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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신 3:1-22
강설날짜 2018-11-14

2018년 신명기 공부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신명기 3:1-22

 

지난 시간에 우리는 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시혼을 쳐서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을 살펴봤습니다(신 2:24-37).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이 바산 왕 옥을 쳐서 그 땅을 차지하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두려워 말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한 것은 눈에 보이는 적들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강한 적들에 비해서 자신들은 오합지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싸우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한 것입니다. 말과 병거를 많이 주시고 싸우라고 하면 용기가 나겠지만 그렇지 않은데 싸우라고 하니 두려운 것입니다. 적들이 어느 정도로 강합니까? 5절에 보면 적들의 모습은 높은 성벽과 문과 빗장이 있어서 견고하다고 합니다. 이런 성벽이 둘러쳐진 성읍들 외에도 수많은 성읍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벽만 높고 견고한 것이 아니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거인들입니다. 11절에 보면 바산 왕 옥이 르바임 족속인데 이 족속이 거인 족입니다. 그 바산 왕 옥의 침대가 어느 정도냐 하면 장이 곧 길이가 아홉 규빗, 광이 곧 폭이 네 규빗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센티미터로 환산하면 길이가 약 4미터, 폭이 약 2미터나 되는 크기입니다. 이 정도의 침대크기라면 그 키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됩니다. 족히 3미터는 되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어마어마한 족속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이런 바산 왕 옥이 모든 백성들을 거느리고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돌이켜 바산으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에드레이에서 싸우는지라”(1). 키가 3m가 넘는 거대한 왕이 모든 백성들을 이끌고 싸우기 위해서 나아왔으니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런데 이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합니다.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두려워말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2b-3절을 보면 “…내가 그와 그의 모든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붙였으니 네가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에게도 행할 것이니라 하시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산 왕 옥과 그 모든 백성을 우리 손에 붙이시매 우리가 그들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네 손에 붙이셨기 때문에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산 왕 옥을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옥에게도 행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산 왕 옥과 싸우기 전에 이미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족속 시혼 왕과의 싸움이 있었습니다. 이 싸움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붙여주심의 의미를 체험했습니다. 군사적으로 볼 때 자신들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대적을 너무나 손쉽게 이기는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붙여 주심의 의미를 이미 확인 한 것입니다. 그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시혼 왕을 붙여 주심으로 그 백성들이 진멸당한 것처럼 이 바산 왕 옥도 붙여주겠다는 것입니다. 바산 왕 옥이 그렇게 강할지라도, 그들의 성이 높고 빗장이 견고할지라도, 네 손에 붙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말고 싸우라는 것입니다. 헤스론 왕 시혼을 손에 붙여 주셔서 이기게 하신 것처럼 이기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이스라엘이 담대함을 덧입고 바산 왕 옥을 쳐서 진멸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성과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3-10절에 보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산 왕 옥과 그 모든 백성을 우리 손에 붙이시매 우리가 그들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 때에 우리가 그들에게서 빼앗지 아니한 성읍이 하나도 없이 다 빼앗았는데 그 성읍이 육십이니 곧 아르곱 온 지방이요, 바산에 있는 옥의 나라이라. 그 모든 성읍에 높은 성벽이 둘려 있고 문과 빗장이 있어 견고하며 그 외에 성벽 없는 고을이 심히 많았느니라. 