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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왕하 10:18-36
강설날짜 2018-01-10

2018년 열왕기하 공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한 예후

말씀:열왕기하 10:18-36

 

우리는 지난 시간에 아합과 이세벨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예후에 의해 진멸 당하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이 일에 여호나답이 예후와 함께 하는 것을 봤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합의 집안을 진멸하고 바알의 선지자들을 다 죽인 예후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8-24절을 보면 예후가 집권을 하고나서 자신은 아합보다 더 바알을 섬기겠다고 하면서 전국의 바알 선지자를 다 불러 모읍니다. 오지 않으면 살려두지 않겠다고 협박하여 전국에서 다 불러 모아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게 하고 예복을 입게 합니다. 그리고 예후와 여호나답이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서 바알을 섬기는 자만 남고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여기에 있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후가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다 죽이기 위한 계략이었습니다. 24절에 보면 예후는 팔십인을 밖에 두며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 손에 붙이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게 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겠다”고 합니다.

 

25-29절을 보면 번제 드리기를 다하매 예후가 호위병과 장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호위병과 장관들이 칼로 저희를 죽여 밖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바알의 당이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당을 훼파하여 변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 바알을 완전히 멸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29절에 보면 예후 자신은 이스라엘에게 범죄 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숭배자들을 진멸한 예후였지만 자신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 것입니다.

 

30-3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네가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잘 행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의 집에 다 행하였기에 네 자손이 이스라엘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내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때에 비로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땅을 찢어 잘라내기 시작합니다. 아람 왕 하사엘로 이스라엘의 영토를 공격하게 하되 요단 동쪽 길르앗 온 땅을 공격합니다. 곧 갓 사람과 르우벤 사람과 므낫세 사람의 땅 아르논 골짜기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과 비산까지 공격하였습니다. 그리고 예후는 28년을 통치하고 죽습니다. 예후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과 모든 권세는 역대지략에 기록되고 열조와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후에 대한 평가가 어떠합니까? 오늘 본문 30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북 이스라엘 열 왕들 중에 유일하게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북 이스라엘의 19명의 왕들 중에 유일합니다. 북 이스라엘은 9번의 왕조가 바뀌었고, 19명의 왕들이 등장합니다. 반역과 반역이 이어졌습니다. 그런 왕들의 역사 속에서 예후 홀로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예후조차도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여로보암의 죄가 이스라엘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로보암의 죄로 인하여 바알과 아세라도 쉽게 용납이 되는 것이 북 이스라엘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면 그토록 이스라엘 왕들이 떠나지 못했던 여로보암의 죄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29절에서 잠시 봤습니다만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게 한 것입니다. 열왕기상 12:25-32절 말씀을 다 같이 봉독하겠습니다.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함이더라. 저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팔월 곧 그 달 십 오일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 지은 산당의 제사장은 벧엘에서 세웠더라”(왕상 12:25-32). 그렇습니다. 이것이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섬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레위인이 아닌 일반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절기를 만들어서 금송아지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이 이렇게 한 것은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하러 갔다가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갈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곧 여로보암은 자신의 왕위를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대체신앙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로보암의 죄가 되어서 온통 북 이스라엘로 물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여로보암의 죄가 우리에게는 없습니까? 열왕기상 15:25-26절을 보면 “유다 왕 아사 제 이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아비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고 했습니다.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그 아버지의 길 곧 여로보암의 길로 간 것입니다. 열왕기상 15:33-34절을 보면 “유다 왕 아사 제 삼년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디르사에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십 사년을 치리하니라.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아히야 선지자의 말대로 여로보암의 집을 심판하는 자가 바아사 입니다. 바아사가 나답을 반역하여 여로보암 집안의 생명 있는 자를 다 죽였지만 바아사 자신도 여로보암의 길로 간 것입니다. 이것은 여로보암의 길이 얼마나 우리의 본성에 맞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왕들을 보면 전부가 다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정직한 왕이라고 칭찬을 들은 예후조차도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로보암의 죄가 우리 속에도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우리 속에 무엇이 있습니까? 자기를 세우고자 하는 아상(我想)이 있지 않습니까? 자기인정, 자기 영광을 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신의 아상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상이 없는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도 여로보암의 죄가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여로보암의 죄의 근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출애굽기 32:1-8절을 보면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 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 오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로보암의 죄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원하는 신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며, 여로보암의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만족과 유익을 위하여 곧 자신들을 위하여 신을 만들어 내라고 합니다. 이것이 언약을 배반하는 것이며, 우상숭배가 됩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서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 너희 신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신이란 자신들을 위하여 주는 신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만들 수도 있고 섬길 수도 있는 신을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로보암의 죄가 됩니다.

