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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신 19:14-21
강설날짜 2019-08-28

2019년 신명기 공부

두 세 증인의 입으로 확정하라

말씀:신명기 19:14-21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도피성을 마련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살펴봤습니다(19:1-13). 오늘 말씀은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14)과 두 세 증인의 입으로 사건을 확정하라(15-21)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 곧 네 기업 된 소유의 땅에서 선인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도피성 제도를 말씀하신 여호와께서는 인간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토지 제도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주어 얻게 하신 땅 곧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선인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선인’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서 기업을 분배 한 선조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선인이 정한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경계표는 전답의 경계와 행정 구역을 표시하기 위해 글을 새겨 세워 놓은 돌을 가리키는 것으로 지계표라고도 합니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이 지적도가 없었습니다. 경계표석으로 기업을 구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지적도와 같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옮겨지거나 이동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토지에 대한 욕심을 내면 누구든지 손쉽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힘과 권력에 의해 얼마든지 옮겨 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는 남의 소유나 재산을 탐내는 도둑질하는 것으로 제8계명 곧 “도둑질 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행위입니다(출 20:15, 17).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갈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약속의 땅입니다. 그러므로 분배 받은 기업은 하나님의 은총을 상징하는 것으로 장차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누리게 될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살아가야 할 새로운 법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곧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는 애굽 땅에서와 같은 경제논리나 법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새로운 법을 따라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굽 땅 곧 이 세상에서의 삶의 방식이 어떠합니까? 힘 있는 자가 다 차지하는 그런 방식입니다. 힘만 있으면 땅도 차지하고 사람도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한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출애굽 하여 들어갈 약속의 땅은 애굽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땅을 홀로 차지하는 법이 없게 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힘이 있어도 땅을 함부로 사고팔아서 자기 소유로 삼을 수 없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웃의 재산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곧 타인의 권리나 재산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이웃의 재산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그 재산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가정을 부양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의 재산을 빼앗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경계표를 무너뜨리면 안 됩니다. 복음의 경계표를 무너뜨리면 안 됩니다. 특히 하나됨의 경계표를 무너뜨리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않고 도리어 지켜 줄 수 있기를 원합니다. 교회 가운데 하나됨의 원리를 잘 이루어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교회다움을 잘 나타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 15-21절은 재판제도에 관한 규례입니다. 곧 증인제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15절을 보면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죄를 지었다고 정할 때에 한 증인으로는 정하지 못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곧 죄를 정할 때에 한 증인으로 확정하지 말고 반드시 두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증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여호와께서 이런 규례를 주시는 것은 위증으로 인해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증인이 한 명인 경우 위증으로 인해서 억울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위증을 방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두세 명의 증인을 세우게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6-20절에 보면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아무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 말함이 있으면 그 논쟁하는 양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시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재판장은 자세히 사실하여 그 증인이 위증인이라. 그 형제를 거짓으로 무함한 것이 판명되거든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 후부터는 이런 악을 너희 중에서 다시 행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위증자가 있어서 논쟁이 벌어진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말씀입니다. 위증자가 있어서 다른 사람이 악을 행했다고 하여 논쟁이 벌어질 경우 양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시의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서라고 합니다. 두 사람 간에 논쟁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 한 사람은 위증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논쟁이 있는 양방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재판장에게 재판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재판장이 자세히 사실하여 곧 자세히 조사하여 그 증인의 위증 여부를 가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너희 중에 악을 제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하나님 앞에 나가라”는 말씀입니다. 재판에서 판결을 내리고 결정하는 것은 인간입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재판을 받으라고 했을 때 실제적으로는 재판장 앞에 나아가 재판장이 자세히 살펴서 재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재판을 받게 하신 것은 재판에 있어서 판결을 내라고 결정하는 것이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그 배후에는 모든 것을 섭리하시며 그들에게 권위를 주시는 분은 전적으로 의로우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고자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섭리하시며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정직 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 때 이웃을 해하고자 하는 악을 행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곧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고 하시는 제9계명을 어기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마땅함인 것입니다(마 22:34-40).