우리가 헤스본 왕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 성읍들을 진멸하되 각 성읍의 남녀와 유아를 진멸하였으나 오직 모든 육축과 그 성읍들에서 탈취한 것은 우리의 소유로 삼았으며, 그 때에 우리가 요단강 이편 땅을 아르논 골짜기에서부터 헤르몬산에까지 아모리 족속의 두 왕에게서 취하였으니. (헤르몬산을 시돈 사람은 시룐이라 칭하고 아모리 족속은 스닐이라 칭하였느니라). 우리의 취한 것은 평원의 모든 성읍과 길르앗 온 땅과 바산의 온 땅 곧 옥의 나라 바산의 성읍 살르가와 에드레이까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산 왕 옥을 이스라엘 손에 붙여주심으로 그들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진멸하였습니다. 그들이 빼앗지 아니한 성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바산 왕 옥과 헤스론 왕 시혼이 다스리던 지역이 요단을 건너기전 곧 요단 동편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넓은 목초지가 있고 목양을 하며 살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8-19절을 보면 “그 때에 내가 이 땅을 받은 너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셨은즉 너희 군인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선봉이 되어 건너가되 너희에게 육축이 많은 줄 내가 아노니 너희의 처자와 육축은 내가 너희에게 준 성읍에 머무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의 절반 지파가 이곳에서 정착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민수기 32장에 보면 아주 상세하게 나옵니다.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 곧 이들 두 왕을 진멸한 곳이 목축하기에 적당한 곳이기에 이들 두 지파 반은 모세에게 요단강을 건너지 않고 여기서 정착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때 모세가 그들을 책망합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를 낙망하게 하느냐며 옛날에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있었던 일을 다시 이야기 합니다. 모세는 자기 것만 챙기고 눌러 앉고자 하는 자들을 책망한 후에 들어가서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두 지파 반이 말하기를 이곳에 짐승의 우리와 유아를 위한 성읍을 만들어 놓고 다른 지파들 앞장서서 요단강을 건너가서 싸우겠다고 합니다. 다른 지파들도 기업을 얻게 되면 그때 돌아오겠다고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8-20절을 보면 “그 때에 내가 이 땅을 받은 너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셨은즉 너희 군인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선봉이 되어 건너가되 너희에게 육축이 많은 줄 내가 아노니 너희의 처자와 육축은 내가 너희에게 준 성읍에 머무르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같이 너희 형제에게도 안식을 주시리니 그들도 요단 저편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주시는 땅을 얻어 기업을 삼기에 이르거든 너희는 각기 내가 준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곳을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니 너희들은 너희 형제들 앞장서서 싸우라고 하십니다. 형제들이 기업을 얻으면 그때 너희 각 기업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21-22절을 보면 그때에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했다고 합니다. “그 때에 내가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두 왕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네가 목도하였거니와 네가 가는 모든 나라에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행하시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21-22).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여호와께서 두 왕 곧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에게 행한 일을 너희가 목도하였기에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것입니까? 요한계시록 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시는데 마지막 진노가 대접 심판입니다. 왜 진노하시는가 하면 이 세상이 죄악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의인의 피를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지막 진노를 준비한 광경과 함께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찬양합니다. 요한계시록 15:3-4절을 보면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이 찬양을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라고 합니다. 그 내용은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다”고 합니다. 모세의 이 노래는 출애굽기 15장에서 홍해바다를 건너고 나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5:2절에 보면 이 노래를 이제는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ajriqmov" 아드리모스:고정되고 명확한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서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짐승의 수를 이긴 자들이라고 노래합니다.

