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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일 2:24-29
성경본문내용 (24)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25)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26)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27)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28)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29)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강설날짜 2008-01-20

2008년 1월 20일 설교


처음부터 들은 것


말씀:요한일서 2:24-29

요한일서가 쓰여질 당시 교회에는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게 만드는 자들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일어나 복음을 훼손하고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나고 세상과 온갖 거짓 사상을 좇아갔습니다. 교회는 이런 것을 조심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사귐을 이루어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지난 두 주간에 걸쳐서 살펴봤습니다. 그러면 이런 마지막 때에 참된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처음부터 들은 복음을 우리 안에 거하게 해야 합니다. 24절을 보면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요한일서 저자는 성도가 하나님과 진리의 사귐을 사귀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을 말한 후 이제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고 합니다.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고 합니다. 성도들이 처음부터 들은 것을 우리 안에 거하게 할 때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님 안에 있어서 하나님과 참된 사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처음부터 들은 것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복음입니다. 요한일서를 수신하고 있는 성도들은 복음을 들어놓고서는 지금 적그리스도에 의하여 유혹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들은 복음의 내용을 변개하려고 하는 자들이 많이 나타난 것입니다. 18-19절을 다시 보면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 인줄 아노라.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적그리스도가 많이 나타난 것이 마지막 때인데 이런 마지막 때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처음부터 들은 그 복음을 우리 안에 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적그리스도가 하는 일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적그리스도의 활동은 어느 시대에나 늘 있어왔습니다.

시편 2:1-2절을 보면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고 했습니다. 온 열방과 민족들이 분노하며 허사를 경영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세상은 분주하게 경영합니다. 대통령 당선자와 인수위에서는 새로운 정권을 위해 분주합니다. 경제를 살리고 국민소득 3만 달러로 가는 선진국의 길을 놓기 위해 분주합니다. 미국은 미국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분주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해서 무엇을 하고자하는 것입니까? 다시 더 높은 소득을 향하여, 더 살기 좋은 나라, 더 강대국이 되기 위하여 또 달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허사를 경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영이 영원한 생명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왕들과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일하는 내용이 결국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세상에서 끊어지면 죽는 줄로 알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에 대하여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이 사는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조차 처음에 들은 복음, 오직 은혜는 교회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것처럼 여기면서 계속하여 인간의 행함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한국 교회는 오직 성장에 관한 프로그램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세상의 경영 마인드에 기초한 성장프로그램들이 인기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많은 돈을 드려 그런 프로그램을 배우는데 좇아다닙니다. 물론 그런 것이 다 잘 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본의가 무엇이며, 하나님의 원리를 좇아 바르게 목회하고자 하는 데 관심을 가지기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미명아래 외적인 성공 목회를 추구한다는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소위 개혁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들조차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바르게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를 섬기면 망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하나의 자격을 따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가르침대로 목회하기보다 온갖 성장 원리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좇아다닙니다. 이런 것은 다 가짜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들은 복음이 성경적인 복음이 아니라 그저 사람들의 입맛에 맞고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거짓된 복음이라면 처음부터 가짜입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들은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25절을 보면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요한복음에서 몇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들은 내용이 요한이 전한 복음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14-15절을 보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식물도 없고 물이 없자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어 물어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모세에게 자신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쳐다보는 자는 나음을 입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뱀을 쳐다본다는 것은 자신들이 그런 저주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인정하고 놋 뱀을 처다 보았을 때 나았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들린 것이 자신의 저주임을 믿는 자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는 것도 주께서 들리심으로 자기 백성을 이끌어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32-33절을 보면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을 이끄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셔서 자신의 죽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처음부터 들은 복음의 내용입니다.

