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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야고보서 공부
                                                          두 가지 지혜
말씀:야고보서 3:13-18

 

우리는 지난 시간에 말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오늘은 두 가지 지혜 곧 세상으로부터 온 지혜와 위로부터 온 지혜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13절을 보면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고 합니다. 야고보는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와 총명은 유대인들이 교사나 서기관이나 랍비를 가리킬 때 쓰던 전문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계속해서 선생이 되고자 하는 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3:1). 야고보는 지혜와 총명이 있다고 하는 자들에게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이라’고 합니다. 지혜롭다고 하는 자는 열매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그 지혜가 머리에만 있지 말고 실천적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혜가 온유함으로 곧 겸손함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기에 지혜가 있는 자는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온유함으로 곧 겸손함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13절에서 지혜의 원론적인 이야기를 제시한 후 지혜의 잘못된 형태(13-16)와 참된 형태(17-18)에 대해서 설명해 나갑니다.

 

14절을 보면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독한 시기’는 잘못된 열심 곧 나쁜 열심을 의미합니다. 남이 하는 것을 부러워하고 배 아파하고 비판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여기서 ‘다툼’은 사람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다툼은 좋은 의미로 자기 편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의미로 자기 편으로 끌어 들이려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에 이런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다면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독한 시기와 다툼은 16절에 보면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일어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요란’은 무질서함을 말합니다. ‘악한 것’은 무익한 것 곧 나쁜 행동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독한 시기와 다툼은 공동체 가운데 혼란을 가져다주고 아무런 유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도리어 공동체를 파괴하고 영적인 생명을 죽이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독한 시기와 다툼을 자랑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얼마나 대단하였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열심이 지식을 따라 나온 열심이 아니라 자기들의 의를 세우기 위해 나온 열심이었기 때문에 도리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를 배척하여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그들의 행함이 없어서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행함이 의와 진리와 생명을 배척하게 된 것이 문제입니다. 요한복음 3:18-21절을 보면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자기들이 세상에서 빛이라고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두움이었음이 예수님이 오심으로 들통이 났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율법을 지키며 행한다고 하여도 그들은 어두움을 사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아니한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너희 아버지는 마귀라”고 하셨습니다(요 8:44).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행함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까? 독한 시기와 다툼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시기심으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것입니다(마 27:17-18). 예수님을 시기심으로 넘겨준 그들이 예수님을 증거 하는 제자들을 향하여서도 시기심이 가득하여 핍박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5:17절에 보면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시기와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 지혜의 출처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의 믿음이 참된 믿음인지 아닌지를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독한 시기와 다툼들은 어디로부터 오는 지혜입니까? 15절에 보면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라고 했습니다. 독한 시기와 다툼은 위로부터 온 지혜가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지혜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온 지혜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으로부터 온 지혜의 특징은 독한 시기와 다툼과 요란함과 악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과연 시기와 다툼이 없습니까? 교회끼리, 교인끼리 어떤 시기와 경쟁이 나타납니까? 교회 간에는 서로 누구 교회가 큰 가를 두고 경쟁합니다. 성도 간에는 자기 인정, 자기 영광으로 서로 시기합니다. 서로 세움 받고, 서로 인정받기 위해 시기합니다. 전도 경쟁, 헌금 경쟁, 목사 잘 섬기기 경쟁, 여러 가지 헌신 경쟁 등 참으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경쟁들이 교회 안에 가득합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목회자들이 목회적인 성공을 위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이러한 경쟁을 부추키고 유도한다는데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전도 왕을 뽑아 메달과 상금을 주기도 하고, 어떤 교회는 보면 주일 학교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친구 하나를 데려오면 스티커를 붙여 주기도 합니다. 헌금자 명단을 주보에 올려 헌금 경쟁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헌금의 양에 따라 직분 자를 세우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헌신하고 충성하지만 그 속에서 독한 시기와 경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선의의 경쟁이라고 합니다. 주의 일을 위하여 열심을 내자고 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선한 일을 위하여 열심을 내자고 하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이미 시기와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시기와 다툼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것은 위로부터 온 지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열심히 세상으로부터 온 지혜인가, 아니면 위로부터 온 지혜인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 지혜로 자기 영광을 구하면서 하나님을 위한다고 자기 스스로 속고 있으면서도 속고 있는지도 모르고 열심을 내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 안에서 어떤 분이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새로이 와서 더 열심히 봉사하게 되면 지금까지 인정받던 사람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주님께 감사하면서 늘 하던 대로 섬기겠습니까? 아니면 시기가 일어나겠습니까? 만약 시기와 경쟁심이 일어나면 지금까지 그렇게 봉사 해왔던 일들이 위로부터 난 지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시기와 다툼으로 행하였음이 들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참된 믿음인지 아닌지가 들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는 단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니 열심히 행함을 나타내자는 것이 아니라 너의 믿음이 위로부터 나온 믿음이냐는 것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주의 일이라고 행하는 것들이 그것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 안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다면 그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위이겠느냐는 것입니다. 큰 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간에 독한 시기와 경쟁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위로부터 온 지혜가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아무리 큰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위로부터 온 지혜는 어떤 것입니까? 17-18절을 보면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위로부터 온 지혜를 말할 때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오직’이라는 말은 위로부터 난 지혜여야만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로부터 난 지혜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첫째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이라고 합니다. 성결이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결은 야고보 4: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여기서 볼 때 성결이란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향하여 한 마음을 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는 것은 성결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 난 지혜는 이런 성결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위로부터 난 지혜는 화평케 합니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결코 화평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할 수 없는 것처럼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함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을 뿐 화평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 난 지혜만이 화평케 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가 일어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각 자가 믿음의 분량대로, 각자가 받은 은사대로 하는데 거기에 무슨 시기와 질투가 일어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화평이 왜 위로부터 와야 하는 것입니까? 야고보서 1:16-17절을 보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속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지혜인지 위로부터 오는 지혜인지 알라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에 이끌려 일을 벌려놓고도,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하여 시기와 다툼을 일으키면서도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는 그런 일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각양 모든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즉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또한 위로부터 난 지혜는 관용과 양순 입니다. 자신이 주님께 관용을 받은 자입니다. 주님께서 부드럽게 맞아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를 받았기에 관용과 양순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기와 다툼에는 결코 관용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잘못한 일에 대한 비판과 책망과 책임전가만 있을 뿐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우리 안에 얼마나 위로부터 오는 지혜가 없고 세상 지혜로 가득한지를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혜가 부족하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아버지께 구하라고 야고보서 1:5절에서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또한 위로부터 난 지혜는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합니다. 자신이 긍휼을 받았으며 또한 계속적인 긍휼을 입고 있기에 긍휼이 나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긍휼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13절을 보면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면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니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고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긍휼이 없다면 그것은 세상 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자에게서 선한 열매가 가득한 것입니다. 선한 열매란 긍휼의 열매이지 시기와 다툼의 열매는 아닌 것입니다.