 

출애굽기 15:3절에 보면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용사시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용사가 되셔서 전쟁을 하시는데 애굽을 상대로 전쟁을 하신 것입니다. 애굽을 심판하실 때에 하나님의 군대를 만들어내시는 것입니다. 그 군대가 무슨 무기를 갖춘 군대인가 하면 어린 양의 피로 무장한 군대인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의 능력으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열 가지 재앙, 그 중에 마지막 장자 재앙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자동적으로 살아남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어린 양의 피를 바름으로 살아남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믿어야 할 것은 강력한 무기가 아니라 어린 양의 피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에 빠져죽지 않은 것은 어린 양의 피의 능력이지 그들의 병거나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바로의 군대는 그들의 병거를 몰고 바다를 따라 들어왔지만 아무런 무장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져 나가자마자 바닷물이 그들을 덮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 수장시켜버리셨습니다. 이 은혜를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가 어린 양의 피로 그 바다를 건너고 나서 여호와는 용사시라고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며, 그의 힘으로 주의 성결한 처소에 심으실 것이라고 노래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신명기의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전에 그들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의 후손들입니다. 40년 전 그 선조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싸우시는 용사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여리고성의 강함과 그 민족들의 강함만 보았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가나안 입구까지 인도하여 오시면서 앞장서서 싸우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홍해바다를 건너고 광야를 기적으로 지나온 것도 그들의 눈앞에 보이는 현실 앞에서 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제 40년이 지난 후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워말라고 합니다. 두려워말라고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의 전쟁을 통하여 붙여주시는 전쟁이 어떤 것인가를 직접 체험하게 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이런 붙여주심의 전쟁을 체험한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300명이 적을 물리친 전쟁을 보면 짐작이 갈 것입니다(참조. 삿 7장).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았습니다. 이 많은 군대를 고작 300명이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리고 횃불을 들고 외친 것 뿐인데 적들은 도망가기에 바빴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자기들끼리 칼로 쳐 죽이므로 자멸한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붙여 주심의 전쟁입니다. 이때 적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이 환영하며 기드온을 왕으로 세우려고 합니다(참조. 삿 8장). 그러나 기드온은 거부합니다. 이것은 기드온이 자기의 실력으로 이긴 싸움이 아닌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아는 것입니다. 다른 300명의 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런 싸움을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번이나 경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앞으로도 붙여주실 것이니 두려워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앞에 어려움이 닥쳐보면 그제야 믿음의 본색이 드러납니다. 평소에 어려움이 없을 때는 별 표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어려운 문제가 닥치면, 그것이 가정의 문제이든, 직장의 문제이든, 교회의 문제이든간에 어려운 문제가 닥칠 때에 제일 큰 문제가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그 두려움 앞에 우리의 믿음의 실상이 다 들어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은혜로 인도하여 오셨는가는 다 잊어버리고 발등에 떨어진 불로 인하여 벌벌 떨고 있는 것입니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더 어려움이 닥치면 어떻게 하나?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 자식이 대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결혼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온갖 걱정과 염려가 마구 밀려오는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때 기억해야 할 것이 바로 어린 양의 노래입니다. 모세의 노래 곧 어린 양의 노래가 무엇입니까? 어린 양의 피의 능력으로 구원받은 것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노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상을 이기신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결국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이기는 믿음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구약처럼 적을 다 제거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 세상에서 강한 자로 살아남는 것입니까? 오늘날 많은 설교들을 보면 주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자는 것입니다. 이런 설교에 사람들이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이기기를 원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만약 우리가 세상일로 인해 두려워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아직 죽음의 종노릇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2:14-16절을 보면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혈육에 속하심은 사망으로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없이 하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없이 하신다는 것은 완전히 제거하신다기보다 그 권세를 깨뜨려버린 것입니다. 사망으로 사망을 이겨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이제 더 이상 마귀가 가지고 있는 사망의 세력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는 것입니다. 이 죽음이란 단지 목숨 끊어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실패하는 것도 죽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두려움에서 해방시키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의 특징은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러 가지 두려움이 올 수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온갖 걱정과 두려움들이 다 다르지만 그런 두려움이 오는 것은 결국 주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사랑이 어떤 것입니까?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나타난 사랑입니다. 로마서 8:31-39절을 보면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이 사랑이 두려움을 이기는 것입니다.

 

요한1서 4:18절을 보면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는 더 이상의 두려움이 없습니다. 세상의 실패도 두려움이 아닙니다. 내가 제대로 살지 못하였기에 어떤 벌이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없습니다. 이제 두려워말라는 말씀은 바산 왕 옥을 물리친 정도가 아니라 사망의 권세를 가진 마귀를 예수님의 십자가로 승리하신 주님께서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십자가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두려움 없는 사랑 안에 거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마귀가 심어주는 두려움을 믿음으로 물리치고 주님의 십자가로 늘 승리하게 하여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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