 

그런데 재판장이 자세히 조사해 본 결과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그 위증 한 자에게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21절을 보면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위증을 하여서 형제를 해하려고 한 것이 생명이라면 그 위증한 사람의 생명으로, 눈이면 눈으로, 이면 이로, 손이면 손으로, 발이면 발로 갚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동해보복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21절의 이 말씀은 가혹한 보복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범죄 행위에 비례하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즉 정의롭게 공정하게 벌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원칙은 곧 동해보복법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악한 일을 행한 자를 벌 할 때에 긍휼히 보지 아니함으로써 피해자의 피해를 헛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정의로운 판결의 집행을 통해서 악을 행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때에 그 후로는 악을 행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공동체 전체를 거룩하게 보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갚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악을 제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공동체를 보호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동해보복법’은 위증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인 모든 다툼에서 일어나는 경우에도 해당이 되는 법입니다. 출애굽기 21:18-27절에 보면 사람이 싸우다가 해를 당한 경우에 여러 가지 배상법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동해보복법이 나옵니다.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린 것으로 갚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동해보복법은 종과 주인의 경우에는 그 적용점이 달랐습니다. 종이 주인의 재산으로 취급되는 시대에 종을 주인이 때렸는데 당장에 죽으면 주인이 형벌을 받지만 하루나 이틀을 연명하면 형벌을 면한다거나 또 주인이 종의 눈을 상하게 하거나 이를 상하게 하면 그 대신에 종에게 자유를 주라는 것입니다. 하여튼 이와 같은 동해보복법은 인간의 악함으로 인해 과도한 보복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죄악된 본성에는 자신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에 과도하게 보복하려고 하는 악한 본성이 우리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로인해 억울한 한 피해자가 나오고 그 사회의 질서가 파괴되는 것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약속의 땅에 들어가 살 때 동해보복법을 시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공동체를 보호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위증의 심각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나봇을 통해서 위증의 심각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21장에 보면 아합과 이세벨이 사주한 위증 사건이 나옵니다. 아합이 자기 왕궁 근처에 나봇이라는 사람의 포도원이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나물 밭을 삼기 위해 그 포도원을 팔라고 합니다. 팔지 못하면 다른 포도원으로 바꾸어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나봇은 조상으로부터 받은 땅은 사거나 팔거나 하지 못하게 한 하나님의 법에 기초해서 거부합니다(레 25:23). 왕도 이 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속이 상해 밥도 먹지 않고 침상에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이세벨이 그러고도 당신이 이스라엘의 왕이냐고 하며 자기가 나봇의 포도원을 왕에게 돌려줄 것이니 걱정 말고 즐겁게 식사하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나봇이 사는 성읍의 장로와 귀인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 성에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부른 후에 비류 두 사람을 시켜서 위증하게 한 것입니다.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하며 돌로 쳐 죽이게 한 것입니다. 그 성읍의 장로와 귀인이 왕의 명이 잘못인줄 알지만 권력에 맞설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아합의 이름을 빌린 이세벨의 명대로 나봇을 거짓 증인 둘을 세워서 재판하고 성 밖에 끌어내어 돌로 쳐 죽여 버립니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았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증인 두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합법적인 재판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재판은 권력자로 인한 위증으로 인해 자행된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나봇은 위증으로 인해 억울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나봇의 이 억울함에 대해서 동해보복법을 시행하셨습니다. 이세벨이 아합 왕에게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고 보고하자 왕이 그 포도원을 보러나갔습니다. 이때 엘리야 선지자가 책망합니다. 열왕기상 21:19절을 보면 “너는 저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하셨다 하고 또 저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나봇의 피를 핧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도 핧을 것이라”는 말씀이 바로 동해보복법이 시행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열왕기상 22장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대로 아합은 아람과의 전쟁에서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 죽고 맙니다. 그의 시체를 매어다 사마리아에 장사 지내고 개들이 그 피를 핥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수자가 되셔서 그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벌을 이세벨도 동일하게 당합니다. 열왕기하 9장에 보면 이세벨은 예후의 반역으로 자신을 섬기던 내시들에 의해 창밖으로 내던져 졌어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그 시체를 개들이 먹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두골과 손바닥 발바닥만 남았습니다(왕하 9:36-37).

 

그런데 이러한 위증이 예수님을 죽이는 사건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26:59-61절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증거를 찾으매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가로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위증을 가리기 위해 자세히 조사하여 살펴보아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이 앞장서서 거짓 증인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증인들 간에 말이 맞지 않아 찾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두 사람이 성전을 헐고 삼일 만에 짓겠다고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23:1-2절을 보면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소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위증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들의 소리가 이긴 것입니다. 참으로 위증은 그리스도까지 죽이는 것입니다. 위증은 무서운 죄악입니다. 그 죄로 인해서 온 세상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위증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 사회가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 되도록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에게 임한 우리 주님의 이 놀라운 은혜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우리 주님의 이 은혜를 더욱 맛보아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임한 이 주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나타내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더욱 우리 교회가 주님의 공의와 사랑이 나타남으로 거룩한 공동체로 세워져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높이 드러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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