 

또한 위로부터 난 지혜는 편벽과 거짓이 없습니다. 곧 편견이나 위선이 없습니다. 우리 속에 아직도 형제에 대한 편견이 있다면 그것은 위로부터 난 지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편견이나 위선이 있다는 것은 회개해야 할 일이지 자기 정당성을 고집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화평케 하는 자는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둔다고 합니다. 화평은 이미 한번 나온 말씀인데 또다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으로 위로부터 난 지혜를 마감하는가 하면 세상으로부터 온 지혜와 비교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난 지혜는 독한 시기와 다툼입니다. 아무리 선한 경쟁이라고 하여도 그 안에 시기와 경쟁이 나오면 이것은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것입니다. 위로부터 온 지혜는 일체의 시기나 경쟁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3:5-8절에 보면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씨 뿌리는 자나 물주는 자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또 고린도전서 1:11-15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시기심과 파당으로 나누어져 있는 그들에게 누가 십자가를 졌느냐고 책망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여기에 무슨 시기와 경쟁이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주님을 자랑할 뿐입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위로부터 난 지혜입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의 열매가 성령의 열매입니다(갈 5:22-23).

 

오늘날 우리 안에 무엇이 가득합니까? 세상 지혜가 가득합니까? 아니면 위로부터 온 지혜가 가득합니까? 위로부터 온 지혜가 없음을 발견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야고보서 1:5절을 봉독하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우리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대하여는 좀 미련하고 어리석어도 됩니다. 경쟁에 뒤쳐져도 괜찮습니다. 이 세상의 흔적은 다 지나가는 안개입니다. 이 세상은 불타 없어지기 위해 간수되어 있을 뿐입니다(벧후 3:7).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세상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오직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 곧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구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 곧 의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교회가 참된 믿음 가운데 굳게 세워져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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