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5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신 21:1-9
강설날짜 2019-09-18

2019년 신명기 공부

죽인 자를 알지 못하거든

말씀:신명기 21:1-9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대적들과 싸울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가나안 족속들과 벌이는 전쟁은 하나님의 약속과 거룩함의 전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전쟁은 세상 사람들이 전쟁 할 때와 같이 군대의 수와 무기의 뛰어남으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나아가 싸워야 하는 싸움인 것입니다.

 

신명기 21장은 약속의 땅에서 일어나는 불행 곧 살인 사건과 약한 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다섯 가지 원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와 다섯째 곧 가해자를 알 수 없는 살인 사건(1-9)과 나무 위에 달린 시체를 해지기까지 두지 말고 장사하라(22-23)는 원칙은 살인과 시체와 관련되어 있고, 둘째와 셋째와 넷째는 곧 포로로 잡혀 온 여인과의 혼인 문제(10-14), 두 아내를 두었을 때 장자권 문제(15-17), 불순종하는 자녀문제(18-21)는 가정 안에서의 정의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절과 23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이라고 해서 감싸기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21장 말씀은 약속의 땅에서 이루어질 일에 대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행할 규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에는 그 시체가 발견된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성읍 사람들이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성읍이 그 살인 사건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 시체가 자기 성읍 가까운데서 발견되었다는 것만으로 그 성읍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에서 혹시 피살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에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지침인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살인 사건 중에서도 살인 한 자를 알지 못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은 거룩한 땅입니다. 그러하기에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서도 안 되고, 또한 고의로 피를 흘려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 피 흘린 죄를 해결해야 그 땅이 약속의 땅으로, 곧 거룩한 땅으로 유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실로 피를 흘렸거나 고의로 피를 흘렸거나 간에 그 피에 대한 속죄가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피 흘림의 죄를 규정하고 또 그런 죄가 나왔을 때에 해결하는 법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온 세상이 의인의 피를 흘린 땅이기 때문에 저주를 받은 땅임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습니다. 창세기 3:17절을 보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저주의 직접적인 모습은 의인의 피를 흘린 땅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아 주신 의인 아벨의 피를 흘린 땅이기에 땅이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창세기 4:11-12절을 보면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노아 홍수 심판 이후에도 보면 피 흘림을 금했습니다. 창세기 9:4-5절을 보면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약속의 땅이라고 해도 죄악된 인간으로 인해서 피 흘리는 일이 없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약속의 땅은 이런 피 흘림에 대하여 반드시 속죄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9절을 보면 “너의 장로들과 재판장들이 나가서 그 피살한 곳에서 사면에 있는 각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 그 피살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 곧 그 성읍의 장로들이 아직 부리우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고 성읍의 장로들이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심지도 못하는 골짜기로 그 송아지를 끌고 가서 그 골짜기에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을 것이요,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올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그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피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죽인 자를 알 수 없는 살인 사건이 발생 했을 때 그 시체와 가장 가까운 성읍이 책임을 지게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장로들과 재판장들이 나가서 그 피살된 곳에서 사면의 성읍의 원근을 잰 후에 가장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그 도시를 대표하여 책임을 지게 합니다. 장로와 재판장들이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여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심지도 못하는 골짜기에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일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 하고 또 모든 송사사건을 판단하는 제사장이 입회 하게 합니다. 제사장이 입회하는 것은 그 사건이 하나님의 뜻대로 해결되는지를 감독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 모든 의식이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상징하는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부리지도 아니하고 멍에를 맨 적이 없는 송아지를 물이 흐르고 갈지도 심지도 아니한 골짜기로 끌고 가서 목을 꺾으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돌로 제단을 쌓을 때에 철 연장을 대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봅니다. 여호수아 8:30-33절을 보면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산에 한 단을 쌓았으니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철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그 위에 드렸으며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섰으니 이는 이왕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한 대로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철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단을 만들어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고 합니다. 신명기 27:5-7절을 보면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철기를 대지 말지니라.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위해 돌단을 쌓을 때 철기를 대지 말라고 했습니다. 철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돌로 단을 쌓아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사람의 손길이 부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아직 부리지도 멍에를 메지도 아니한 송아지와 아직 갈지도 심지도 아니한 땅에서 송아지의 목을 꺾으라는 것은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는 모습입니다. 암송아지 목을 꺾고 난 후에 그 위에서 손을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손을 씻으면서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그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처럼 살인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이런 살인 사건을 오늘 본문처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을 통해서 무엇을 계시하시고자 하시는 것일까요? 피 흘린 죄를 속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죽이지 않았는데도 성읍의 장로들이 나갔다는 것은 성읍의 모든 사람을 대표하여 나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넓게 보자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대표하여 나가서 속죄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땅에서 피를 흘리는 것이 죄가 되기 때문에 속죄를 해야만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피가 하늘로 호소할 것이며, 그 피 값을 하나님께서 갚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인 것입니다. 그런데 범인을 모르는 것입니다. 