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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야고보서 공부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말씀:야고보서 4:5-10

 

우리는 지난 시간에 1-4절 말씀을 통해서 싸움과 다툼이 내 속에 있는 싸우는 정욕으로 오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또한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배웠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야고보의 권면의 말씀을 배우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에 보면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의 것을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정욕을 사랑하면 곧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과 벗하여 살고자 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19-20절을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임하신 것은 우리 몸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것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몸이 나의 것이 아니기에 세상과 벗되지 말고, 마귀와 친하지 말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여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계속하여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길이기에 우리 안에 거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시기하시기 까지 사모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그래서 6절 말씀에 보면 더 큰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야고보서는 행함만 이야기하고 은혜가 없는 것처럼 많이 알고 있습니다만 보통 은혜가 아니라 더 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바로 우리 속에서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시는 은혜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시기하며 사모함으로 무엇을 하실까요? 로마서 8:23-30절을 보면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 성도들은 속으로 탄식합니다. 그 탄식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망은 곧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은 눈에 보이는 소망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소망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진정한 소망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소망을 좇아 삽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다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3:7절에 보면 이 세상은 장차 불타 없어지기 위해 보전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이 세상은 다 불타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소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무리 그것이 이 세상에서 귀하고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요즘은 시절이 하 수상하여 금과 은값이 천정부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금과 은도 우리 인생들의 진정한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 성도들은 눈에 보이는 소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기다리기에 연약합니다. 자꾸만 보이는 세상을 사랑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 연약함을 도와서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 성령의 생각을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이러한 탄식의 간구가 누구에게 있는 것입니까? 미리 정하신 자들입니다(엡 1:3).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신 것입니다. 이미 영화롭게까지 하셨는데 이러한 자기 백성들이 세상의 것을 사랑하면 성령께서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만 지시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시고 천국에서 만나보자고 올라가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을 보내셔서 우리 속에서 시기하시기까지 사모하시는 것입니다. 마땅히 사모해야할 주님을 사모하지 않고 세상의 것들을 사모하고 있는 우리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탄식하며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에 있습니까?

 

성령의 시기, 하나님의 질투가 왜 더욱 큰 은혜가 되는지 우리가 구약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출애굽기 34:14절을 보면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 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더디자 그들은 아론에게 자신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요구합니다. 결국 그들은 시내산 앞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하며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런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모세의 명을 받은 레위인들이 그날에 도륙한 사람이 삼천 명 가량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언약을 세우시며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시면서 자신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민수기 25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가까이 왔을 때에 미디안 여인들의 유혹을 받아 우상에게 절하고 간음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들에게 전염병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때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로 두 남녀를 죽였을 때에 전염병이 멈추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질투가 이스라엘을 심판하기도 하지만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로 질투 한 것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질투의 양면성입니다. 하나님의 질투로 심판을 받아야 하지만 대신 하는 질투로 인하여 구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스가랴 8:1-8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지아비와 늙은 지어미가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 많으므로 각기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그 성읍 거리에 동남과 동녀가 가득하여 거기서 장난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일이 그 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을 동방에서부터, 서방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함으로 성읍이 황폐화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대로 버려두시지 않고 다시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질투와 분노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왜 질투와 분노로 구원받는 것입니까? 자기 백성이 배반을 하니 아예 배반을 하지 못하도록 더 완벽한 은혜를 베풀어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자기 언약에 대한 신실하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다시 보면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앞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 됩니다. 다른 데 한눈팔거나 다른 곳에 마음을 두면 어떻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눈 돌리고 마음 주는 것들을 다 없애버리고서라도 주님에게만 마음 두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7절에서 본 것처럼 세상이 다 불에 타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볼 때 우리가 보기에 악한 것도 있지만 얼마나 보암직한 것들이 많습니까? 특히 돈만 있다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입니까? 그런데 왜 이런 아름다운 세상을 다 불태워 없애버리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그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영광을 바라보며 살기에 불살라 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의 심판이기도 합니다만 더 이상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것에 마음이 빼앗기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공포로 다가 옵니까? 아니면 감사로 다가옵니까?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공포가 되겠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큰 은혜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날마다 마음이 나뉘어집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우리를 사모하신다는 그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으로 달려가지 못하게 하시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도록 붙드시는 것입니다. 한눈팔지 못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나오는 말씀들은 명령이 아니라 사랑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교만한 자란 어떤 자입니까? 교만한 자란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모든 아담의 후손은 자기 힘을 의지하면서 살고자 하는 것이 본능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자란 세상에서 말하는 도덕적인 겸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겸손이라면 야고보는 도덕 선생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겸손한 자란 더 이상 자기의 행함에 기대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7절을 보면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합니다. 야고보는 하나님께 순복하고 마귀를 대적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곧 마귀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의 유혹을 대적하기는커녕 오히려 원하고 있다면 마귀와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와 친구가 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물리친 세상의 영광을 우리도 포기하는 것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까이 하시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싶습니까?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세상의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을 버리게 되는데 그런데도 가까이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손을 씻고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손이란 외적인 행위들을 말합니다. 우리의 행동들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일들에서 손을 씻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성결케 하라고 합니다. 두 마음이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데도 늘 두 가지를 다 섬기고자 합니다. 우리가 제일 잘 속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세상의 복을 받고,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면 세상에서 실패하고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교회를 나오고 열심을 내어도 하나님을 사랑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성결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결이란 하나님을 향하여 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야고보는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라고 합니다. 야고보는 이제 슬퍼하며 애통하여 울라고 합니다. 웃음을 애통으로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합니다.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일입니까? 이 말씀은 세상을 거꾸로 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웃음과 즐거움을 애통과 슬픔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였다고 잔치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울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이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세상에서 성공하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웃음과 즐거움으로 살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복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어떻게 웃음과 즐거움을 애통과 슬픔으로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의 본성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큰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자기의 죄와 비참함을 알게 되기에 자기를 낮출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높아지기를 애씁니다. 자기를 낮추지 않습니다. 혹시 일부러 몸을 낮추는 경우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높아짐을 위하여 낮추는 것이라면 그것이 두 마음을 품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낮출 사람이 없는데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나온다면 이것은 더욱 큰 은혜를 받았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더욱 큰 은혜를 말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세상의 정욕과 싸우며, 마귀를 대적하고, 손을 깨끗이 하며,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아니하고, 세상의 웃음과 즐거움을 애통과 슬픔으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이런 은혜를 아무도 구하는 자가 없기에 성령이 시기하면서까지 사모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바라보지 아니하는 우리를 위하여 말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를 향하신 성령 하나님의 시기를 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향한 마음을 회개케 하시고 성결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직 우리로 질투하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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