 여호와도 섬기고 이방신도 섬김 file 왕하 17:24-41 손재호 2018-05-02 231
644 [열왕기하 17장] 유다도 여로보암의 죄를 따름 file 왕하 17:19-23 손재호 2018-04-25 197
643 [열왕기하 17장] 북 이스라엘의 멸망 file 왕하 17:1-18 손재호 2018-04-18 338
642 [열왕기하 16장] 유다 왕 아하스의 행적 file 왕하 16:1-20 손재호 2018-04-11 365
641 [열왕기하 15장] 이스라엘 베가와 유다 요담의 행적 file 왕하 15:27-38 손재호 2018-04-04 221
640 [열왕기하 15장] 살룸과 므나헴과 브가히야의 행적 file 왕하 15:13-26 손재호 2018-03-28 232
639 [열왕기하 15장] 사대 만에 끝난 예후의 왕조 file 왕하 15:8-12 손재호 2018-03-21 198
638 [열왕기하 15장] 유다 왕 아사랴의 행적 file 왕하 15:1-7 손재호 2018-03-14 233
637 [열왕기하 14장]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여로보암 file 왕하 14:23-29 손재호 2018-03-07 233
636 [열왕기하 14장] 다윗 성에 장사된 아마샤 file 왕하 14:8-22 손재호 2018-02-28 192
635 [열왕기하 14장]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아마샤 file 왕하 14:1-7 손재호 2018-02-21 325
» [열왕기하 13장]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 file 왕하 13:14-25 손재호 2018-02-07 274
633 [열왕기하 13장]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file 왕하 13:1-13 손재호 2018-01-31 25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34 Next
/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