범인을 모르기 때문에 그 피 흘린 죄를 속하기 위해서 암송아지를 대신 죽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속의 죽음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예표요, 그림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부당하다고 여기는 것이 세상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율법으로 이런 규례를 주심으로 이스라엘 땅에서 곧 약속의 땅에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다면 그들이 공동책임을 지고 속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직접 죽여 놓고서도 그 죽임을 당연하게 여긴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이단을 처단했기 때문에 조금도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다고 생각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조차 이 땅에서 참된 하나님의 아들을 살해한 것을 인정하지 아니하는데 어떻게 다른 나라 사람들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땅이기에 자신은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유대인도 아니고 2천 년 전에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죽인 가해자가 됩니까? 로마서 5:12-14절을 보면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대표성의 원리라고 합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임하였습니다. 아담이 범죄 한 이후에 우리 인간은 독자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범죄가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선언이기에 하나님 없이 홀로 하나님인 듯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이 로마서의 말씀을 인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도 이런 내용을 증거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인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다메섹까지 원정을 가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신이 예수님을 살해한 장본인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역사는 사람으로서는 될 일이 아닙니다. 어떤 인간도 자신이 행동하지 아니한 것에 대하여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이 행한 잘못된 일들도 어떻게 하든지 남에게 떠넘기려고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죄악된 본성입니다. 그런 인간이 어떻게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기는 2천 년 전에 한 청년의 죽음에 가담되었다고 인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인정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죽으심이 자신의 죄 때문임을 인정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바로 나의 죄로 인한 것임을 시인하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범인이 밝혀지지 아니한 시체를 처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과 상관없다고 피 흘린 죄를 속하지 아니하면 그들의 죄가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그 약속의 땅이 저주를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죄를 하려면 죄 없는 송아지를 끌어가다 목을 꺾고 그 위에서 손을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죄 씻음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씻음을 받지 아니하면 우리의 죄가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로인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에 보면 빌라도는 예수님의 재판에 자신은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손을 씻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장본인이 되고 맙니다(마 27:24). 아무리 손을 씻는다고 해서 그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시편 51:14절을 보면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26편에 보면 다윗은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무죄하다고 하면서 손을 씻고 자신의 의로움을 인하여 주께 감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시편 51편에서는 피 흘린 죄에서 자신을 건져 달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 죄를 숨기기 위해 남편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그러고서도 자기의 죄를 몰랐습니다. 이런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 나서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51편의 이와 같은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가 어떠함을 고백하는데 그 죄악의 결론이 피 흘린 죄입니다.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것입니다. 이 죄에서 자신을 건져 달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주의 의를 노래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모습이 나타나야 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교회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단체도, 사람도 다 자기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를 변호하고 책임을 피하려고 합니다. 오늘날은 진정으로 내가 잘못했다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것은 오늘날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흘린 죄에 동참한 주범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곧 죄인 중의 괴수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떠합니까? 교회라는 곳에서조차 어떤 문제가 생기면 나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손을 씻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저와 여러분에게 그대로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 불행한 일이 일어날 때 누구의 잘못이 불분명 할 때 우리는 우리의 모두의 책임으로 받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시간과 힘을 합쳐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기 정당함을 주장하는 자리에, 나는 상관없다고 하는 그 자리에 무죄한 자가 피를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피가 누구 때문에 흘린 것입니까? 바로 나로 인한 것입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자에게 진정으로 속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 자신이 예수님의 피를 흘린 죄에 동참한 장본인들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함을 받고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되었음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날마다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며, 회개하며, 오직 우리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는 일이 우리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가 더욱 교회다움을 잘 나타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3 [신명기 22장] 일상생활에서 행해야 할 규정(2) file 손재호 2019.11.06 20
92 [신명기 22장] 일상생활에서 행해야 할 규정(1) file 손재호 2019.10.23 47
91 [신명기 21장] 시체를 밤새 나무 위에 두지 말라 file 손재호 2019.10.16 47
90 [신명기 21장] 패역한 아들에게 내리는 벌 file 손재호 2019.10.02 80
89 [신명기 21장] 여자 포로를 아내로 삼고자 하거든 file 손재호 2019.09.25 65
» [신명기 21장] 죽인 자를 알지 못하거든 file 손재호 2019.09.18 55
87 [신명기 20장] 대적과 싸우려 할 때에 file 손재호 2019.09.04 97
86 [신명기 19장] 두 세 증인의 입으로 확정하라 file 손재호 2019.08.31 59
85 [신명기 19장] 그 성읍으로 도피케 하라 file 손재호 2019.08.21 91
84 [야고보서 5장] 기도하고 찬송하라 손재호 2015.03.30 1762
83 [야고보서 5장] 맹세하지 말라 손재호 2015.03.30 1384
82 [야고보서 5장] 길이 참으라 손재호 2015.03.30 1532
81 [야고보서 5장] 부자들에 대한 경고 손재호 2015.03.30 1705
80 [야고보서 4장] 너희는 안개니라 손재호 2015.03.30 1468
79 [야고보서 4장] 너는 누구관대 손재호 2015.03.30 1242
78 [야고보서 4장]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손재호 2015.03.30 2305
77 [야고보서 4장] 하나님의 원수 손재호 2015.03.30 1290
76 [야고보서 3장] 두 가지 지혜 손재호 2015.03.30 1924
75 [야고보서 3장] 말의 실수가 없으면 손재호 2015.03.30 2285
74 [야고보서 2장] 참된 믿음의 예 손재호 2015.03.30 118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Nex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