요한복음 3:35-36절을 보면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만물을 다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은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40절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도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2-3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에게 모든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아는 것은 아버지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생인 것입니다. 우리가 몇 구절을 찾아본 내용을 요약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자기 백성을 이끄셔서 영생을 얻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며, 이렇게 처음 들은 것을 믿고 그 안에 거하면 아들 안에 있는 것이며,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처음부터 들은 것 안에 거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26절을 보면 너희를 미혹하게 하는 자들이 있어서 이것을 썼다고 합니다. 이미 복음을 들어서 믿고 있는 자들을 미혹하기 위하여 적그리스도들이 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리스도란 구원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이루어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적그리스도는 이것을 부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모습은 환난과 핍박을 주든지, 세상의 재미와 쾌락을 주든지, 교묘하게 복음의 내용을 변개하여 인간의 행함을 개입시키고자 하든지 간에, 예수님의 공로로만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혹하는 자들이며, 어느 시대에나 활동하는 적그리스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27절을 보면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면 너희는 주께 기름부음 받은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름 부으심이 있다는 것은 성령이 임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은 아무것도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까? 그 말이 아닙니다. 이미 처음부터 들은 복음의 내용이 있는데 그 복음을 버려두고 다른 교묘한 이야기들을 배우기 위하여 좇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유혹하는 것은 처음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떠나게 만들고자 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자는 처음부터 전한 복음을 계속하여 믿을 뿐 아니라 그 처음 받은 그 복음의 내용의 깊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17-19절에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처음 복음을 들은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으로 충만하게 되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27b절에 보면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고 합니다. 복음을 들으면 들을수록 주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곧 복음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주안에 더 깊이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가르치시는 일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는 자는 세월이 지나가면 갈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구원의 능력이 됨을 더욱 더 절실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6:14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세상에서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은 기초를 다시 든든히 하자는 것입니다. 운동선수나 공부하는 학생들도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 처음이 기초가 되는 것이고, 그 기초를 익히면서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간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 처음의 들은 이야기 곧 복음 안에 나중의 것까지 몽땅 다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처음 들은 그 복음이 족하다,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이런 생각을 잘 못하는가 하면 시간 개념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무언가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처음과 나중을 따로 생각하지만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처음과 나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서 완성입니다. 요한복음 5:24절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미 다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어디서 다 이루어졌다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골로새서 2:1-4절에 보면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사도가 힘쓰는 이유는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부요에 이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처음부터 들은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가 부족한 것인 양 속이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28절을 보면 “자녀들이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주님 강림하실 때에 그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은 무엇으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입니까? 우리의 행함입니까? 히브리서 4:14-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굳게 잡아야 합니까? 우리의 대제사장이시고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 때문에 보좌 앞에도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담대함을 얻어 부끄럽지 않는 길은 그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떤 자가 주님 안에 바르게 거하는 자입니까? 어떤 자가 주님 안에서 담대함을 가지는 자가 되는 것입니까? 29절을 보면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고 합니다. ‘의를 행하는 자’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의’는 우리가 사도바울의 서신을 읽으면 주로 ‘칭의’와 관련해서 그렇게 집중적으로 쓰여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의를 행한다’라고 할 때에 이 의는 ‘칭의적인 차원의 의’가 아니고, ‘성화적 차원의 의’ 곧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과의 더 깊은 사귐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그런 차원에 있어서의 의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자,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출생을 가진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생명의 모든 삶의 기원을 가진 자를 증거하는 것이 밖으로 나타나게 될 때에 무엇으로 나타나냐하면 ‘의를 행하는 자’가 되는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강조가 되고 있는 것은 하나의 닮은 꼴이 되어지는 것, 곧 우리 주님과 같은 삶의 형태가 우리 안에 만들어지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주님 안에 바르게 거하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닮은꼴의 사귐이 있는 자들 가운데서 그 사귐의 최상급 상태가 무엇이냐면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주님 앞에서 담대함을 가질 수가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주님과 터놓고 말하는 사이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이때에, 적그리스도의 유혹이 많은 이때에 처음부터 들은 복음 안에 거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게 하시고, 하나님과 더 깊은 사귐을 이루어가게 하여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끄러움을 당치않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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