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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야고보서 공부
                                                           너는 누구관대
말씀:야고보서 4:11-12

 

오늘도 계속해서 야고보서 4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따로 떼어서 보면 왜 이렇게 말하는가 하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4장에서 말하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야고보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우리는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4장 말씀을 전체적으로 잘 살펴보면 4장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낮추라”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러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10절에 보면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명령합니다. 구속받은 성도들의 이 땅에서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이러한 모습 가운데서 사회적인 측면을 바로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낮추는 자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 살펴볼 13-17절 말씀은 우리의 미래 계획 곧 인생의 계획과 관련해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구속함을 받은 성도가 곧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성도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1a절을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형제들아’라고 합니다. 형제들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주고 산 형제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예수님을 믿는 형제들 가운데서 서로 비방하거나 판단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자기 공로가 아니라 주의 은혜를 동일하게 입은 자로서 한 형제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동일하게 은혜로 된 한 형제 사이에서 자기가 무엇을 좀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가지고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가 누구관대 감히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비방하지 말라’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남에 대해서 모든 나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비방하는 데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대 놓고 형제를 비방할 수도 있고, 은근히 나쁜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끔 형제에 대해서 대 놓고 비방할 때가 있죠. 우리는 일반적으로 비방하지 말라는 말씀을 이처럼 대 놓고 형제를 비방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비방에는 이런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형제에 대해서 없는 것을 만들어서 비방할 수도 있습니다. 곧 있지도 않는 일을 임의로 만들어 내어서 모함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형제에 대해서 추측해서 나쁜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에 기초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자기 생각을 가지고 추측해서 형제에 대해서 나쁘게 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실을 말한다고 하면서 은근히 형제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실 함께 형제 된 자들에 대해서 대놓고 비난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자기 나름대로 추측해서 형제를 비방할 때가 많습니까? 또한 과장해서 형제를 비난 할 때도 얼마나 많습니까? 무엇보다도 형제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은근히 나쁜 이미지를 심고자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예를 성경에서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시편 101:5절을 보면 “그 이웃을 그윽히 하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은 눈이 높고 교만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그 예로 ‘그 이웃을 그윽히 여기는 자’를 들고 있습니다. “그 이웃을 그윽히 하는 자를 멸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여기서 ‘그윽히’라는 말은 나쁜 말을 안하는 것 같은데 다 듣고 나면 나쁜 이미지가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곧 교묘히 비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가장 치사한 비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칭찬하는 것 같은데 교묘하게 상대방에게 나쁜 이미지가 생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웃을 그윽히 보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멸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형제를 비방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도리어 형제에게 좋은 이미지가 형성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형제를 비방하지 말아야 합니까? 11b절을 보면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형제를 비방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바로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한다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라 재판자가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한다는 것은 율법의 창시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율법의 준행자이지 율법을 판단하는 재판자가 아닙니다. 율법의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하나님만이 능히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기도 하시며 멸하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곧 ‘네가 누구관대’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비난하고 판단 할 때는 언제나 그 기준을 자기에게 두고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남을 보고 온갖 판단을 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특징은 형제에 대해서는 위선자다, 잘난체한다, 교만하다며 율법을 엄격히 적용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혹시 적용시키더라도 굉장히 관대하게 적용합니다. 똑같은 잘못을 하여도 남은 죽일 놈이고, 자기는 약간 실수한 정도로 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형제에 대해서는 엄격한 자는 곧 형제에 대해 비방하는 자는 결국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입법자요, 재판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12절에 보면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런데 준행자에 불과한 자가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입법자요, 재판자 되시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땅에서 성도로 산다고 하지만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형제를 비방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배워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성경을 보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면 어떤 상태가 되는가 하면, 자기를 정당화하면서 남을 비방하고 남을 판단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옳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사를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여기고 삽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잘못했다고 여기고 삽니까? 내가 차를 타고 복잡한 길로 갈 때 걸어가는 사람이 빨리 비켜서지 아니하면 뭐라고 합니까? 갑자기 차기 끼어들면 뭐라고 합니까? ‘죽으려고 환장했나!’ 이런 말이 그냥 튀어 나옵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내 탓이요’라고 하며 살기보다 ‘네 탓이요’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내가하면 정당하고 남이 하면 불법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모든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자기에게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성경만 펼치게 되면 그렇게 사는 것이 전부 죄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조차 자기의 이익을 따라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성령이 임한 자가 성경을 보게 되면 반드시 어떤 모습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까? 죄인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디모데후서 3:15-17절을 보면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은 성경을 볼 때마다 우리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여도 성경을 보지 않으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자기가 옳은 줄 알고 남을 교훈하고 남을 책망하고 남을 바르게 하려고 하는 일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교훈과 책망을 받은 부분은 형제를 비방하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비방을 하는 일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본성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형제를 비방하는 그 비방의 근원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우리가 남을 비방하는 전문가가 된 것은 역시 아담의 범죄사건으로 올라가 보아야 합니다. 선악과를 따 먹고 나서 부끄럽고 두려워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고 숨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서는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담에 네가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은 아담을 찾지 못하셔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네가 지금 어느 자리에 있는가 하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인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난 인간의 실상이 하나님께서 찾아오심으로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실상은 ‘제가 죄인입니다’ 하고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남을 비방하는 것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 비방이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셔서 나에게 주신 이 여자가 주어서 먹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에게 잘못을 전가 시키는 것입니까? 일차적으로는 자기의 아내에게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궁극적인 책임을 누구에게 전가 시키는 것입니까? 여자를 만드신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있었으면 안 그랬을 텐데 괜히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들어 주셔서 이렇게 되었다고 그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와를 비방하는 것과 동시에 하나님을 비방하고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이후의 인간의 실상입니다. 이러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우리는 남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본성을 거스르면 거북스럽고 괴로워해야 하는데 재미있어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잠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잠언 18:8절을 보면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고 했습니다.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자의 말이 무엇과 같다고 합니까? 별식과 같다는 것입니다. 매일 먹는 밥을 먹다가 한번 외식하여 별식을 하면 맛있죠? 그러므로 잠언에서 별식과 같다는 말은 맛있다는 것입니다. 잠언 기자는 남의 말을 하는 것을 재미있어 하고 좋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을 한번 돌아봅시다. 남의 말을 할 때 칭찬이 많습니까? 아니면 비방이 많습니까? 칭찬보다 비방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우리 자신들의 모습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을 함께 비방하다가 비방하던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또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입술은 결국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잠언 18:6-7절을 보면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잠언서는 계속하여 경고합니다. 잠언 25:17-18절을 보면 “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그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살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웃집에 자주 다니면 자연스럽게 비방의 말이 많이 나오겠지요! 그런 비방이 그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남을 해치는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화살인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5:13-14절을 보면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과부의 명단에 올릴 자 중에서 젊은 과부는 금하라는 말씀 중에 나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젊은 과부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망령된 폄론을 하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려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그래 이제 비방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리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무도 판단하지 말고 살자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그러합니다. 무엇이 옳은지 그런지도 구별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 마음에 끌리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무어라고 합니까? 서로 비방하지 말자고 합니다.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고 하면서 뻔뻔스럽게 나옵니다. 그러나 분명히 판단하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11-13절을 보면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 근친상간의 음행이 있다는 것에 대하여 판단하고 내어 쫓으라고 합니다. 이런 판단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가만히 들어오는 거짓 교리에 대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판단 할 것들이 많습니다만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왜 형제를 비방하지 말라고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4:29-32절을 보고 마치겠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직 선한 말을 하여 덕을 세우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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