 

나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신전을 만들고 신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 여로보암의 죄가 됩니다.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에서 “너희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우상이란 어떤 형상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탐심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골 3:5). 그러므로 나를 위하여 형상물을 만들지 않더라도 나의 마음과 생각과 계획과 활동들이 나를 위한 것이라면 우리가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이것이 여로보암의 죄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말은 성경의 하나님을 말하고 성경의 예수님을 말하지만 그 내용이 나를 위한 신이며, 우리 자신을 위한 신이라면 이것이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까? 고린도후서 3:6절을 보면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말은 복음이라고 해도 그 내용을 율법조문으로 전하면 그것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됩니다.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할 때에 살리는 것은 새 언약이라는 말씀입니다. 옛 언약이라는 율법을 통하여 왜 인간은 스스로 의에 이를 수가 없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율법 조문의 역할입니다. 우상숭배자를 엄청나게 죽인 예후 본인도 우상숭배에서 못 벗어납니다. 우리 스스로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3:8-22절을 보면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율법의 조문에 순종하여 의에 이르고자 한다면 우리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의란 모든 율법을 항상 지켜 행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에 이른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 바로 아브라함 언약이며, 모세 언약입니다.

 

로마서 11:32절을 보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나 로마서의 이런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를 아는 자들은 자신이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통하여 어떤 인간도 스스로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서 구원을 얻을 자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북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남 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남 유대에서는 바른 왕의 기준은 다윗입니다. 그러므로 남북 왕조를 통하여 잘하면 다윗처럼 말하고 잘못하면 여로보암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도 간음하고 살인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다윗의 나은 점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죄를 알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 의지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자신을 위하여 가짜 하나님을 만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12-13절을 보면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와 함께 죽으면 함께 살 것이고 우리가 참으면 함께 왕 노릇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까? 정말 그리스도와 함께 오래참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주님을 부인하고 있습니까? 예후가 그렇게 열심히 우상 숭배자들을 진멸하였지만 자기 자신이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입니다. 이 말씀만 있다면 우리는 소망이 없는 자들입니다. 아주 작은 이익 앞에서도 주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에도 주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무슨 미쁨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미쁨이란 신실하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신실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항상 미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자기 언약을 자신의 미쁘심으로 이루어내십니다.

 

우리가 한 평생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라도 주님은 우리가 여로보암이 갔던 그 우상숭배의 길에서 돌이켜 주십니다. 나의 우상이라고 여긴 것들을 말씀의 검으로 찍어 내리십니다. 내가 꿈에서도 품고 있는 바알과 아세라만 곧 풍요와 다산의 신만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섬겨온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부수어 내십니다. 우리가 말로는 우리를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그 내용이 금송아지라는 말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우리를 불러내시는 예수님의 능력이 십자가입니다. 요한복음 12:32절을 보면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들리신 분이 우리를 그곳으로 이끌어 올리시는 것입니다. 그 주님의 신실한 일하심만이 여로보암의 죄에 빠진 우리를 이끌어 내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이 우리의 능력이 아니기에 오직 은혜로 받은 선물이라고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한 예후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가운데 여로보암의 죄를 회개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멸망의 자식들이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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